모 신문 기사와 TV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 침낭 고르는 법이다. 백패킹 좀 해본 사람이라면 코웃음 칠 얘기다. 우리나라 산의 한겨울은 -15℃는 기본일 정도로 춥다. 겨울산 백패킹을 위해선 부피가 큰 동계용 침낭을 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20~30리터 배낭엔 아예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 부피가 크다. 이런 침낭을 겨울이 아닌 나머지 계절에 들고 다니는 건, 극기 훈련에 가깝다.
산행을 아무리 오래 한 베테랑이라도 야영 경험이 없다면, 침낭에 관해선 초보자나 마찬가지다. 침낭을 고르는 것이 처음엔 무척 복잡하게 느껴진다. 필파워, 구스다운, 덕다운, 합성섬유, 다운 충전양, 외피와 내피 소재, 내한온도, 방수성, 발수성, 무게와 부피 등 따져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다 가격도 비싸기 때문이다.
침낭은 알아야 잘 산다. 비싼 만큼 좋다지만 봄·가을에 백패킹하는 사람이 200만 원에 가까운 동계 원정용 침낭을 쓴다면 미사일로 해충 잡겠다는 꼴이다. 무조건 비싼 침낭보다는 자신의 백패킹 스타일에 맞는 침낭을 골라야 한다. 언제 백패킹할 건지, 무거워도 따뜻하게 잘 것인지, 가볍게 가서 조금 추워도 참을 수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 초보자는 5~6월과 9~10월에 하는 것이 가장 쾌적하고 수월한 편이다.
침낭은 동계용(겨울용)·봄가을용·여름용이 있다. 만약, 추위를 많이 탄다면 봄가을용을 여름에도 써야 하니, 자신에게는 3계절용이 된다. 추위를 덜 타는 편이라 침낭커버를 사용해 봄가을용으로도 겨울에 잘 수 있다면 4계절용 침낭이 된다. 이렇듯 침낭은 추위를 타는 정도와 침낭의 부피·무게를 감안해서 선택하는 주관적인 장비다.
침낭 고르기가 까다로운 것은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 같은 3계절용이라도 마트에서 살 수 있는 2만~3만 원짜리부터 유명 브랜드의 100만 원이 넘는 것까지 극과 극이다. 현재 선택의 폭이 다양해졌다. 인터넷 카페와 개인이 제작한 중소형 브랜드 침낭이 생겨나면서 우수한 품질의 침낭을 훨씬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백패킹 최고의 적은 무게다. 침낭은 따뜻한 건 기본이고, 패킹해 압축했을 때 작고 가벼울수록 비싸다. 구스다운>덕다운>화학섬유라는 계산이 나온다. 가볍고 따뜻하며 압축이 되는 정도는 구스다운(거위털)을 따라올 소재가 없다. 무게 부담이 없는 오토캠퍼는 덕다운(오리털)침낭이나 화학섬유침낭을 많이 쓰지만, 백패커는 구스다운이 아닌 다른 소재의 침낭을 쓰는 이가 드물 정도로 백패킹에 최적화된 우수성이 검증되었다.
구스다운은 필파워에 따라 품질과 가격이 나뉜다. 필파워 수치가 높을수록 압축한 상태에서 펼쳤을 때 더 많이 부풀어 오른다. 즉 보온성과 압축성이 뛰어나 부피와 무게를 줄일 수 있다. 다운을 감싼 내피와 외피도 좋은 소재를 사용해야 털이 잘 빠지지 않고, 가볍고, 약간의 방수도 된다.
침낭은 겨울이 성수기이므로, 비수기인 여름에 더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많다. 이외에 좀더 자세한 내용은 침낭 제작자인 이재승 강사의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월간<山> 백패킹스쿨은 백패킹 전문가들을 강사로 섭외해 다양한 시각으로 주제에 접근하는 방식이다. 기자와 강사들 사이에 상반된 내용이 있을 수도 있으며, 백패킹 성향 차이로 인해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백패킹은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 길이 정답이다.
침낭 사용법은 다음에 다루겠지만, 기본적인 것만 얘기하자. 방수방풍 재킷을 입고 침낭 안에 들어가면, 보온성과 쾌적성이 떨어지고 아침에 몸이 축축하게 젖는다. 몸에서 나온 땀이 빠져나가지 못해서다. 때문에 적당히 옷을 벗고 들어가야 보온성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코와 입은 적당히 침낭 밖으로 내놓아야 숨 쉴 때 생긴 습기가 침낭 안에 맺히지 않는다.
삼계절용 침낭 20만~30만 원대 적당해
강사 COOL-K 김광수
PCT 4,300㎞ 완주, 스웨덴 쿵스라덴 440㎞ 완주. 현 제로그램 전략기획팀 과장.
침낭이 중요한 것은 생명과 직결되는 체온 유지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침낭은 본인이 추구하는 하이킹 또는 백패킹 스타일에 따라 고르는 것이 좋다. 여유가 된다면 종류별로 구비해서 상황에 맞춰 사용하는 것이 좋지만, 꼭 여러 종류의 침낭을 살 필요는 없다.
어느 계절에 사용할 것인지, 어떤 종류의 충전재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할 것인지 고민해서 고르면 된다. 침낭은 특히 개인차가 크게 반영되기 때문에 객관적인 잣대로 추천하는 것이 부담스러운 제품이다.
같은 곳에서 같은 침낭을 가지고 야영해도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몸에 열이 많은 사람보다 더 추울 수 있다. 침낭의 내한온도를 측정하는 국제표준인 ‘EN 13537’을 기준으로 표기된 내한온도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따라서 침낭을 구매할 때는 본인이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인지를 고려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침낭의 종류는 사용하는 계절에 따른 분류와 사용된 충전재에 따른 분류로 나눌 수 있다. 계절에 따라 봄에서 초겨울까지 사용이 가능한 삼계절 침낭과 겨울에 사용 가능한 동계 침낭으로 나눌 수 있고, 사용된 충전재에 따라 합성소재와 천연소재(다운)로 나눌 수 있다.
필자의 기준으로 정의하면, 삼계절 침낭은 보통 3월에서 11월까지 사용 가능하며, 적정 내한온도는 -2~-6℃ 사이다. 동계 침낭은 적정 내한온도 기준으로 최소 -15℃ 이상은 되어야 한다. 필자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고, 우리나라의 산의 한겨울 추위는 아주 매섭다.
필자가 5개월간 미국 PCT를 종주했을 당시 사용한 침낭은 삼계절 침낭(하이시에라_제로그램)이었고, 마지막 구간을 지날 때가 9월 말이었는데 큰 불편 없이 종주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당시 마지막 구간인 워싱턴주의 경우, 9월 중순 이후부터 많은 눈과 비가 내려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PCT를 준비하는 하이커의 경우, 북진(멕시코에서 캐나다)을 하는 PCT의 적기가 4~9월임을 감안하면 내한온도가 섭씨 -6°(화씨 20°) 정도의 제품을 이용하면 된다. 다소 춥다고 느껴질 경우에는 다운재킷과 여분의 옷을 껴입고 잤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침낭의 내한온도가 높아질수록 침낭의 충전재 무게가 증가하거나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에 대부분의 미국 하이커들도 화씨 20도를 커버하는 제품을 이용한다.
침낭의 충전재로는 덕다운과 구스다운을 충전하는 천연 충전재와 프리마로프트로 대표되는 합성섬유 충전재로 나뉜다. 이 둘의 차이는 가격과 무게, 발수성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같은 내한온도를 기준으로 천연 충전재의 경우 합성섬유 충전재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무게가 가볍고, 물에는 취약한 편이다. 가격이 비싸고 물에 취약한 데도 천연 충전재를 선호하는 이유는 바로 무게 때문이다.
천연 충전재가 가지고 있는 필파워로 인해 적은 무게로도 높은 보온성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같은 내한온도의 합성섬유 충전재에 비해 가벼울 수밖에 없다.
필파워는 우모의 복원력을 말하는 것인데, 필파워가 높을수록 털 사이에 많은 공기층이 형성되어 열전도를 차단해 온도를 높여 준다. 그만큼 필파워가 높은 제품이 비싸다. 요즘은 천연 충전재도 발수 가공이 되어 이전과 달리 침낭이 물에 조금 젖어도 보온을 유지하는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가격대는 각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삼계절용의 경우 대략 20만~30만 원대 제품이 적당하다.
침낭은 중요한 만큼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적은 부피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우수한 보온력을 위해 수많은 시간을 기술개발에 투자하는 침낭 제조업체의 노력과 기술이 집약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비싼 침낭이 제값을 하려면 본인의 스타일에 맞는 좋은 침낭을 잘 구매해 부지런히 아웃도어 활동을 즐겨야 한다. 누가 그랬던가? 고민은 배송을 늦출 뿐이라고!
얇은 침낭 두 개 겹쳐 써도 유용
강사 OUTSIDER MIN 민미정
네팔 EBC 서킷, 유럽 알프스, 남미 안데스, 북미 로키 등 백패킹 종주.
열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백패킹용으로는 사각형보다 머미형 침낭을 선호한다. 침낭 성능은 충전재로 결정된다. 다운Down은 오리나 거위의 솜털을 말하는데, 페더Feather로 불리는 깃털과의 비율이 80:20 혹은 90:10로 사용되는 게 보통이다.
최근에는 무게는 줄이고, 필파워를 높이기 위해 95:5를 사용하는 침낭도 있다. 필파워가 높다고 해서 적은 충전양으로도 동계에 천하무적인 것은 아니다. 충전양과 필파워가 적당히 균형을 이뤄야 추위도 막아 주고, 침낭 무게도 부담스럽지 않다. 필파워에 따라 적은 무게로도 보온력을 높일 수 있는 것이다.
가볍고 좋은 스펙의 침낭일수록 구매가격은 높아진다. 고가의 침낭이 부담된다면 침낭 라이너나 침낭 커버를 겸용하거나, 취침 시 뜨거운 물을 담은 물병을 케이스에 담아 침낭에 넣어 보온력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동계에 활동 빈도가 적다면 동계침낭을 따로 구입하기보다는 얇은 침낭 두 개를 겹쳐 사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좋은 침낭 고르는 법!
강사 BYE JUN 이재승
분리 침낭 특허 출원.
슬로우아웃도어팩토리 대표. 느림라이프백패커 카페 운영자.
좋은 침낭은 몸에서 발산하는 열을 잘 보존하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찬 공기를 막아 사용자를 추위로부터 보호한다. 침낭은 형태와 충전재·충전량에 따라 구분되며, 3계절용(우모량 600g 미만)과 동계용(1,000g 이상)으로 구분할 수 있다.
형태는 직사각형, 머미형으로 구분되며 머미형은 미라 형태로 곡선형이다. 머미형은 사각형 침낭보다 취침 시 불편하지만 몸과의 밀착도가 좋아 보온성이 더 우수하다. 충전재는 화학솜과 물새털(오리털·거위털)이 주로 사용된다. 그중 거위털이 가장 가볍고, 압축에 유리하다. 무엇보다 보온성이 가장 우수하다. 다만 물에 취약해 젖었을 경우에는 제 기능을 할 수 없으며 무거워져 휴대 또한 불편하다.
침낭은 적정사용 온도가 정해져 있는데, 충전재의 양과 충전재의 종류, 충전재를 감싸고 있는 외피, 즉 원단의 종류와 봉제법에 따라 적정 사용온도가 결정된다.
박스월 봉제 일반적이고 따뜻해
싱글월 봉제는 저가형 침낭에 널리 쓰이며, 봉제선에 냉점Cold Spot이 생기는 단점이 있다. 터널 형태의 칸막이인 박스월 봉제는 가장 보편화된 봉제 방법이다. 냉점이 없으며 다운이 충분이 부풀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다운의 쏠림을 방지할 수 있다. 이외에도 ‘W라미네이트’ 봉제법이 있는데 보온성은 가장 뛰어나지만 무게가 가중되는 단점이 있어 널리 사용되는 봉제법은 아니다.
침낭에 사용되는 원단은 기본적으로 털 빠짐이 없어야 하며 방수·발수·투습 기능이 있어야 한다. 보통 가볍고 얇은 나일론 립스톱 원단이 많이 쓰인다. 털 빠짐을 방지하기 위해 원단에 과도한 코팅가공을 할 경우 방수·발수 등의 효과는 좋아지지만 투습성이 나빠져 침낭을 압축해 패킹할 때 침낭 속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해 애를 먹는 경우도 있다. 원단의 경우 최적의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 국내 가공 원단보다 해외 유명 브랜드의 원단을 사용하는 제품이 많다.
침낭 제작자인 필자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이 침낭 내한온도는 어떻게 됩니까?”라는 것이다. 유럽의 경우 2002~2012년까지 ‘EN 13537 온도 테스트’ 값을 의무적으로 시행하여 표기해 왔다. 그러나 이 테스트 값의 오차 범위가 크고, 최대 제시 온도가 -15.2℃밖에 테스트가 되지 않아, 그림의 표시처럼 적정온도가 -17℃라는 것은 나올 수 없는 수치였다.
미국 브랜드들은 자체적인 온도 테스트를 통해 유럽 제품보다 우수한 내한온도 수치를 제품에 표기하기 시작했고, 유럽의 브랜드들도 우모 충전양 1,000g 이상 되는 제품은 ‘EN 13537 테스트’를 하지 않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순히 측정값이 아닌, 측정값에 계산값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경쟁하듯 온도를 낮게 표기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대부분 자사제품의 사양과 비슷한 해외제품의 온도 표시를 그대로 적용한다. 일반적으로 브랜드에서 보여 주는 내한온도와 극한온도 표시는 홍보를 위해 과다하게 설정한 면이 있으므로 적정온도를 참고해 구입해야 한다.
거위털 품질을 확인하는 방법
거위털의 질은 크게 솜털과 깃털의 비율, 생산국가, 필파워로 달라진다. 보통 솜털과 깃털 비율을 9대 1이나 8대 2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당연히 솜털이 많이 함유될수록 좋은 다운이며 필파워가 우수하다. 필파워Fill Power는 28g의 다운을 24시간 동안 압축한 후 풀었을 때 부풀어 오르는 복원력을 말한다.
필파워가 높을수록 다운이 크게 부풀어 오르며, 작은 양으로도 큰 부피를 실현해 풍성하고 두터운 공기층을 형성한다. 예를 들자면 650~700 필파워 1,600g과 800~850필파워 1,200g의 보온력은 동일하다고 보면 된다. 필파워가 높으면 상대적으로 적은 우모로도 우수한 보온력을 갖는 것이다.
대표적인 거위털 생산국가는 중국, 미국, 캐나다, 헝가리, 러시아 시베리아, 폴란드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북위 45~53° 주변에 서식하는 기온이 낮은 유럽 물새의 털에서 양질의 다운이 생산된다.
마지막으로 확인해야 할 세 가지!
위의 사항들을 고려해 구입하고자 하는 제품을 정했더라도 최종적으로 세 가지를 확인해야 한다.
첫째, 믿을 수 있는 후기를 확인하거나 실사용자에게 물어 객관적인 침낭의 품질을 판단할 것.
둘째, 생산년도가 중요하다. 다운 제품의 경우 수십 년 동안 사용이 가능하지만, 사용 후 보관이 다운의 생명력을 크게 좌우한다. 그러므로 유통과정의 보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펼쳐진 상태로는 유통이 불가하므로 압축 패킹된 상태에서 오랜 기간 유통되었다면 양질의 다운도 생명력이 크게 저하됐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제작시기가 오래된 세일 상품이나 유통 과정을 알 수 없는 병행수입품보다는, 제품 제작년도를 알 수 있는 정식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셋째, 다운제품은 따뜻한 곳에서 펼쳐 보는 것보다 야외 추운 곳에서 펼쳐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 양질의 다운은 추운 곳에 서식하는 물새의 털로 만들었으므로, 좋은 다운의 침낭일수록 추운 곳에서 더 부풀어 오른다. 반면 육모와 혼합물이 많이 섞인 다운 침낭은 따뜻한 실내에서 더 부풀어 오른다. 침낭을 야외에서 사용할 때 매트리스를 깔고, 이너라이너와 침낭커버 등을 사용하면 보온효과를 더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