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 오르는 산 기슭 커다란 느티나무에는 몇마리의 새끼 새들이 둥지 안에서 어미새의 먹이를 기다리며 지저귀고 있습니다. 마을의 주민들은 점점 불길에 휩싸이는 느티나무를 가슴 조리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마침 그때 그 새들의 어미가 그 둥지위로 날아왔고 상심한 듯 크게 울부짖으며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드디어 둥지에도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어미새의 거동을 숨을 죽이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 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지, 그 어미새는 그 둥지로 내려 앉아 자신의 작은 새들을 날개로 꼬옥 덮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는 얼마 후 둥지도 새들도 모두 다 타버렸습니다.
당신의 친구가, 부모가, 자식이 이런 상태에 처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신도 그 불길 속에서 그와 함게 죽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사랑의 숭고함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숭고한 것처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이 예수님의 사랑임을 당신은 공감하고 있는가? 또한 그 사랑에 대한 보답도 생각하고 있는가?
요 15: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는 사역을 잘 감당할 수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리며 사역을 위한 필요한 것들이 채워질 수 있도록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목 : 사랑의 십자가 본문 : 롬5:8
사람들은 흔히 십자가를 생각할 때 고난이나 고통만을 연상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나타난 고통은 표면적인 것입니다. 그보다 근본적인 것은 십자가를 지는 주님의 위대한 사랑입니다. 성도들이 져야 할 십자가 또한 사랑에서 비롯된 십자가여야만 합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에서와 같이 이웃에 대한 지극한 사랑 때문입니다. 사랑이 전제가 되지 않는 십자가는 죄인으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처벌밖에 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져야 할 사랑의 십자가에 대해 상고함으로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1. 십자가는 사랑의 절정입니다(요일4:10)
1)십자가를 통해 먼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인간은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의 타락 이후로 저주의 대상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아무 자격을 갖지 못했습니다. 더욱 인간은 범죄함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물론 타인조차도 사랑하지 못할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으며, 십자가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서 어두움을 사랑하여 빛을 싫어하던 존재들입니다(요3:19). 어두움과 빛이 상극이듯이 범죄한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는 고난이기 이전에 우리를 향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2)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보여주신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들을 향한 모범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음으로 사랑을 보여주셨고, 그 사랑으로 우리를 변화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 사랑을 받은 성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그리스도를 따라 십자가를 지게 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없다면 상대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입니다. 상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을 때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랑하라는 그분의 명령에 따라 타인을 사랑해야 합니다(요13:34). 하나님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없이는 그분의 명령을 따를 수 없으며, 그 결과 타인을 사랑할 수도, 타인을 위해 사랑의 십자가를 질 수도 없습니다.
2. 사랑의 십자가는 자신의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막10:45)
1)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에수 그리스도께서 범죄한 인간들에게 보여준 사랑은 자신의 생명을 주는 일, 곧 십자가를 지는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자신의 생명을 소유하실 권한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그분은 죄인된 우리를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셨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포기하심으로 생명을 얻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생명을 포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랑의 십자가는 생명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2)그리스도를 따라 사랑의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어버린 것이나 건강을 잃어버리면 전부를 잃은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건강을 강조하는 격언으로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생명은 많은 사람들이 숭배하고 있는 재물과도 바꿀 수 없는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심으로 구원을 얻게 된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도 그리스도를 따라 이웃을 위해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생명을 주어야 합니다(요일3:16). 여러분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재물입니까? 아니면 명예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성도들이 생명과 같이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드려서 형제를 위해 사랑의 십자가를 지기 원하십니다.
3. 사랑의 십자가는 섬기는 것입니다(요3:14,15)
1)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피값으로 사신 주인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종처럼 제자들의 발을 씻겨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몸소 종노릇을 하셨으며, 제자들에게, 성도들에게 그러한 삶을 살 것을 요청하십니다. 이러한 삶은 상대를 가장 귀하게 여기는 지극한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주께서는 우리를 끔찍히 사랑하신 나머지 종노릇도 마다하지 않으셨으며, 우리에게 본을 따서 섬김의 삶을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종의 삶입니까, 아니면 주인의 삶입니까? 주께서 요구하시는 삶은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삶, 곧 형제를 섬기는 종의 삶입니다.
2)섬기는 일을 마땅한 일로 여겨야 합니다. 성도들은 서로 상대방을 자신보다 높게 여기며, 상대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빌2:3).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서로를 섬길 때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섬김을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형제들을 잘 섬기다가 어느 순간에 자고해져서 섬김에 대한 보상으로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종은 주인을 섬기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으며 그것을 희생이라고 여기지도 않습니다. 성도들은 서로를 위해서 섬기고 희생하는 삶을 마땅한 일로 여겨야 합니다.
결론 성도들의 삶은 서로의 짐을 지는 섬김의 생활입니다.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법을 온전히 이루는 삶이며, 또한 사랑의 십자가를 지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내어주시고 섬김의 모범을 보이심으로 우리를 향한 사랑의 십자가를 지셨으며, 우리에게도 그러한 삶을 살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도들은 마땅히 서로의 짐을 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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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쌀쌀하고 눈이오는 겨울을 맞이하여 성 령의 도움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형통하고 강건하고 평안 하기를 기도합 니다 사랑해요 샬롬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