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남은 무더위 속에
구월이 시작되어 중순에 접어들었는데도 무더위 기세가 만만치 않다. 간간이 소나기가 내리긴 해도 달구어진 대지의 복사 열기를 식혀주기엔 미흡하다. “저만치 가을이 온 창원천 냇바닥에 / 이삭 팬 수크렁이 운치를 더하지만 / 더위가 가시지 않아 시계추가 멈췄다 // 엊그제 백로여도 한낮은 뜨거운데 / 선홍색 털여뀌꽃 화려한 수술 달고 / 여름을 인질로 삼고 시들 줄을 몰라라”
앞 단락 인용절은 구월 둘째 화요일 저녁 남긴 ‘창원천 털여뀌꽃’이다. 어제 화포천 습지를 찾으려는 걸음에 창원중앙역 열차 교통을 이용하려고 창원천 상류를 지나면서 본 꽃이다. 한여름에 피는 꽃이 더위가 지속되니 가을이 온 줄도 모르고 화사한 꽃을 피웠더랬다. 화포 습지 물웅덩이에는 늦은 봄부터 여름에 피는 노랑어리연도 더위에 볼모로 잡혀 노란 꽃을 동동 띄워 피웠다.
구월 둘째 수요일 아침이다. 해가 점점 짧아져 5시가 되어도 밝아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평소와 같이 불모산동을 첫차로 출발해 월영동으로 가는 102번 버스를 탔다. 원이대로로 나가 소답동에 내려 마산을 거쳐온 41번 버스를 탔다. 주남저수지를 비켜 대산 들녘 본포 강가로 가는 버스로 1번 마을버스와 일부는 노선이 겹치기도 했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용강고개를 넘었다.
예년 같으면 이맘때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주남저수지와 낙동강이 가까운 동읍과 대산 들녘으로 아침 안개가 짙게 끼기 일쑤였다. 그런데 올해는 초가을이 되었음에도 한여름과 같은 무더위로 일교차가 그리 크게 날 일이 없어 아침에 안개가 낀 날은 볼 수 없는 여건이다.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를 거쳐 화목과 동전을 지나면서 몇 되던 승객이 모두 내려 혼자 남았다.
주남저수지는 벼농사 들녘으로 농업용수를 내보낸 관계로 수위가 낮아져 연을 비롯한 수초가 자란 바닥이 드러났다. 여름 초기 장마 이후 비다운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아 저수량이 많이 줄어듦이 확연했다. 아마도 다른 저수지나 댐에서도 저수량이 줄어 많은 수증기를 머금은 태풍이라도 와 비를 뿌려주지 않고는 가을 이후 내년 봄까지 물 부족을 심각하게 겪게 될 날이 오지 싶다.
봉강에서 산남을 거쳐 대산 일반산업단지로 드니 1번 마을버스가 다니는 노선과 겹쳤다. 가술 국도에서 모산을 거쳐 제1 수산교를 지난 강가 초등학교 근처에서 내렸다. 마을 이름이 ‘일동’인데, 그 지명 유래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메밀국수 맛집 앞에서 들길로 드니 대규모 육묘농장이 나왔다. 들녘에는 벼농사 말고 사계절 비닐하우스에서 특용작물을 가꿔 모종도 사철 키웠다.
농수로 가장자리에 심어둔 가을배추는 가뭄을 타서 이른 아침 물을 퍼 올려 준 흔적이 보였다. 무나 배추는 서늘한 기후에서 수분 공급이 충분할 때 생육이 잘 되는데 무더운 날씨를 견디느라 고생했다. 들녘 한복판 구산마을로 가는 농로 주변 비닐하우스에는 세력 좋게 자란 풋고추와 아직 어린 모종도 보였다. 풋고추는 가을 이후 겨울에서 봄까지 계속 수확이 되는 작물이다.
구산마을을 지난 들녘 대규모 비닐하우스 다다기오이 농장에는 싱그러운 잎줄기에 꽃을 피운 오이가 열리기 시작했다. 중년인 농장주 내외는 신농씨처럼 농사를 잘 지었다. 추석 쇠고 본격적으로 따면 선별과 포장에도 인력이 필요할 듯했다. 모산리 가까운 머스크멜론 농장을 지날 때 과일을 따 선별 포장하는 농장주 아내가 나를 불러 세워 멜론을 가져가십사고 했는데 황송했다.
산더미처럼 쌓아둔 멜론 곁에는 포장 선별에서 제외된 멜론도 다수였다. 미숙과가 아닌데도 무슨 흠결이 있었나 본데 내가 보기는 아무 탈이 없었다. 과일 수집 상자에 가득해도 배낭에 하나 넣고 양손은 봉지에 두 개씩 채워 드니 모두 다섯 개를 챙길 수 있었다. 성근 빗방울이 듣는 속에 마을버스로 가술 국도변 편의점으로 가 멜론을 맡기고 아침나절은 도서관 열람실에 머물렀다. 2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