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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위기 때마다 인의로 사는 충절의 시가 있었다
하나님의 뜻, 仁義의 길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義在正我로 살아라
조선건국에 반대하고 불사이군의 노래를 부르다
이색의 한시‘부벽루(浮碧樓)’
원나라에 유학하여 원나라 과거에 합격한 수재
고려말 원나라 명나라 침략하여 나라 운명을 바라보며
옛고구려 유적지 부벽루에 올라 과거 왕조의 회상하며
고려의 신하로 고려의 기상이 회복되기를 염원하는
충절의 마음을 읊었다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 昨過永明寺 (작과영명사)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暫登浮碧樓 (잠등부벽루)
빈 성 하늘엔 달 한 조각 城空一片月 (성공일편월)
오래된 조천석 위 천년의 구름 石老雲千秋 (석노운천추)
임금 탄 기린마는 한번 떠나 돌아오지 않고 麟馬去不返 (린마거불반)
손은 지금 어느 곳에 놀고 있는가 天孫何處遊 (천손하처유)
길게 휘파람 불며 바람 부는 비탈에 서니 長嘯倚風磴 (장소의풍등)
산 푸르고 강물 절로 흐르네 山靑江自流 (산청강자류)
(기린마는 떠나간 뒤 돌아오지 않으니
하늘에서 온 사람은 지금 어느 곳에 노니는가?
돌계단에 기대어 길게 휘파람 부노라니
산은 푸르고 강은 저홀로 흐르네)
백설이 잦아진 골에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흘에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호올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한산 이씨 7대 문성공 한산부원군 목은 이색李穡(1328~1396)
정몽주 어머니(영천 이씨)의 절개를 나타내는‘까마귀 싸우는 골에’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고이 씻은 몸을 더러힐까 하노라.
목은 이색의 제자 포은 정몽주의 의 절개를 나타내는 단심가
圃隱和之曰
차신사료사료(此身死了死了) 일백번갱사료(一百番更死了)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위진토(白骨爲塵土) 혼백유야무(魂魄有也無)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향주일편단심(向主一片丹心) 영유개리야여(寧有改理也歟)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여러분 모두가 정몽주와 이 시조에 대해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몽주는 이성계로부터 조선 건국을 지지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고려의 마지막 임금에 대한 충절을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이성계의 쿠데타에 가담하기를 거부했고, 그 결과 피살됐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몽주가 쿠데타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연회를 떠날 때, 말을 거꾸로 타고 나갔다고 한다.
이는 (이성계의 무리가) 그의 등에 화살을 쏘지 못하고,
반드시 그의 얼굴을 마주해야만 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정몽주가 건너던 화강암 다리에는,
그가 쓰러져 죽었던 자리에 붉은 핏자국이 남아 있다고 전해진다.
나는 개성에 가서 그 다리와 다리 가장자리에 있는 돌들을 직접 보았는데,
실제로 오늘날까지도 혈흔이 보인다
(제발, 그 혈흔이라는 것이 사실은 화강암에 흔한 산화철 줄무늬라는 지적을
삼가해 주시길 바란다!)
그 운명적인 연회에서 그는 단지 조선을 지지해 달라는 제안을 시로써 거부한 게 아니다. 조선을 지지해달라는 (이방원의) 회유도 시 형태로 이루어졌다.
太宗使人歌於 酒席曰
이런들 엇더ᄒᆞ리/ 뎌런들 엇더ᄒᆞ리
萬壽山 드렁츩이/ 얼거딘들 엇더ᄒᆞ리
우리도 이리코 잇다가/ 百年 산들 엇더리
원칙과 정의를 내팽개친, 악의 무리로부터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흔들림 없는 충성과 타협을 각각 대표한다고 제안한다.
더 나아가 타협의 시가 승리했다고 주장했다.
이성계와 그의 아들 이방원이 왕조를 세웠고,
이방원의 아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했기 때문이다.
타협의 미덕은 분명했는데,
그것이 한국 역사상 이뤄진 최고의 업적(한글 창제)을
우리에게 안겨주었기 때문이라는 논리였다.
어떤 식으로든 타협과 연결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특히 내가 충성이나 충절을 중시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타협 또한 큰 미덕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단지 편의의 문제나 “적당히 맞춰 가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타협의 정신이 없다면, 서로를 향해 이름을 붙여 비난하고 소리치기만 하는
완고한 정당들만 남게 .
우리는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모두에서 이를 보고 있다.
불사이군의 도원결의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도은 이숭인이다
제자 야은 길재 (채미정. 구미 금오산에 있는 채미정.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
길재 산천은 의구 한데
오백 년 도읍지(都邑地)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山川)은 의구(依舊)하되 인걸(人傑)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 연월(太平烟月)이 꿈이런가 하노라.
계유정난(1453년 10월) 삼촌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 쟁탈을 위해
김종서와 황보인을 처단
절재(節齋) 김종서(1381~1453 順天)
삭풍(朔風)은 나무긋 불고 명월(明月)은 눈속에 듸
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劍) 집고셔셔
긴 큰 소에 거칠거시 업세라 <김종서>
1456년 성삼문은 단종 복위에 앞장섰으나 "김질"의 배반으로 무산되고
발각돼 38세를 마지막으로 처형됐다.
성삼문이 거사 실패로 잡혀 고문을 받을 때 세조가 묻는다.
거취를 분명히 하라고...
죽음을 결심한 성삼문成三問 1418년(태종 18)~1456년(세조 2)
세조는 죽기를 각오한 성삼문의 의지를 알게 됐다.
사육신이 남긴 충절의 시조
봉래산 낙낙장송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꼬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樂樂長松) 되었다가
백설(白雪)이 만건곤(滿乾坤) 한제 독야청청(獨夜靑靑) 하리라”
죽음을 앞두고 꺾이지 않은 절의(節義)가 듣는 이의 마음을 절로 숙연(肅然)하게 한다.
이 시(詩)는 노량진에 있는 사육신 묘역의 "성삼문"각비(刻碑)에도 적혀 있다.
유성원 ? ~ 1456
草堂에 일이 없어 거믄고를 베고 누어
太平聖代를 꿈에나 보려트니
門前에 數聲漁笛이 잠든 날을 깨와다
하위지 1387-1456 단종때 사육신의 한사람 자는 천장 호 단계
會見林 烏借 회견림 오차 多慙仗馬鳴 다참장마명
숲 사이에서 까마귀가 남의 집을 빌린 것을 보며
의장대의 말울음소리를 부끄러워하노라
박팽년 朴彭年 : 1417 ~ 1456 자 인수. 호 취금헌
까마귀 눈비 맞아 희는 듯 검노 메라
야광명월이 밤인들 어두우랴
님향한 일편단심이야 고칠 줄이 이시랴
유응부 兪應孚?~ 1456
간밤에 부 던 바람에 눈서리 차단 말가
낙락장송이 다 기울어 가노메라
하물며 못다 핀 꽃이야 일러 무삼 하리오.
이개 李塏 1417-1456 자는 청보淸甫 호는 백오견 白玉軒
방안에 혓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관데
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줄 모르고
저촛불 날과 같아여 속타는 줄 모르도다
방안에 켜져있는 저 촛불은 누구와 이별을 하였기에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속이 타 들어가는 줄 모르느냐 그것은 꼭 속이 타서
눈물짓는 나의신세와 같구나!
한일 합방 당시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
曩日낭일伊藤侯이등후가韓國한국에來래ᄒᆞᆷᄋᆡ愚我人民우아인민이逐逐相謂曰축축상위왈
侯후ᄂᆞᆫ平日평일東洋三國동양삼국의鼎足安寧정족안녕을自擔周旋자담주선ᄒᆞ던人인이라
今日금일來韓래한ᄒᆞᆷ이必也필야我國獨立아국독립을鞏固공고히 扶植부식ᄒᆞᆯ方略방략을
勸告권고ᄒᆞ리라ᄒᆞ야自港至京자항지경에官民上下관민상하가歡迎환영ᄒᆞᆷ을不勝불승ᄒᆞ얏더니
天下事천하사가難測者난측자ㅣ 多다ᄒᆞ도다千萬夢外천만몽외에五條件오조건이何하로
自자ᄒᆞ야提出제출ᄒᆞ얏ᄂᆞᆫ고此條件차조건은非但비단我韓아한이라東洋三國동양삼국의
分裂분열ᄒᆞᄂᆞᆫ兆漸조점을釀出양출ᄒᆞᆷ인즉伊藤侯이등후의原初主意원초주의가何하에在재ᄒᆞᆫ고
雖然수연이나我아
大皇帝陛下대황제폐하[A]의强硬강경ᄒᆞ신 聖意성의로拒絶거절ᄒᆞᆷ을不已불이ᄒᆞ셧스니
該約해약의不成立불성립ᄒᆞᆷ은想像상상컨ᄃᆡ伊藤侯이등후의自知自破자지자파ᄒᆞᆯ바어ᄂᆞᆯ
噫희彼豚犬不若피돈견불약ᄒᆞᆫ 所謂소위我政府大臣者아정부대신자가榮利영리를希覬희기ᄒᆞ고
假嚇가혁를恇劫광겁ᄒᆞ야逡巡然준순연觳觫然곡속연賣國매국의賊적을甘作감작ᄒᆞ야
四千年사천년疆土강토와五百年오백년 宗社종사를他人타인에게奉獻봉헌ᄒᆞ고二千萬이천만
生靈생령으로他人타인의奴隸노예를敺作구작ᄒᆞ니彼等피등豚犬不若돈견불약ᄒᆞᆫ外大외대
朴齊純박제순及급各大臣각대신은足족히深責심책ᄒᆞᆯ 것이無무ᄒᆞ거니와名爲명위
叅政大臣者참정대신자ᄂᆞᆫ 政府정부의首揆수규라但단以否字이부자로塞責색책ᄒᆞ야要名요명의
資자를圖도ᄒᆞ얏던가金淸陰김청음의裂書哭열서곡도不能불능ᄒᆞ고鄭桐溪정동계의
刃剚腹인사복도不能불능ᄒᆞ고偃然언연生存생존ᄒᆞ야世上세상에㪅立갱립ᄒᆞ니
何面目하면목으로强硬강경ᄒᆞ신
皇上陛下황상폐하를㪅對갱대ᄒᆞ며何面目하면목으로二千萬이천만同胞동포ᄅᆞᆯ㪅對갱대ᄒᆞ리오
嗚乎痛矣오호통의며嗚乎憤矣오호분의라我아二千萬이천만爲人奴隸之同胞위인노예지동포여
生乎생호아死乎사호아檀箕以來단기이래四千年사천년國民精神국민정신이
一夜之間일야지간에猝然졸연滅兦而止乎멸망이지호아痛哉痛哉
통재통재라同胞동포아同胞동포아
촉석루 안쪽에 자리 잡은 진주 의기사(晋州 義妓祠)
논개의 영정이 있는 곳
그 문 앞에 두 편의 시
하나는 매천 황현의 시
또 하나는 기녀 산홍의 시다.
천만금을 주고 산홍을 사려고 했던 이지용
황현은 놀려대며 조롱했지
그리고 그는 논개 사당에 와 시를 지었다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년)이 이 이야기를 듣고 시를 지으니
조선 팔도에 산홍의 이름이 별처럼 빛났다.
'온 세상 모두 다투어 나라 팔아먹은 놈 좇아(擧世爭趨賣國人) /
노복과 계집종처럼 굽신거리느라 날마다 바쁘구나(奴顔婢膝日紛分) /
그대들 금과 옥이 지붕보다 높더라도(君家金玉高於屋) /
산홍의 일편단심은 사기 어려우리라(難買山紅一點春).'
의기사 안에있는 황현의 시
풍천나루 강물은 아직도 향기로우니(楓川渡口水猶香)
머리와 수염을 깨끗이 씻고 의로운 논개에게 절하노라(濯我鬚眉拜義娘)
아름다운 성품으로 어떻게 적장을 죽였던가?(惠質何由能殺敵)
죽음을 각오한 채 거룩한 뜻을 단행했네(藁砧己自使編行)
장계의 연로자들은 고향 사람이라 자랑스러워하고(長溪父老誇鄕産)
촉석루에서는 단청하고 순국함을 제사 지낸다(矗石丹靑祭國殤)
화려한 왕조 돌아보면 인물이 많다 지만(追想穆陵人物盛)
기생이었어도 오랜 세월 그 이름 한결같이 빛나리(千秋妓籍一輝光)
의기사에 걸린 산홍의 시는 이렇다.
義妓祠感吟(의기사감음-의기사를 참배하고 느낀 감회를 읊다)
千秋汾晉義 (역사에 길이 남을 진주의 의로움)
雙廟又高樓 (두 사당에 또 높은 다락이 있네)
羞生無事日 (일 없는 세상에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서)
笳鼓汗漫遊 (피리불고, 북치며 한가로이 놀고만 있네)
산홍이 촉석루의 의기사에 참배하고 남긴 시이다
경술국치에 지식인이 된 도리로 아편을 삼키고 스스로 죽음으로써 항거했던 지사(志士)..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 선생이 남긴 그 시대의 일을 남긴 역사서가 있는데
매천야록(梅泉野錄)이라고 하지.
매천야록에 1906년에 있었던 진주의 의기 산홍의 일화가 전한다.
'진주기생 산홍은 얼굴이 아름답고 서예를 잘하였다.
이때에 이지용(李址鎔,1870~1928)이 천금(千金)을 가지고 와서
첩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자,
산홍이 이르기를, 세상 사람들이 대감을 일러 5적(五賊,을사오적)의 우두머리라 하는데
제가 비천한 기생이긴 하지만 그래도 사람 구실하고 사는데..
어찌 역적(逆賊)의 첩이 되겠습니까하고 거절하니..이지용이 크게 노하여 때렸다고 한다.
조병세, 민영환 등의 애국지사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통한의 시를 쓰고
자신도 절명시로 한을 남겼지
亂離潦到白頭年(난리료도백두년)
난리 통에 어느새 머리만 희어졌구나.
幾合捐生却未然(기합연생각미연)
몇 번이나 목숨을 버리려 하였건만 그러지 못하였네.
今日眞成無可柰(금일진성무가내)
하지만 오늘만은 진정 어쩔 수가 없으니,
輝輝風燭照蒼天(휘휘풍촉조창천)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만이 아득한 하늘을 비추는구나.(하략)
끈질김과 타협, 두 가지 모두를 통해 성공했다.
심지어 정몽주조차도, 국가의 적으로 간주되어
“사대(四代)에 이르는 연좌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그의 아들들과 손자들은 관직을 맡았고,
정몽주 자신도 사후에 공식적으로 관직이 복권되었다.
그의 충성은 인정되었으며, 비록 그가 새 왕조에 맞섰지만,
그들조차도 그가 한 일의 미덕을 보았던 것이다.
“적당히 맞춰 가며 사는” 사람들을 비판해 왔다.
어떤 차원에서는 그것이 매우 부도덕해 보인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은 타협을 필요로 한다.
언제나 바른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 義在正我
참되고 진실하게
선하고 인자하게
사람답게 겸손하게
사랑으로 아름답게
사람의 길을 바르게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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