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헌이란 받들어서 드린다는 뜻이고 헌당이란 교회당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뜻이다. 그래서 건축으로 발생한 채무가 남아 있다면 입당은 할 수 있겠지만 헌당은 채무 상태로는 할 수 없다. 목회자로 33년을 살아오면서 세 번의 교회건축과 교육관 건축 한번, 그렇게 네 번의 헌당을 경험했다. 어쩌면 가는 곳마다 성전 건축이나 부채 청산과 같은 헌당에 연관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목회자로 사는 삶 자체도 넉넉하지 못하지만, 매번 가는 곳마다 건축헌금을 하느라 합회에서 미리 차용해서 헌금을 하고 나머지로 살림을 살아야만 했다. 빠듯한 살림살이를 가지고 살아남는 비결은 체크카드 외에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고 절대 개인이나 은행에 빚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월 합회에서 일정부분 채무를 변제하고 보내주는 것만 가지고 사는 것이다. 그러니 여유자금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남들처럼 노후를 위해 집을 장만하거나 대책을 마련했을 리 만무하다.
2021년 새울산 교회로 발령받아서 부임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새울산 교회도 교회 개척 및 건축을 하고 10년이 되었지만 헌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4억의 부채가 남아 있었다. 목회 마지막 쿼터인데 합회에 또 채무를 진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었지만 성도들과 힘을 합쳐서 특별 헌금을 작정했고 나도 개인적으로 그 채무를 이제 오는 시월에 다 정리하게 된다.
지난 6월 정기 직원회 때 새울산 교회 성전 봉헌을 위한 준비 위원회를 드디어 구성했다. 얼마 남지 않은 부분을 정리하면 교회가 그토록 바라던 성전 봉헌을 마침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참으로 행복하고 반가운 일이 아닌가? 앞날은 알 수 없지만, 목회자로서 나에겐 다섯 번째이면서 마지막 헌당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나간 삼십삼 년이 참으로 감격적이고 은혜롭지 않을 수가 없다. 없는 것 가운데서 이웃을 위해 나눌 수 있는 작은 섬김을 실천할 수 있었고 수년 동안 아프리카와 다른 지역을 위해 선교자금을 보낼 수도 있었다. 이 모든 일을 해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검소한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는 자신에게는 인색했지만 언제나 남에게는 인색하지 않고 나누기를 좋아했다. 부유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가난하지도 않은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겠는가? 살아오면서 필요할 때는 신기하게 하나님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공급해 주셔서 어려움을 넘기게 해 주셨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엘리야의 까마귀는 그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수 13:14)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더라
땅은 하나도 분배받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사실 가장 넉넉한 사람들은 레위 지파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열한 지파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물과 십일조로 살았기 때문에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도록 하나님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신 것이다.
오늘날 목회자가 꼭 레위 지파에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레위 지파의 역할을 하고 살아간다. 목회자의 기업은 부동산이나 현물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렇게 기록한다.
(수 13:33)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모세가 기업을 주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었더라
이스라엘의 기업이시며 주님의 백성들의 기업이신 하나님! 이 세상에서 하나님 외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다른 기업이 있지 않도록 우리의 유일한 기업이 되소서. 세상과 하나님을 화해케 하는 거룩한 직분에 책임을 다하게 하시고 지식의 마음을 아비에게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돌아가게 하는 중보의 사역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