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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기산에서 계속 남서로 이어지는 영월지맥이 치악산 비로봉~망경대(상원사 뒷산·지형도에는 남대봉으로 표기)에 이른다. 망경대에서 영월지맥은 남동으로 방향을 틀어 신선봉~석기암봉~학가산을 거쳐 영월 태화산으로 향한다.
망경대봉에서 남서로 갈라지는 능선이 백운지맥이다. 백운지맥이 남대봉(1,187m·일명 시명봉)~가리파재(치악재)를 지나 백운산(1,087m)으로 향한다.
가리파재에서 백운산 방면으로 약 2.5km 거리에 벼락바위봉(937.6m)이 있다. 벼락바위봉에서 남쪽으로 가지 치는 능선이 있다.
이 능선이 약 5km 거리 구력재를 지나 약 3km 거리에 빚어 놓은 산이 구학산(九鶴山·983m)이다. 구학산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약 4km 거리에서 주론산(舟論山·903m)을 들어올린 후, 박달재를 지나 시랑산(691m)을 지나 나머지 여맥들을 원서천과 제천천에 가라앉힌다.
벼락바위봉에서 구학산까지는 서쪽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과 강원 원주시 신림면 경계를 이루는 도계(道界)이다. 도계는 구학산 정상에서 동쪽(동릉)으로 약 4km 거리인 담바위봉(695m)으로 이어진 다음, 학산리 주포천 건너 5번국도를 지나 천삼산(818.6m)~감악산(885.9m)으로 이어진다.
구학산에서 남쪽 주론산~박달재~시랑산으로 이어지는 남릉은 제천시 백운면과 봉양읍 경계를 이루는 완전히 충북 제천 땅이다.
구학산은 산 이름이 그렇듯 옛날 이 산에서 살던 아홉 마리의 학이 사방으로 날아가 아홉 군데의 ‘학’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생겨났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즉 구학산에서 살던 아홉 마리의 학이 신림 방면 ①황학동 ②상학동 ③선학동을 비롯해 봉양 방면 ④학산리와 탁사정과 배론성지가 자리한 ⑤구학리 그리고 충북 영동 ⑥황학산, 제천시 백운면 ⑦방학리와 ⑧운학리, 끝으로 제천시 송학면 ⑨송학산으로 각각 한 마리씩 날아가 마을 이름이 생겨났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주론산은 이 산에서 동쪽 구학리 방면으로 패어 내린 계곡인 조백석골 산세가 마치 배(舟) 밑바닥을 닮았다는 데서 생긴 이름이라 전해진다.
제천에서는 의림지, 박달재, 월악산, 청풍문화재단지, 금수산, 용하구곡, 송계계곡, 옥순봉, 탁사정, 배론성지까지를 10경으로 친다. 이 중 명승지 박달재, 탁사정, 배론성지 3곳을 구학산 자락이 품고 있다.
구학산 줄기를 중심으로 서쪽은 백운산과 십자봉에서 발원해 덕동계곡을 적시고 흘러가는 원서천과 운학천, 북으로는 벼락바위봉에서 발원한 구학천, 동으로는 치악산 망경대와 남대봉에서 발원한 주포천, 남으로는 제천천이 산을 에워싸고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구학산은 시원하게 탁족을 즐길 수 있는 여름철 산행코스로 괜찮은 산이다.
구학산 등산코스는 정상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전개되어 있다. 우선 북쪽에서는 구력재~북서릉 도계능선, 구학리 방학동~헬기장 능선~동릉, 동쪽에서는 학산리 산사동~담바위봉~동릉, 옥전리 노목~동릉, 남동쪽은 구학리 배론성지~팔왕재~주론산~남릉, 남쪽은 박달재~팔왕재~주론산~남릉 경유 정상에 오르는 코스들이 대표적이다.
구학산 정상 남서쪽인 방학동 백운 큰골에서는 정상 남서릉, 문바위~손두안~북서릉 도계능선 경유 정상에 오르는 코스가 있다. 그러나 이 방면 코스는 이용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상기 코스들을 구력재를 시발점으로 시계방향으로 소개한다.
구력재~도계능선~765m봉~북서릉~정상
〈약 3km·2시간 30분 안팎 소요〉
구학산 들목인 5번국도변 용암리에 위치한 용소막성당(일명 뾰족성당)은 110여 년 전 횡성의 풍수원성당과 원동성당에 이어 세 번째로 설립된 곳이다. 1898년 고종 광무 2년에 공소로 모임을 시작해 1904년에 독립한 성당이다. 설립 당시 원주, 제천 등 5개 군의 17개 공소를 관할하고 있었다. 100여 년 전 서양 고딕 양식에 벽돌로 지어진 뾰족탑을 한 본당 건물이 옛날 모습 그대로여서 흥미와 관심을 끄는 곳이다. 이 성당은 배론성지에 이어 전국 천주교인들 성지순례코스로 유명하다. 지방유형문화재 제 106호.
용소막 성당에서 서쪽으로 약 5.5km 들어가면 구력재가 나온다. 554년 전인 1457년. 그해 무더위 속 음력 6월 22일. 한양 창덕궁을 출발한 단종(端宗)은 영월까지 7일간의 도보 길에 오른다. 광나루에 이르러 배편으로 원주 흥원창까지 간 다음, 이후 걸어서 단강리(현 원주시 부론면 최남단)~귀래~배재(십자봉 남릉·원주 귀래면과 제천 백운면 경계)~화당리~덕동리를 거쳐 구학산 북쪽 산허리인 구력재(해발 530m)를 넘는다.
구력재를 넘은 17세였던 단종은 신림~싸리치(천삼산 북릉)~주천~배일치~소나기재를 넘어 7일 만인 28일 영월 청령포에 이르러 비극적인 유배생활을 시작한다.
단종이 피눈물과 땀을 흘리며 넘었을 구력재는 백운면 운학리와 신림면 구학리 경계이다. 이 고개는 운학재(雲鶴峙)로 부르기도 한다.
구력재(↑구학산 3.0km 푯말)-(급경사 5분)→완만한 능선 길 진입-(6분)→안부-(3분)→두 번째 안부-(18분)→세 번째 안부-(약 35분)→765m봉 삼거리-(25분)→119 현위치 표지판(구학산 03)-(7분)→ㅏ자 삼거리-(왼쪽 바윗길로 약 40m)→구학산 정상(무인 산불감시철탑·↓구력재 3.0km, ↑노목, 주론산 4.2km→ 푯말).
오동나무 속에 기생하는 벚나무
신림면(神林面)은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마을 수호신으로 숲으로 이뤄진 성황림(城隍林·천연기념물 제 93호)으로 유명하다. 이 성황림 숲에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온대림을 이루는 50여 종의 목본식물과 습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이 성황림에서는 수백 년 전부터 매년 음력 4월 4일과 9월 9일 서낭제를 지냈었다.
신림이라는 이름은 신령(神靈)이 깃든 나무(木)와 숲(林)이라는 뜻이다. 마을 이름이 그래서일까. 신림면 관내 중심지에서 약 1km 거리인 신림역에 신비(神秘)로운 나무가 있다.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불가사의한 이 나무는 오동나무와 벚나무가 한몸이 되어 공생(共生)하고 있다.
밑둥 둘레가 약 2m 되는 오동나무 속은 가야금처럼 속이 텅 비어 있다. 그 텅 빈 나무 속에 벚나무 뿌리 4 줄기가 곧게 뻗어 올라 약 4m 높이에서 오동나무 몸통을 뚫고 나와 가지를 부챗살처럼 펼친 상태에서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신기한 것은 벚나무 가지 오른쪽으로 10여 가닥 줄기를 펼친 오동나무도 잎들을 활짝 펼친 채 사이좋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이다.
이 나무를 쉽게 해석하면 텐트(오동나무) 속에 4명의 사람(벚나무 줄기)이 들어가 있는 것과 비교가 되겠다. 이 나무를 극진하게 아끼며 보존에 앞장서고 있는 신림역 우동구 부역장의 얘기다. “중앙선 철길 개통이 1939년입니다. 신림역은 1941년 7월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죠. 오동나무 나이가 약 80년 됐답니다. 그러니까 신림역이 생기기 10년 전부터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었지만 벚나무가 오동나무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은 요즘에 와서야 발견했어요”. 오동나무 관람 문의 033-763-7705(신림역)
방학동~큰골~헬기장~동릉~정상
〈약 4km·2시간 30분 안팎 소요〉
방학동 큰골 들목에 자리한 열녀비(烈女碑)는 열녀 정선전씨(旌善全氏)를 기리기 위해 신림면민들이 건립한 것이다. 열녀 전씨는 함경도에서 이곳 구미동(방학동 북서쪽 구학천 건너 약 2km 거리 계곡 안쪽)에 이주해 남편(염신식·廉信植)과 단란하게 살다가 어느 날 남편이 병들자 극진하게 간호했으나 죽고 말았다.
이 후 전씨는 남편이 죽은 방에서 음식을 끊고 밖으로 나오지 않다가 9일 만에 남편을 따라 죽었다 한다. 전씨 열녀비는 1920년 5월에 세워졌다.
방학동 버스승강장(정선 전씨 열녀비, 방학동 안내석)-(3분)→구학마을회관-(4분)→삼거리(구학산방 1.5km→ 푯말)-(17분)→구학산 사슴농장-(7분)→상평농장-(4분)→칠부능선 펜션-(약 50m)→구학산방 앞 삼거리-(오른쪽 길로 약 100m)→능선 마루(935m봉 북쪽 헬기장 북동릉)-(왼쪽 능선 길로 5분)→묘 1기-(7분)→묘 1기-(8분)→급경사 길 진입-(3분)→급경사 상단부 큰 소나무-(15분)→작은 공터(휴식장소)-(3분)→헬기장-(약 30m)→935m봉 삼거리(정상 동릉)-(오른쪽 동릉으로 약 100m)→안부-(7분)→정상.
학산리 산사동~통천문~담바위봉~구학산 동릉~정상
〈약 6.5km·3시간 30분 안팎 소요〉
산사동마을에서 약 1시간 10분 올라가면 높이 약 10m에 폭 20m가량 되는 절벽이 나온다. 이 절벽 오른쪽으로 오르면 왼쪽으로 뚫린 자연 석굴 입구이다. 통천문(通天門)이다. 통천문을 빠져나가면 오른쪽 벽면을 타고 발디딤 바위 위로 올라선다. 이후 세미 클라이밍으로 바위 상단부로 오르면 된다. 우천 시 및 겨울철 빙설 시에는 주의해야 할 곳이다.
통천문을 지나면 만나는 담바위봉 북릉(큰 소나무 한 그루)에서 담바위봉 정상 방면 능선에서는 오른쪽 간벌지대 방면으로 정상 방면 동릉이 눈에 들어온다.
담바위봉에서 남동쪽 조살미봉 방면 길은 옥전 삼거리 방면으로 이어진다. 이용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학산리 산사동 버스정류소-(
남쪽 다리 건너 5분)→파란지붕 집 앞 ㅏ자 삼거리-(오른쪽 제원로 11길로 6분)→염소막-(2분)→취수 탱크-(6분)→청풍김씨묘-(1분)→지능선 마루 ㅓ자 삼거리-(왼쪽 능선길로 7분)→ 세 번째 묵묘-(35분)→마지막 안부-(급경사 10분)→통천문-(5분)→담바위봉 북릉 T자 삼거리-(왼쪽 북릉으로 7분)→담바위봉(삼각점·310 복구·건설부 1973)-(오른쪽 정상 방면 동릉으로 25분)→ㅓ자 삼거리( 왼쪽 흥국사 갈림길·푯말 없음)-(15분)→765m봉-(30분)→ㅓ자 삼거리(←노목 1.6km, 구학산 2.6km↑ 푯말)-(40분)→방학동과 헬기장 방면 갈림길-(15분)→정상.
노목 종점~좌수골~동릉~정상
〈약 4.5km·3시간 30분 안팎 소요〉
노목으로 들어가는 옥전리계곡은 구학산 정상 아래 샘터가 발원지이다. 이 계곡은 맑고 풍부한 물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탁족이라도 하면서 하루를 보내기에 그만인 곳이다. 송화사를 지난 제천한방치유센터 갈림길에 자리한 방아소 폭포 부근 숲 터널 아래가 가장 시원한 장소로 꼽힌다. 규모는 작지만 6단으로 쏟아져 내리는 방아소 폭포 아래에는 방아구멍처럼 뚫린 바위가 있다. 지금은 모래가 가득 차 옛 모습을 잃은 것이 아쉽다.
아무튼 옛날 산골마을에서 선풍기 구경을 하기 어려웠던 시절 이곳 주민들은 방아소에서 여름 더위를 피했다 한다. 지금은 제천시민들이 물놀이 장소로 많이 찾는다.
옥전리 삼거리에서 노목 방면으로 약 3km 거리 옥전계곡변에 있는 ‘굴러온 복바위’는 그 유래가 흥미롭다. 2009년 7월 14일 이 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질 때 산사태와 함께 굴러온 바위가 농가를 덮쳤다. 이 때 농가 주인이 반신불수인 아내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서자마자 곧이어 바위가 굴러와 현 위치에 멈추면서 농가는 대파되었으나 노부부는 운 좋게 목숨은 건졌다 한다. 이 사건 이후 마을 주민들이 ‘노부부의 목숨과 바꾼 복바위’라 부르며 이 바위를 잘 보존하고 있다.
노목 종점-(약 100m)→농기계보관창고 앞 삼거리-(왼쪽 길로 8분)→다리 앞 삼거리(별새꽃돌 탐사관 푯말)-(오른쪽 길로 7분)→Y자 삼거리(구학산 4.7km→ 푯말)-(6분)→별새꽃돌 안내석 앞 삼거리-(오른쪽 오르막으로 약 50m)→과학관 안내도 앞-(약 100m)→창조관 본관 오른쪽 묵묘와 푯말(구학산 4.2km↑)-(푯말 오른쪽 지능선 길로 5분)→묵묘 1기-(3분)→묵묘 1기-(11분)→멧돼지 집-(14분)→담바위봉 방면 길과 만나는 동릉 삼거리(←구학산 2.6km, 노목 1.6km↓ 푯말). 이후 헬기장 갈림길 경유 정상으로 향한다.
옥전리 삼거리와 배론성지 들목 사이 구학리 5번국도변 주포천(周浦川)변을 지나다 보면 수직벼랑 위 소나무 사이로 작은 정자가 올려다 보인다. 이곳이 탁사정이다. 탁사정에서 동쪽 맞은편에도 벼랑을 이루고 있다. 맞은편 벼랑은 봉황산(鳳凰山·510.3m) 서릉이 끝나는 지점이다. 탁사정이 자리한 벼랑과 봉황산 서릉 끝 벼랑이 마주보는 사이로는 주포천이 활(弓)처럼 ∩자형으로 굽 돌아 흐르고 있다. 그래서 탁사정 아래 물굽이를 일명 궁골(弓谷)로도 부른다.
궁골이 내려다보이는 탁사정 자리는 본래 가뭄이 들면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던 자리였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 초(楚)나라 때 굴원(屈原)이 지은 어부사(漁父辭)에 나오는 청사탁영 탁사탁족(淸斯濯瓔 濯斯濁足·맑은 물에 갓끈을 씻고 흐린 물에 발을 씻는다)의 글귀를 따서 탁사정이라 했다.
정자는 옛날 옥호정(玉壺亭)이 있던 자리로 명종 19년(1564년) 제주 수사를 지내고 소나무 여덟 그루를 옮겨와 심어 팔송리(八松里) 유래를 만든 임응룡(任應龍)을 기리어 그 후손인 임윤근(任允根)이 1925년 건립했다.
그 후 6·25 전쟁으로 불탄 것을 1957년 새로이 고치었다. 2005년 제천 10경 정비사업의 하나로 보수했다. 주변 바위 가운데 자루바위에는 지나던 나무꾼이 장마 때에 바위 홈에 갇혀 있던 고기가 많아 잠방이를 벗어 자루를 만들어 고기를 건져 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제천 10경 중 제 9경.
배론성지~조백석골~주론산~남동릉~정상
〈약 8.5km·4시간 30분 안팎 소요〉
주론산 정상에서 10분 거리인 885m봉 동릉 안부(약 1km 거리·←주론산 1.4km, 노목↑ 푯말)는 남쪽 조백석골 임도 차단기와 북쪽 노목마을로 산길이 이어진다. 이 코스는 차단기 북쪽 수림지대에서 산길이 흔적을 감춘다. 그리고 노목마을 방면에서 885m봉 동릉 안부 방면에 안내푯말이 전무하다. 그래서 이 코스들은 주로 하산로로 이용된다.
정상 직전 남서릉 갈림길(밑둥 세 줄기 큰 떡갈나무)에서 남서릉 능선 길이 흐릿하게 보이지만 이용도는 매우 낮은 편이다. 이 방면도 안내 푯말이 전무하다.
정상 남쪽 아래 바위 밑에서 오른쪽(동쪽) 30m 거리에 심마니 샘터가 있다. 바위 틈에서 나오는 석간수로 옛날 약초꾼들이 주로 이용했던 샘이다.
배론성지 버스 회차 장소-(1분)→성지 소형차 주차장과 성지 관리사무소-(20분)→사방댐과 외딴 집-(6분)→다리-(3분)→농가 앞(백구 두 마리 지킴)-(10분)→차단기-(40m)→푯말(↑파랑재 1.7km, 배론성지↓)-(30분)→마지막 계류(식수 준비 가능)-(6분)→팔왕재(차단기·←박달재 2.2km, 주론산 2.0km→ 푯말)-(8분)→안동 권씨 묘-(16분)→경은사 방면 ㅓ자 갈림길(←방학리, ↑주론산 0.5km, 팔왕재 1.5km ↓ 푯말)-(17분)→주론산 정상(삼각점 제천 22·↑구학산 4.2km, 박달재 4.2km↓ 푯말)-(10분)→Y자 삼거리(885m봉·현위치 주론산 02·↑구학산 3.8km, ↓주론산 0.4km, 배론성지→ 푯말)-(왼쪽 남동릉으로 8분)→119 위치 표지판 구학산 01 푯말(오른쪽 지능선 길은 노목 하산로)-(12분)→전망장소(노목 방면만 조망)-(7분)→위치 표지판(구학산 02)-(5분)→급경사 시작-(20분)→남서릉 갈림길(밑둥 세 줄기 큰 떡갈나무)-(약 60m)→바위 아래 사거리-(직진 약 3분)→정상.
한국 천주교 전파의 진원지
배론성지(舟論聖地)
배론성지는 한국천주교회 초기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에 숨어 들어와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곳이다.
이곳은 1801년 신유박해 때에 황사영(黃嗣永)이 이곳 토굴 속에 숨어 박해받는 천주교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백서(帛書·1만3,384자)를 집필한 곳이다. 그러나 중국 북경에 있던 구베아(Gouvea) 주교에게 보내기 전 백서는 압수되고 황사영은 체포되어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백서는 로마교황청 선교민속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성직자 양성을 위한 요셉 신학교가 1855년부터 이곳에 있었다. 이 때 사제 양성의 열매를 맺은 무렵인 1866년(병인년) 초에 프랑스인 푸르티에와 프티니콜라 신부가 각각 서울 새남터와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했고, 신학교는 문을 닫았다.
배론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묘가 있다. 그는 1836년 12월 중국 마카오에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국내에 들어와 12년 동안 교회를 위해 일하다가 1861년 문경에서 숨을 거두었다. 이곳은 종교적인 면에서 중요한 자리매김을 한 곳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 싹 튼 곳이다. 이곳은 연간 10만 명에 달하는 천주교인들이 성지순례로 찾고 있다. 충북기념물 제 118호. 제천 10경 중 제 10경.
박달재~팔왕재~주론산~남동릉~정상
〈약 8km·4시간 30분 안팎 소요〉
해발 약 453m인 박달재는 옛날 경상도 선비 박달도령과 평동리 주막집 딸이었다는 금봉이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 오는 충북 제1의 고갯길이다. 대중가요 ‘울고 넘는 박달재’의 소재가 된 곳이며, 제천시의 마스코트 ‘박다리와 금봉이’ 캐릭터의 소재가 된 곳이다. 주변에는 청소년수련원, 박달산자연휴양림 등 볼거리가 많다. 박달재 남쪽에 있는 시랑산(侍郞山)의 이름은 ‘사내를 모시는 산’이라는 뜻도 된다.
박달재는 박달도령과 금봉의 사연과 관련된 소재 말고도 역사적 전승지로도 유명하다. 고려 때인 1217년 김취려 장군이 바로 박달령에서 거란 군대 10만을 물리쳤다는 역사기록이 전해진다.
박달재 고갯마루 동쪽 성황당 앞-(약 60m)→주론산 등산로 안내판과 푯말(←주론산 4.2km)-(3분)→주론산 남릉 삼거리(주론산 4.0km→ 푯말)-(6분)→케언과 산불조심 푯말-(9분)→옹달샘 갈림길(←옹달샘)-(7분)→전망대(사각 정자·←주론산 2.8km, 박달재 1.4km↓ 푯말)-(약 30m)→748m봉-(25분)→배론성지 방면 길과 만나는 팔왕재. 이후 주론산~구학산 남동릉 경유 구학산 정상으로 향한다.
박달재 자연휴양림~팔왕재 구간은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여 있다. 자연휴양림 출입금지 시한은 2012년 6월까지 휴식년제 실시로 입장 및 숙박시설이용 모두 금지되어 있다.
경은사~안골~주론산 남동릉 코스도 출입 금지구역이다. 안골에는 리솜포레스트 시설로 일반인 출입이 안 된다. 그러나 경은사와 도덕암 구경은 허용된다.
도덕암과 경은사
조선조 태조 때 새로 부임하는 제천현감의 부인이 만삭의 몸으로 이곳을 지나다가 떼도둑을 만나 놀란 나머지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고 아기를 낳은 후 죽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본 도둑이 죄를 뉘우치고 악에서 벗어나 선량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그 후부터 도덕암(道德岩)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도덕암을 중심으로 주변 산세가 ‘만삭의 산모가 아기를 분만하는 형상’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경은사(慶恩寺)는 조선중기 탄명선사(坦明禪師)가 창건, 도덕암(道德庵)으로 이름 붙였다고 전해진다. 그 후 세월 따라 건물이 없는 빈터로 전해 오던 것을 1939년 어느 불자가 지은 작은 토굴이 불이 나면서 1940년 운경허상이 중창한 절이다.
중창 이후 백운사(白雲寺)로 불리다가 1942년 다시 화재로 전소된 법당을 재건하면서 이름을 경은사로 바꾸어 현재에 이른다. 현재의 법당과 삼성각 요사채 등은 1985년에 지어진 건물들이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25교구이다.
박달재와 김취려 장군
포천부터 원주를 함락시킨 거란 10만 대군은 충주와 제천을 공략하려던 참이었다.
김취려(金就礪·1172~1234년) 장군은 전군병마사로서 맥곡(麥谷·보리실·원주시 부론면)에서 적군 300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은 상태였다. 김취려 정군은 제천 방향으로 이동하는 적을 계속 추격하고 산골짜기를 수색하면서 박달재에 이르렀다. 1217년 무더운 7월이었다.
병력(1만1,000명) 면에서 불리했던 김취려 장군은 신덕위·이극인 장군을 진중 왼쪽에 최준문·주공예 장군을 진중 오른쪽에 배치했다. 그리고 자신은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박달재에서 미리 진을 쳤다. 다음날 새벽녘 예상대로 10만 병력인 거란군이 박달고개 좌우 방향으로 쳐들어 왔다.
이 때 김취려 장군은 적이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공격명령을 내렸다. 잠복하고 있던 고려 병사들은 일제히 활을 쏘고 결사적으로 공격해 승리를 거둔다.
박달재에서 대패한 거란군은 평창~대관령~강릉을 지나 원산과 흥남을 경유해 도주했다. 박달령 전투의 승리로 전쟁의 피해가 제천 이남으로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전해진다.
김취려 장군은 본관은 울주군 언양(彦陽)이다. 그는 1186년 음서(陰敍)로 등용 후 동궁위(東宮衛)를 거쳐 장군(정 4품)으로 동북 국경을 지킨 뒤 대장군(大將軍·정5품)에 올랐다.
1216년(고종 3년)에는 거란 무리들이 압록강을 건너 고려를 침입했을 때 후군병마사가 되어 조양진(朝陽鎭·평남 개천)과 개평(開平·평남 영변) 묵장(墨匠·영변 부근) 등지에서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1217년 박달재 전투에서 승리한 후 1218년 또다시 침입해 온 거란군을 강동성(江東城)에서 제압하고, 1219년 의주에서 일어난 한순(韓恂)과 다지(多智)의 반란을 평정해 고려를 안정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1230년에는 국정실무를 총괄하는 시중(侍中)에 올랐다.
방학리 문바위~큰골~손두안~765m봉~북서릉~정상
〈약 5km·3시간 30분 안팎 소요〉
큰골 계곡 큰 소나무와 공터에서 문바위 일원은 여름철 물놀이 장소로 이용되는 곳이다. 양쪽이 단애를 이룬 문바위 풍광이 일품이다. 예전에는 과수원 농가를 지난 합수점에서 왼쪽 계곡을 경유해 임도삼거리로 오르는 코스(월간 산 1993년 8월호 주말산행코스에 소개)가 있었다. 그러나 이 코스는 그동안 입산금지 기간을 거치면서 계곡 길이 수림으로 뒤덮여 산길이 흔적을 감추었다.
방학리 백운 큰골 종점-(5분)→큰골마을-(15분)→큰 소나무 아래 작은 공터(주차 가능·화장실)-(3분)→문바위-(3분)→과수원 농가-(12분)→전원주택단지 하단부-(5분)→손두안 마을터 전원주택단지 상단부(마지막 별장)-마지막 전신주(번호 5705C)-(오른쪽 과수원 뒤안길로 4분)→왼쪽 지능선 길 진입-(12분)→⊃자로 꺾인 임도 왼쪽-(왼쪽 임도로 30분)→임도 삼거리-(오른쪽 능선으로 약 20분)→765m봉-(오른쪽 북서릉으로 약 40분)→정상.
정상에서 조망은 그런대로 시원하다. 남으로는 주론산 정상이 보인다. 주론산 뒤로는 박달재 남쪽 시랑산과 부산(일명 며느리산)이 멀리의 월악산과 함께 조망된다. 시랑산 오른쪽으로는 백운면 평동리 분지가 펼쳐진다. 평동리 분지 뒤로는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 계명산이 첩첩산중을 이룬다. 천등산 오른쪽으로는 충주시내와 남한강도 보인다.
교통
열차편 청량리역→신림역 1일 4회(07:00 〔신림역 착 08:58〕, 09:00〔10:44〕, 18:00〔19:45〕, 20:00〔21:52〕) 운행. 요금 8,200원. 약 2시간 소요.
신림역→청량리역 1일 4회(05:44〔청량리역 착 07:38〕, 07:19〔09:17〕, 12:47〔14:40〕, 18:48〔20:37〕) 운행.
안동역→제천역 1일 9회(02:18〔제천역 착03:48〕, 07:00〔08:37〕, 08:50〔새마을 10:25〕, 10:45〔12:23〕, 13:15〔14:54〕, 15:15〔16:52〕, 17:15〔18:52〕,17:50〔새 19:27〕, 19:05〔20:44〕) 운행. 요금 무궁화 6,300원, 새마을 9.200원.
부전역→제천역 1일 2회(06:50〔제천역 착 12:23〕, 22:30〔03:48〕) 운행. 요금 2만 1,300원.
충북선 대전역~조치원역→제천역 1일 9회(06:05〔제천역 착 08:13〕, 07:10〔09:11〕, 08:40〔10:46〕, 11:55〔13:58〕, 14:40〔16:43〕, 17:00〔19:09〕, 18:30〔20:33〕, 서울발 18:03〔21:03〕, 20:35〔22:38〕) 운행. 요금 대전역에서 9,900원, 조치원역에서 7,700원,
제천역→조치원역~대전역 1일 9회(06:00〔대전역 착 08:04〕, 07:50〔09:53〕, 09:00〔서울 착 12:00〕, 10:40〔12:49〕, 12:45〔14:48〕, 15:15〔17:20〕, 17:10〔19:15〕, 19:05〔21:12〕, 20:55〕) 운행.
제천→신림 1일 4회(05:25〔신림역 착 05:43〕, 07:00〔07:18〕, 12:25〔12:46〕, 18:28〔18:47〕) 운행. 요금 2,500원.
신림방면 시내버스 원주 장양리 시내버스공영정류장에서 22번, 24번, 25번 버스가 북원주여자중학교~원주역~중앙시장~남부시장~ 원주고교~단구사거리~금대리 경유 신림면사무소 앞까지 매시 정각과 30분(06:00~22:00)에 운행. 요금 1,100원. 30분 소요.
원주→구학리 상기 버스 중 1일 4회(05:55~17:20) 운행.
신림→원주 매시 30분과 정각(06:30~22:30) 운행. 신림에서 학전리 방면은 시내버스 운행 안함. 원주 태창운수 033-734-9680.
택시 신림→구력재 7,000원, 학전리 7,000원, 옥전리 노목 1만2,000원. 신림 개인택시(기사 박창선) 033-763-3979, 011-378-3979.
시외버스 동서울→제천 무정차 우등 30분 간격(06:30~21:00) 운행. 요금 10,300원. 1시간 40분 소요.
제천→동서울 무정차 우등 30분 간격(06:30~21:00) 운행.
제천→연봉정(도계) 종점 시청 앞~봉양~배론성지~탁사정~옥전리 삼거리(노목 입구)~학전리를 경유하는 시내버스가 현대종합병원 위 시내버스 종점에서 1일 10회(06:00, 08:15, 09:30, 10:40, 12:00, 13:10, 14:30, 15:30, 19:10, 22:00) 운행. 옥전 삼거리 40분, 연봉정 종점 50분 소요. 요금 1,200원. 옥전 삼거리 40분 소요.
연봉정(도계) 종점→제천 1일 10회(07:00, 09:15, 10:30, 11:40, 13:10, 14:10, 15:30, 16:30, 20:00, 23:00) 운행.
제천→노목 현대종합병원~시청앞~봉양~배론성지 입구 경유 1일 4회(05:50, 08:00, 13:00, 18:40)) 운행. 요금 1,200원. 50분 소요.
노목→제천 1일 4회(06:50, 09:00, 14:00, 17:30) 운행. 제천운수 043-646-2955.
제천 봉양 콜택시 011-485-4005.
동서울→백운 장호원~용포 경유 1일 5회(06:49~18:50) 운행. 요금 용포 7,300원.
제천→백운(평동) 1일 30회(06:40~19:40) 운행 동서울행, 8회(08:10~20:00) 수원, 32회(06:15~20:10) 운행 충주행 버스 이용, 백운하차. 요금 2,000원.
백운(평동)→제천 동서울, 수원, 충주에서 들어오는 직행 버스 이용. 요금 2,000원.
충주→백운(평동) 산척 경유 1일 36회(07:00~20:35) 운행하는 제천행 이용, 평동 하차. 요금 2,600원.
백운(평동)→충주 제천에서 1일 32회(06:15~20:10) 운행 버스 이용. 백운정류소 043-652-6663.
택시 백운→박달재 6,000원, 경은사 5,000원, 방학리 백운 큰골 1만 원.
백운택시 043-652-3080, 011-461-6028. 대형 개인택시(9인승·기사 김지민) 011-485-3087).
숙식(지역번호 033)
신림 방면 신림면사무소 옆 옛길 식당(762-1077), 구학리 들목 용암리 삼거리 장원식당(763-5250) 등 이용. 옛길식당에서 닭백숙 곤드레밥, 향원식당에서 갈비탕 감자탕 등을 판다.
옥전리 방면(지역번호 043) 옥전 1리 미소가든(653-2885), 옥전 2리 노목 들목 삼거리식당(651-6640), 옥전나눔식당(651-7592), 옥전가든 (651-9661), 송정매점민박(651-4805), 노목산장가든(651-5221) 등 이용.
배론성지 방면 5번국도 배론성지 들목 삼거리에 자리한 된장찌개 청국장 순두부 두부전골 전문 강촌기사식당(651-1536), 돌솥곤드레밥 산채정식을 파는 사또가든(653-4936) 등 이용. 이외에 삼거리에서 배론성지 방면으로 자리한 또랑길식당(651-2121), 미학유원지 가든(651-4818), 배론가든민박(651-0872) 등 이용.
박달재 방면 박달재 고갯마루에 있는 서원휴게소(652-3222), 박달재손두부(652-3488), 박달재 휴게소(652-3488) 등 이용. 서원휴게소에서 묵밥 산채비빔밥 감자전, 박달재손두부에서 두부전골 묵밥 청국장 동동주 등을 판다.
백운면소재지 방면 사골우거지 갈비탕 전문 장인갈비(652-9290), 중화요리 동락원(652-5856), 황금식당(652-9453), 행운식당(652-8801), 평동식당(652-6027), 장터식당(647-8087), 지원가든(652-2103) 등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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