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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간 흔적 송원근
아버지는 새해를 넘기자마자 119 구급차에 실려 인근 대학병원응급실로 이송 됐다. 갑작스런 추위에 쓰러진 것이다. 담당 의사는 암 투병 10년, 90세, 당뇨에 저혈압, 급성 폐렴에 쇼크, 이런저런 사유를 대며 최악을 준비하라고 냉정하게 말했다. 나 스스로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 그러니까 아버지가 다시 일어선다고 믿기 위해서 지푸라기일지라도 쥐고 싶었다. 한 달 전 아버지가 꾼 꿈, 엄밀히 얘기하면 꿈과 현실이 뒤섞인 그날 밤을 떠올렸다.
날이 추워지기 시작하는 12월 초였다. 새벽 1시였을까? 곤이 자는데 갑자기 벼락 치는 듯 고함이 들렸다.
”악 --- !!!!!“, 길고도 짧은 외마디였다.
아파트가 흔들릴 정도의 (나는 그렇게 느꼈다.) 큰 외침이었다.
”이 밤중에 교양 없이---.“
나는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아버지에게 한마디 하려고 거실로 나갔다. 샹드리에 등은 켜있고, TV 심야 토론은 갑론을박 떠들고 있었다. 언뜻 아무도 보이지 않아 내가 꿈에서 들은 소리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어머니도 ”무슨 소리냐?“며 나온 것을 보면 그렇지는 아니했다. 아버지는 소파의 모서리에 두 손을 모으고 움츠린 채 앉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입술만 움직이며 잠꼬대를 했다. 귀 기울여 들어보니 욕설을 내뱉으며 거칠게 싸우고 있었다. 도대체 상대가 누구일까?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흉측한 놈들임에 분명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격렬하게 욕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어디론가 질질 끌려가는 것 같았다.
”이 놈들아, 나쁜 새끼들아,“ 욕설을 내뱉으며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버티었다.
”내 아들을 불러와, 불러오란 말이야“ 혼자로는 감당이 안 되는 급박한 위기에 처한 모양이다. 나를 찾았다.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를 흔들어 깨웠다.
”누구와 그렇게 싸웠어요? 심한 욕을 하던데요.“
아버지는 내 질문에 아랑곳하지 않고 퀭하고 멍한 눈으로 앞만 보고 앉아 계셨다.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양 볼이 푹 들어간 바짝 마른 얼굴은 데드마스크 같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끝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아니했다. ‘이상하다’보다는 ‘해괴하다’란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그 일은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다가 아버지 병세가 심상치 않자 떠오른 것이다.
”때가 되었으니 더 고생시키지 말고 편히 보내드리는 게 어떻겠어요?“ 의사가 재차 물었다. 마치 꽃이 때가 되었으니 비바람에 지는 순리를 따르자는 말로 들렸다.
”수술을 포함하여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해주세요.“ 아버지의 생에 대한 애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부탁했다. 아버지는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어떤 상황이냐고 물었다. 의사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다. 희망을 잃지 않도록 그 해괴한 꿈을 상기시켰다.
”얼마 전 꿈 기억해요? 아버지는 나을 수 있어요. 어떤 놈들인지 몰라도 아버지를 데리고 가려 했으나 내가 나섰기 때문에 결국 실패했어요. “
나는 그날 아버지가 본 나쁜 놈이 죽음의 사자라고 생각했다. 그럴만한 기억이 있다. 십오여 년 전, 밤늦게 납량 특집이 TV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검은 두루마기에 검은 삿갓을 쓴 저승사자가 날카로운 눈매를 번득이며 등장했을 때 아버지는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채널을 급히 돌렸다. 두려움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렇게 아버지는 죽음의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 당신이 5월 말에 대학 입학식을 치르고 한 달 후 전쟁이 발발했으니 청년기 때 목격한 차마 보지 못할 주검들 때문일 것으로 추측했다.
아버지는 면회 때마다 ”배가 고픈데, 이 친구들은 밥 줄 생각을 안 하네.“ 하소연 했다. 음식은 기도로 갈수 있어 코에 넣은 호스를 통해 들어갔다. 호스가 성가셔서 여러 번 떼어낸 모양이다. 간호사는 어쩔 수 없다며 아버지 양 손을 침대에 묶었다. 코로나로 인해 10분간의 짧은 면회, 그 짧은 시간이나마 풀어주고 주물러주곤 하였다. 말라 타들어가는 입술로 가냘프게 ‘봄은 언제 오냐?”며 ’딸기를 먹고 싶다.‘고 하였다. 그 딸기 안에는 벚꽃이 피고, 날리던 농원에서의 추억이 들어있었다. ”곧 일어나셔서 농장에 가서 마음껏 드세요. 곧 매화도 벚꽃도 필거예요.“ 그때가 2월 중순이니 봄은 멀지 않았다.
봄날, 날이 풀리면 아버지는 매화,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감상하기 위하여 농원에 가셨고 딸기를 옆에 끼고 드셨다. 농원이 있는 논산 양촌은 딸기의 주산지였다. 특히 벚꽃이 만발하는 기간에는 종일 농원에서 보냈다. 농원 한구석에 쉼터로 마련한 정원에서 잡초를 뽑았다. 당뇨로 인해 졸릴 때마다, 눕고 싶을 때마다 치료하는 심정으로 애써 호미를 잡았다. 내가 밭에서 삽질을 하다가 정원에 잠깐씩 들릴 때가 아버지의 휴식시간이었다. 벚꽃나무 길을 바라보며 감회에 젖곤 하였다. 가로수로 심은 왕벚꽃나무. 20여 년 전 농장을 구입하자마자 아버지는 입구에서 정원까지 꽤 긴 길을 따라 쇠꼬챙이 같은 벚나무 묘목을 심었다. 벚나무를 심기 위하여 농장을 구입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로 서둘렀다. 나는 나무 사이 간격이 너무 넓지 않느냐고 걱정했지만 나무 스스로 보여주었다. 속성수인 만큼 쑥쑥 자라며 내 우려가 무색해졌다. 4월이면 벚꽃 길은 굵고 두꺼운 타원형 벚꽃나무 무리를 테두리로 하여 밝고 하얀 원색의 색채로 가득 채운 파스텔 그림이 되었다.
해가 어둑어둑 하면 아버지는 허리를 피면서, ”이제 정신이 맑아지는구나.“ 하셨다. 목장갑을, 호미를 통 안에 넣으면서 ”내 일당은 누가 주냐?“ 미소 지으며 묻곤 했다. “노국이죠. 주인이 당연히 내야지요.” 노국이는 내 아들이고 당신의 큰손자였다.
“며칠 전 전화로 노국이에게 달라고 하니 저도 주인이 아니라고 하던데... 앞으로 태어날 제 아들에게 받아서 준다고 하면서.., 다들 핑계를 대며 피하고 있어.“ 농을 하셨다.
벚꽃이 질 때는 필 때와 달리 아버지는 침잠했다. 아버지는 터널 같은 벚꽃 가로수 길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은 벚꽃 길 너머, 산 계곡너머 어딘가에 닿아 있었다. 꽃은 마치 삶의 무게가 무거워 자신을 떨어뜨려 홀가분해지려는 듯이 날리고 있었다. 시간에 대한 두려움과 조바심이 있기에 낙하하는 벚꽃은 조금은 낭만, 더러는 허무였다. 덧없는 삶이기에 오늘이 더 아름답다는 아이러니. 날리는 벚꽃은 산만했고 현기증을 느낄 만큼 어지러웠다. 아버지 눈길은 벚꽃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입학식의 날로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듯 보였다. 국민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받아 본 첫 국어교과서 표지는 만개한 벚나무 무리였다고 하였다. 학교 가는 길을 그린 그림이었다. 또한 아버지 고향의 국민학교 교정도 온통 벚나무였다. 벚나무 길은 산골 어린애가 읍내로 나와 처음 보고 느낀 로망이며 파라다이스였다. 나중에 크면 아름다운 벚꽃 동네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하셨으리라. 어린 시절로 돌아가 자신과 인사라도 나누고 싶어 하는 듯 했다. 벚꽃의 교과서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어린아이는 다시 쪼글쪼글한 할아버지로 변했다. 어린 시절 꿈꾸던 벚꽃 길을 실제 이루었다는 만족감보다는 인생이 속절없다고 느끼는 것 같았다.
“네 나이 때에는 가을바람이 불고 국화꽃이 피어야 한해가 가는구나, 한 살 나이를 먹는구나, 그랬는데 지금은 벚꽃이 질 때 그런 생각이 드는구나. 어제 같은데..., 어제 같은데 그런데 시간이 그렇게 흘렀어. 총알 같아”
아버지는 90살이라는 나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언제 그런 많은 시간이 지나갔을까? 국민학교 이후 수십 년이 지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표정을 지었다. 끊임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 밑으로 그 숱한 시간이 깔려 들어갔다는 두려움으로 아버지는 초조한 기색이었다.
아버지는 평소 죽음을 입에 올리기 싫어했다. 산소 자리를 보자고 해도 그건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며 단칼에 거절했다. 윤달에 준비하는 거라며 어머니가 모시 수의를 준비하자고 해도 언잖아했다.
”암을 완치하는 그런 약은 없을까?“
벚꽃을 보면서 나에게 그렇게 물은 적도 있었다. 아버지는 솔직했다. 나이 들수록, 죽음에 직면할수록 삶에 대한 애착은 강렬해진다고 고백하였다.
”노년에 죽음의 길을 걸어간 순교자나 애국자가 드물다는 것은 생명의 아이러니 아니겠느냐?“ 반문하였다.
아버지가 그렇게 먼저 운을 띰으로써 나는 아버지가 싫어하는 화제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몇몇 목련꽃잎은 하얀색이 검게 퇴색한 채 혀를 내밀듯이 늘어뜨린 채 나무에 붙어 있었고, 이에 반하여 벚꽃 잎은 일주일간의 만개에 만족한 듯이 계속하여 땅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벚꽃은 그렇게 죽음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시현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다큐에서 본, 하얀 눈밭을 떼 지어 돌격하는 중공군처럼 뒤로 넘어져 죽거나 앞으로 고꾸라지거나, 옆으로 나자빠지면서 각양으로 죽어갔다. 삼천궁녀가 낙화암 절벽에 자기 몸을 날려 죽음의 무게를 홀가분하게 하듯이 꽃잎들은 연이어 아버지 어깨에, 머리카락에 살포시 앉았다. 줄줄이 내려앉은 잎들로 인해 아버지는 벚꽃나무가 된 듯 했다. 머리카락에 잠시 안착한 어느 꽃잎은 간당간당 흔들리다가 다시 바람에 땅으로 내몰렸다. 땅에 떨어진 벚꽃들은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마치 죽음의 춤을 추듯이 율동에 맞추어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우리가 만 살, 천 살을 살아도 마지막은 반드시 올 것이고 그때 서럽지 않겠어요?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 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아니겠어요? 벚꽃이 365일 피면 누가 벚꽃이 귀하다고 하겠어요? 벚꽃이 짧게 피다 지기에 아름다운 게 아니겠어요?“
의문부호를 단 숱한 질문을 아무런 말도 않는 아버지에게 띄엄띄엄 연이어 던졌다. 아버지의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독거리려 한 말이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섭섭하셨을지 모르겠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자라는 잡념이라는 잡초를 제거하려는 듯이 아버지는 끝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아니하고 호미를 찾았다.
그런 말이 나도 모르게 술술 나온 까닭은 직장을 은퇴하고 대학에서 교양 독서토론을 3년간 진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리스 신화 시간이었다. 신들과 인간을 비교하기 위하여 죽을 운명(mortal)과 영생의 운명(immortal)을 설명해야했다. 죽음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며 우리 인간 모탈(mortal)의 특권이라는 사실 ,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가치 있다고 아킬레우스의 죽음을 사례로 들어 누누이 설명했었다. 대학에 갓 들어 온 학생들은 청춘이,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모를 것이다. 그들은 청춘을 보내고, 생명을 다 소비하고 나서야 비로소 시간의 본성이 원래 그런 것임을 그때야 알아채고는 한탄할 것이다. 농원에서 대전의 집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기 직전, 아버지가 물었다.
”내년 이맘 때 너랑 벚꽃을 보며 딸기를 먹을 수 있을까?“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이었다. 벚꽃은 어디론가 흩어져 사라짐으로써 끝이지만 사람은 오히려 그로인해 살아있음을 실감하나 보다. 그렇기에 오늘 저녁 대전에 가서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고 내년의 삶까지 담보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요.“
나의 자신감 넘친 대답은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좀 더 큰 대학병원으로 옮기는 앰뷸런스에서 아버지는 이상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모기소리로 나직이 물었다.
”이제 포기해야 될 때가 온 것은 아니냐?“
”힘을 내세요. 내가 그 나쁜 놈들로부터 아버지를 구해 냈쟎아요.“
다시 그 꿈을 상기시키며 삶의 의지를 부추겼다. 내가 보기에도 죽음은 아버지 초점 없는 눈 근처를 어른거리고 있었다.
옮긴 대학병원 응급실은 거칠게 끓어오르는 아버지의 가래를 밤늦게 까지 빼냈다. 호스를 목 깊숙이 넣고 빼내는 작업이었다. 아버지는 살기 위하여, 생명의 굳은 전사로서 마지막 힘을 모아 가쁜 숨을 내쉬며 참아내고 있었다. 호스를 들이댈 때마다 일그러진 표정에, 색 바랜 흐트러진 치아로 호스를 물면서 저항하는 모습은 보는 나에게도 고통이었다. 자정을 지나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는 것을 보고야 집에 돌아왔고, 자는 둥 마는 둥 새벽을 맞이했다. 그리고 비몽사몽 간에 임종을 보러 서둘러 오라는 의사의 다급한 전갈을 받았다.
임종 시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희미해지는 의식을 세우고 아버지의 귀에 예수를 전했다. 결코 죽지 않는다고 숱하게 거짓말을 해 온 내가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다급이 내놓은 해결책, 예수가 구원한다는, 믿음은 시간을 이기고 영생으로 이끈다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2월의 끝자락, 봄의 문턱에서 누구와 그 밤에 다투었는지 말씀하지 아니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죽음의 사자라고 추측했는데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린 것 같다. 시간은 죽음에 의해 이해되고 우리들의 피부에 닿는다. 죽음과 시간은 상부상조 하는 동업자인 것이다.
내가 아버지를 깨움으로써 아버지가 죽음에서 벗어난다는 시나리오는 허망한 기대였다. 그렇다고 그날 밤 아버지의 꿈은 아무런 의미 없는 개꿈이고 단말마의 외침은 그저 소음이었을까?
시간은 미소를 띤 채 다가와서 끝내는 살인자의 본색, 그러니까 아버지의 마른 육신의 삶을 비수처럼 날카롭고 긴 손톱으로 할퀴려 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생의 마지막 순간, 지옥문 앞에서 나를 찾았고 마침내 나를 통해 시간이 휘두르는 죽음의 손을 뿌리치고 예수가 내미는 영생의 손을 잡은 것이다. 해괴한 꿈은 그렇게 신비로운 꿈이 되었다. 내 나름의 해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확신으로 바뀌어 내 스스로를 위로 한다.
시간은 지나간 흔적으로만 알 수 있는 정체불명의 존재인가 보다. 목을 조르려 다가온 어느 연쇄 살인마의 손은 생각과 달리 여자 손처럼 보드라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바람일지도 모른다. 보드랍게 감싸기도 하고 때로는 할퀴고 지나가는 그런 것, 지나간 후에야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 그래서 시간에 관한 한 우리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될 수밖에 없나보다. 부엉이가 보는 것은 실제가 아니라 자취이다.
작년 벚꽃이 떨어지는 자리에 아버지는 없었다. 단지 흔적 뿐이었다. 감청색의 장화, 둥근 모양의 빨간 플라스틱 의자, 검게 퇴색하여 형태만 겨우 내보인 목 장갑, 녹 슬은 호미만이 바케쓰 통속에 다소곳이 들어앉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 벚꽃은 눈처럼 쌓였다. 농장 벚나무 길에는 새들만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며 지저귀며 소리를 내어 오히려 더 쓸쓸하고 적막했다.
우두커니 서서 한참이나 통을 들여다보면 아버지는 그 통을 들고 걸어가 정원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는 언제나 처럼 나에게 등을 보인 채 풀을 뽑는다. 눈에 익은 모습이기에 조용히 ‘아버지’,라고 불러본다.
바람이 연이어 지나가면서 마르고 구부정한 아버지 등에 벚꽃이 마구 날린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를 보고, 시간을 본다. 아니 바람이 그러하듯이 시간이 지나간 흔적을 본다. (끝)
첫댓글 선친의 소천을 통해 떠오르는 기억들과 벚꽃에 담긴 시간에 대한 사유가 담긴 작품,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