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가 원칙이고, 적통이어야 한다.
조갑의 제사 개혁은 당시로서는 혁명에 가까웠다. 혁명적 개혁을 한 이유는?
결과만 말하자면, 상왕실의 순혈주의를 주장함으로 상왕실의 통치권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직계 조상에게만 제사를 지내게 했다. 상의 선왕 중에는 혈통으로 직계 조상이 아닌(조갑의 입장에서) 왕도 있었다.
조갑이 말한 직계조상이란 혈통(DNA)으로서 직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왕통으로서의 직계를 말하는 것이다.
혈통을 좀 더 이해하기 위해서 조갑 자신의 혈통을 보자. 아버지 무정의 장남은 자신이 아니고 조경 이다. 자신은 조경의 동생이다. 당시의 宗法에 의하면 장남(大宗)만이 아버지의 지위를 얻고 나머지(小宗)는 얻을 수 없다. 조갑은 小宗인 것이다. 大宗은 무정-조경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나 조상신 제사에 아버지는 당연하지만, 형 조경도 제사를 받도록 했다. 자신은 왕이기 때문에 당연히 제사를 받을 수 있었다.
혈통이 아닌 왕통으로, 제사를 올리는 조상신으로 받아들임으로, 순수 혈통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혼란이 온다. 조상의 제사 날자도 죽은 날이라든지, 특정 날자라 한정하지 않고, 왕의 이름에 붙어있는 십이간지에 의하여 날자를 정했다. 武丁은 丁이고, 祖甲은 甲이다, 왕통을 세우려는 의도였다. 혈통 중심의 제사 의례가 정치적 중심의 의례로 바뀐 것이다. 혈통 중심이라는 개혁에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조갑의 개혁이 이해가 안 되신다면, 종법이 규정한 질서는 어마무시합니다. 광해군이 영창대군이라는
적통(=적장자-大宗)이 태어나자 왕권보장의 공포로 왕실비사를 저지르고, 그 때문에 권좌도 잃게 됩니다.
종법이 그만큼 무서운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 가문을 이어가는 적통은 혈통(DNA)으로 따지지 않는다. 적손이어야 하고, 적손이 없을 때는
양자를 들인다.
양자가 아버지의 피를 받은 서출보다는 더 적통이다. 홍길동도 서출이라서 아버지의 피를 이어도 후계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