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1. 주일예배설교
에베소서 2장 17~18절
명절에는 신앙적 덕담을 나누시길.
■ 명절은 원래 행복한 절기입니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감사, 받은 것들에 대한 감사, 가족 모두 무사한 것에 대한 감사 등등을 헤아리며 온 가족이 감사의 합창을 드리는 절기입니다. 그렇기에 명절은 행복한 절기입니다.
그런데 명절이 불편한 가족들이 생깁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져서 명절을 준비하기가 부담스러운 경우가 그렇습니다. 삶에 고통스러운 일이 생겨 가족들 보기가 민망스러운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들보다 더 심각한 이유는, 명절에 모인 가족으로부터 ‘불편한 말’을 듣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명절은 불편한 말인 소위 잔소리를 하거나 듣자고 모인 절기가 아닙니다. 아시다시피, 명절은 ‘덕담(德談)’을 주고받는 절기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명절은 서로에게 복을 빌고, 안녕을 기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니 그동안 직장이나 사업장, 학교 등과 같은 곳에서 듣던 잔소리나 못된 말을 멈추고 덕담을 나누는 절기가 명절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신앙을 지닌 우리는 일반적인 덕담에 신앙적 덕담을 더 얹어야 합니다. 무엇일까요?
■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예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해 17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그렇습니다. “평안”을 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평안”은 대상을 선별하여 전하신 것이 아니셨습니다. 가리지 않으시고 모두에게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만 전하신 것이 아니라 “먼 데 있는 너희들”에게도 “평안”을 전하셨습니다. 여기서 “가까운 데 있는 자들”이라고 함은, 유대인을 일컫습니다. “먼 데 있는 너희들”이라고 함은, 이방인을 일컫습니다.
유대인의 입장에서, 이방인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된 나쁜 놈이고, 버려진 놈입니다. 그렇기에 이방인을 천시하고 소외시킵니다. 이방인에게 불편한 말들을 쏟아붓습니다. 깐족대는 말에서부터 저주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이방인이라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말, 가혹한 말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태도와는 정반대이셨습니다. 천시받고 소외된 이방인을 향해 욕설이 아닌 평안을, 저주가 아닌 축복을 건네셨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의 명절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불편한 말이나 잔소리가 아닌 평안과 축복의 덕담을 나누어야 합니다. ‘애썼다’고, ‘고생했다’고, ‘도와줄게’라고, ‘힘내’라고, ‘잘될 거야’라고, 덕담을 나눠야 합니다. 무슨 훈계나 훈수를 두고자 하는 마음은 아예 갖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평안과 축복의 덕담을 나눌 때, 가족은 하나가 됩니다. 혹시 그동안 나누어졌던 가족이라도 하나가 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는 성경적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18절입니다.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전하신 평안의 메시지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일어난 역사는 분명합니다.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둘”로 되어 있다는 것은 나누어짐입니다. 분열입니다. 여기에는 평안이나 평화가 없습니다. 갈등과 긴장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분위기를 주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당연히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우리는 “둘”이 아닌 “하나”됨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그것은 평안의 덕담을 나누는 일입니다. 그래서 명절을 명절답게 만들어야 합니다.
■ 그렇다면 이를 위해 이 시대에 한국사회에서 건네야 할 명절의 가족 간 덕담은 무엇일까요? 특히 신앙인으로서 건네야 할 덕담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여호와 샬롬>입니다. <샬롬>은 ‘평화’입니다. 이 평화는 불의와 불평등이 제거된 상태를 말합니다. 편견도, 시비도, 소외도 사라진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긴장과 갈등이 없는 상태입니다. 불안과 공포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바로 이 샬롬을 가족에게 덕담으로 건네는 것입니다. ‘너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할지어다!’
둘째는, <여호와 이레>입니다. <이레>는 ‘준비해두심’, ‘예비해두심’입니다. 하나님의 준비 또는 예비는 앞날에 대한 완전한 인도하심입니다. 지금은 아무 것도 안 보여도 곧 모든 것이 보여질 하나님의 준비이고 예비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다 지나가고 오직 주님의 선하심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덕담을 가족에게 건네는 것입니다. ‘너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 가득하단다!’
셋째는, <여호와 라파>입니다. <라파>는 치유와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치유와 회복의 하나님이십니다.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하십니다. 이뿐만 아니라, 깨진 관계, 불편한 관계도 회복시키십니다. 그래서 삶의 부흥을 일으키십니다. 바로 이 덕담을 가족에게 건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치유하시고, 너의 삶을 회복시키신단다!’
넷째는, <여호와 닛시>입니다. <닛시>는 승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승리자이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이 승리는 우리가 힘으로 누군가를 지배하고 억압하라고 허락하시는 승리가 아닙니다. 이 승리는 세상의 가치관을 이기는 승리입니다. 그리고 유혹과 비교의식에서 이기는 승리입니다. 정복주의가 아니라 믿음의 승리입니다. 바로 이 덕담을 가족에게 건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를 지배하려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과 유혹으로부터 너를 이기게 하신단다!’
다섯째는, <여호와 삼마>입니다. <삼마>는 여기 함께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함께 계십니다. ‘God is there!’ 내가 어디 있든, 무엇을 하든, 무슨 일을 만나든, 언제나 변함없이 지금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삼마입니다. 그래서 겁날 것이 없습니다. 원수조차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바로 이 덕담을 가족에게 건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너와 함께 계시단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의 덕담입니다. <여호와 샬롬>,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 참으로 세상 그 어떤 덕담이 이에 견줄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특혜로 주신 이 덕담을 아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덕담을 명절 기간 중에 마음껏 나누십시오: ‘너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할지어다!’ ‘너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 가득하단다!’ ‘하나님은 너를 치유하시고, 너의 삶을 회복시키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배하려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과 유혹으로부터 이기게 하신단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너와 함께 계시단다!’ 아멘!
이렇게 <여호와 샬롬>,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을 덕담으로 삼겠다고 결심한 여러분에게 다짐받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가족 간에 그 어떤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불편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싶습니다. 그래야 <여호와 샬롬>,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의 덕담은 유효해집니다.
■ 자, 약속하시겠습니까? 앞으로 가족 간에 그 어떤 긴장과 갈등을 유발하는 불편한 말이나 행동이 아닌 <여호와 샬롬>, <여호와 이레>, <여호와 라파>, <여호와 닛시>, <여호와 삼마>의 덕담만 하시기로 약속하시겠습니까? 아멘? 아멘!
더욱 바라기는 매일 이렇게 사시길 축복합니다. ‘너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할지어다!’ ‘너에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 가득하단다!’ ‘하나님은 너를 치유하시고, 너의 삶을 회복시키신단다!’ ‘하나님은 너를 지배하려는 세상의 모든 가치관과 유혹으로부터 이기게 하신단다!’ ‘하나님은 지금 여기에 너와 함께 계시단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