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경향이 있다. 이왕 사려면 보다 좋은 것. 아반떼 사려다가 쏘나타 사고, 쏘나타 사려다가 그랜저 산다. 특히 한국인에겐 ‘이왕이면’ 미끼를 물면 힘도 못 써보고 낚인다. 한국인의 성향이라기보다 좋은 걸 지향하는 인간의 성향일 게다. 하지만 좋은 것을 큰 것으로 여기는 건 한국의 뚜렷한 특징인 건 맞다. 이런 특징이 쌓여 지극히 당연한 이성적 판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왕 사려면 큰 거 사야지. ‘여유’에 목마른 시대를 반영한 걸까?
SUV를 산다고 하자. 현대 투싼이나 기아 스포티지를 보려다가 정신 차려보면 현대 싼타페에 머문다. 이런저런 걸 고려(라기보다 걱정)하다 보면 ‘이왕이면’ 미끼에 걸린다. 그 결과 싼타페는 국내 패밀리 SUV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됐다. 2000년 출시 이후로 국내 SUV 역사를 새로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100만 대 이상 팔려 에디션도 냈다. 최근 기아 쏘렌토가 그 자리를 뺏긴 했지만, 신형 싼타페가 나온다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 공간 넉넉한 국내 대표 SUV 싼타페
싼타페를 왜 살까? 특별할 건 없지만 나쁘지도 않고, 무엇보다 이 가격에 이만한 공간 있는 차가 없어서. 효율성에 기반한 답변이다. 지극히 이성적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공간이다. 그 외에 나머지는 크게 모나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는다. 살살 달리면 그게 그거지 뭐, 하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 다음은 뭐? 하면 딱히 내놓지 못한다. 그 안에는 자기를 흡족하게 하는 취향이 결여됐다. 감성을 자극하는 요소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오직 도구로서 기능한다.
물론 싼타페 정도 크기가 꼭 필요한 사람이 있다. 유모차 실어야 하는 아이 있는 가족. 유모차와 유모차에 딸린 짐들의 크기가 엄청나다는 건 겪어본 사람만 안다. 그럴 땐 클수록 좋다. 여유롭게 넣는 것과 힘겹게 욱여넣는 것의 차이에서 삶의 질 달라질지 모른다. 해서 그들에겐 싼타페의 크기는 다른 선택지를 제거한다. 공간과 가격 대비 대안이 없으니까. 하지만 그들만 싼타페를 사는 건, 당연히 아니다.
SUV를 사려는 사람이 무조건 공간에 목맬까? SUV라는 장르가 마음에 드는 경우도 많다. 험로도 갈 수 있는 SUV만의 다재다능함에 주목할 수도 있다. 시야가 넓은 자세가, SUV라는 전고 높은 생김새가 끌리기도 한다. 그 성향이 저변에 깔렸지만, 그러면서 공간 넉넉한 걸 찾아야 하니 싼타페로 귀결된다. 쏘렌토가 싼타페보다 커져서 잘 팔린다는 말이 일리 있다.
◆ SUV 전문 브랜드의 DNA 품은 레니게이드
공간이 커야 한다는 강박을 지워버리면 선택 폭이 넓어진다. SUV라는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차종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가령 지프 레니게이드 같은 SUV. 사실 패밀리 SUV라고 해서 패밀리가 다 같이 움직이지도 않는다. 아이가 유모차에서 내리면 공간에서 어느 정도 해방된다. 아이가 더 크면 (슬프게도) 같이 탈 일도 적다. 그런데도 공간에만 방점을 찍을 필요가 있을까? 그럴 때 레니게이드는 역동성에 끌려 SUV를 사고 싶던 그때 그 마음을 자극한다.
레니게이드는 지프의 막내다. 피아트그룹과 합병하고 내놓은 도심형 소형 SUV다. 도심형이라고 했지만 오프로드 전문 브랜드답게 ‘로 기어’까지 장착했다. 토크 위주 저속 기어라 난이도 높은 험로를 건널 때 필수다. 물론 지프의 덩치 큰 형에 비해 험로 주파 능력은 떨어지지만, 일반 도심형 SUV는 험로에서 닭 쫓던 개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소형이긴 하지만 그렇게 작지도 않다. 직접 보면 덩치가 느껴진다. 태울 만큼 태우고 실을 만큼 싣는다. 다만 풍요롭지 않을 뿐이다. 안에 타보면 의외로 위트 있는 지프의 감각도 느낄 수 있다. 도심형이지만, SUV라는 장르의 DNA를 잘 간직했다. 차진 하체는 도심에선 경쾌하게, 험로에선 더 격하게 몰아붙이라고 종용한다. 헐렁하지 않은 조향 감각과 맞물려 험로를 ‘즐기게’ 한다. 갈 수 있다는 것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거리가 꽤 멀다.
싼타페와 레니게이드 가격은 비슷하다. 물론 싼타페는 2천만 원 후반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보통 잘 팔리는 등급 생각하면 3천만 원 후반에 위치한다. 레니게이드 또한 3천만 원 후반에 사륜구동 디젤엔진 모델을 살 수 있다. SUV로서 둘의 차이는 명확하다. 크기와 능력. 넉넉하게 실을 수 있는 싼타페의 공간과 지프를 상징하는 세븐 슬롯 그릴과 원형 전조등의 가치를 저울질하는 셈이다. SUV를 바라보는 이성과 감성은 이렇게 온도 차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