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너와 나의 마라톤 --10km 대회를 완주하다.
대회에 나가기로 했다. 아버님께서 대회에 나가는 게 무척 중요하며
대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거라고 하시면서 내가 나가야 할 대회를
일러주셨다. 대회일까지는 한 달이 남아 있었다. 갑자기 대회 참가 신청을 하니
가슴이 설레었다. 내가 10km의 그 먼 거리를 걷지 않고 완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완주를 하게 되면 과연 얼마의 기록으로 골인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대회를 신청해 놓으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다. 회사에서도 달리기 생각만
났고 친구들을 만날 때도 언뜻언뜻 달리기 생각이 났다. 친구들에게 나 마라톤
대회에 나간다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으나 참가하고 나서 완주도 못하면
조금 창피할 것 같아 완주를 하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를 한 뒤 마음 자세가 바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스스로에게도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졌다. 10km 신청해 놓고도 이런
마음이 드는데 풀코스 마라톤(42.195km)을 완주하고 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니,
벌써부터 풀코스 마라톤 골인점을 향해 달려가는 나의 모습이 그림처럼 다가와
나를 즐겁게 했다.
확실히 대회를 신청해 놓게 되니까 달리기를 더 열심히 하게 된다. 매일 저녁마다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이제 운동장 트랙은 눈 감고도 돌 수 있었다. 5km 달리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금 더 빠르게 달려보기도 하고 숨이 차면 또
천천히 달리기도 하고~~ 혼자서 그렇게 나만의 달리기를 즐기게 되었다.
즐긴다고 하면 조금 그런가. 아직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초보인데....... ^^
어느 날인가부터 대회 날이 기다려졌다. 어린 시절 소풍을 기다리던 소년의 마음처럼
그렇게 대회를 손꼽아 기다렸다. 대회 하루 전날 미래에게 전화가 왔다.
“ 오빠! 준비는 다 된 거지. 내일 너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달려. 아빠가 그러는데
처음 1km 달리는 게 무척 중요하데. 처음에 너무 빨리 달리면 후반에 힘들어서
달릴 수가 없는 거래. 꼭 명심하고 처음에 천천히 달리다가 힘이 남으면 중반 이후부터
빠르게 달리라고 아빠가 이야기해 주래."
드디어 대회 날이 밝았다. 번호표를 붙이고 신발에 칩을 부착하고 한강 여의지구
대회장으로 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미래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출발지점으로 갔다. 하프 주자들이 먼저 출발하고 뒤이어 10km 출발이다.
날씬한 몸매의 하프 주자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내가 달릴
거리의 두 배를 달린다. 상상하기 어려운 거리다.
출발 총소리가 울리고 아버님의 말씀대로 천천히 출발을 했다. 빨리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10km가 먼 거리기에 후반에 어떻게 될지 몰라 천천히
달려서 걷지 않고 완주만 하자는 생각으로 달려갔다.
1km쯤 달렸을까. 내 옆을 보니 한 여성분이 사뿐사뿐 달리고 있었다. 모습을
보니 나이가 40은 되어 보였다. 함께 달리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하고 의식을
하며 속도를 맞추어 나갔다. 그러나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았다.
이 아주머니에게 질 수는 없지 하는 생각에 나도 빠르게 달렸다.
그런데 약 1km가량 가니 더 이상 좇아갈 수가 없었다. 무척 힘이 들어서 걷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제 갓 30이 된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 40대의 아줌마도
못 쫓아가다니....... 하고 생각하니 나 자신이 한심해 보였다. 그 여인은 그렇게
멀리 점이 되어 달려가버리고 혼자서 터벅터벅 달리고 있는데 이번에는 할아버지
한 분이 달려서 나의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흰머리 할아버지. 나이는 60이 훨씬 넘어 보인다. 질 수가 없다는 생각에
따라가 보았다. 그러나 100미터도 따라가지 못하고 다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무척 힘이 든다. 숨은 턱에 차오르고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아직도 3km나 남아
있는데........ 두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하나는 달리는 걸 멈추고 걷고 싶은
생각이고, 또 하나는 힘들어도 끝까지 달리자는 생각이었다.
생각과 고통은 그렇게 서로를 견제하면서 거리를 좁혀갔고 내가 달릴
거리도 이제 1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타났다. 앞에서 달려가는 사람들.
그리고 뒤에서 달려오는 사람들. 그 중간에서 내가 달려간다.
앞사람도 힘들고, 뒷사람도 힘들고, 나 역시 힘이 든다.
고통의 호흡소리는 뒷사람에게 전달이 되고, 그리고 뒷 사람의 호흡소리는
또 그 뒷 사람에게 전달이 된다. 서로를 위로하고 달래며 같이 호흡하고
함께 발맞추어가는 친구처럼 그렇게 마지막 구간의 달리기는 진행이 된다.
멀리 피니쉬 아치가 보인다. 양 옆에 들어선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나에게 박수를
친다. 내가 누구에게 박수를 받아본 일이 있었던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박수를 받아본 일이 있었던가. 기분은 업 되고 마음은 날라 갈 것 같았다.
그 마음으로 그렇게 두 손을 높이 치켜들면서 골인을 했다. 미래가 반가운 마음으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우린 포옹을 했다. 미래가 찔끔 눈물을 흘리면서 미소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힘들었지……. 오빠!......”
“아니야~~ 뭐 뛸 만하던데.” ^^
'완주하고 난 뒤의 행복함이 이렇게 좋구나'라는 생각에 달리기를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골인시간이 얼마인지 알아.” “글쎄.....” “1시간 03분이야.”
“1시간 3분이면 잘 달린 건가.” “그럼 무척 잘 달린 거지.” 우리 아빠에 비하면
너무 못 달리는 거지만. ㅋㅋㅋ
미래는 신나 있었고 나는 거만 모드로 다소 우쭐해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달리기 이야기~. 이야기~.~~ 나는 그날 저녁 내내 달리기 이야기만 했다.
헤어질 때까지 계속 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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