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사설
■대법원장을 핫바지로 세우겠다는 민주당의 특검 법안
2024.09.05
더불어민주당이 그제 발의한 채 상병 특검 법안의 핵심은 ‘제삼자 추천’ 방식이다. 그동안 내놓았던 세 차례 법안은 모두 특검 추천권이 야당에 있었다. 이번에는 대법원장(제삼자)이 특검 후보자 4명을 추천하면 민주당과 비교섭단체가 각 1명씩 선정해 2명으로 압축, 대통령이 그중에서 1명을 최종 임명하자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게 ‘무늬만 제삼자 추천’이란 본질이다. 야당이 대법원장이 추천한 4명에 대해 언제든지 재추천을 요구할 수 있는 ‘비토권’, 즉 거부권을 갖기 때문이다. 야당 입맛에 안 맞는 후보는 아예 특검 후보로 대통령에게까지 올라갈 수도 없는 구조다. 특별검사가 아니라 야당 검사를 뽑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야당의, 야당에 의한, 야당을 위한 특검 쇼핑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래서야 어떻게 객관적·중립적 수사가 가능하겠는가.
더군다나 말은 제3자라고 하지만,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을 사실상의 핫바지로 등장시킨 발상 자체가 교만하다. 대법원장에게 4명을 추천토록 하고 그에 대해 입법부 전원도 아니고, 입법부의 수장도 아닌 입법부의 일부인 야당이 ‘잘할 때까지’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하니 참으로 오만한 발상이다. 대법원장의 권위를 이렇게 우습게 여겨서야 되겠는가.
민주당의 의도는 뻔하다. 지난 국민의힘 전당대회 출사표에서 “차기 당 대표가 되면 공수처 수사 종결 여부와 무관하게 제3자 특검법을 발의하겠다”라고 했던 한동훈 대표를 압박해 여권을 갈라치 기하려는 정략이다. 물론 한 대표가 야당의 이번 특검 법안에 빌미를 준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도저히 수용하지 못할 이런 법안을 내놓은 것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기보다는 어떻게든 정쟁과 논란을 이어나가 반사이익을 취하려는 의도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 국민도 이런 수준의 얄팍한 술책은 금방 간파한다. 며칠 전 여야 대표 회담에서 다짐했던 ‘민생 우선’ ‘정치 복원’이란 말이 무색해졌다. 무엇보다 앞으로 또 얼마나 이런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소모전을 지켜봐야 하는지 착잡하고 절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