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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닷컴 프로필] '첼시의 구원투수' 이바노비치 | ||
골닷컴 | 기사입력 2008-01-18 10:15 | 최종수정 2008-01-18 10:27 | ||
세르비아 청소년 대표팀 주장에서 네만야 비디치 이후 동유럽에서 배출한 최고 수비수 자리까지... 비록 비약적으로 성장한 케이스는 아니지만 차근차근 단계별로 과정들을 밟으면서 현재의 위치에 올라선 선수가 바로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이다. 수비라면 위치를 가리지 않고 다 뛸 수 있는 다재다능한 수비수인 그가 잦은 부상으로 인해 위기에 빠진 첼시 수비진을 구원하러 런던에 입성했다. 이름: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 생년월일: 1984년 2월 22일 출생지: 스렘스카 미트로비카 국적: 세르비아 키: 188cm 몸무게: 84kg 포지션: 수비수 어린 시절 브라니슬라브 이바노비치는 어린 시절부터 특출난 재능을 자랑했다기 보단(앞서 골닷컴 프로필로 소개한 니콜라 아넬카나 네리 카스티요같은 예) 천천히 단계별로 각 레벨을 거치면서 성장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유소년 시절 지역의 작은 클럽인 FK 스메데레보와 레몬트 카칵에서 수비수로서의 기초를 다져온 그는 2002/03 시즌 자신의 고향팀인 FC SREM(스렘스카 미트로비카)에서 성인 무대 데뷔식을 가졌다. 이후 그는 꾸준히 선발출장하며 실력을 쌓아갔고, 이내 세르비아의 명문 클럽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명가 재건에 나선 이바노비치 2003/04 시즌이 시작하고 그는 세르비아의 명문 OFK 베오그라드로 이적했다. 1960~70년대 황금시기를 보냈던 OFK는 이후 더비 라이벌인 크르베나 즈베즈다(레드 스타)와 파르티잔 등에 밀려 침체기에 빠져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바노비치의 입성과 함께 OFK는 다시금 유럽 대항전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비록 OFK는 이바노비치 입단 이후 첫 2번의 인터토토 컵에서 떨어지며(2003/04 시즌은 2라운드에서 체코의 FC 슬로바코를 상대로 1, 2차전 종합 스코어 3대4로 패배, 2004/05 시즌은 준결승에서 스페인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상대로 1대5 완패) UEFA컵 진출엔 실패했으나, 유럽 무대를 계기로 이바노비치는 한층 성장할 수 있엇다. 2005년은 그와 OFK에게 있어 잊을 수 없는 시즌이었을 것이다. 그는 32년 만에 처음으로 클럽을 UEFA컵에 진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세르비아 컵 준결승까지 이끌면서 명실상부한 세르비아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2006년이 시작하자마자 그는 로코모티브로 이적했고, OFK는 그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세르비아컵 결승 진출에 성공했으나 결승전에서 더비 라이벌인 크르베나 즈베즈다를 상대로 연장 접전 끝에 2대4로 패하며 우승컵을 놓쳤다). 단지 이바노비치에게 있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바로 우승을 단 한 번도 못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OFK는 침체기를 벗어나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러하기에 이바노비치는 로컬 선수(베오그라드 태생의 OFK 유소년 출신)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OFK 팬들의 사랑을 한몸에 독차지하며 클럽의 최고 인기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그에게 더이상 세르비아 리그는 너무나도 작은 무대였다. 그러하기에 그는 최근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로 입성하게 된다. 생애 첫 우승 스파르탁 모스크바, CSKA 모스크바와 함께 러시아 3대 명문인 로코모티브 모스크바에 이바노비치가 입성하자 로코모티브의 무슬린 감독은 "유럽에서 어린 수비수들 중 최고"라며 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첫 경기부터 팀의 주전 수비수로 맹활약을 펼치며 로코모티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자리매김했으나 2006 시즌 클럽은 리그 1위 CSKA에게 승점 5점차로 밀리며 아쉽게 3위를 차지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찾아왔다. 러시아 컵에서 승승장구(8강에서 디나모 모스크바를 4대1로, 그리고 준결승에서 스파르탁 모스크바를 5대1로 완파)하며 결승에 진출한 로코모티브는 2007년 5월 27일 모스크바 라이벌인 FK 모스크바와 결승전에서 연장접전 끝에 1대0으로 승리하며 클럽 통산 5번째 러시아 컵 우승을 기록했다. 이로 인해 이바노비치는 개인 통산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비록 2007 시즌 리그에선 7위로 처지며 클럽의 명성에 큰 흠집을 남겼지만, 적어도 이바노비치 개인에게 있어서 2007 시즌 역시 흠잡을 수 없이 훌륭한 활약을 펼친 한 해였다(참고로 2007 시즌 러시아 프리미어 리그 우승팀은 바로 김동진과 이호의 소속팀인 제니트로 이는 클럽 통산 첫 우승이기도 하다). 청소년 대표팀에서의 성공 2005년 6월 8일 캐나다의 토론토에서 있었던 이탈리아와의 친선전에서 77분경 두산 바스타와 교체투입되어 감격적인 성인 대표팀 데뷔전을 치뤘던 이바노비치(당시 20살)는 이후 청소년 대표팀과 성인 대표팀을 넘나들며 세르비아에 공헌했다. 2006년 포르투갈에서 열린 21세 이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그는 청소년 대표팀 주장으로서 팀을 결속시키며 세르비아를 준결승까지 이끌었으나 우크라이나에게 승부차기에서 아쉽게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가 지휘하는 세르비아 청소년 대표팀 수비진은 총 4경기에서 3실점만을 허용하며 대회 최소 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는 이 대회를 계기로 유럽 빅리그 스카우터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바노비치는 다시 한 번 2007년 6월 세르비아 청소년 대표팀을 이끌고(당시 그의 나이는 22세였지만 21세의 나이에 예선전에 참가했기에 본선 진출 자격이 주어졌다) 다시 한 번 21세 이하 유럽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네덜란드에서 펼쳐진 이 대회에서 다시 한 번 주장 완장을 차고 세르비아 청소년 대표팀을 이끈 그는 지난 대회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며 팀을 결승으로 이끌었다. 비록 결승에서 개최국인 네덜란드에게 1대4로 완패하며 다시 한 번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고 말았으나 이 대회 준우승으로 인해 세르비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진출권을 확보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바노비치는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되며 자신의 명성을 한층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빅클럽들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기 시작했다. 영입 전쟁과 첼시 입성 가장 먼저 그에게 관심을 보인 구단은 바로 이탈리아의 거인 유벤투스였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첼시,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 AC 밀란, 인터 밀란 등이 그의 영입전에 끼어들었다. 2007년 9월 12일 리스본에서 있었던 포르투갈과의 EURO 2008 예선전에서 그는 프리킥으로 골을 넣으며 감격적인 성인 대표팀 첫 골을 기록했다. 특히 0대1로 세르비아가 지고 있던 상황에서 경기 종료 2분을 남기고 넣은 골이었기에 더욱 값진 골이었다(결국 경기는 1대1로 끝났다). 이제 그는 네만야 비디치(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함께 세르비아에서 없어선 안 될 핵심 수비수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영입 전쟁이 본격적으로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비디치는 알렉스 퍼거슨 감독에게 이바노비치를 영입하자고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그를 둘러싼 영입전에서 최종승자는 첼시로 정해졌다. 주장인 존 테리가 장기 부상으로 빠지면서 수비진에 문제가 발생한 첼시는 겨울 이적 시장이 열리자마자 빠르게 그의 영입에 착수했고, 잉글랜드 언론들은 1월 3일 890만 파운드(1,200만 유로)의 이적료로 이바노비치가 첼시에 입성한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1월 16일, 첼시 구단은 그의 영입을 공식적으로 알렸다. 플레이 스타일과 첼시에서의 전망 그는 수비라인 어디서도 뛸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능력을 갖춘 수비수이다. 물론 그가 가장 선호하는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이지만, 그는 좌우 측면 수비를 모두 소화할 수 있다(그는 인터뷰에서 왼쪽 측면 수비수로는 뛸 수 없다고 했지만 실제 그는 왼쪽 측면 수비수로도 뛴 경험이 있다). 이것이 바로 그가 많은 명문 클럽들의 러브콜을 받은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빠른 발을 가졌고, 리더쉽도 있으며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능력 역시 갖추고 있다. 이는 청소년 대표팀에서의 경력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하기에 많은 축구 전문가들이 우승 경험이나 유럽 대항전 경기 경험(챔피언스 리그나 UEFA컵)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비디치 이후 동유럽에서 배출한 최고의 수비수라고 평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큰 경기 경험이 부족하다는 건 그에 대한 평가에 있어 단점으로 작용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비싼 몸값 역시 그에게 부담감을 줄 가능성이 있다. 실제 그의 이적료는 수비수라는 포지션을 감안하면 상당히 비싼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가 동유럽에서만 뛰었던 선수라는 걸 감안하면 막대한 이적료라고 평가할 수 밖에 없다. 스파르탁 모스크바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입성한 네만야 비디치의 이적료는 700만 파운드였다(당시 비디치의 평가는 동유럽 최고의 수비수였다. 물론 지금도 그는 동유럽 최고의 수비수이다). 그리고 최근 제니트에서 리버풀로 입성한 마르틴 스크르텔의 이적료는 650만 파운드이다. 그의 이적료가 이렇게까지 올라간 이유는 첫째로 그의 계약기간(로코모티브와의)이 2011년까지 였다는 점이고, 둘째로 많은 클럽들이 그의 영입을 놓고 경쟁을 펼쳤다는 것이다(반면 비디치와 스크르텔은 특별한 경쟁 없이 각각 맨유와 리버풀로 입성했다). 하지만 이유가 어쨌든 그의 막대한 이적료는 그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올 전망이다. 만약 그가 빠르게 첼시 시스템에 녹아들지 못한다거나 큰 실수를 저지른다면 팬들의 비난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충분히 런던에서 성공신화를 써나갈 수 있는 재능이 넘치는 수비수이다. 현재 첼시는 존 테리가 장기 부상으로 사실상 시즌 아웃을 선고한 상황이다. 히카르도 카르발류 역시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지난 여름에 볼튼에서 영입한 탈 벤 하임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사실상 전력외 선수로 평가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시즌 첼시의 중앙 수비수 중 제 컨디션을 보이고 있는 선수는 알렉스가 유일하다. 단지 문제는 중앙 수비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왼쪽 측면 수비 라인인 애쉴리 콜과 웨인 브릿지 역시 잦은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 오른쪽 측면 수비수인 페레이라는 이제 전성기가 지나갔고, 지난 여름에 바르셀로나에서 영입한 벨레티는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수비에 약점을 있는 선수이기에 수비를 강화해야 할 경우 대체자가 필요하다. 그러하기에 많은 첼시팬들은 여전히 아스날도 떠난 갈라스의 빈 자리를 그리워하고 있다. 첼시팬들은 과거 존 테리와 함께 위용을 과시했던 갈라스의 다재다능함을 사랑했다. 어쩌면 첼시 팬들은 이바노비치에게서 갈라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첫댓글 첼시 무서운 돈
체격조건 굿이네;
등번호가몇번이죠?
2번이라는데요
이바노비치.. 비디치만큼 크면 안돼ㅋㅋ 너무 무서워 ㅠㅠ
브레노랑 비슷하네
탈벤하임 이제 안보겠네..불안해서원 ㅠ.ㅠ
로만의 주머니가 풀리는군하 ~
이바노비치.. 참 좋은 작곡가죠. "도나우강의 잔물결"은 낭만파 음악의 참 소스이자 군악대를 위한 곡 치고는 최고의 서정성을 가지고 있죠..
그렇군여
그랬군여
제2의 갈라스가 되어주길..!!
갈라스처럼 데리고 와야징 ㅡㅡ
훈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