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사로잡힘 없는, 경계 없는 현존은 나를 매혹시켰다. 인터뷰를 마치고 “안아도 되요?” 하며 수줍게 질문하는 나에게 그녀는 “이리와요. 나는 예전에 히피였어요. 우리 히피들은 포옹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하면서 꼭 안아주었다.
다른 한 명은 나로파 대학(Naropa University)의 교수인 주디스 시머브라운(Judith Simmer-Brown)이었다. 나로파 대학의 설립 당시부터 함께 해온 그녀는 영성 수행과 학문을 결합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미국 불교의 산증인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나에게 그녀는 선뜻 다가와 이렇게 물었다.
“포옹해도 되요?”“물론이요. 교수님. 영광입니다.”우리는 한 1분 정도를 아무 말 하지 않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그녀는 나의 어머니였을 수도, 언니였을 수도 있다. 이 세상에서 옷깃만 스쳐도 영겁의 인연이 있다는 말을 다시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금 지구별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길고 긴 인연으로 엮여 있다. 나라 할 것 없이 지금 이 몸을 타고 태어나 경험을 하며 살고 있는 ‘나’는 바로 그녀이며, 내게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질문을 한 그이기도 하다.
나는 미국에 살고 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모든 면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미국이 전 세계 경찰국가를 자처하며 오지랖 넓게 나서 평화의 전사(Warrior)인 양 하며 일으킨 전쟁에는 학을 뗄 정도이다. 21세기 가장 호전적인 나라는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조선인민주의공화국’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미국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 무기를 팔 수 있고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탄소 생산을 많이 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미국의 쓰레기 분리수거는 미개국 수준이다. 땅덩이가 넓다 보니 매립지가 많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플래스틱, 음식물 찌꺼기를 섞어서 버리는 현실을 보면 지구 어머니의 아픔이 느껴져 가슴이 아파온다. 생각이 좀 있는 사람들은 미국인의 소비행태에 대해 혀를 차며 걱정한다. 만약 중국인, 인도인들이 미국인들처럼 소비한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혼자서라도 쓰레기 처리를 잘 해보려고 무진장 애를 써봤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지속가능 운동(Sustainability Movement)은 한계가 있다. 제도적인 측
면이 마련되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은 그렇지만 미국인들은 개별적으로 모두 다르다. 누가보든 보지 않든 자긍심을 가지고 하늘 아래 한결 같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약삭빠르고, 자기 것 내놓을 줄 모르고,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존재들도 많다. 분명한 것은 나의 의식 상태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면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배울 바를 다했더니 더 이상 내게 가르침을 줄 필요가 없는 이들은 내 삶에서 사라져간다.
미국 불교가 한국으로 역수출되고 있는 현실
이번에 한국에서 ‘미국 불교의 현주소’를 취재하기 위해 미국에 온 이유는 이렇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해 아시아 지역에서 수천 년간 발전해온 종교이다. 미국을 포함한 서구 지역에 불교가 소개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요즘 대한민국에는 기독교 교세가 뜨겁고 불교는 사그러들고 있다. 절에 가보면 내일모레 요단강 건너가실 노보살님들이 앉아 “나무관세음보살”만 외우고 계시다.
그런데 미국과 서구에서는 오히려 불교신자들이 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불교신자들은 거의 대부분 매우 철저하게 매일 명상수행을 하는 자들이다. 명상으로 자신이 변하고 관계가 개선되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아 보니 기업에서도 명상 바람이다. 실리콘 밸리의 간부들의 명상 수행과 기업 내에서의 명상 프로그램에 대한 뉴스가 많이 보도 되다 보니 이제 ‘마음챙김(Mindfulness)’은 21세기 최대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30년 전만 해도 요가 스튜디오는 눈 씻고 찾아봐야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한 블록 건너 하나, 거의 스타벅스 매장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 요가 스튜디오이다. 최근 상업적 명상센터가 여기 저기 생겨나고 있고 매우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중이다. 어쩌면 10년 내에 현재의 요가 스튜디오 만큼이나 흔하게 상업적 명상 센터를 보게 될 수도 있다.
최근 한국의 수행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에서 대박 상품이 되어 버린 ‘마음챙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제까지 조계종을 중심으로 해왔던 간화선이 아닌, ‘마음챙김’ 명상을 공부하고 수행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조셉 골드스타인, 잭 콘필드, 타라 브락, 수잔 잘츠버그 등 1960년대 버마와 타일랜드 등지의 수행처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했었던 이들의 책을 교과서처럼 읽고 있다. 분명이 시점에서 마구잡이로 수입되고 있는 ‘마음챙김’ 명상, 또는 미국화 된 불교에 대해 검증하고 평가해보는 시간은 필요해보인다.
미국에는 명상만 있을 뿐 불교가 없다?
한국에서 온 취재팀들은 21일 정도 미 서부 지역을 돌고 난 후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는 명상 수행만 있을 뿐, 불교가 없다.”라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는 내가 속한 상가(Sangha)가 얼마나 진지하게 불법을 따르고 계를 지키며 수행을 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물론 세속적 환경(Secular Setting)에서의 마음챙김 수행공동체에서는 ‘붓다’며 ‘불교’라는 말을 그리 자주 하지 않는다. 이는 종교를 초월해 보다 많은 이들이 마음챙김이라는 ‘삶의 기술’을 배우고 연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종교는 어쩜 인류가 가장 고정화된 사고방식으로 대하는 영역이다. ‘종교, 신, 사랑’이라는 단어만큼 오염된 개념이 또 있을까. 서로의 자기의를 내려놓아야 대화가 가능하지만 아브라함계 종교를 신봉하는 자들은 절대 이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교는 가능하다. 붓다는 자신을 신이라 하지 않았고 우리는 그를 신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인간이 고통의 사슬로부터 벗어나 행복으로 가는 방법을 최초로 깨달은 존재이다. 그리고 혼자 행복함에 머물지 않았다. 최상의 지혜를 깨달은 이의 가슴은 이 세계를 모두 품는 연민의 가슴을 갖는다.
그래서 그는 어리석음으로 똑같은 윤회를 되풀이하고 있는 중생들을 위해 법의 바퀴를 굴렸다. 그가 원한 것은 불교가 중흥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기도 한 이 세상 모든 중생들이 어리석음으로 인한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행복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니 불교신자들이 “불교신자라고 하면, 그리고 불교수행을 시작하려고 한다면 가장 먼저 붓다에게 귀의하고, 법에 귀의하고, 상가에 귀의해야해. 그렇지 않는다면 그건 불교라고 할 수 없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면 이는 아브라함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저지르던 ‘자기의(Self-Righteousness)’의 오류와 무엇이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일까.
그린 걸치 농장 내, 수행실의 불상
21세기 미국이라는 토양에 생경하기만 한 불교가 지금 이렇게까지라도 성장하게 된 데는 현재 자신의 종교를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가 컸을 것이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평생 “내 앞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 는 계명을 지키며 살아온 이들이 그 계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면 불상 앞에 절하는 것이 아니라 멈추고 마음 바라보기부터 함께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숨, 소리, 몸의 감각 등 현재의 경험이란 것이 늘 변하는 것이고 고정된 것이 없음을 경험적으로 알게 될 것이고, 나는 그렇게 변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며, 때가 되고 수행이 깊어가다 보면 붓다가 말했던 “감각적 쾌락을 여의고 불선법을 여읜다”는 것이 그냥 자연스럽게 동시적으로 일어나게 된다.
그 수행자는 삶 속에서 분노, 의심, 질투, 중독을 자신으로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의 가족관계, 사업관계는 변할 것이다. 그는 좀더 깊게 침묵에 있으며 자신을 돌아보기를 원하게 될 것이다. 그는 다음 번 휴가 때 카리브해 연안의 호화 리조트가 아니라 묵언수행을 할 수 있는 안거(Retreat)처인 명상센터를 찾아 5일에서 10일 정도 길이의 고귀한 침묵에 거하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명상센터에 들어가게 되면 가장 먼저 접하는 것이 오계의 준수이다. 그리고 이 마음을 들여다 보는 수행법을 누가 발견한 것인지를 얘기해준다. 침묵의 기간을 가진 후, 뇌가 완전히 리셋(reset)된 그는 자신의 삶을 바꾼 이 고귀한 수행법을 인류에게 알려준 붓다, 그 분에게 대해 알고 싶어 하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이웃 근처에 있는 명상센터를 찾아 상가(Sangha)의 일원이 될 것이며 불교 서적을 구입해 보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내가 붓다를 만난 과정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 도반들은 거의 대부분 이런 경로로 붓다를 만났다.
그러니 맨 처음부터 ‘삼귀의’를 하지 않는다고, 미국 불교에는 승가가 없다고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을 가져다 댈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미국이라는 토양에서는 이러한 전개방식이 맞았던 건 아닐까.
나로파 대학 내의 명상실
한국 불교가 미국에서 뿌리내리려면….
미국 불교의 밥상에는 버마의 소승불교, 티베트의 밀교, 일본의 선불교가 메인디시로 차려져 있다. 숭산스님이 설립한 관음선종은…. 미안하지만 이제는 미미해졌다. 이미 미국인 제자들이 불교 지도자가 되어 자가발전으로 잘 돌아가고 있는 이 토양에 한국의 간화선이 들어올 틈바구니가 과연 있을까.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번 여행을 마치며 이런 통찰을 얻었다. 우리가 그들을 가르친다는 자기의(Self-Righteousness)를 내려놓고 온전히 근원과 연결된 보디사트바의 마음으로 존재하며 그들을 도우려 한다면,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고 물질과 시간과 노력을 나눠주려 한다면… 이미 구역 정리 다 끝난 미국 불교계의 지각이 변동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매우 느린 속도로…
하지만 그러려면 우리가 먼저 깨닫고 우리가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전 세계 OECD 국가들 중 가장 자살률이 높고 행복 지수가 낮은 우리가 남들에게 행복의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재가자들과 승가 모두 수행으로 위가 없는 지혜를 깨닫고 지혜의 깨달음과 동시적으로 발생하는 가슴의 열림으로 인해 온 세계 중생들이 바로 나 자신임을 알 때, 이제껏 기독교 선교사들이 자기의를 내세워 종교적 침략을 자행했던 것 같은 아픈 역사는 되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걱정하지 않아도, 우리가 애써 계획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모든 조건을 갖추었는데 그런 결과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건 부처님법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니 무엇보다 먼저 다 함께 수행하자.
붓다가 설법 끝에 꼭 “저기 나무 등걸이 비었다. 저기 빈집이 보인다. 어서 가서 선정을 닦아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고 하셨던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스텔라 박은 1980년대 말, 연세대학교에서 문헌정보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재학시절에는 학교신문인 연세춘추의
기자로 활동했다. 미국으로 건너와 지난 20년간 한인 라
디오 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는 한편, 10여 년 동안 미주
한인 신문에 먹거리, 문화, 여행에 관한 글을 기고해왔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불교명상 관련 책을 번역하는 이재석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가장 마음에 와닿은 구절을 다시 한번 인용하는 것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
"21세기 가장 호전적인 나라는 미국이 ‘악의 축’으로 규정하는 ‘조선인민주의공화국’이 아니라 바로 미국이다."
"분명한 것은 나의 의식 상태에 따라 같은 대상이라도 내가 주의를 기울이는 면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제 ‘마음챙김(Mindfulness)’은 21세기 최대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종교를 초월해 보다 많은 이들이 마음챙김이라는 ‘삶의 기술’을 배우고 연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무엇보다 먼저 다 함께 수행하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