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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스데반 황
왕의 신하의 가정을 구원하심
요한복음 4:46-54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우리 주 예수께서는 사마리아의 수가성에서 이틀을 유하시며 사마리아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구원 받은 후에 예수님이 참으로 세상의 구주인 줄 알고 “주는 참으로 세상의 구주십니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놀라운 것은 사마리아인들이 구원 받은 것은 ‘말씀’으로 구원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부정하고 타락한 여인이었지만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게 되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네 사람들은 처음에는 사마리아 여자의 증언을 듣고 예수님을 믿었고 나중에는 예수님의 입에서 친히 나오는 ‘복음의 말씀’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이들은 어떤 초자연적인 표적을 본 후에 믿음을 가진 것이 아닙니다. 오직 말씀을 듣고 믿음을 가졌고, 말씀에서 나오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그러므로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절대 그 사람의 말을 진리로 믿거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시는 것이라고 믿지 않기 바랍니다. 그 이유는 말씀과 무관한 초자연적인 현상은 얼마든지 사탄도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마귀는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행하시는 창조 및 생명의 표적을 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인간들이 볼 때 얼마든지 신기한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마 24:23-25).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8-10).
그러므로 예수님은 표적을 보아야 믿으려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셨습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마 12:39).
바울 역시 유대인들이 믿음을 갖지 못한 이유는 표적을 구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전 1:22-24).
즉, 표적이니 기사를 보고 믿는 것으로는 구원 및 영생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히려 마귀에게 속기 안성맞춤입니다. 그러나 오직 성경에 근거하여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주와 교제한다면 여러 다른 초자연적인 역사가 없어도 사마리아인들처럼 예수님을 구주로 알게 되면서 죄사함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아무튼 수가성에서 이틀을 유하신 우리 주 예수께서는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이로 보건대, 예수께서 여리고성 근처의 사역지를 떠나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의 수가성을 지나신 것은 매우 의도적인 것으로서 결국 사마리아 여자를 포함한 수많은 사마리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원래 목적지로 삼았던 갈릴리로 가십니다. 이때 예수님은 갈릴리로 가시며 제자들에게 친히 증언하십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요 4:44).
이와 관련한 공관복음의 기사는 이러합니다.
[
53 예수께서 …
54 고향으로 돌아가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그들이 놀라 이르되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
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마 13:53-58).
그렇다면 문제는 자기를 배척할 것을 잘 아시는 예수께서 왜 또다시 갈릴리로 가려고 하시느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그 답은 요한복음 4장 1-3절에 나옵니다.
[
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요 4:1-3)
이 배경을 보면 지금 예수께서 갈릴리로 가시고자 하신 이유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인기가 많아지자 그를 공격의 표적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직 십자가 속량을 치르실 때가 되지 않았으므로 그들과의 공개적인 대립을 피하기 위해 인기를 끌지 않는 곳으로 피하신 것입니다. 그래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관심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그 후에야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는 복음 사역을 계속 진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따르면 그는 아직 여전히 이 땅에서 해야 할 사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및 유대 지도자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갈릴리로 가셨고, 그곳에서 자신을 존경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함으로 마지막 고난과 죽음의 때가 올 때까지 바리새인들의 관심을 받지 않고 계속 사역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인기는 없어도 복음 전파를 통해 여러 제자들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가 갈릴리로 가게 된 중요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시며 자신을 ‘선지자’라고 칭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선지자라고 칭한 첫 번째 사람은 사마리아 여자입니다. 그리고 지금 예수님도 자기 자신을 ‘선지자’라고 칭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참 선지자이십니다. 그는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는 선지자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구주로 믿는 믿음이 어떻게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이신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를 극진히 모시며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그들은 선지자이신 그리스도가 세상의 구주인 것을 주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된 후 예수님은 세상의 구주라고 믿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구원을 얻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님께 보여준 존경과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고향 사람인 갈릴리 사람들은 같은 유대인이면서도 예수님을 전혀 존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그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았고, 더욱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고향 사람들이 그를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서 메시야로 알아보지 못할 것을 아시고 만민 가운데 영생을 얻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인이면서도 구원을 얻지 못하는 갈릴리 사람들을 대조시킴으로 구원 얻는 길을 더욱 명료하게 보여주십니다.
즉,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여 구원 얻는 것이 아니라 외모를 초월하여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로 모실 때만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갈릴리의 유대인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표적을 보고 큰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복음의 본질을 말씀하시자 곧바로 노골적으로 불평하며 결국 예수님을 저버립니다.
[
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요 6:1-2, 32-33, 60, 66)
이처럼 그들은 예수님을 단지 표적과 기사를 행하는 자로 환영하고 영접한 것이지 주의 말씀을 받고 영접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이 땅에 속한 먹을 것과 명예와 권력과 인기 등을 제공하면 예수님을 환영하며 받아들일 것입니다. 특히 죽을 병을 낫게 해 준다면 당장 예수님께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애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주면 예수님을 칭송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존중하는 것과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인식하는 것, 그리고 죄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제사장으로 아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생각하며 살지 않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그리스도를 향한 인격적인 의식이 없습니다. 그들은 죄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며 예수님의 십자가 속량과 부활,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역할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거룩함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참된 복음을 전하지 못할뿐더러 단지 예수님에 대해 말한다면 “믿었더니 돈 벌었다, 병 나았다, 취업했다, 승진했다, 권력을 얻었다, 유명해졌다”라는 것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 거룩하여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죄로 인한 애통과 탄식이 없으며 그저 예수님께 원하는 것은 이 땅에 속한 자랑거리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예수님으로부터 더 이상 얻을 것이 없다고 생각될 때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처럼 다시는 예수님과 다니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죽음과 죄와 세상과 사탄으로부터 구원 받은 자들이 아니며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생을 소유한 자들이 아닙니다. 한 마디로 가룟 유다와 같은 가짜 신자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세상적인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그분을 하나님의 영원한 선지자요 주께서 보내어주신 선생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십니까? 참으로 예수님을 믿고 존경하기에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십니까? 그리하여 그분의 초청에 따라 주 예수님을 마음 속에 영접하고 그분을 믿고 의지하십니까?
이렇게 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만이 구원과 영생의 길인 것을 알려주시기 위해 우리 주님은 만민 가운데 가장 먼저 사마리아인들을 ‘말씀으로’ 구원하여 주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님의 성품과 말씀을 믿고 따름으로 그가 세상의 구주인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수님을 나사렛 예수로만 알며 멸시 천대한 갈릴리 사람들은 구원과 영생을 얻는 자리에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까? 지금까지 지은 죄와 그 결과를 어떻게 하실 것입니까? 아무도 내가 지은 죄를 모르니 별일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습니까? 그분은 영원한 절대적인 율법으로 모든 인간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혹시 나는 최후의 심판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죽은 후에 평안히 천국에 간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죄와 죽음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실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그분의 심판은 영원한 진리와 공의를 위해 반드시 있습니다.
예수님을 유일한 구세주로 믿고 그 이후 늘 성경과 기도와 예배를 가까이 하며 주의 음성에 순종하려고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을 공경할 때 그 사람은 참으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확증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죄사함을 받고 구원 얻어 영생을 소유한 천국 백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기 바랍니다. 자신이 지은 죄악들과 지금도 우리 마음속에서 역사하는 끈질긴 죄성을 인정하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죄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도움 없이는 오직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과 영생을 얻기 위해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이처럼 구원의 길을 자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갈릴리로 가신 예수님은 그곳에서 그를 영접하는 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한 이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신 초자연적인 기사들을 그들도 유월절 기간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모여들었지만 주의 말씀을 듣게 될 때 그들은 예수님을 멀리하고 심지어 죽이려는 자리로 가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한 믿음을 갖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얻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대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유가 표적과 기사를 본 것 때문이라면 그런 사람은 아직 죄사함 및 영생을 얻는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구원은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선지자와 대제사장, 그리고 왕이신 그리스도로 알고 동시에 그분은 다름 아닌 독생하신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에 근거한 바른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은혜 언약에 따라 구원과 영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갈릴리에 이르신 예수님은 가나로 가셨습니다. 그곳은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혼인 잔치가 축복 가운데 있게 하심으로 제자들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신 곳입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요 2:11).
그런데 가나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가버나움이라는 곳에 왕의 신하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침 예수께서 가나에 오신 때에 그의 아들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 신하는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 가나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당장 가버나움에서 가나까지 달려와 예수님을 찾아 뵈었습니다. 그리고 간절하게 주께 부탁합니다.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내 아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습니다”(참조, 요 4:47).
지금 왕의 신하가 그의 사환을 보내지 않고 직접 예수님을 찾아온 것은 예수님께 지극히 존경하는 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 “내려오셔서”라고 부탁합니다. 이는 그가 예수님이 죽음의 문턱에 있는 환자 앞에 있어야 그 환자가 낫는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뼈있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이 말씀은 예수께서 하신 큰 책망이며 안타까움이며 우리 주님의 우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너희’라는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왕의 신하에게 개인적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왕의 신하를 포함한 누군가를 빗대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너희’라고 말한 대상 또는 그 부류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렇습니다. 일차적으로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가버나움도 갈릴리에 속하니 왕의 신하도 갈릴리 사람입니다. 하지만 이 범주는 이미 확인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눈에 보이는 표적과 기사에 자신들의 믿음을 의존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즉, 예수님은 바른 믿음은 오직 말씀에서 나오는 것인데, 말씀을 등한시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들, 특히 자신들이 원하는 기적이 이루어지는 것에 믿음을 둔 종교인들에 대해 질타하신 것입니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믿음을 갖기 위해 반드시 ‘표적과 기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구원하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저는 어떤 분이 병에 걸렸다가 나은 후에 교회를 다니는 것을 보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병을 낫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죄와 싸우면서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었는데 실직한 후에 작은 목돈으로 투자하면서 남은 삶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하나님께 기도하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이 계시다면 이번 투자를 하는 일에 큰 복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분이 투자한 일이 크게 성공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부터 그분은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런데 크게 성공한 것이 그의 믿음의 내용일 뿐, 복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지 않고, 설교에 관심도 없고, 기도를 한다면 오직 복 달라는 기도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습니다. 바로 이러한 부류를 향해 예수께서 왕의 신하 앞에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고 질타하신 것입니다.
이때 신하가 말합니다.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요 4:49).
왕의 신하는 예수님은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 능력은 반드시 예수님이 그 자리에 계셔야 나타난다고 믿었습니다. 즉, 거리와 시간에 따라 주의 능력은 제한된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빨리 그의 병든 아들에게 가시지 않으면 그 아들은 병으로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갈릴리 사람들과 같은 부류의 믿음을 가진 왕의 신하의 믿음을 구원하는 믿음으로 인도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왕의 신하의 믿음에 큰 도전을 주는 말씀을 하십니다.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요 4:50).
예수님은 먼 거리에서 이 말씀을 하심으로 왕의 신하의 아들을 죽음의 문턱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즉, 그곳에 직접 가지 않으시고 오직 ‘말씀으로만’ 왕의 신하의 아들을 병에서 고쳐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개역 개정이 ‘살아 있다’라고 번역한 것은 죽음의 그림자가 없이 생명력으로 가득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왕의 신하와 아들이 염려하는 죽음에서 충분히 벗어나 계속 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신기한 것은 이 짧은 단락에 ‘살아 있다’라는 말씀이 50절, 51절, 53절에 세 번이나 반복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다’는 이 말씀과 더불어 온 집안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즉, 신체적 죽음을 가져오는 병이 치유를 받게 되면서 온 집안이 영생을 얻게 되는 결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특히 이 말씀과 함께 왕의 신하에게 놀라운 믿음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을 때, 이 왕의 신하는 예수께서 친히 몸으로 현장에 있어야 표적이 나타난다는 자신의 믿음을 내려놓고 그 ‘말씀’을 믿은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었다는 것은 그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인격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자기에게 말씀하신 예수님 그분을 믿었기에 그가 하신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은 것입니다. 이 순간이 바로 표적과 기사를 믿는 믿음에서 주의 말씀을 믿는 믿음으로 변화하는 순간이며 이는 곧 자신의 생각 및 자신을 부인하고 말씀하시는 주 예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구원 받는 믿음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50절은, 왕의 신하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라고 진술합니다. “가더니”는 왕의 신하의 믿음이 살아있는 구원하는 믿음인 것이 확인되는 순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가득합니다. 사실 성경 전체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며 또한 예수님에 대해 하신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믿으며 그 중 예수님에 대한 말씀과 또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그 말씀을 믿기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믿으며 따라서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순종하십니까? 정말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그분이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내 자신의 생각과 고집을 내려놓고 주의 지시를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믿습니다’라고 하면서 그가 말한 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그것은 전혀 그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일 뿐더러 그를 믿는다 하고 따르지 않음으로 그 사람을 모독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을 침략한 후 주의 백성을 포로로 잡아갔을 때 이스라엘 땅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요하난이라는 사람이 동료들을 이끌고 예레미야에게 와서 말합니다.
[
1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3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
5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렘 42:1-3, 5-6)
그래서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나아가 이들에게 유익이 되는 계시를 받아옵니다.
[
15 너희 유다의 남은 자여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에 살기로 고집하면
16 너희가 두려워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따라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가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을 것이라
17 무릇 애굽으로 들어가서 거기에 머물러 살기로 고집하는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되리니 곧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을 것인즉 내가 그들에게 내리는 재난을 벗어나서 남을 자 없으리라
18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나의 노여움과 분을 예루살렘 주민에게 부은 것 같이 너희가 애굽에 이를 때에 나의 분을 너희에게 부으리니 너희가 가증함과 놀램과 저주와 치욕 거리가 될 것이라 너희가 다시는 이 땅을 보지 못하리라 하시도다
19 유다의 남은 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두고 하신 말씀에 너희는 애굽으로 가지 말라 하셨고 나도 오늘 너희에게 경고한 것을 너희는 분명히 알라
20 너희가 나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보내며 이르기를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에게 전하라 우리가 그대로 행하리라 하였도다
](렘 42:15-20)
하지만 그들은 예레미야가 전해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무시하고 불순종합니다.
[
1 예레미야가 모든 백성에게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신 이 모든 말씀을 말하기를 마치니
2 호사야의 아들 아사랴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모든 오만한 자가 예레미야에게 말하기를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는 애굽에서 살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렘 43:1-2)
결국 이들은 자기들의 생각에 어긋난다고 여겨지는 하나님의 계시를 믿지 않음으로 애굽으로 내려가서 완전하게 멸절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불순종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왕의 신하는 그의 믿음 및 생각과 어긋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기 생각 및 믿음을 내던지고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믿고 나아갑니다.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그리고 가는 길에 자기 종들을 만나니 그 종들이 아이가 병에서 나은 때를 알려주는데 그 때가 정확하게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라고 말씀하신 때인 것을 확인하고, 자신은 물론이고 병에 걸렸던 아들까지, 심지어 그의 집안 전체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고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가족에게 자나깨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들려주어야 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말씀의 절정은 그리스도이시기에 우리는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속량하시고 부활 승천하여 살아계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알려주며 온 가족이 함께 예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온 집안이 구원을 얻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아무튼 왕의 신하의 가정은 그 신하의 아들이 죽을 병에 걸려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고 순종함으로 구원과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 주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두 번째 표적을 행하시게 됩니다. 즉, 주의 표적은 결국 기사로 마치는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을 본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여 구원 얻게 한 것입니다.
처음 가나 혼인 잔치에서의 표적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게 만들었고 이번 왕의 신하의 아들에게 행한 표적은 왕의 신하의 온 집안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의지하게 함으로 영생을 얻게 하였습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에 몇 가지 적용해 보겠습니다.
첫째, 왕의 신하처럼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어도 누구나 고통을 겪습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은 병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부자라도 일반 사람처럼 병에 걸려 죽습니다. 돈이나 권력은 전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일반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백 가지 근심을 더하여 갖게 됩니다. 즉, 세상의 것들은 많이 가질수록 삶의 폭풍우는 거세어집니다. 주께서 여러분에게 이 세상의 것들을 차고 넘치게 주시면 그것들을 청지기로서 사용할 줄 아셔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에 속한 것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더 크고 영원한 의미가 있는 선한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만일 세상의 복이 신앙보다 앞서는 우상이 된다면 그 사람은 세상의 것들을 많이 가질수록 마귀를 닮아갈 것이며 결국은 심하게 부패한 인간이 되어 가장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을 것과 마실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고, 부자가 되든 말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말로 표현 못할 희락과 평강을 누리며 더욱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며 살아가기 바랍니다. 오직 그러한 믿음의 삶만이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삶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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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1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돈을 사랑함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도다
](참조, 딤전 6: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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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10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여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참조, 딤전 2:9-10)
그러므로 우리 인생 가운데 하나님께서 풍성한 재물을 주시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투자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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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마 13: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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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7 …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8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9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딤전 4:5, 7-9)
둘째는, 오늘 왕의 신하의 아들 사건에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죽음과 질병은 늙은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나 젊은이들에게도 찾아온다는 사실입니다.
아론은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다윗은 그가 살아가는 동안 밧세바가 낳은 갓난 아기, 그리고 장자 암논과 셋째 압살론, 이렇게 세 아들의 장례를 치러야 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10자녀 모두를 잃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 살 날이 많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시대는 100세 시대라고 하고 의학이 발전 되었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매일 죽어가는 자는 셀 수 없이 많고 그 중에는 아이들과 청년들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어떤 나이에 있든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참으로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보증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보증은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보증은 오직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에 영접하고 믿고 의지할 때 우리 안에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보증을 얻기 위해 신속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바랍니다. 영원하지 않은 이 땅의 것은 영원한 기간 앞에서 고작 찰나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삶을 어디서 갈 것인지 이 시간에 결정하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면 성령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미 영적으로 누리게 되면서 저 영원한 천국을 보장 받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잘했다는 칭찬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라면 언제든지 그리스도를 만날 준비를 하고, 영원에 속한 것을 아무것도 미루지 말고 당장 붙들며 이 땅을 살아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삶에 질병이나 죽음이 가까운 것을 느낄 때 오히려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 집중함으로 거룩한 마음과 의로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들이 병에 걸려 죽게 되자 왕의 신하는 그리스도를 찾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육체의 질병 뿐만 아니라 온 가정이 영생을 얻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만일 아들이 죽을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왕의 신하와 그 가정은 죄 가운데 살다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건강도 축복이지만 병에 들어도 더욱 주와 동행한다면 오히려 그 병은 그 사람을 겸손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줌으로 더 큰 복이 될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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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 이는 바울이 심각한 질병을 앓는 것을 말합니다. */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고후 12:7-9)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 주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부활의 몸으로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공간적으로 우리 주님과 우리 사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주 예수님의 말씀은 왕의 신하의 아들 사건에서처럼 지금 우리에게 역사합니다. 성경에 담겨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믿는 자들에게 지금 당장 효력을 나타냅니다.
지금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서 이 땅의 죽은 영혼들을 향해 선포하십니다. 그러한 죽은 영혼들을 주변에 두고 늘 안타까운 마음으로 주를 믿고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부모들에게, 남편과 아내에게 어느 날 우리 주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자녀가, 네 남편이, 네 부모가, 네 형제가 살아 있다.”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말씀만 하시면 죽은 자가 살고 병든 자가 회복됩니다.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그러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사실 신체적인 회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으며 영원한 보람된 하나님 나라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담겨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고 왕의 신하처럼 신속히 순종하기 바랍니다. 그러한 믿음은 영원한 약속의 반석에 선 믿음이기에 고난이든 복이든 어떤 상황에서든 참으로 안전하며 든든한 삶을 보장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은 언젠가 우리에게 반드시 찾아옵니다. 고난에서 예외가 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 이유는 인생은 모두 죽음으로 마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죽음을 지날 때 우리 주 예수님의 손을 붙들고 지날 것입니까? 아니면 가룟 유다처럼 홀로 저 어두운 지옥으로 들어갈 것입니까? 오늘 왕의 신하와 그 아들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을 얻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주께서 행하신 표적은 단지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살도록, 그래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과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이 귀한 복된 말씀이 여러분 마음 깊은 곳에 성령의 역사로 깊게 새겨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