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하남시 풍산동에 있는 가나안 농군학교 입교생들은 새벽 4시 30분 철제 산소통으로 만든 '개척의 종' 소리에 잠을 깬다. 잠든 정신을 깨운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종은 1962년 개교 이래 하도 쳐대 깨져서 교체된 게 5개째다. 학생들이 입교 순간부터 자주 듣는 생활헌장이 있다.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마라" "버는 재주 없으면 쓰지도 마라" "물질의 빚이나 마음의 빚이나 지지 말자" "하라는 국민 되지 말고 하는 국민이 되자".
▶설립자 일가(一家) 김용기(1909~1988) 장로가 47년 전 문을 열었을 때 이 일대는 '거칠뫼(荒山)'라 불리는 척박한 땅이었다. 일가는 일제시대 안창호와 이승훈의 이상촌(理想村) 건설운동의 맥을 이어 성서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기독교적 이상향을 만들기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덴마크의 그룬트비가 국민고등학교를 세워 인재를 키우고 국토 개간에 나서 나라를 선진 부국으로 만들었듯 6·25 전쟁의 폐허에서 굶주리고 희망 잃은 국민들에게 의욕과 자신을 불어넣는 게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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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약과 근로·봉사·희생이 학교 모토였다. 음식 한 끼에 4시간 노동을 생활화했다. 치약은 한 번에 3㎜, 세숫물도 대야 3분의 2 이상 넘지 않게 했다. 밥알을 남기거나 설거지, 샤워를 하며 물을 계속 트는 것은 지금도 금기다. 1966년 일가가 막사이사이상을 타러 필리핀에 갔을 때는 호텔 종업원이 신발이 낡았다고 버리는 바람에 그걸 찾느라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 대통령은 "지방에 다녀보면 풍성하고 든든한 마을이 있다. 이런 마을에는 으레 앞장서는 지도자가 있고, 이 지도자를 중심으로 스스로 잘살아보겠다는 의욕이 넘쳐 흐르며…"라며 새마을운동을 제창했다. 5·16 후 가나안 공동체를 방문해 옥수수와 고구마를 먹으며 농촌발전의 가능성을 발견한 대통령은 몇 년 뒤 이를 범국민적 의식·생활 개혁운동으로 발전시켰다.
▶의식개혁의 요람이자 새마을운동의 모태인 하남 가나안 농군학교가 정부의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에 포함돼 철거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다. 그동안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2박 3일, 4박 5일 교육받은 공무원, 회사원, 농민, 군인이 60여만명. 폐허에서 오늘의 발전을 이룩해낸 한국 현대사의 상징적 공간을 그렇게 쉽게 허물어도 되는 것일까. 뭐든 보상을 하고 다른 곳에 짓도록 하면 될 것 아니냐는 식의 무신경과 몰인식이 안타깝다.
첫댓글 대한민국은 새마을 운동으로 경제부흥 성공적으로 이뤘고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했지만 실패..박정희 대통령과 김일성 차원이 달랐네요.
현재는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에 제 2 가나안농구학교가 있지요! 저도 교육 받은지 꽤나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