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떠나고 있었다.
역사의 낡은 목조 계단을 내려가며
그 삐걱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생애가 그렇게 삐걱대는 소리를 들었다.
취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신 술이
잠시 내 발걸음을 비틀거리게 했지만
나는 부러 꼿꼿한 발걸음으로 역사를 나섰다.
철로 변 플랫폼엔 비가 내리는데
구멍 숭숭 뚫린 천막 지붕 사이로 비가 내리는데
나보다 더 취한 눈으로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낡은 의자 위 보따리 가슴에 품은 채 잠에 떨어진
아낙네도 있었다. 밤 화장 짙은 소녀의 한숨 같은
담배 연기도 보였지만 나는 애써 외면했다.
외면할 수 밖에, 밤 열차를 타는 사람들 저마다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이제 곧
열차가 들어오면, 나는 나대로 또 저들은 저들대로
그렇게 좀 더 먼 곳으로 흘러가게 되리라.
그렇게 흘러 흘러 우리가 닿는 곳은 어디일까.
나는 지금 내 삶의 간이역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어느덧 열차는 어둠에 미끄러지듯 플랫폼으로 들어서고
열차에 올라타며 나는 잠시 두리번거렸다,
철저히 혼자였지만 혼자인 척하지 않기 위해.
배웅 나올 사람도 없었지만 배웅 나올 사람이
좀 늦나 보다, 하며. 아주 잠깐 그대를 떠올렸지만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대 내 맘속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며, 기다릴 누구도 없는
비 오는 간이역에서 나는 밤 열차를 탔다.
이제는 정말 외로움과 동행이다.
열차는 아직 떠나지 않았지만
나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문이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