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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몇일동안 한중 외교장관회담에 대한 글을 몇개 썼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한중수교 3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고 해서 그것도 써보려합니다. 딱히 가치는 없어 보이는 글이긴 합니다.
대체적으로 왜냐하면 양쪽의 메세지가 지난 외교장관회담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국측에서 단 한가지 메세지가 더욱 추가하여 강조했습니다. 중국을 신뢰하라.
왜 그런지는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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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식 보도자료와 한국무역협회의 해당소식을 보겠습니다.
https://www.korea.kr/news/pressReleaseView.do?newsId=156522331
필요한 부분만 옮기면 이렇습니다.
// □ 이어, 양 외교장관은 축사를 통해 한중 수교 30주년의 의미를 되새기고, 향후 한중관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양국이 함께 노력해 나가기를 희망하였다.
◦ 박 장관은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한중관계 발전을 위해 △양국 경제협력의 질적 업그레이드, △전략적 소통 및 한반도 문제 협력 강화, △문화·인적교류의 조속한 회복을 적극 추진해나갈 것이며, 한중이 서로 조화를 추구하면서 다름을 인정하는‘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으로 협력해 나가길 희망한다고 하였다.
◦ 왕 위원은 수교 이래 30년 간 양국이 △정치적 신뢰 △호혜협력 △인적·문화 교류를 증진하고, 한반도 포함 지역·국제 문제 협력도 유지해 왔다고 평가하고, 삼십이립(三十而立)을 맞이한 한중이 좋은 이웃, 좋은 친구, 좋은 동반자로서 군자신이성(君子信以成: 군자는 믿음으로써 이룬다)과 같이, 서로 존중과 신뢰를 강화하자고 하였다. //
박진 외교부 장관의 '화이부동'과 왕이 국무위원 겸 외무부장의 '삼십이립'이라는 말이 아직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왕이 부장은 '삼십이립 사십불혹'과 '화이부동'의 의미를 이렇게 뒤틀어 냈습니다.
삼십이립이라는 말은 공자가 <논어>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쓴 말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뜻은 사람이 30살이 되면 자립한다는 뜻입니다. 일단 삼십이립이 들어간 문장 그 자체만 보면 중한관계가 30년 지속되었으니 관계가 자립에 이르렀다는 좋은 말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사실 삼십이립 뒤에는 네글자가 더 딸려옵니다. 사십불혹(四十不惑). 불혹은 말 그대로 혹하지 않고 정도(正道)만을 걷는다는 뜻이니까, 사람이 40살이 되면 혹하지 않는다는 말이 됩니다. 왕이 부장이 삼십이립을 중한관계에 대입시켰으니 사십불혹도 마찬가지로 중한관계에 대입될 수 있습니다.
'야 한국. 앞으로도 30년간 우리의 도움받을 일 없이 스스로 먹고살되(삼십이립), 지난번처럼 미국 말 듣고 혹해서 사고치는 그런 일이 있어선 안돼(사십불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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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30년을 향하여 중한 양 측은 독립자조를 견지하고 외부의 장애와 영향을 받지 말아야 합니다."
//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어제(11일) 중국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화이부동은 군자의 사귐"이라고 호응했는데요.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는 기초 위에서 실현한 조화가 더 공고하면서 오래가고, 더 강인하면서도 따뜻한 조화"라고 부연했습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한중관계에서 주로 통용돼 온 '구동존이', '일치를 추구하되 서로 다른 점은 그대로 둔다'는 말을 대체할지에 관심이 쏠리는데요.
하지만, '화이부동'이란 말에 호응함으로써 중국이 하고자 했던 말을 더 강조한 것이란 해석도 나옵니다. //
왕이 위원은 회담이 끝나고 나서도 박진 외교부 장관을 상대로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를 이용하여 기만행위를 계속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중국의 입장표명과 기의은 정말 일관됩니다. 하지만 박진 외교부 장관과 휘하의 외교부 직원들이 그 기의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어 아쉽습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 : 건강하고 지속적인 양자관계의 발전에 장애물(= 걸림돌. stumbling block)이 되지 않도록 이 문제를 적절히(properly) 관리하는 것에 양측이 동의하였다.
박진 외교부 장관: 양측은 THAAD가 양국 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걸림돌이 되어선 안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습니다.
같은 기의로 재구성된 문장 : 양측은 THAAD에 상관없이 양국관계를 지속해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였습니다.
그런데 구동존이와 왕이위원이 재해석한 화이부동을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특히 제가 재구성한 문장도 같이요. 딱히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즉, 기존까지 중국의 입장이었던 구동존이의 기의가 박진 장관의 입에서 화이부동이라는 형태의 기표로 나와버리게 된 셈(물론 박진 장관이 의도했던 기의는 다른겁니다. 하지만 같은 기표에서 또다른 기의가 튀어나온 케이스)입니다.
네. 이미 제가 말했던 그겁니다.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 이 트릭으로 중국의 왕이 부장은 한국의 박진 장관이 스스로 자신의 입으로 중국의 입장을 표명하게 만든 겁니다. 하지만 왕이 부장은 자신의 손을 더럽히지 않고 위엄(dignity)마저 지켰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만행위의 겉모습은 바로 "소인배끼리의 사귐(동이불화)"가 아니라 "군자끼리의 사귐(화이부동)"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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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오늘 왕이 부장의 입에서 새로운 표현이 나왔습니다. 바로 군자신이성(君子信以成: 군자는 믿음으로써 이룬다)입니다.
이 군자신이성은 <논어> 위령공편 17장에 적혀있는 공자의 발언입니다. 그런데 <논어>의 특성상 공자가 대체 어떠한 맥락에서 이런 말을 제자인 위령에게 말했는지 나와있지 않습니다. 이러한 <논어>의 특성은 저를 포함한 독자의 공자의 발언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는 동시에 후세 사람들이 같은 문장에 대해서 매우 다양한 기의를 담아낼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강설들).
제가 할 수 있는 기본설명은 이 정도가 전부이니 바로 봅니다. 아래 주소의 유튜브 영상을 기준으로 해석했습니다.
十七. 子曰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자왈 군자의이위질 예이행지 손이출지 신이성지 군자재
공자왈
군자는 의(義)를 그 본질로 삼고
예로써 그것(義)을 행하고
겸손함으로써 그것(義)을 표현하고
믿음으로써 그것(義)을 완성하니
군자답구나.
일단 여러분이 직감하고 있다시피, 결국은 의(義, Righteousness)라는 기표가 지시하는 진정한 기의가 무엇이냐는게 관건으로 보여집니다. 의롭다, 정의, 정의로움, 올바름, 올곧음, 바른 등등등...
'정의(正義)가 무엇이냐'는 질문은 전 우주를 둘러싼 불멸의 철학적 질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걸 다룰 수 있을만큼 고상한 인간은 못 됩니다. 마이클 샌델의 그 유명한 책도 보려다가 골치아파서 덮었기도 했구요.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건 있습니다. 의(Righteousness)가 곧 합법성(lawfulness)은 아니라는 겁니다. 마치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3부작에서 배트맨이 하비 덴트를 정의의 상징으로 남기기 위해 자기자신을 자경단(vigilante)에서 범죄자(outlaw)로 전락시켰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의(義)에 대한 공염불은 그만두고 30주년을 맞이한 한중관계속에서 왕이 부장이 말한 단어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군자신이성(君子信以成: 군자는 믿음으로써 이룬다). 군자는 의(義)를 그 본질로 삼고 믿음으로써 그것(義)을 완성하니 군자답구나.
사실 저는 국제관계속에서 의(righteousness)는 웬만하면 성립하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단어로는 현실주의 세계관이고요(물론 현실주의도 여러가지 유형들이 존재하고 사례에 따라 디테일들이 다릅니다).
국제무대에서 중국은 자국의 행위들에 대한 비판들에 대해 UN헌장 등을 내세우며 방어논리를 구성해 자기 행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은 다른 주권국가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마찬가지로 보이는 모습이긴 합니다. 자국의 이익을 초월하는 신화가 존재하지 않는 한 그럴 수 밖에 없지요.
그런데 이러한 세상속에서 박진 장관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왕이 부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화이부동의 주어를 주의깊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바로 "군자"입니다. 박진 장관의 기의는 물론 '당신네와 무턱대로 어울리지는 않겠다'에 방점이 찍혀 있었으나, 왕이 부장은 이미 이 '화이부동'을 비틀어 중국측이 원하는 바가 담긴 '구동존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왕이 부장은 또다시 '화이부동'을 비튼 겁니다. 거칠게 바로 표현하면 이런겁니다.
'어이, 당신. 당신 저번에 우리네는 그렇다쳐도 당신네도 군자라고 표현했었지? 그렇다면 내가 무엇이 군자다움을 완성시켜주는지 말해주지. 바로 믿음이야 믿음. 우리사이를 이간질하려 미혹하는 외부세력의 말을 멀리하고 중국을 믿어. 그래야 당신 국가도 그 위상에 걸맞는 군자로 거듭나는거야'
심지어 박진 장관이 인용한 '화이부동'의 원 출처가 <논어>였고 왕이 부장의 "군자신이성"의 원 출처도 <논어>였다는 지점에서 중국 외교부의 의도가 매우 다분했음이 보입니다.
그리고 믿음(信). 믿음(信)으로써 의(義)가 완성된다는 공자의 말. 이걸 한중관계에 대입하면 대체 무슨 말이 되는걸까요. 이걸 이해하려면 믿음은 belief와 trust의 두 종류로 나뉜다는 지점을 봐야합니다. 맨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논어>는 맥락없이 문장들이 나열되다보니 여러가지 기의를 가질 수 있으니까요.
belief는 the feeling of being certain that something exists or is true입니다. 무언가가 확실히 존재하거나 진실이라는 느낌.
trust는 to believe that someone is good and honest and will not harm you, or that something is safe and reliable입니다. 누군가가 선의를 가지고 있고, 정직하고,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 혹은 무언가가 안전하고 신뢰할만하다고 믿는 것.
* trust의 명사형이 the belief that you can trust someone or something라고 정의되어 있음.
belief를 한중관계에 대입하면 한국이 중국을 존재하거나 진실이라고 느낀다는 괴상한 문장이 되므로 결국 왕의 부장의 "군자신이성"에서 사용한 믿음(信)은 trus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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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왕이 부장이 내뱉은 단어 하나에 맥락을 넣어서 다시 번역하기 위해 문제의 <논어> 위령공편 17장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장의 어미가 어떻게 끝나는지 잘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十七. 子曰 君子義以爲質 禮以行之 孫以出之 信以成之 君子哉
자왈 군자의이위질 예이행지 손이출지 신이성지 군자재
공자왈
군자는 의(義)를 그 본질로 삼고
예로써 그것(義)을 행하고
겸손함으로써 그것(義)을 표현하고
믿음으로써 그것(義)을 완성하니
군자답구나.
"군자답구나"라는 감탄사(哉)로 끝납니다. 이 감탄사만 보면 발화자인 공자가 듣는사람인 위령을 군자로 인정해주는 듯한 장면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17장뿐만 아니라 18, 19, 20..... 그 뒤로도 한참동안 제자인 위령에게 가르침을 말합니다.
즉, 맥락상 듣는사람이자 제자인 위령은 아직 의(義)를 완성하지 못하여 군자다움에 못미치는 상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사실 공자본인도 의를 완성했음을 자처하지 않아야 논어 전체의 말이 맞아들어 갈 겁니다).
이제 '군자신이성'에 한중관계라는 맥락을 대입하여 다시 번역하면 이런 말이 됩니다.
왕이왈
한국은 중국과의 의(義)를 그 본질로 삼고
중국을 향한 예로써 의(義)를 행하고
중국에게 겸손함으로써 의(義)를 표현하고
중국을 신뢰함으로써 의(義)를 완성하니
군자답구나.
매우 불쾌하게 느껴지는 문장이 나왔습니다. 일단 중국이 스승이고 한국이 제자인듯한 장면이 나왔습니다. 왕이 부장이 이미 '삼십이립'을 말하면서 '사십불혹'까지 끼워넣으며 한국을 아직 불완전한 존재로 여기고 있다는 지점에서 제가 설정한 이러한 스탠스는 중국의 일관성을 반영한 것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장자체가 중요한게 아닙니다. 다른건 일단 이 글에선 치워두고 제일 중요한건 붉은색으로 강조한 부분뿐입니다. '중국을 신뢰하라'. 이게 진짜 중요한 말속의 가시이고 구밀속에 감춰진 복검입니다.
이러한 중국의 한국의 입장은 이미 한중 외교장관회담에서 왕이 위원의 "비바람"이라는 표현을 통해 드러난 바 있습니다.
// 공자님이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바람에 시련을 겪어온 중한관계는 당연히 더 성숙하고 더 자주적이고 더 견고해져야합니다. //
일단 중한관계가 비바람에 시련을 겪어왔다는 건 다분히 사드배치와 그에 딸려온 한한령을 의식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바람"은 과연 한중관계내에서 유발된 내생변수일까요? 아니면 한중관계밖으로부터 유발된 외생변수일까요?
이 "비바람"이라는 기표가 지시하는 기의가 내생변수냐 외생변수냐라는 해석의 차이에 따라서 왕이 부장의 진정한 기의는 확 달라져버립니다.
그리고 싱겁게 답부터 빨리 말해버리자면, 왕이 부장에게 이 비바람은 바로 아직 덜 성숙한 한국을 미혹시켜 한중관계를 이간질하는 미국이라는 외생변수입니다. 사람으로 비유하자면, 중국이 한국의 부모인데 미국이라는 나쁜애가 한국을 꼬드겨 애를 베려놨다는 겁니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도 상대하긴 하지만 일단 한국에게도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한국아. 내가 너를 키운지 30년이 되었다. 너도 서른먹고 대가리가 많이 커지긴 했지만(삼십이립) 아직도 내가 보기엔 미혹에 잘 넘어가는구나. 부디 빨리 마흔까지 커서 미국의 충동질에 흔들리지 않는 그런 성인(사십불혹)이 되렴.'
이제 이러한 배경들을 보고나서 시진핑 주석의 한중수교 30주년 기념 서신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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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의 같은 소식입니다.
https://www.kita.net/cmmrcInfo/cmmrcNews/cmercNews/cmercNewsDetail.do?pageIndex=1&nIndex=1825967
//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수교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한중관계 발전을 이뤄나가자는데 뜻을 같이한 것을 거론하며 "앞으로 한중 양국이 상호 존중의 정신에 기반해 새로운 협력 방향을 모색하면서 보다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상호 존중'이라는 한국 새 정부의 대중관계 지향점을 재확인하면서, 관계 발전을 위해 두 정상의 직접 만남이 중요하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 //
// 시 주석은 "나는 중한관계 발전을 고도로 중요시한다"며 "중한 양국은 좋은 이웃, 좋은 친구, 좋은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님과 전략적 의사소통을 강화하고 수교 30주년을 새 출발점으로 양측이 큰 흐름을 잡고 장애를 배제하며 우정을 다지고 협력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감으로써 양국 관계의 더 아름다운 미래를 열고 양국과 양국 국민에게 더 많은 행복을 가져다주고자 한다"고 했다.
시 주석은 최근 이른바 '신냉전' 구도 강화로 중대한 변곡점에 선 국제질서와 그 영향권에 있는 한중관계를 염두에 둔 듯한 메시지도 내놨다.
그는 "세계가 새로운 변혁기에 들어섰다"며 "이런 중대한 시점에 중한 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동주공제(同舟共濟·한 배를 타고 나아감), 단합·협력을 해야 위기를 극복하고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
// 그는 지난 30년간 한중관계가 '상전벽해의 변화'를 이룬 세월이었다며 "상호 존중과 신뢰를 견지하고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한 관심 사항을 배려하며 성실한 의사소통을 통해 이해와 신뢰를 증진해 왔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또 "양측은 개방과 포용을 견지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을 함께 수호하며 역내의 통합과 발전을 추진하고 국제관계의 기본 준칙을 수호해 왔다"며 "이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계속 지켜나가야 할 귀한 경험(--> 외교장관회담 당시 왕이의 입에서는 "유일한 경험"이었음)"이라고 덧붙였다. //
일단 윤석열 대통령은 기본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서로 존중하자고 그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딱히 해체해보고 볼 것도 없지만 '상호 존중'은 양국이 같은 지위임을 전제해야 성립된다는 표현이란 점은 중국의 한국인식과 대비된다는 점에서 주목해야합니다.
반면에 시진핑 주석은 중한관계의 발전을 고도로 중요시한다고 발언하였습니다. 다만, 그 이유는 어디까지나 제가 지난 글들에서 강조하였듯이 중국의 중대이익사항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중국은 자국의 중대이익사항을 관철시킨다는 매우 일관된 입장을 고수합니다.
다음은 30년간 한중관계가 서로의 상호존중과 신뢰를 견지하고 이해와 신뢰를 증진해왔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가 해석한 왕이 부장의 "군자신이성(君子信以成)"의 기의인 '중국을 신뢰하라'라는 메세지와는 정반대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국가정상이란 양반이 우리나라를 상대로 bullshit을 내뱉은 겁니다. 그리고 이 단락은 이미 중국이 사과나 한한령해제를 공식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중 외교장관회담 다음날 외교부 대변인의 입을 빌어 THAAD 문제를 시비 걸었다는 배경만 봐도 bullshit임을 알 수 있습니다. 흔히 사람들이 "외교적 수사"라고 표현하는 그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동주공제"부분입니다. 일단 동주공제(同舟共濟)는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는 고사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와 월나라는 앙숙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강을 건너다 비바람을 만나자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서로 힘을 합쳐 강을 건넜다는 내용입니다.
오나라와 월나라는 당연히 한국전쟁을 돌이켜봐도 서로 앙숙이었던 한국과 중국일 겁니다. 그런데 이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을 위협하고 똘똘 뭉치게 한 비바람. 어디서 보셨지 않나요? 네. 맞습니다. 이겁니다. 왕이 부장이 직접 말했죠.
// 공자님이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바람에 시련을 겪어온 중한관계는 당연히 더 성숙하고 더 자주적이고 더 견고해져야합니다. //
일단 중한관계가 비바람에 시련을 겪어왔다는 건 다분히 사드배치와 그에 딸려온 한한령을 의식했다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바람"은 과연 한중관계내에서 유발된 내생변수일까요? 아니면 한중관계밖으로부터 유발된 외생변수일까요?
바로 한중관계에 있어서 외생변수인 미국을 의미합니다.
"이런 중대한 시점에 중한 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동주공제(同舟共濟·한 배를 타고 나아감), 단합·협력을 해야 위기를 극복하고 난관을 뚫고 나갈 수 있다"라는 시진핑 주석의 발언은 얼핏보면 전세계 국제사회 전체의 단결을 말하는것으로 보이는 기표입니다.
하지만 "동주공제"를 둘러싼 "비바람"이라는 맥락을 보았을때 시진핑 주석은 미국을 배제한 국제사회의 단결을 한국에게 말했습니다. 그게 시주석의 진정한 기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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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중국은 메세지는 일관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메세지를 둘러싼 기만행위까지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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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 박진이 중국의 메시지를 모르고 저런 소리 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묵살이죠(....) 니들이 의도에 우리는 별로 관심은 없다. THAAD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한한령 풀어달라는 우회적인 표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일국의 외교부 장관인데 말씀하신 중국의 의도와 맥랙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리는 없죠.
약속국은 정면으로 강대국의 발언에 반박은 못하니까 빗겨간 논점에 동의하는 외교적 수사를 쓰고는 합니다. 지금 정권이 한국은 젓밥 떨거지라는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니 그냥 그렇게 한 게 아닌가 싶어요.
2. 중국의 고압적인(....) 발언은 00년대 들어서 쟤들이 경제력으로 일본 제낀 시점에서 계속 반복되어와서 심화되는 발언들이죠.. 저는 별로 그런 이야기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습니다만.. 사실 외교적 맥락에서 검토해 보면 오만방자한 고압적 태도긴 하죠..ㅎ
1. 윤석열 행정부는 THAAD 문제를 "안보주권문제"라 칭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THAAD문제가 어떻게 되든 한중관계를 지속시켜야 한다는 중국의 메세지를 박진 장관이 델카이저님의 의견처럼 묵살하고 있다면, 윤석열 행정부와 박진 외교부는 중국에 의해 한국의 안보주권이 침해당한 상황에서도 아무 언행조차 안하는 정권입니다.
중립이 결코 '아무런 의견없음(부동층)'이 아니듯이 묵살도 무반응이 아니라 반응중의 하나입니다. 심하면 무언의 동의로까지 해석될 수 있죠.
2. 중국의 고압적 태도는 누구나 알다시피 오래되었지만, 그 고압적인 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메커니즘을 모른다면 앞으로도 계속 중국에게 기만당할 뿐입니다.
우리가 신경쓰지 않는다면 중국이 당신을 요리할 겁니다. 그것도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이간질하는 형태로요.
@cjs5x5 답변이 늦었습니다.
1. 말씀대로 윤석열 정부는 그러한 주권 침해를 "응당 조센징은 당해도 싼"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이건 일본에 심취한 속칭 구세대 전체의 기본 발상이기도 합니다. 어차피 한국의 안보주권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미국의 보호가 한국의 안보라고 생각하고, 그 안보를 위해서 아시아의 퍼스트 파티 일본에 얼마나 잘 굴종해서 미국의 보호를 일본을 통해 승인받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하겠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현 정권의 과도한 일본 굴종적 태도, 대미 외교 한다는 놈들이 전임 정권의 대외 정책을 일단 엎고 보면서 진지빨고 "한미 관계를 옳바르게 세워서 미국과의 관게를 개선한다"는 괴상한 `발상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한다리 걸쳐서 카더라를 들으니 미국 국무부 쪽은 대놓고 하던대로 하라는데도 진지하게 미국이 시키는대로 전임 정권의 모든 것을 엎겠다는 발상에 심히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입니다만..)
이건 국짐 누가 정권을 잡아도 비슷합니다. 정치적으로 세계속이 한국의 위상을 인정하는 건 참여계의 정책과 방향성이 옳았다는 이야기라서 인정 못할 거라서요.
@델카이저 저는 다만 우리가 문장을 다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윤석열 정권의 저러저러한 언행을 보니 이러저러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매국노다'라는 문장구조를 아래와 같이요.
'윤석열 정권의 저러저러한 언행을 보니 외부의 시선으로 이렇게 <해석>되어질 수 있다'라고요. 만약 윤석열 정권의 실제 언행이 우리 한국의 국익을 저해하거나 본인들의 또다른 말과 상충될 수 있게 해석이 가능하다면, 그걸 문제(problem, error)라고 부르면 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저는 전에 작성한 한중 외교장관회담 글들 중에서 한부분에 이렇게 썼습니다. '친중은 그렇게 하고자해서 되는게 아니라,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라고요. 이 문장을 다르게쓰면 친중은 친중의지와는 상관없이 실제 친중적인 언행에 의해서야 친중으로 거듭난다고 쓸 수 있습니다.
@cjs5x5 즉, 어떤 정권이건간에 우리는 친중을 향한 의지는 볼거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실제로 집중해야하는 지점은 의지가 아닌 실제로 친중적인 행위와 <언행>을 했느냐는 여부라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물론 여기서 '친중적인 언행'에는 pro-china로 꼬드기는 중국의 우리를 향한 언행에 대한 우리측의 반응도 포함됩니다.
<그런데 침묵은 암묵적 동의로 해석될 수도 있는 기표입니다>. 이 지점에서 저는 이번 중국의 THAAD문제제기에 대한 윤석열 정권의 대응이 잘못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cjs5x5 이유야 뭐건 말씀대로 미국이 원하지 않는 정책을 추진하고 언행을 하는 것은 국익에 심하게 반하는 일이죠. 더욱이 그게 한국의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도 아니고 중국의 의도에 맞춰지는 문제라면 더욱 더요.
전 과거와 달리 외교에서 말이 갖는 이미지는 꽤나 퇴색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처럼 기본적으로 국정이 오픈되어있는 민주국가에서는 더욱 더요.(그 오픈된 정보가 친중으로 흘러가니 문제고, 그걸 의도하진 않는 거니 더더 문제고;;;)
말씀대로 윤석열 정권의 외교 정책의 대응이 매우 문제가 있다는 점에서 동의합니다. 불편하지만 우리의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선을 긋는 작업은 종종 꼭 필요하지요. 북한 빼고 누구에게도 그걸 못하는게 지금 정권의 최대 문제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