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공주들이 커가는 만큼 우리 부부에게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아직은 젊다고 생각하지만 사소한 것부터 변화가 일어났고, 어느 듯 흰머리가 많아졌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아내와 내가 서로 번갈아 가며 서로의 새치를 뽑았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더 흐르며 이제는 더 이상 뽑을 수가 없었다. 적당히 뽑으면 모르지만 좀 많이 뽑으니 머리가 얼얼했다. 그래서 아내는 염색을 했고 난 흰머리가 난 그대로 생활을 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나의 흰머리를 보고 나이에 비해 보기가 좀 어색하다며 염색을 하라는 재촉 아닌 재촉도 했다. 하지만 좀 어색하더라도 흰머리가 주는 그 나름의 장점도 있었다. 업무상 대하는 사람들이 반말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막 대하는 것은 확실히 덜 했다. 우리 사회에서 나이가 주는 이점을 나름대로 누리고 있었다. 이건 염색을 하지 않은 나만의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계속 이렇게 지내기는 곤란했다. 아직 노안도 오지 않은 나이에 흰머리가 좀 많으니 우리 공주들도 염색을 좀 해라는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물론 나도 언젠가는 당연히 해야 한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기가 좀 빠르냐 아니면 늦으냐의 차이 정도만 있을 뿐이었다. 또, 보기와 다르게 피부가 약해 사소한 것에도 피부병이 잘 생겼고, 이런 부분도 혼자 걱정이 되어서 망설이기는 했다.
그러다가 오늘 갑자기 염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별한 이유도 없고 그냥 하고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하는 염색인만큼 사용설명서를 꼼꼼히 읽고 준비도 철저히 하려고 했다. 나도 어디서 들은 것은 좀 있어서 귀 주변이나 이마 주변에 크림을 발라야 하는 것이 아닌지 아내에게 묻기도 하고, 염색을 할 주변에 신문지도 깔고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설명서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막상 하려니 약간 망설여 지기도 했다. 그리고 안경을 쓰는 내가 안경을 벗고 혼자 염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부탁을 할까?’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나를 도와줄 구세주가 나타났다.
“아빠~, 뭐해? 머리 염색해?” “응~ 염색하려고 하는데 왜?” “내가 아빠 염색해 줄까?”, “응, 대신 사용설명서를 열심히 읽고, 염색하는 방법을 배우고 나서 해주면 아빠는 고마운데~, 또 염색약이 옷이나 손에 묻으면 잘 안 지워지니 하는 동안에는 장난치거나 하면 안 되~”, “아빠 알았어~ 근데 사용설명서는 어디에 있어?”
이게 당시 민채와 내가 한 대화다. 민채는 평소에 호기심이 많아 우리 부부가 하는 많은 것들을 궁금해하고 따라 하려고 한다. 그리고 뭐든 직접 해 보려고도 한다. 어쩌면 민채의 이런 성격은 장점도 많고, 이런 민채가 난 좋다. 사실 민채가 내 첫 새치 염색을 해 준다고 했을 때 솔직히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민채의 손이나 옷, 내 얼굴 주변이나 입고 있는 옷, 그리고 바닥까지 어디든지 염색약이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고, 또 어디에 묻었는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발견을 하면 더 안 지워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혼자서 속으로 걱정을 하며 민채와 난 새치염색을 시작했다. 민채는 체험학습을 하듯 기뻐했고, 난 속으로 걱정이 좀 앞섰다. 서로 대화를 하며 머리에 염색약을 바르기 시작했고, 아내도 옆에서 걱정이 돼서 계속 지켜보며 우리를 거들고 있다. 그렇게 시작한 염색은 생각보다 무난하게 진행이 되었고, 시력이 나쁜 나는 그냥 잘 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이제 옆에서 아내가 민채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을 이쪽 저쪽으로 가르마를 타 듯 넘기며 꼼꼼히 발라야지~, 지금처럼 하면 부분적으로만 염색이 될 수도 있어~” “엄마~ 알았어~, 근대 염색약이 얼굴에 묻을까봐 손이 잘 안 움직여~” “얼마 전에 네 머리 염색할 때, 미용실 이모가 하는 것 봤지? 잘 생각해 봐~, 이모처럼 가르마를 촘촘하게 타서 이쪽 저쪽으로 넘기며 꼼꼼히 염색약을 발라야 골고루 염색이 잘 되~” “아~, 염색하기가 생각보다 어려워~” 아내와 민채는 이런저런 대화를 하며 내 머리 염색을 했다. 걱정을 하며 시작한 염색은 큰 사고 없이 무난하게 진행이 되었고 적당히 거품을 머리에 바르고 기다리고 있었다. 민채에게 염색을 하며 사용한 고무장갑(수술용 장갑처럼 보였음)이나 비닐 옷 등도 씻으라고 했다. 화장실로 갔던 민채는 이내 입고 있던 옷에 묻었다며 내게 이야기를 했고, 빨리 물에 넣고 부분세탁을 하라고 했다.
염색을 하고 15분 정도 기다린 후 난 머리를 서너번 감았다. 처음에 2번 정도 감고 행궈도 계속 염색약이 나와서 매우 당황했는데 아내가 며칠간은 행굼물에 염색약이 묻어 나온다고 내게 말했다. 3번 정도 샴푸를 하고 다시 안경을 쓰고 화장실 주변을 살펴보았다. 장갑과 빗 등을 씻는다고 염색약이 하얀 욕조 곳곳에 튀어 있었고, 난 주변을 락스로 좀 더 정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민채가 깨끗이 정리를 해서 놀랐고, 더 놀란 것은 민채가 염색을 제법 잘 했다는 것이다. 귀 뒷부분과 이마에 가까운 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염색이 잘 되었고, 아내도 놀라고 나도 좀 놀랐다. 속으로 생각했다. ‘민채가 미용에 재능이 있나? 이쪽으로 가르쳐야 할까?’. 그렇게 감탄을 하며 거울을 보니 염색을 한 내가 약간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이제 민채는 염색을 무사히 마치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내 반응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민채도 모두 처음 하는 일이고 누구든지 처음하는 일에는 결과가 궁금한 법이다. 난 칭찬으로 민채와의 대화를 시작했고, 염색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민채는 내게 말했다. “맞지, 내가 뭐든 잘하지~, 다음에도 또 해 줄 게~, 염색을 잘 했으니 용돈으로 500원 줘~” 난 웃으며 말했다. “천원 줄게~” 이런 내 대답에 민채는 “오 예~”라고 말하며 방으로 들어가서 책을 읽겠다고 말했다.
흔히 결혼식에서 하는 주례 중 대표적인 말이 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염색을 해서 다시 검은 머리로 바뀌었고, 앞으로도 수시로 해야 할 것 같다. 이제 한 동안은 다시 파뿌리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려면 아주 오랜시간을 아내와 애들과 같이 즐겁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첫댓글 염색이 생각보다 어렵다고 하던데 무사히 잘 하셨네요.^^
새치 염색이고, 요즘 나오는 염색약들은
많이 간편해 져서 그나마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