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도 지나고 우수 경칩도 지났지만 교도소의 3월은 여전히 추웠다. 15척의 높은 담은 웅장하게 자신의 경계를 나타내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15척의 높은 담이 비록 상징성이 될지라도, 15척의 담은 세상과 감옥을 둘로 가르며 공기마저 둘로 가르는 듯싶었다. 그것과 상관없는 우리들은 13년 동안 변함없이 세상과 감옥을 소통시키고 있었다. 외투라도 벗고 교도소에 들어가 재소자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예배당에 들어서면 춥다는 느낌이 바로 전해진다. 춥다는 느낌에서 훈훈한 정을 나누며 따뜻함으로 변해 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만족이다. 그러나 어디 그게 우리들이 마음먹은 대로 되던가?
지난달에 교정사역이 7월이면 끝날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나름 많은 고민을 했었다. 회원들께 메일을 통해 사정 설명을 드리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설문을 받았었다. 물론 게시판에도 올리고 말이다. 두 가지 의견이 나왔었는데 한쪽은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자는 의견이었고, 다른 한쪽은 교정사역을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수도권에 있는 교도소 몇 곳에 전화를 드렸다. 안양교도소 교정위원임을 밝히고 장애인 재소자들에게 교화행사를 하고 싶다고 했더니 두 곳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들었었다. 일단 계속 추진하기로 마음먹고 교화행사에 참석할 인원들을 파악하여 주민등록 번호와 함께 교도소에 연락을 드렸다. 교도소장이 바뀌면서 엄청 엄격해지고 까다로워졌다. 교화행사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했다. 그날 오후에 교도소에서 연락이 왔다. 사역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단다. 대신 오후 집회시간을 오전으로 옮겨 달라고 하신다. 그렇게 할 수 없노라고 오후에 할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설명해 드렸지만, 재소자들이 이동하고 행사에 참석할 때 그들을 지켜야 할 교도관들이 부족하단다. 오후에는 재소자들이 이감을 가거나 외부로 병원을 가거나 재판을 받으러 가기도 하는데 교도관들이 동행을 해야 하기에, 교화행사 때는 재소자들과 동행할 교도관들이 부족하여 행사를 진행시킬 수가 없단다. 다른 종교 팀은 3월부터 오전으로 행사 일정을 조정했단다. 은근한 압박이다. 4월 장애인의 달 행사까지 마치고 오전으로 조정해 보자는 절충안을 내어 놓는다. 회원들과 의견을 나눠 보겠다고 했다.
열 분이 참석하기로 하고 명단을 재출했는데 여덟 명만 참석했다. 그중에 한명은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보안과 검열에 걸려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출소한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도소 행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7년이 지난 후 사전 검열에 통과해야 교화행사에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나머지는 몇 개의 철창문을 통과한 다음에 갈릴리 성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내의 어깨에 내 팔을 얹어서 왼손엔 목발을 의지한 채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뒤에서 보며 걸어오시던 목사님이 보기 좋다며 칭찬을 해 주신다. 예배당에서 여전히 만석형제는 건반을 연주하며 찬양을 인도하고 있었다. 모든 악기의 달인이라고 해도 인정할 수 있는 대단한 실력자이다. 젊은 청춘을 교도소에서 다 보내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도 성경 필사를 해 보라는 권면을 받고 열심히 성경 필사를 하고 있다고 귀띔을 해 준다.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경비를 해 줄 인원이 부족하니 계장님까지 나오셔서 행사의 경비를 서 주신다. 언제 어떤 돌발 행동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교화행사이기 때문이다.
지난달엔 검열 덕분에 시간이 부족하여 준비해 온 찬양을 제대로 부르지 못했는데 이번엔 제대로 부를 수 있다. 찬양을 인도하는 백집사님의 찬양멘트가 은혜다.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만났고 예수님 때문에 이렇게 은혜를 나누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권전도사님의 기도에 이어 부부찬양사역자인 ‘행복한 사람들’이 나오셔서 가슴 뭉클하게 찬양을 해 주신다. 남편인 고목사님은 시각장애인이고 사모님은 고목사님의 손과 발이 되어 전국을 누비며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으로 전하고 다니시는 분들이다. 박목사님의 피부에 와 닿는 설교는 재소자나 방문자나 모두가 아멘으로 화답하게 만드신다. 축도로 1부 예배가 끝났다.
2부 행사가 이어진다. 마이크를 잡고 변함없는 성경필사를 권면하는 멘트가 이어진다. 재소자들에게 성경필사를 할 수 있도록 필사 용지를 지급해 드리고, 성경 필사를 마치면 영치금도 입금해 드리고, 합본까지 해 드린다는 내용이다. 성경필사를 통하여 만나게 되는 수많은 체험들이 있음도 알려 드리며 독려를 해 본다. 4월 장애인의 달 교화 행사 때는 재소자들의 숨겨진 끼를 마음껏 발산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리겠다고 했다. 영치금 30만원이 부상으로 주어진다는 소식을 전하니 재소자들의 얼굴이 희망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히브리서 11장을 암송하는 재소자에게도 영치금이 우선으로 지급됨을 알려 드렸다. 4월 교화행사 때는 어떤 감동이 주어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준비해간 떡과 과일과 과자와 음료가 접시에 담겨서 차려진다.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작은 행복의 시간을 갖는다. 다과를 나누며 재소자들이 준비한 찬양도 듣는다. 모처럼 나도 찬양을 한곡 불렀다. 분위기가 아주 좋다. 경비대 계장님이 앞으로 나오시더니 만석형제에게 시간이 다 되었다고 하신다. 끝내라는 신호다. 아쉽지만 교도소의 방침에 따라야 한다. 2시간의 만남을 통해 어떤 것을 전했고 어떤 것을 받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었다.
모든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교화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바로 귀가를 해야 했던 지인께 위로의 전화를 드리고 있었다.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