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의 바다에서...
할머니는 당시 16세와 12세이던 우리 어린 형제를 남겨두고 멀리 하늘나라로 떠나고 말았다. 천애의 고아가 된 우리 형제는 일찍 고향을 등지고 도시의 객지로 나와 살게 되었다.
투명한 비행물체는 고향에서뿐만 아니라 객지에서도 가끔 눈에 띄었다. 투명비행물체가 나타날 때 우주의 목소리도 동반했다.
고향에서 바라보던 투명비행물체를 객지에서 마주치면 반가운 친척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그 비행물체가 수호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향에서 들리던 목소리를 외로운 객지에서도 다시 들을 수 있으니, 듬직한 위로의 힘이 되는 것 같았다.
투명비행물체의 빛은 은회색, 보랏빛, 연홍색 등 다양했는데, 아주 가까이 다가왔을 때는 커다란 돔이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멀리 떨어지면 작은 별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투명비행물체가 가까이 다가왔다가도 아주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자세한 형태에 대해서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창문이나 출입문은 나 있는지, 비행체의 선체에 무슨 글자나 그림이라도 새겨져 있는지, 또 선체의 재질이 금속인지 유리인지 확인되지도 않았다.
투명하면서 내부는 전혀 들여다보이지 않는 신비한 비행물체였다.
때로는 그 투명비행물체가 태양 속에 숨어 있다가, 태양의 분신처럼 나타나 신비로운 핑크빛을 발산하며, 하늘을 휘젓고 다니는 모습도 보여 주었다. 밤에는 달 속에 숨어 있다가 달의 분신처럼 공중에 나타나 혜성처럼 우주 쇼를 연출하며 밤하늘을 휘젓고 다니는 묘기도 보여 주었다.
그 투명비행물체가 때로는 환영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멀리서라도 마주치고 나면 기분이 좋았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주변에서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은 한없이 든든했다. 투명비행물체와 나는 보이지 않는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지에서의 생활고는 눈물겹도록 어려웠다.
특히 어린 동생과 함께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려니 세파와의 부딪침은 만만치 않았다.
두 사람의 학비와 쌀을 얻기 위해 해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신문팔이 껌팔이는 물론, 시장에서 짐을 나르는 짐꾼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른 일은 다 할 수 있는데 짐꾼 일은 쉽지 않았다. 물건을 지게에 가득 싣고 일어나면 다리가 휘청거리고, 지게가 등에 달라붙지 않아 발걸음이 뒤뚱거리고 금방이라도 짐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지게질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요령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번은 큰일을 내고 말았다.
어느 부잣집 마나님이 집안의 잔치를 하기 위해서 시장에 과일을 사러 나왔는데, 내가 그 짐을 지게로 날라주게 되었다. 수박, 참외, 토마토 등을 가득 담은 지게를 지고 겨우 일어서서 걷고 있는데, 서투른지게질 때문에 다리가 휘청거리다가 끝내 차가 다니는 큰길가에서 넘어지고 말았다.
넘어지면서 지게에 가득 싣고 가던 과일들은 주르르 길바닥으로 쏟아지며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굴러갔다. 참외, 토마토, 수박등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길에서 굴러다니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나는 너무나 황당한 일을 눈앞에 두고 부잣집 마나님의 얼굴을 제대로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화가 난 마나님은 입도 열지 못하고 얼굴을 붉으락푸르락 하며 씩씩거리는데, 나는 어떤 호통이 떨어질지 몰라 주눅이 잔뜩 들어 있었다. 그때 함께 따라왔던 내 또래의 마나님 딸이 엄마를 달랬다.
"엄마 과일보다 사람이 다치지 않아 다행이잖아. 과일은 다시 사면되니까 저 짐꾼을 용서해줘..."
하며 내게로 다가와
"다친 데는 없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마음속으로는 한없는 슬픔이 밀려오고 문득 부모님이 원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나님의 딸은 넘어져 있는 나를 일으켜 주며 옷에 묻은 먼지도 털어주었다. 얼굴이 희고 백설 공주처럼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나의 두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가씨는 눈물을 닦도록 손수건을 꺼내 내밀었다. 그리고 작은 손지갑에서 얼마의 용돈을 꺼내 손에 들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힘내세요. 지금은 힘들지만 나중에 좋은 날이 있을 거예요. 오늘일로 너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멍하니 서 있는 내 앞에서 선녀 같은 그 아가씨는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다시 과일을 사러 시장으로 들어갔다. 시장 입구 저만큼에서 아가씨는 다시 뒤돌아보며 내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 시절 아무리 노력해도 배가 고팠다.
배고프면 사람이 천해진다는 뜻을 그때 알
것 같았다.
너무 배고플 때는 땅에 떨어져 있는 음식이라도 주워 먹고 싶을 때가 있었다. 누군가 먹다 버린 빵조각이라도 길가에서 발견하면 저절로손이 가려 했지만, 문득 자존심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손을 멈출 때도 있었다.
“떨어진 음식은 개가 주워 먹는 거란다. 그래서 주인의 밥상머리에 개가 앉아서 주인이 떨쳐주는 음식을 기다리지. 사람은 아무리 배고파도 떨어진 음식은 입에 넣는 법이 아니다. 너는 하늘에서 내려온 소중한 백마선이야. 네 소중한 인격은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돼..."평소 할머니가 내게 들려준 교훈이었다.
어느 여름날, 사흘 정도 굶은 후 동생과 함께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시골길을 걷고 있었는데, 채소밭에 발갛게 잘 익은 토마토 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토마토밭으로 발길을 향했고, 잘 익어먹음직스런 토마토 열매를 따 먹으려고 손을 내미는 순간이었다. 마음을 부끄럽게 하는 외침이 쟁쟁하게 내부에서 들려왔다.
<네 물건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지 마라. 과일 하나에 잠깐 배고픔은 면할 수 있어도, 손상된 양심은 무엇으로 회복할 것이냐...>
그래서 내밀었던 손을 다시 집어넣고, 누군가 부끄러운 나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부리나케 그곳을 떠나고 말았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배고픔도 사라진 것 같았고, 남의 것을 훔쳐 먹으려고 했던 손이 얄밉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내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동생을 생각하니 가여워 견길 수 없었고, 내 살이라도 떼어 동생의 주린 배를 채워주고 싶었다. 동생도 내 마음을 알았는지 먹음직스런 토마토밭을 모른 채하고 얼른발길을 재촉했다.
양심이라고 하는 두 글자는 어릴 적부터 내 삶을 훈련시키는 조련사와 같았다. 마치 양심 하나가 망가지면 소중한 영혼의 정체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각인되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엄두조차 못 내었던 것 같다.
양심의 조련사는 끈질기게 나의 삶을 미행하면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고, 그러한 영향으로 힘든 삶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었다.
양심의 조련사로 하여금, 평생 동안 내 삶을 미행하게 한 장본인은 바로 연화였다. 곧 할머니는 어릴 때 나의 인격을 훈련 시킨 조련사였다면, 연화는 양심을 훈련 시킨 조련사였다.
연화는 나의 양심을 훈련시킬 때 이렇게 타일렀다.
“도련님은 앞으로 길에 떨어진 못 하나라도 내 것이 아니면 줍지 말고, 내 것이 아닌 남의 물건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탐내는 마음을 품지 마세요. 남의 물건을 탐내면 이미 남의 물건을 훔친 거나 마찬가지로 양심이 흐려져요."
“도련님은 앞으로 세상의 어떤 재물보다 양심의 보석이 가장 값지고 보배로움을 망각하지 마세요. 그 아름다운 양심의 빛으로 어두운 세상을 밝게 하는 등불이 될 수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순결이라면, 양심은 자신에 대한 순결이지요."
“자신이 자신에게 순결을 지켜주지 않을 때, 그 자아는 영원히 슬픔을 간직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세상에 태어난 모든 영혼들이 삶을 마치고 돌아갈 때 양심의 등불을 켜고 떠나게 된답니다. 밝은 등불을 든 영혼은 밝은 세상을 찾아가고 어두운 등불을 든 영혼은 어디로 찾아갈 줄도 모르고 방황하겠지요.”
“갈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영혼들은 어두운 곳에 도달해 슬픔을 면하지 못할 것이니, 세상에서 양심의 기름을 많이 축적한 자가 가장 행복한 영혼이란 사실을 잊지 말아요. 아마도 우주에서 가장 부유한 영혼이 있다면, 양심의 기름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살아가는 영혼이라고 생각해요.”
“백마선 도련님은 앞으로 이 약속을 지키고 양심의 기름을 많이 축적하고 실천할 수 있나요?"
“네, 꼭 연화의 말을 실천하며, 물질의 부자가 아닌 양심의 부자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빛과 무한이론의 세상을 지배하는 주인공들 - 도선당(백마신선) 저
첫댓글 복습이네요
뮬질의 부자가 아닌
양심의 부자
감사합니다
네 복습
핵심 내용 축약입니다
미음의 부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