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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조선소, 그리고 큰 섬에 정착한 사람들②
[거제신문 창간35주년 특집] 거제 조선산업 50년 빛과 그림자9
삼성중공업 김성준 반장, 호황·불황 모두 겪은 김 반장의 조선소 현장 20년
한화오션 협력사 우신기업 노빈드라씨, 조선소 짬 13년, 네팔 출신 노동자의 ‘거제 드림’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 박정수씨, 부산은 태어난 고향, 거제는 우리 가족의 고향
한화오션 대외홍보팀 정희용 선임, 따뜻한 동료애로 낯선 타지 생활 극복, 거제에 정착
거제 조선산업의 역사와 노동자들의 삶을 돌아보는 이번 특집에서는 2000년대 이후 조선소에 입사해 현장을 누빈 거제지역 조선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거제의 모습을 반영해 조선산업의 발달과 거제지역의 변화를 전달하려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조선 산업의 성장 과정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겪었던 고난과 성취, 그리고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편집자 주
삼성중공업 김성준 반장
호황·불황 모두 겪은 김 반장의 조선소 현장 20년
삼성중공업 김성준 반장. @최대윤 기자
김성준(44) 반장은 2000년대 초반 삼성중공업에 입사해 조선소의 호황과 불황을 모두 겪어온 산증인이다.
거제 출신인 그는 둔덕면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거제에서 보낸 토박이다. 2000년대 초반, 조선 산업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리던 시절, 그는 고향 거제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당시 거제지역 조선소의 임금은 원청사와 협력사 간 별 차이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 거제를 떠났던 청년들은 ̒취업이 안되면 거제에 가서 조선소나 다니면 된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였다.
2003년, 삼성중공업은 세계적인 선사들로부터 대규모 수주가 진행되며 현장 인력 수요가 매우 높았다.
그럼에도 조선소 정직원으로 취업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그는 이 시기에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거제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남들에 비해 조선소 취업이 비교적 쉬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거제대학 졸업생이나 거제공고 졸업생이 두 조선소의 정규직으로 채용되기 유리했다.
하지만 최근 거제대학 졸업생이나 거제공고 졸업생이 거제지역 양대 조선소 정규직에 채용되는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조선업 불황이 만든 ‘119법칙’과 거제의 발전
거제 경기는 조선소 직원들의 회식이 활발했던 고현·장평·중곡·옥포·아주 지역에서 엿볼 수 있었다. 저녁 5시에서 6시가 지나면 작업복을 입은 직원들이 하나둘 퇴근해 회식자리에서 동료들과 피로를 풀곤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조선 경기의 하락으로 인해 이 지역의 식당들은 텅텅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2007년을 기점으로 하락세를 이어가던 거제 조선 경기는 점점 바닥을 향했다. 2008년쯤에는 ‘회식은 119’라는 새로운 법칙이 생겨났다. 이는 ‘1가지 술로 1장소에서 9시 전까지’라는 의미였다.
조선 산업의 경기 불황으로 새벽까지 이어지던 회식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씁쓸한 일이었지만 조선소 가족들은 이전에 비해 빨라진 아빠들의 귀가를 반겼다.
입사한 지 올해로 20여 년째 되는 그는 현재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남매의 아빠이기도 하다. 그는 조선소에서 만난 여자친구와 결혼해 완벽한 조선소 가족을 이뤘다.
그가 입사할 당시 거제에는 소아 전문 병원이 없었으나, 결혼할 즈음 소아병원과 산부인과가 늘어났다. 대형마트와 백화점도 그가 결혼하고 신혼을 보낼 무렵에 생겨났다.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 일도 없고 젊은 후배도 없는 점이 아쉽다고 한다.
또 외국인 노동자들이 너무 많아졌고, 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녀들을 어느 정도 키워 놓은 그는 취미로 낚시도 다니며 비교적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는 거제지역의 조선산업이 최근 호황기를 맞고 있지만 자신이 경험했던 2000년대 화려했고 급속도로 도시가 팽창하고 발전하던 시절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외국인의 유입이 많은 만큼 외국인과의 현장 소통문제, 외국인의 정착문제, 외국인 도입 시스템에 대한 문제 등에 대해 우려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는 “지난 20여년 동안 힘든 조선소 생활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이라는 버팀목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앞으로도 가족을 위해, 그리고 고향이자 삶의 터전인 거제를 위해, 세계 최고의 선박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 최대윤 기자
한화오션 협력사 우신기업 노빈드라 씨
조선소 짬 13년, 네팔 출신 노동자의 ‘거제 드림’
한화오션 협력사 우신기업 노빈드라 씨. @서동인 기자
한화오션 협력사에서 근무하는 노빈드라(42)씨는 올해로 한국생활 13년 차를 맞았다.
네팔에서 태어나 생산·무역 관련 회사의 사무직으로 일하던 그는 2011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한국에 먼저 온 친구들을 통해 우리나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임금이 5~6배 더 높다는 사실에 가족을 두고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국에 오기 전 노빈드라씨는 네팔의 한국어 교육기관에서 3개월간 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한글을 공부했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다른 외국인들보다 글을 배우는데 더 수월함을 느꼈다.
여러 나라 글중에서 한글이 가장 배우기 쉽다고 느꼈기 때문에 언어를 배우는 데는 남들보다 애를 먹지 않았다. 그 결과 지금은 주업무인 절단·용접 작업 외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코디’ 역할을 도맡고 있다.
코디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모국어로 안전교육을 실시하고 통·번역을 맡으며, 작업 중 발생하는 문제를 중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재 한화오션에는 7개국의 코디 7명이 각자 타국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자국 노동자들의 편익과 언어소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노빈드라씨도 이중 한 명으로, 때로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일자리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작업 중 다툼이 벌어졌을 때 중재하는 역할도 하는 등 동료 외국인 작업자들을 위해 애쓰고 있다.
그도 처음에는 한국생활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남들보다 한국어를 빠르게 익혔지만, 타국에서 일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사 초기에는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해 곤혹스러운 상황도 많았다. 조선소 작업 특성상 일상적인 언어 표현보다는 은어나 전문 용어가 많아 더욱 어려웠다.
한번은 배 안에서 작업 중 반장의 지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서로를 찾아 헤맨 기억을 떠올리며 웃어 보였다.
배 위쪽으로 통하는 출구통로가 여러 군데 있어 왼쪽, 오른쪽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해 ‘두더지게임’ 처럼 반장과 노빈드라씨가 서로를 찾아 헤매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한국음식 적응기, 새로운 맛의 발견
한국에 살면서 그에게 가장 큰 시련은 음식이었다. 네팔에서 주로 커리를 즐겨 먹던 그는 한국 음식에 적응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네팔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한국 음식을 즐기고 있다. 기숙사생활을 하며 여러 가지 음식을 접했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면서 네팔 음식 전문점도 생겨 가끔 찾는다고 한다.
회식 때는 삼겹살이나 통닭을 즐겨 먹으며 하루의 피로를 푸는 것이 소소한 행복이 됐다. 특히 삼겹살의 담백한 맛과 통닭의 바삭함에 푹 빠져 지금은 한국음식 중 가장 좋아하는 메뉴로 꼽는다.
뿐만 아니라 김치찌개와 비빔밥 등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들도 즐겨 먹으며 다양한 맛을 경험하고 있다.
그에게는 네팔에 있는 부모님과 아내, 두 딸이 있다. 두 딸은 올해 7살과 15살로, 학교생활에 여념이 없지만 SNS을 통해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다.
아내는 결혼 후 가정살림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1~2년마다 한 달 반 정도 휴가를 받아 네팔에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가족과 공원에서 산책하거나 아내와 요리하는 시간도 좋지만 두 딸과 함께 놀이터에서 뛰어놀거나, 가족 모두가 함께 영화를 보는 시간이 그에게는 가장 큰 행복이다.
노빈드라씨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며 가족에게 더 나은 미래를 제공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는 “한국은 저에게 제2의 고향 같은 곳이며 여기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네팔에 돌아가서도 활용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국에서의 생활이 힘들었지만,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노빈드라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한국과 네팔을 잇는 다리가 되고, 양국 간의 우호 관계를 증진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 서동인 기자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 박정수씨
부산은 태어난 고향, 거제는 우리 가족의 고향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 박정수씨. @최대윤 기자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에서 일하고 있는 박정수(39)씨는 지난 2006년 군 전역 후 대학을 복학했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취업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TV광고를 통해 삼성중공업을 접하면서 조선소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조선소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친구의 조언으로 삼성중공업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을 알고 입사를 결심했다. 대학을 중퇴하고 입사한 지 벌써 15년이 넘은 그는 이제 중간급 사원이 됐다.
삼성중공업에서 동호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던 시기, 그는 중학생 때부터 계속해 오던 유도를 함께할 동료들을 모아 동호회를 결성했다.
그는 삼성그룹 블로그와 KBS 예능 ‘우리동네 예체능’ 프로그램에 지원할 정도로 열정적인 활동을 이어갔다.
현재 그의 취미는 낚시를 하거나 자녀들과 함께 곤충채집 등 외부활동을 즐기는 일이다. 낚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접하게 됐고, 낚시하기 좋은 조건인 거제도에서 계절마다 다양한 어종을 대상으로 낚시를 즐긴다. 곤충채집은 초등학생 아들이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좋아해서 자주 나가는 편이다.
#강남보다 비싼 삼겹살, 거지가 없다는 도시 ‘거제’
부산 출신인 그가 처음 거제에 왔을 때, 사람들이 ‘거제도는 거지가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퇴근 후 식당가와 편의점 앞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고현의 한 삼겹살집은 당시 강남의 삼겹살 가격보다 비쌌지만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지금과 비교하면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수가 크게 줄었지만 당시 조선소 노동자들은 오토바이로 출·퇴근하는 것을 선호했고, 그 모습은 마치 베트남을 방불케 했다.
입사 초기에는 거제지역에 신축아파트가 드물었지만 수양동과 상문동에 대단지 아파트가 우후죽순 생겨났다. 20대에는 아파트나 부동산에 관심이 없었지만 결혼하고 육아에 경험이 쌓이다보니 아파트 주변 인프라가 왜 중요한지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조선산업에 뿌리내릴 외국인 근로자와 가족들의 정착과 새로 유입될 타 지역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거제지역의 주거·문화·의료·교육 등이 지금보다 더 개선돼야 한다고 했다.
그는 조선산업이 기나긴 암흑기를 지나 다시 세계를 호령하고 있고 과거 조선소라는 투박하고 거친 회사가 아니라 공장자동화를 거쳐 스마트 야드라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외국인 근로자 유입에도 여전히 내국인 근로자의 인력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기술연수원에서는 매월 직업 훈련생을 모집해 교육하고 취업을 알선하고 있지만, 아직 지원인력이 부족하다. AR용접실습·VR취부실습 등 고도화된 기술로 스마트한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거제시민의 관심을 부탁했다.
그는 “태어난 곳은 부산이지만 우리 가족이 평생 살아야 할 거제는 진정한 의미의 고향이라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면서 “진정한 내 고향이 된 거제를 조금 더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함께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글을 보게 될 많은 거제시민 여러분 사랑합니다”고 덧붙이며 거제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 최대윤 기자
한화오션 대외홍보팀 정희용 선임
따뜻한 동료애로 낯선 타지 생활 극복, 거제에 정착
한화오션 대외홍보팀 정희용 선임 @조민정 기자
한동안 우리나라 조선업은 불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 특히 조선업의 중심지였던 거제는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잃고 떠나가는 상황 속에서 정희용 씨는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했다.
창원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거제는 낯선 곳이기도 또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곳이기도 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타지 생활에 대한 걱정도 있었죠. 하지만 막상 와보니 기우였어요. 선배들과 동료들이 너무 잘 챙겨줘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고, 회사 기숙사도 1인 1실로 쾌적해서 만족스러워요.”
그는 퇴근 후 동료들과 저녁 식사로 친목을 다지다보니 어느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최근에는 취미생활로 스크린골프를 즐기는 등 여가시간도 알차게 보내고 있다고 한다.
업무 특성상 저녁자리가 많다는 말에 맛집을 묻자, 옥포와 아주동 맛집을 막힘없이 술술 읊는 모습을 보니 그는 거제 사람이 다 된 것 같았다.
주소지는 아직 창원으로 돼 있지만 거제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그는 누가 어디 사냐고 물으면 어디라고 답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고 했다.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부산이나 창원 출신 조선소 직원들은 가족을 만나기 위해 주말이면 어김없이 배를 타야 해 고생이 많았다.
하지만 그는 거가대교 덕분에 거리부담 없이 거제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다만 매주 고향인 창원을 오가며 전국에서 가장 비싼 통행료를 자랑하는 거가대교를 이용하는 일은 여전히 부담스럽다.
#한화오션으로 새 출발, 조선산업에 대한 전망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에 인수되어 ‘한화오션’으로 새롭게 출범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에게 입사 때와 달라진 점을 묻자, 그는 웃으며 회사 로고가 바뀐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고 답했다.
조선산업 전망에 대해서는 대외홍보팀 직원답게 한화오션은 친환경 선박 기술 개발과 스마트 조선소 구축 등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을 통해 세계적인 조선 해양 기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며 회사에 대한 밝은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화오션 출범 이후 회사는 유상증자를 통해 대대적인 투자를 감행하며, ‘Global Ocean Solution Provider’로 도약할 기반을 마련했다.
최근 한화오션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필리 조선소(Philly Shipyard)를 인수했다. 美 함정 MRO 사업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요즘 한화오션은 초격차 방산 구현을 위한 해외 생산 거점을 확보한 것이다.
그는 지난해 유상증자 소식을 듣고, 회사의 미래에 확신을 얻었다. 그는 한화오션이 세계 최고의 조선 해양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거제에 뿌리내리고 싶은 꿈
결혼한 지 얼마 안된 그는 주말부부로 생활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거제에 정착하고 싶지만, 아내가 경력을 내려놓고 거제로 오는 것이 쉽지 않은 결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했다.
“거제에 정착하려면 아내가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인데 거제로 이직하는 것도 쉽지 않아 경력단절 문제가 사실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는 직장 내 동료들을 봐도 결혼 후 거제에 정착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내의 직장문제와 자녀교육 문제로 명지에서 출퇴근을 하거나 주말부부로 지내는 경우를 꽤 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꼭 아내와 함께 살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떨어져 있는 아내에게 결혼하자마자 주말부부로 시작하게 돼 아쉽지만, 함께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서로 힘내서 꼭 잘살아 보자는 사랑이 담긴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 조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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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윤.서동인.조민정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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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비회원) 4일전 IP삭제개소리 기사네 ㅋ 한화 아저씨 마누라 경단녀될까 걱정되시면 비젼도없는 조선소 그만두시고 창원가서 재취업하세요답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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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가○○○ (비회원) 4일전 IP삭제껍데기좋은소리만 잘 써놨네ㅋㅋㅋ답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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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 (비회원) 4일전 IP삭제저는 고향 부산 입니다
아버지 고향 지세포 입니다답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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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비회원) 5일전 IP삭제ㅎㅎ는 협력직원들을 소모품쯤으로 여김답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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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비회원) 5일전 IP삭제119가ㅋㅋ 언제생겼는지 확인하고 기사를쓴거에요?답글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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