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 마실길을 기획하다.
2009년이던가, 어느 날이었다. 전라북도 행정부지사인 이경옥씨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한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아침에 송천동의 콩나물국밥집에서 만나 아침을 먹은 뒤에 이경옥 부지사가 ”전라북도에 아름답고 유서 깊은 길을 만들 수 있는 곳이 어디가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변산 둘레길>을 만듭시다.” “어떻게요?”
“변산 해수욕장에서부터 시작합시다. 고사포 해수욕장을 지나 국가 명승으로 지정된 적벽강과 채석강을 지나고, 궁항마을과 솔섬을 지나면 모항입니다. 왕포에서 바다 건너 선운산을 바라보며 걷다가 보면 내소사에 이르고, 내소사에서 진서리 도요지와 염전이 있는 곰소 포구를 지나면 반계 유형원의 자취가 서린 반계서당에 이릅니다. 그곳이 바로 교산 허균이 집을 짓고 살려고 했었던 우동리 마을이지요, 고려 청자도요지인 유천리를 지나면 코 무덤에 이르고, 그곳에서 백제부흥운동의 산실이자, 이매창의 자취가 서린 개암사에 우금암이 멀지 않습니다. 다시 상서를 지나고 하서면 구암리 고인돌을 지나서 돌아가면 서해 바다에 이르고 돌아가면 변산 해수욕장입니다.”
“”좋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어떻게 짓지요.“ ”이름은 변산 마실길로 지읍시다. 나라 안 모든 지역의 공통 방언이 마실입니다. 한가할 때 놀러 갈 때 쓰는 우리 말이지요,“ 의기투합해서 그 길을 만들기로 하고서 전라북도 환경과 임영환 과장과 부서 직원들과 함께 부안을 거쳐 새만금 사업장에 도착했다.
그때 부안군청의 아무개 계장이 도착해서 부안군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환경부로부터 8억을 지원받아 변산 자락에 길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만들 생각입니까?“ ”지금 차들이 다니는 국도 아레에 포크레인을 동원해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 생각입니다.“ ”그러면 안 되지요, 바닷가 길을 걸어보면 걸을 수 있는 길이 다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만든다면 1억만 들이면 환경을 파괴하지 않고도 아름다운 길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 말을 들은 계장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하더니 바쁜 일이 있다며 공익 요원만 남겨두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은 어렵게 환경부로부터 받은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음이 상했지만 어쩌겠는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바닷가로 연한 길을 천천히 걷다가 보니, 이럴 수가, 지리산 둘레 길이나 제주 올레 길과는 또 다른 아름다운 길이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오고 갔던 길이 분단 이후 군부대가 생기면서 군인들이 초소를 오가던 길과 연결되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바닷가가 아니라서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 없는 <지리산 둘레길>이나 숲길이 별로 없는 <제주 올레길>과 달리 변산 마실길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람으로 머리를 빗질하며 걸을 수 있는 즐풍櫛風의 명소였다.
오전 길을 걷고 격포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그 계장이 다시 와서 내가 말했다.” 걸어보니 너무 좋은 길들이 있던데요. 내가 새만금 전시관에서 격포까지 길을 만든다면 5백만 원이면 만들겠습니다.“
그날 변산 마실길을 걷고서 변산 마실길을 개통한 것은 며칠이었다.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와 KBS 전주 방송총국, 전주문화방송 등과 공동주최로 우리 땅 걷기 도반 3백여 명의 사람들이 변산 마실길을 걸으며 변산 마실길 개통식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부안의 변산은 어떤 산인가?
『택리지』에 ‘노령蘆嶺의 한 줄기가 북쪽으로 부안에 이르러 서해 가운데로 쑥 들어갔다. 서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은 모두 큰 바다이고, 산 안에 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들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변산邊山이다. 높은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산마루, 평지나 비스듬한 벼랑을 막론하고, 늘어진 큰 소나무들이 하늘높이 뻗어서 해를 가렸다. 골짜기 바깥은 모두 소금 굽거나 고기 잡는 사람들의 집이다. 산속에는 좋고 밭과 기름진 두렁이 많다. 백성들이 산에 오르면 나물을 캐고, 산을 내려와서는 고기잡이와 소금 굽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그런 까닭에 땔나무와 조개 같은 것은 사지 않아도 풍족하다. 하지만 샘물에 나쁜 기운(瘴氣)가 있는 것이 결점이다..’고 기록된 변산은 전라북도 서남부 서해안에 돌출되어 있는 변산반도에 자리 잡고 있다.
『동국여지승람』 ‘부안’ 현, ‘산천’ 조에서 고려 때의 문인 이규보는, ‘변산은 예로부터 나라 재목의 부고(府庫)이다. 스님들이 물건을 사고팔던 중장이 섰으며, … 강과 산의 맑고 좋음은 영주(瀛洲)의 봉래(蓬萊)와 겨룰 만하니, 옥을 세우고 은을 녹일 듯한 것은 만고에 변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변산은 바깥에다가 산을 세우고 안을 비운 형국이다. 그래서 해안선을 따라 98킬로미터에 이르는 코스를 ‘바깥변산’이라 부르고, 수많은 사찰과 암자가 있어 한때는 사찰과 암자만을 상대로 여는 중장이 섰다는 산의 안쪽을 ‘안변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의상봉(508m), 주류산성(331m), 남옥녀봉(432.7m), 옥락봉, 세봉, 관음봉(424m), 신선대(486m), 망포대(492m), 쌍성봉(459m) 등의 산들이 안변산을 에워싸고, 그 안에 백천내의 물이 부안댐에 갇혀 고창‧부안 사람들의 식수원이 되고 남은 물이 해창에서 서해로 흘러든다.
부안이 고향인 신석정 시인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 삼절이라고 불렀는데, 내소사, 개암사, 등 아름다운 절집을 품에 안은 길이 유서 깊고 아름다운 변산 마실길이다. 이 길은 나라 안에서도 가장 성공한 둘레길 중 한 곳으로 손꼽히고 있어 지금도 전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변산 마실길을 기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