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마다 두려움이 엄습하여도 지나고 돌아보면 희미해져 살아가는 게 인생인 것 같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미국의 대통령이 이란의 위협을 우려해 전용기를 타는 척 하면서 기내식 케더링 트럭에 숨어 다른 수송기에 옮겨타는 위장 전술을 썼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도 피할 수 없는 두려움을 보며 어서 전쟁이 끝나기를 바랬다. 강진으로 무너진 흙더미를 손으로 파 헤치며 묻힌 가족을 찾는 모습도, 미사일 공격을 받아 페허가 되는 거리에서 망연히 바라보는 사람들의 텅빈 눈동자를 뉴스를 통해 매일 접하고 있다. 그들은 얼마나 두려울까? 남의 일같지 않아 마음이 아프다.
LAPD VR 훈련에 참석한 사람이 말했다. "흉기를 든 용의자와 맞닥뜨리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그는 용의자가 흉기를 내려놓고 수갑까지 찼지만 온 몸을 조이는 긴장감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읽어내려가는 동안 나도 모르게 옛날의 그 날이 떠올랐다.
우리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다. 미국에 와 일 년이 조금 넘어서다. 나는 큰 수술을 하여 집에서 몸조리를 하고 있었다. 그날 남편은 밤에 일을 하러 간다며 준비를 하고. 나는 성치않은 몸이지만 그를 돕고 싶어 따라나섰다. 일을 끝내고 거의 밤 12시쯤 차고에 도착했다. 아파트는 밖에서 게이트를 열고 들어가야 한다. 밤이 깊어 모두 잠이 들어 차고도 조용했다. 나는 몸이 시원치않아 운동화도 꺽어신고 먼저 올라가기 시작했다. 차고에서 문을 열고 층계를 올라가 또 문을 열어야 집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거의 문 가에 다달았는 데 남편이 안 오고 이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층계를 조금 내려가 남편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조금 더 내려가 아래를 보니 3명의 흑인이 남편을 둘러싸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나는 겁도 없이 뛰어 내려가 눈앞의 흑인 등을 때리며 왜 그러냐고 했다. 순간 잘못하면 이 사람이 죽겠구나 싶었다. 얼른 돌아서서 층계를 두칸씩 뛰어 올라갔다. 사람들을 불러야 한다는 생각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 흑인 한 명이 나를 쫒아왔다. 내 엉덩이를 몇 번 스치며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난 죽을 힘을 다 해 집으로 통하는 문을 닫으려 했다. 잡히면 남편도 나도 끝이었기에 기를 쓰고 층계를 뛰어올라갔다. 문을 조금 닫을 때 나를 쫒던 흑인도 반대쪽에서 문을 잡아당기며 틈사이로 나에게 총을 겨누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발로 문을 밀며 큰 소리로 이웃사람들을 불렀다. 문은 조금씩 밀리며 총을 더 내게 가깝게 했지만 문 뒤로 몸을 숨기고 온 몸으로 문을 닫으려고 애썼다.
총을 들이밀어도, 문을 열려고해도 안 되니 흑인은 안되겠는 지 아래층으로 갔다. 나는 이웃집 문을 두드리며 문 좀 열어달라고 애원했지만 아무도 열어주지 않았다. 같은 교인도. 친한 이웃도 열어주지 않고 문 안에서 " 미안해, 수진엄마" 말 뿐이었다. 집집마다 두드려도 열리지 않아 아래층 아들 친구네로 뛰어갔다. 사람 소리가 나면 강도들이 도망갈 것 같아 함께 차고에 가자고 애원을 했다. 그때 차고에서 탕 탕 탕 총소리가 났다.
나는 남편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다는 생각에 차고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데 어디선가 "수진아, 수진아" 부르는 소리는 남편이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그때 집집마다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나와 나를 에워싸며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아마 수진엄마가 그 입장이 되면 똑같이 할 수 밖에 없었을거야" 라며 자신들의 입장을 말했다. 이웃은 문은 못 열어도 911에 전화를 하였는 지 바로 경찰이 도착했다.
내가 소리지르며 이웃들을 부르고 문을 못 여니 나를 포기하고 내려간 흑인이 그때까지 남편과 몸씨름을 하고 있던 친구들에게 말해 안되겠다고 하고 남편에게 총을 겨누고 뒷걸음 치며 도망갔단다. 남편은 겁도 없이 우리 차 옆의 수영장 청소하는 사람의 차에서 수영장 청소하는 긴 장대를 빼서 휘드르며 강도를 쫒아갔단다. 그때는 영어가 한 마디도 안 나오고 한국말만 나왔다며 신기해했다.
강도가 도망가는 것을 쫒다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지니 내 생각이 나서 큰 소리로 나를 부른 것이었다. 경찰은 죽고싶어 쫒아갔느냐며 미친 짓이라고 했고 남편은 장난감 총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럼 총소리는? 강도들은 차고를 빠져 나가야 하는 데 닫힌 게이트를 열 수 없으니 근처에 있는 차를 총으로 쏘아 리모컨을 사용해 도망간 거였다. 하필이면 몇 일전 뺀 새 차가 총을 맞았다며 다들 안됐다고 했다. 그 밤 우리는 다시 태어났다. 꼼짝없이 총맞아 죽을 운명이었는 데 한시도 빼놓지않고 지켜주시는 손길이 막아준 것이었다. 그후로는 어두워지면 길가에 다니는 흑인은 다 강도같아 긴장하고 했다.
어이없게도 남편은 내가 그 상황에서 도망갔다고 생각했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지낸다. 사람은 한 번 밖에 안 죽는다는 생각에 어떤 두려움도 떨친다. 그날도 나는 남편을 살리려 죽을 힘을 다 해 층계를 올라갔고, 엉덩이에 서너번 닿은 손길에도 주저앉지않고 올라가 문을 막은거였다. 내가 죽어도 남편을 살리려 도움을 청하려고 갔는 데...어찌 생각하든 지금도 내 옆에서 함께 하고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나는 힘든 상황이 닥치면 두려움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옮기고 나머지는 그분께 맡긴다. 내가 원하는대로 안되어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때마다 지혜와 용기를 주어 어려운 상황을 헤쳐가며 살게 해주시는 그분을 의지하며 살기에 오늘도 두려움보다 감사하며 살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던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