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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역한 벗과 추석연휴 끝날, 도봉산에 올랐다고? 하산하는 길에 걸려온 전화가 반가워 추어탕집으로 불렀다. 내가 술을 못마시니 심심했을 터, 주섬주섬 자네가 뱉어내는 말 몇 마디에 진심이 있었다(취중진담, 언중유골). 자네는 늘 산을 오르는 게 시심(詩心)을 닦는 게 아니고 마음을 비우기 위해 오른다고 말했다. 막걸이든 뭐든 술을 같이 권커니잣커니할 사람이 없으면 지독하게 외롭다고도 했다. 사람이 사람노릇하기도 힘들다고도 했다(그래, 그게 가장 힘든 일이더라). 친구가 죽었는데 어찌 안내려봐야 하냐며 잠깐동안에도 전화질에 바빴다. 자네 친구들은 왜 그렇게 많이 죽냐냐는 말에 물끄러미 쳐다보며 ‘내가 오래 살 모양이지’하며 씨익 웃었다. 그랬다. 자네는 우리 친구들 사이에 거의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어느 방송국 프로그램 ‘세상이 그런 일이’ 이름처럼. 무슨 일을 하느냐면 출판사 대표이자 시인으로서 시전문지를 수년째 만들고 있는, 예술인이라고 하겠다.
제가 나온 고등학교를 끔찍이도 사랑하여 앞장서 모임을 만들어 솔선수범하고, 선배에게는 공손히 따르며 후배들에게는 엄격히 ‘가르치곤’ 하였지. 빗대어 말하자면, 출신고교를 조상 ‘신주(神主)단지’ 모시듯 하여, 벗들에게 ‘존경의 염(念)’까지 갖게 만들기도 하였지. 희한하여라. 놀라워라. 그 정열과 열성을 생업(生業)에 쏟아부으면 안될 일도 될 것같은데, 그런 것같지 않으니. 비아냥거릴 생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님을 자네가 더 잘 아실 터. 별호를 아예 ‘노상술’(everyday alchol)이라고 하면 어떻겠냐고 하면 사람좋게 빙그레 웃고 마는 자네. 그저 친구들 말이라면 ‘글여 글여 글여-’를 입에 달고 다는 자네는 천상 천상병시인을 닮았는가(그분은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고 3번 연속 말하는 독특한 화법을 평생 구사했다지). 돈 없고 빽없어도 천하태평인 자네를 누가 미워하겠는가. 친구로서 가끔씩 염려하는 것은 그대의 가정경제를 ‘책임진’ 듯한 형수의 마음씀씀이와 속앓이를 말하는 것일 뿐.
생각해보면 자네와의 인연이 어디 수삼년이던가. 73년 까까머리 1학년때 같은 반이었다. 졸업 후 대기업 홍보팀원으로 광화문에 나를 찾은 게 벌써 20년이 웃도는구나. 그이후 간헐적으로 만나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시전문지를 내는데 세상이 팍팍해 속울음을 우는 시인이라는 것도 알았다. 작은 체구에도 육체미를 했는지 어땠는지 떠억 벌어진 가슴, 산에서는 다람쥐라는 것, 막걸리를 웬간히 좋아한다는 것(장소를 불문하고 그 타령에 내가 타박도 여러 차례 주곤 했지), 주머니가 가벼워 이제껏 개인시집 한 권 보낸 불우한 작가라는 것, 마음놓고 친구들에게 한번 쏘아보지 못했다는 것, 항상 잘 어울리는 친구와 술만 먹으면 뒤끝없이 투닥투닥한다는 것, 고교선배들을 하느님처럼 모신다는 것, 술만 마시면 친구들이 최고이자 보배라며 울먹울먹한다는 것도 알았지.
언젠가 내가 백수때 가양동 사무실같지 않은 사무실에 자네를 찾았다. 대뜸 문을 닫고 간 곳이 들판 가운데 비닐하우스 오리집이었다. 얼마나 양이 푸지던지, 대낮부터 소주를 비웠지. 그때 내가 지어준 별명이 ‘21세기 이상’이었다. ‘오감도’를 지은 식민시절 가장 난해했던 시인 이상(李箱) 말이다. 김해경이 본명인 이상이 현대를 살았다면 어쩔 수 없이 자네였을 것이다. 하지만, 돈이 있든없든 대한민국은 술에는 관대하다. 안면이 두텁든 초면이든 ‘어이, 한 잔 하세’ ‘담배 한 대만 빌려달라’ ‘좋아요. 여기 있어요’, 아, 술과 담배에 관해선 별스럽게 너그러운 대한민국은 참 희한한 공화국이 아닌가. 거기에 우리가 살고 있네. 그러기에 자네가 어렵게 살면서도 숨쉴 구멍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 이제 술 좀 줄여야 살 것같다. 1주일에 두어 번 피똥(혈변)싸는 게 어디 아무 것도 아니라더냐. 느닷없이 급성당뇨로 입원하는 친구를 보고 무섭다고 했지. 결과가 두려워 대장검사도 받지 않겠다고 떼를 쓰는 자네여, 두렵기는 나도 마찬가지네. 하지만, 알 것은 알고 대처하는 게 현명하지 않은가. 내과의사 친구의 조언을 왜 한목에 깔아뭉개는가. 그게 자네의 미덕인가. 천만에, 엄청난 만용이네. 이제는 5학년 2반, 쉰 고개를 넘어 5학년 2학기로 접어드는데, 내일모레 금세 6학년에 진학하는데, 옆에서 뻥뻥 떨어지는 친구들의 부음소식에 간이 콩알만해지지 않던가. 보라. 자네와 내가 아는 친구들만도 3년새 몇 명이던가. 다섯 손가락이 되지 않던가. 신병은 어쩔 수 없다해도 어느 친구는 제 손으로 목숨을 버리기도 하였다.
그러니 벗이여, 우리 이제 자제(自制)하자. 세상은 명철한 두뇌로만 사는 것은 아니지만, 뜨근뜨근한 가슴으로만 사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지 않은가. 의미없는 감정낭비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할 일일세. 아, 물론 비가 온다고, 눈이 온다고 한 잔 하겠지만, 한 잔 두 잔 하다보면 열 잔이 되고, 처음엔 사람이 술을 먹다가 술이 술을 먹고, 나중에는 술이 사람을 먹어치우는 ‘무서운 현실’이 자주 눈앞에 전개되지 않은가. 그래서 이제 ‘오버’라는 것은 하면 안된다는 말이네. 자네가 그렇다는 말이 아니고 일반적인 말이고, 나에게 스스로 주는 경종(警鐘)의 의미로 하는 말이네. 5일동안 술 한 잔 안마시고 고향에 가 효도와 성묘도 못하고 무릎통증을 핑계로 뒹글뒹글 구르다 오늘 출근할 생각을 하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니 오해는 마시게.
이 편지 퍼레이드를 시작하면서, 언제 자네에게 편지를 쓸까 했는데, 어제저녁 짧은 술자리를 기회로 찬스라고 오늘 이 신새벽, 드디어 쓰게 되어 감개무량하네. 어쨌거나 자네의 건강을 비네. 28일엔 수락산이나 같이 오르세. 내려와서 딱 냉막걸리 한 주전자만 마시세. 2차는 없네.
우천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