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기원전 313년.
당시 로마제국 서부를 지배하고 있던 콘스탄티누스와 동방의 절반을 지배하고 있던 리키니우스는
이탈리아 북부 메디올리눔 (오늘날의 밀라노)에서 만나 하나의 문서에 싸인(?)을 합니다.
해당 문서는 황제의 칙령인 만큼 매우 거창하지만, 요약하자면...
개인 신앙의 자유 확인 - 특히 기독고됴에 대하여
더이상 안죽이고 재산도 안뺏고 뺏은 재산도 돌려주마.
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여튼, 기독교도들은 더이상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믿고 싶은 신을 믿으라.는 의의를 담았다고 할까요?
1. 칙령 이전
영화 <쿠오 바디스>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로마시대 이미 기독교도 박해는 있었습니다.
네로시대 대박해는 유명하죠.
군인황제 시절 이전에는
네로 시절과 도미티아누소 시절을 제외하면 조직적인 박해는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간간히 기독교도들을 처형했다. 라는 기록이 남아 있지요.
기독교도드를 처형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로마의 황제들은 처형모습을 일반에게 공개함으로서 기독교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동시에
당시 사람들에게 <오락>을 제공했다고 합니다.
당시는 검투사들이 서로 죽이고, 사자한테 잡아먹히고 하던게 오락이던 시대라서 - -);;
군인황제시대가 되면서 박해의 규모가 매우 커집니다.
정치의 혼란을 덮고 사회통합을 유도한다는 구실로,
당시에는 좀 이질적인 그룹이었던 기독교도들을 조직적으로 박해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데키우스 황제가 물고를 튼 이 박해는,
군인황제 시대를 끝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시절에 절정을 이룹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기독교도들을 잡아서 죽이고, 변방으로 보내고, 노역에 동원하는 등으로 괴롭힙니다.
이러한 박해는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은퇴하는 309년까지 이어집니다.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
미켈란젤로는 디오클레티아누스황제 목욕탕이 붙잡힌 기독교도에 의해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목욕탕의 남은 부분을 리모델링 해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을 설계하게 됩니다.
겉은 저래보여도 안은 매우 웅장하다고 하더군요. 가본적이 없으니 ㅠㅠ
이곳저곳에 순교자들을 상징하는 예술품들이 설치되 있습니다. 보시는 저 문도 잘 보시면 순교자와 천사가 새겨져 있어요.
2. 그 탄생은 정치적이었으나...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제위에서 자발적으로 은퇴하면서 기독교 박해 정책의 흐름이 끊어집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자신의 권한을
서방 황제-서방 부황제, 동방 황제-동방 부황제에게 나누어 줍니다.
권력을 나눠받은 이들은 입장차가 있었고,
자신들끼리의 투쟁에 몰두하면서 기독교도 박해를 잊게(?) 되죠.
그러던 중 311년에는 갈레리우스 황제가 기독교도 박해를 금지하는 칙령을 내기도 합니다.
발표하고 바로 병으로 죽은지라 뭐...- -)
<콘스탄티누스 (좌)와 리키니우스 (우)>
결국 서로 싸우게 되고 콘스탄티누스가 최종 승자가 됩니다.
역시 잘생겨야 인생의 위너가 됩니다. 키도 180이 넘었다고 ㅠㅠ
여튼 당시 내부의 반란을 제압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서방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동쪽에 막시미우스를 경쟁자로 두고 있는 리키니우스는
밀라노에서 만나서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고, 그 일환으로 기독교를 공인합니다.
이게 밀라노 칙령이죠.
3. 반전 <1>
밀라노 칙령이 있기 1년 전이던 312년
막센티우스의 반란을 제압하기 위해 로마 북쪽 밀비오 다리에 도착한 콘스탄티누스는
전날 밤 꿈을 꿉니다.
그의 꿈속에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십자가를 앞세워 싸우면 승리할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밀비우스 다리 전투 전, 천사에게 계시를 받는 콘스탄티누스
그 직후 칼들고 뛰어가는 콘스탄티누스와 천사
둘 다 어디 벽화였는데 기억이...
착한(?) 콘스탄티누스는 그 말을 실천에 옮겼고.
무려 4배나 많은 막센티우스의 병력을 무찌르고 승리를 쟁취하게 됩니다.
모후(성녀 헬레네)의 영향으로 기독교에 관대한 입장이던 콘스탄티누스는
이 전투 후 적극적으로 기독교를 옹호하는 입장이 되었으며
죽기 전 세례를 받으면서, 세례를 받은 첫 황제가 됩니다.
4. 반전 <2>
같이 밀라노 칙령에 싸인했던 리키니우스도
동쪽의 경쟁자 막시미누스 다이아를 무찌르고 동방을 통일합니다.
한 하늘에 두 태양이 있을 수는 없는법 (-_-)
얼마전까지의 협력관계는 잊고 두사람의 투쟁관계예 들어가게 되는데요.
320년 리키니우스 지배 하의 동방에서는 대규모 박해가 다시 일어납니다.
<세바스티아의 40인의 순교자들>
세비스티아에 주둔중인 병사들 중 40명의 신자가 발견되자 배교를 강요합니다.
병사들은 배교를 거부하고 순교하게 된다는 이야기.
이처럼 리키니우스 치하에서 다시 박해가 일어납니다.
소설 '일루미나' 320년 박해 당시의 아테네를 배경으로
당시의 사회상과 정치의 암투, 갈등,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박해받는 기독교도의 모습을 잘 그려낸 수작입니다.
5. 끝은 창대하리라.
콘스탄티누스는 324년 리키니우스를 무찌르고 제국을 통일합니다.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아타나시우스 파 중심으로 교회가 통합되고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 발표됩니다.
이렇게 태어난 교회가 '가톨릭'입니다. 가톨릭은 '보편적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삼위일체 등 오늘날 가톨릭 교회의 기반이 만들어 진 회의입니다
이스라엘 구석에서 태어난 작은 종교가
오늘날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거대종교가 된 것이지요.
밀라노 칙령 덕분인 것은 아니지만.
밀라노 칙령을 계기로 불안속에 믿고 전교해오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햇살 아래로 나올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던 것은 분명할 듯 합니다.
첨언 1)
이 길고 긴 글에 별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2013-313=1700이라서
1x00으로 끝나는 해에 맞춰서 글을 써보기에는 제가 100년을 더 살아야 되서 (-_-)
이 글을 써봅니다.
마침 밀라노 칙령도 2월에 반포됐다고 하더군요.
첨언 2)
정치학 전공자(-_-)의 눈으로 본 밀라노 칙령의 이야기 입니다.
교회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_-) 궁금한건 신부님 수녀님께 (-_-)
첨언 3)
2013년이 보름가까이 지나왔는데 카페 자유게시판에 글이.. 글이.. ㅠㅠ
첫댓글 새로운정보 잘보았습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