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제55회 / 이명자)
몇날
며칠이 흘러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느 날 나는 병원에서 눈을 떴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잠깐 보았던 것 같았고 내가 왜 병원에서 눈을 뜬 것인지 짤막한 설명(독방에 갇힌 내가 울부짖으며
벽에 머리를 박치기해댔다는 것이었다.)을 들었고 쇠고리로 꿰매어(뇌
속에 가득 찬피를 뽑아내기 위해 머리통 한쪽을 톱으로 잘랐기 때문이었다.)진 내 머리통에 대해 간단한
주의 사항을 전해 들었고(주의사항이라니? 누구에게서? 그야말로 나는 첨 듣는 말이었고.) 나는 온전히 깨어나지 않아 비몽사몽이었고, 그리고 교도소로 옮겨져 왔다. 그리고 곧바로 등 밀려 교도소에서
밖 앗 세상으로 나왔다. 내가 죄 값을 이미 치렀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내게 무슨 짓들을 하는지 미처 추스르기도 전에 나는 그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에 서있었다. 그 다른
도시로 간 것은 정부의 보조금을 받아내기가 좀 더 수월해서였을 것이다. 보조금으로 방하나 얻어 들어간
집은 성년의 두 딸과 초라하게 살고 있는 이혼녀였다. 집은 더러웠고 어수선했고 나도 더러웠고 어수선했고
몇 달을 깍지 않은 내 기다란 손톱 속은 더러운 이물질이 가득했고 내 방의 조그만 창 하나는 한 번도 열어 본적이 없었던 것처럼 창에 착 달라붙어
있는 더러운 커튼이 대낮인데도 방을 어찌나 어둡게 해주는지 그 방에서 나는 죽은 듯 안식을 취했다.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고 쏟아지는 잠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더럽고 좁은 방이 어찌나 포근했던지 잠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몸속을
파고드는 물체에 나는 자지러졌다. 내 입에서 터져나가는 비명은 소리가 되기도 전에 내 입을 막은 다른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구멍이 쏟아내는 지독한 냄새와 괴상한 소음이 좁은 방안에 나뒹굴었다. 나는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나를 조여 대는 물체의 힘이 막강했으니까 말이지. 어찌어찌하여 찾아 들어온 곳에서 몇날 며칠을 굶어버린 마약들의 반란이 나의 심신을 식물인간처럼 만들어 버렸나. 그러나 내 눈은 살아있어 내 눈 속에 붉은 줄이 너울거렸다. 나는
사력을 다해 욕정을 채웠는지 배시시 웃으며 알몸을 반쯤 일으키는 여자를 밀쳐냈다. 여자는
집주인이었다. 그녀는 마녀처럼 내 배위에 앉아 나를 농락했고 나는 눈물인지 콧물인지 굶주린 마약의 행패가
쏟아내는 배설물인지 내 얼굴에 흐르는 액체를 훌쩍거렸다. 내 방을 나간 여자가 금방 다시 돌아왔다. 아!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서 가늘게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 나는 누운
체 그녀가 내민 말아진 푸른 잎을 연거푸 피워댔다. 나는 살아났다. 살아나자마자
나는 벌떡 일어나 여자를 두들겨 팼다. 여자는 죽는다고 소리 질러 댔지만 가난한 집들이 모여 있는 변두리
동네는 까딱없었다. 내가 말했다. 함부로 하는 짓은 그런
보상이 뒤따른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두들겨 맞은 곳이 아프지도 않는지 그녀는 또 배시시 웃었다. 자신이 맞아준 것은 오랫동안 해소하지 못한 자신의 성적욕망을 나에게서도 그 누구에게서도 방해받지 않고 원 없이
풀어버린 것 때문이고 더 큰 이유는 어떤 여인이 베푼 물질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묻지 않았지만 그녀는
내게 얻어맞은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처음 있는 일이라고 세상 참 살기 좋다고 조잘거렸다. 안 그래도 식료품이
떨어져 배를 곯고 있던 중이었다며 염치없는 얼굴로 너스레를 떨었다. 어떤 여인이 나의 다음 달치 집세와
자질구레한 일상용품을 놓고 갔는데 얼굴에 핏기하나 없어 보이고 시련이 가득해 보이고 별말도 하지 않고 잠들어있는지 죽어있는지 꼼짝하지 않는 나를
지긋이 내려다보던 여자가, 대체 누구냐고 내게 물었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가 누구이던 간에 당분간 나도 한숨 돌리고 거리에 나가 직장을 찾아 돌아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말이지. 나는
꽤 열심히 직장을 얻기 위해 돌아다녔다. 나는 꽤 열심히 마약과 멀어 지려고(우선 돈이 없어서 말이지.) 버둥댔다. 사실 말이지 나는 태어나서 마약의 유혹에 내 자신 첨벙첨벙 기어들어가기 전까지는 만사에 순응하는 온순한 성격이었다. 주위에서도 인정한 사실이다.
‘십년밖에 살아보지 않은 아무리 곧 중학생이 될 거라고 해도 아직 꼬맹이에 불과한데 어떻게 위험천만한 마약에 빠져들 수 있느냐고?’ 그럼! 빠져들 수 있고말고. 내가
바로 장본인이니까. ‘기가 막힌다. 기가 막혀.’ 라며 기막혀 해도 사실이 진실이고 진실은 내가 아무리 꼬맹이였더라도 비빔밥처럼 비벼먹을 수 있으니까. 진실; 아무리 따지고 파헤쳐보아도 열 살 먹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편견과 간섭을 벗어날 수 없잖아...... 어쨌든 나는 삼천육백오십일을 살고난 후부터 아무도 동정해주지
않는 어린 날의 트라우마 때문에 어두운 골목으로 직접 걸어 들어갔다. 어두운 골목은 진실이 마구 뒤섞여
진실과 거짓 거짓과 사실 사실과 현실, 비벼먹기 딱 좋은 곳이었다. 아버지의
잔소리가 아무리 무서워도 그 잔소리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한 흔적은 얼마든지 있다. 어머니의 인생에 끼어들어
보려고 안간 힘을 쓴 흔적도 얼마든지 있다. 흔적을 찾아 더듬어가니 미끼를 문 입 큰 베스가 파닥거리며
호수를 박차고 뛰어올랐다. 다섯 살이었던 내가 낚아 올린 물고기였다.
아버지가 일사분란하게 뜰채로 물고기를 담아 올렸고 어머니가 함박 미소를 띠고 나를 대견해했다. 그런
날은 얼마든지 또 있다. 그런데 삭아버린 생각의 기능 때문에 얼마든지 있었던 기억들이 삭아져버렸는지
남아돌아가는 공장의 허드렛일도 구하지 못하고 길가 벤치에 앉아 있는 나는 마냥 입 큰 베스만을 낚아 올리던 그 기억 속에서 다른 기억을 떠올리지
못했다. 하여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간 나는 손바닥 만 한 안 넓은 마당에 한눈에 보아도 내 물건임에
틀림없는 자질구레한 것들이 널려져 있는걸 보고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러대며 문을 열려고 했지만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동네방네 다 들리도록 나는 계속 소동을 피웠다. ‘마녀야 문 열어
문 열지 않으면 너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야. 네가 한 더러운 행동들을 모두 까발리겠어.’ 그래도 현관문은 꿈적하지 않았다. 마녀와의 엊그제 그리고 또 삼일
전 그리고 또 사오일 전의 일은 생각도 나지 않지만 어제 밤 침대도 없는 작은 내 방 방바닥에서 염치없이 나를 탐하던 마녀 그리고 난후 내게 내미는
그녀의 손가락에 끼워 있는 마리화나는 그녀가 나를 농락할 수 있는 자격이었다. 사람들이
절대로 생각해 낼 수 없고 탐하고 싶지 않는 것 하나가 바로 이런 비열한 짓이었지만 마녀는
알고 있었다. 중독자를 다루는 비열한 행동을 말이지. 후에
안 일이지만 그녀는 중증의 섹스중독자였고(남편에게 이혼 당한 이유였다.)
마약중독자인 내가 지니고 있는 열악한 정신 상태는 나를 가지고 노는 그녀의 온갖 행위에 반기를 들 수 없었을 것이 보나마나 뻔했다.
열리지 않는 문을 등지고 땅바닥에 앉아 있는 나는 긍정적이고 해결책이 되는 뭔가를 생각해내야 했지만 그냥 공중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해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내가 조용해지자 현관문이
열리고 마녀의 딸 하나가 문안에 서서 말했다. 집 주인이 바뀌어서 마녀는 아침 일찍 떠나갔고 두 딸은
아버지가 자신들을 데리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거짓말 같은 사실이었다. 먼저 집안에 들이지 말고 어떠한 행패를 내가 부리더라도 절대 대꾸하지 말고 내가 스스로 조용해지면 집안에 마녀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라고 당부하며 자신의 어머니는 떠나갔다는 것이다. 나는 비애도 느끼지 못했다. 배반도 느끼지 못했다. 어처구니없게 나는 마녀의 애무를 의지하고
있었던 것이 뻔했다. 받았으면 주어야하는 진실 게임. 나는
그녀에게 내 몸을 주었고 그녀는 내게 아침식사를 점심식사를 어떤 때는 저녁식사와 함께 담배와 마리화나를, 여러
가지를 주었다. 나는 손해 볼 것 없었다. 내 육체는 삭거나
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정부의 보조금은 두 평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방값을 지불하고 나면 하루나
이틀이 가기도 전에 내 손에서 바닥나버리는 그야말로 인간이라면 비참의 절정인 최악의 생활비였다. 사람들은
용하게도 외모만 보고서도 중독자를 알아내는지 어쩌다 잡은 일자리도 하루 일하고 잘리고(나는 실수 하나
저지르지 않고 시키는 대로 했다.) 다음 하루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그렇게 하루살이인 내게 눈치도 빠르게
목마른 나의 중독에 처방약을 주던 마녀였다. 나는 주섬주섬 내 물건들을 챙겨 메고 몇 개월을 살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마녀의 집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찔러대며 하직했다. 간간히
어느 가련해 보이는(마녀의 느낌이라고 했다.) 여자가 와서
마녀에게 나를 위해 얼마간의 돈을 베풀고 가는 날이 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그녀와 마주 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궁금하지 않았다. 전혀 말이지. 내게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있을 턱없고 나를 보면 내 살갗까지 빼앗아 가려는 족속들뿐이었고 경계의 눈을 게을리 하면 내 호주머니 속에 남아있는 피우다 아껴둔 반쪽의
마리화나까지 빼앗아 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딱 나 같은 중독자들뿐이었으니까 간간히 나를 찾는 사람이 누구라는 것쯤은 알았지만, 마녀의 집에 있을 동안 그녀가 나를 피했는지 내가 그녀를 피했는지.....?
언젠가
어머니가 나를 향해 던진 말 ‘창피하다 너 때문에.’ 그
말은 어째서인지 내 가슴속에 그만 새겨져 버렸다.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고 새겨져버린 그 말은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 때 나의 심신은 심각하다 못해 아주 찌들어버려 세상을 향해 맹렬한 증오심을 뿜어내던 시기였다. 산드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증오심; 벼락이나 맞아라, 산드라를 죽음으로
몰고 간 처방약을 만든 의사여..... 마녀의 횡포에 대한 증오심; 너도
벼락이나 맞아라, 하필 어쩌다 그런 더럽고 초라한 병에(섹스중독이라고
말했나, 내가.) 걸려 나를 농락했으니까...... 간간히 나를 찾는 어머니에 대한 증오심; 왜 나를 창피해
하는지 왜 나를 보살펴 주지 않는지 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어머니가 말이지...... 내게 베풀었던 눈먼 사랑을 가차 없이 거두어 가버린 아버지를 향한 끝없는 증오심; 모든 게 아버지 때문이야...... 겨우 연명해가는 보잘 것 없는
나의 일상에 대한 증오심; 담배꽁초까지 배곯고 있었을 때니까 내 눈에서 오만가지 증오가 이글거리며 넘쳐흘렀다. 그래도 세상을 흠집 내기는커녕 나는 증오심이 맹렬하게 불타오르던 그때에도 갱생해 보겠다고 나의 신용을 조금이라도
되찾아 보겠다고 감언이설로 어머니를 설득하니 ‘그래 한 번 더 너에게 기회를 주마.’ 하던 어머니를 모시고 찾아간 은행에서 새로 어카운트를 열어 신용점수를 높여보려던 나의 의지가 보기 좋게 딱지를(이 은행 저 은행에서 조금씩 빌려 쓴 돈을 갚지 않아 요주의 인물로 찍혀 은행들이 공유하는 정보시스템에 이미
올려 진 상태였다나 뭐래나, 그런 뜻이었다.) 맞아 상할
데로 상한 기분을 참지 못하고 은행원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의자를 걷어 차버렸고 은행안의 모든 시선들이 우리에게 쏟아졌고..... 뭐 그랬었다. 그러나 나는 창피하기는커녕 왜 창피해 감히
나를 딱지 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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