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플레이션(저물가, 저금리, 저성장) 현실화
어느 시대나 정책 당국자들이 굳게 믿고 있는 것 중의 하나는 인플레는 잡을 수 있어도 디플레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디플레 경제는 「과소소비→과소투자→과소생산」의 함정인데 이 국면에서는 통화정책이 잘 먹히지 않는다. 가격이 떨어지는 상황에는 하루라도 늦게 소비하고 하루라도 늦게 투자하고 하루라도 늦게 물건을 만드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지금 미국의 정책금리(Fed펀드 금리)는 역사상 가장 낮은 제로수준이고 이는 1981년 초의 19%와 비교하면 가히 혁명적인 저금리이다. 또한 지금 미국물가는 최근 30년래 가장 가파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고 있는데 물가와 금리하락, 생산감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전형적인 저물가, 저금리, 저성장의 디플레이션 현상인데 이는 특히 미국과 같은 금리 민감형 소비경제 구조하에서는 매우 긴장할만한 일이다.
결국 최근 10년간 급증한 가계부채가 문제
중앙은행이 돈을 푸는 순간 민간소비와 기업투자가 바로 늘어나고, 정부가 재정지출의 칼을 뽑아 드는 순간 펌프질이 되어 경기가 바로 선순환을 탄다면 얼마나 좋을까? 더욱이 은행대출을 무한정 늘려 소비를 진작하고 그 힘으로 기업이익과 일자리가 계속 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경제에 이런 마법은 (잠시라면 몰라도!) 영원히 통하지는 않는 법이다.
지금 미국경제는 그림2에서 보는 것처럼 지금「빚의 마법」에서 서서히 풀려나고 있다. 즉 2000년대 초반 월간 1천억 달러 수준으로 증가하던 은행대출이 작년까지 그 10배의 규모로 늘어난 뒤 최근에는 완연히 꺾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 특히 미국경제가 디플레에서 빠져 나오려면 가능한 빨리 이 빚이 정상수준으로 되돌아 와줘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은행의 부실자산과 손실폭이 커지고 부실채권 매입정책이 불가피하겠지만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문제를 푸는 길은 없을 듯하다. 아시아나 유로랜드 등 의미 있는 다른 경제권의 아주 강력하고도 독립적 수요견인이 없이는 말이다.
그림3에서 최근 가처분소득의 150%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의 가계부채가 가령 100% 수준까지 낮아지려면 그림2의 전년 동월대비 은행대출 증감속도로 미루어 볼 때 적어도 앞으로 수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저금리는 부채조정 돕는 도구지만 경기를 바로 살리는 마법의 봉은 아님
결론적으로 당분간 세계적 저금리가 부채조정을 돕는 역할은 하겠지만 저금리가 바로 수요를 자극하고 인플레를 유발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가령 우리 주변에 콜금리가 최근 많이 떨어졌다고 해서 자동차를 바꾸고 집을 사고 장거리 여행을 떠날 채비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이는 우리보다 훨씬 심각한 빚 경제의 모순적 구조를 안고 있는 미국의 경우에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림4에서 보듯이 미국경제 역사상 금리를 내릴 때 대출(신용)이 확장된 경우는 드물었다. (음영부문이 모두 금리인하→신용축소, 경기둔화 국면임)
즉 금리를 내리는 배경은 오히려 그 전에 급증한 부채를 떠안고 경기가 꺼지는 상황에서 가계나 기업의 부채조정(빚 청산)을 돕기 위함이었다. 그러니까 금리를 내리는 동안에는 대출이 줄고, 소득대비 부채(빚)가 적정수위로 내려오고 개인 저축률이 올라가는 것이다. 이 과정이 지나야 비로서 사람들은 미뤘던 소비를 재개하고 은행도 대출을 늘리고 시중에는 돈이 돌기 시작(신용창출)한다.
세계주가의 공공의 적, 디플레이션
지금 일부 사람들이 제로금리와 경기부양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머지 않은 시기부터 경기의 추세적 반전을 기대하고 강력한 유동성 장세를 고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다소 성급한 시각이라는 생각이다. 저금리가 부채조정을 돕는 도구이기는 하나 경기를 바로 살리는 마법의 봉은 아니다. 디플레를 돈만으로 풀 수 없는 이유는 빚으로 뭉친 가계를 녹이는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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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