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에서 들녘으로
한낮 고온과 무관하게 해는 점차 짧아져 가는 구월 중순 둘째 목요일이다. 아침밥을 일찍 해결하고 자연 학교 등굣길에 오른 시각은 5시가 조금 지날 무렵이었다. 흐린 하늘에 날이 덜 밝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여명이었다.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불모산동을 출발해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원이대로로 나가 소답동에서 내렸다. 대산 강가 신전 종점으로 가는 1번 마을 버스를 탔다.
창원역을 첫차로 출발한 미니버스엔 이미 승객이 다 채워 빈자리가 없어 한 아낙은 선 채로 왔다. 나도 모처럼 학생 신분의 건각을 과시할 기회가 생겨 다행이었다. 모자를 눌러 썼기에 망정이지 이마를 훤히 드러냈다면 앉아 가던 이에게 마음의 부담을 안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이가 꽤 든 노인을 곁에 서서 가게 할 수 없어 누군가 자리를 양보하려는 손님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물긴 해도 이른 시간에 탄 버스가 만원일 때는 내가 절로 기분이 좋은 때였다. 아침 일찍부터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이들의 건강한 노동력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누군가의 일손을 필요로 하는 일터가 있음에 감사하게 여긴다. 나는 학생인지라 얼마든지 멀고도 오래도록 서서 타고 갈 용의가 있음에도 동읍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남저수지를 비켜 간 판신마을에서 내렸다.
주남 돌다리가 놓인 판신마을에서 제법 떨어진 정류소라 버스를 타고 가던 승객은 저 사내가 웬일로 거기에 내리는지 궁금해했을지도 모른다. 행색으로 봐 현지 마을 주민이나 논밭으로 나가 일을 할 이는 아닌 듯해서다. 나는 가끔 그곳에서 내려 동판지 둑으로 가거나 주천강 강둑을 따라 걷는데 이번은 후자였다. 이삭이 패서 고물이 차 고개 숙여가는 벼들의 작황을 살피고 싶다.
요즘 연일 일교차가 그리 크지 않아 안개가 끼지 않고 밤하늘은 흐리고 기온이 높아 간밤 이슬은 맺히지 않은 아침이었다. 이슬이 맺히려면 맑은 밤하늘이어야 하고 바람이 잔잔한 일교차가 커야 하는데 어느 것 하나도 충족하지 못했다. 다만 어제 늦은 오후 소나기성으로 미미한 강수량의 비가 내렸다. 그로 인해 지상의 풀잎은 이슬이 내린 것처럼 살짝 젖은 상태를 보여주었다.
주남지 수문에서 시작된 주천강은 동판지 수문을 빠져나온 물길과 합류해 남포로 흘렀다. 둑길 중간쯤 배수장 근처에 이르니 농수로 언저리 혼자 손에 가꿀 텃밭 규모를 웃도는 농사를 짓는 아낙이 보였다. 올여름 몇 차례 지나면서 얼굴을 익히 사이인데, 아침에 늦게 여문 참깨를 잘라 손질하고 있었다. ‘농사를 무척 잘 짓습니다’고 인사를 건네니 ‘오랜만이군요’라는 화답이 왔다.
천변에 심어둔 무와 배추는 물을 주어 싱그러웠고 창고를 겸하는 헛간 양철지붕에는 누렁 호박이 여럿 보였다. 둑길을 따라 형성된 농가에서 들녘으로 드니 벼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이 펼쳐졌다. 25호 국도 차량을 분산시킨 찻길 건너 상포로 나가자 가을 채소 경작지는 더 넓었고 가뭄을 타던 어제 오후 소나기에 부추꽃은 생기를 띠었다. 상포에서 중포로 가는 천변을 따라갔다.
택배 회사 창고와 소규모 공장이 들어선 천변에 쌓아둔 거름더미에 절로 자란 참외는 넝쿨이 더 무성해져 있었다. 지난번 과육 살점이 통통한 참외를 세 개 따고 남겨둔 풋참외가 노랗게 익어가는 중이었다. 넝쿨을 뒤져 다섯 개를 찾아냈는데 나중 귀로에 아파트단지 이웃 동 손씨 안씨 노부부 밀양댁으로 보냈으면 싶었다. 묵직해진 배낭을 짊어지고 들판을 더 걸어 가술로 향했다.
대산면 행정복지센터에 닿아 이마의 땀을 씻고 산책길에 남긴 사진들은 몇몇 지기에게 아침 안부로 전했다. 워낙 일찍부터 걸어 산책에 2시간이 걸려도 아직 9시 이전이었다. 느긋하게 마을도서관으로 이동해 열람실에서 어제 읽다 덮어둔 조정래 소설을 마저 읽고 유홍준의 답사기를 펼쳤다. 작고한 이어령만큼이나 언변이나 필력이 대단한 현역 문사여서 질투심(?)이 들 정도였다. 24.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