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이후구(薄耳厚口)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로, 귀가 얇아져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입은 두터워져 자기 말만 쏟아내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薄 : 엷을 박(艹/13)
耳 : 귀 이(耳/0)
厚 : 두터울 후(厂/7)
口 : 입 구(口/0)
살되 건강하게 오래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최대 욕망(慾望)이다. 그렇다. 인간의 욕망 중 최고의 욕망은 무엇이냐 하면, 아마 그건 늙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라 생각된다.
예로부터 불로장생(不老長生), 불로불사(不老不死)를 원하는 것은 공통적인 열망이었고, 고대인들은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스스로 실험대에 올라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考案)해 내기도 했다.
고대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중국인들은 이 방면에 큰 관심을 가졌으며 심취하여 수십 년, 수백 년에 걸쳐 자기들의 선인(先人)이 고안한 방법을 검토하고 개량하여 경이적 체계(體系)를 세워 실천하고 있다.
이 방법은 오늘날 말하는 선도(仙道; 神仙術)로서 종교적인 수행 방법이다. 이 종교적인 실천법은 육조 시대(六朝時代)에 본격적으로 한국에 유입되어 왔다.
그때부터 깊은 산속이나 심산유곡(深山幽谷)에 은둔하며 체득에 힘쓰는 도인(道人)이 많기도 하였지만, 이렇게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염원하면서 이를 이룰 수 있다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 대표적인 수련법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대표적인 것으로써 ①태식법(胎息法)으로 충화기(沖和氣)를 받아들여 장생하는 수련인 내단(內丹)이란 방법이 있으며, 그리고 ②황금과 수은과 약물들을 복용하거나 몸에 주입하는 외단(外丹)이 있었고, 또 한 가지 ③음기(陰氣)를 취해서 양기(養氣)를 충만하게 하는 방중술(房中術) 등이 있다.
이러한 수련법의 실천결과, 수련을 통해 득도한자는 허공에 올라가 우주에 소요(逍遙)하는 천선(天仙)이 되고, 다음으로는 36동천(洞天)과 72복지(福地)에서 사는 지선(地仙)이 되며, 단순한 도를 닦은 사람은 혼백이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시선(尸仙‧人仙)이 된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전적으로 이와 같은 연단술(鍊丹術)만을 닦는 것이 아니라 적덕행선(積德行善)하고 계율을 지켜야 진선(眞仙)이 된다고 하여 도덕적 측면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불로장생을 간절히 원하던 사람으로는 아무래도 진시황(秦始皇)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진시황의 명으로 불로초를 구하겠다고 떠난 사람의 이름은 기록에 따라 다르게 표기하고 있기도 하는 데 서불(徐佛)이라고도 하고, 서복(徐福)이라고도 하며, 서시(徐市)라고도 전하고 있다.
어쨌든 도사 서복이 동남동녀(童男童女)들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을 찾아 떠났는데, 그곳이 바로 우리나라였다. 삼신산(三神山), 즉 봉래산, 영주산, 방장산을 말하는데 그것은 지금 각각 금강산, 한라산, 지리산의 다른 이름으로 변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서복이 불로초를 찾아 헤맨 여정에 관련된 전설이 남아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 남해군의 금산에는 '서시가 일어나 일출에 예를 올렸다'는 의미의 '서시기 예일출(徐市起 禮日出)'이라 새겨진 마애석각(磨崖石刻)이 있고, 제주도 정방폭포 암벽에도 '서복이 이곳을 지나가다'는 의미의 '서시과차(徐市過此)'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제주도의 '서귀포(西歸浦)'라는 지명도 서복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불로초라는 것이 존재했을까이다. 그리고 신선이 되어 하늘을 나는 사람이 있었을까. 이 모두가 다 오래 살고 싶어 하는 욕심에 불과한 헛된 노력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내 생각으로는 살아 있는 동안 욕심을 버리고, 수행을 잘하여 건강을 유지하며, 할 일을 찾아 실천하고, 한편 신선의 모습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바로 도인의 생활습관이요, 신선이 행하는 생활이라 생각이 든다.
현대인은 언제나 바쁘고 시대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생활 또한 시대에 뒤 떨어지지 않게 노력함은 건강하게 오래 사는 늙음의 미학이라 아니할 수 없다.
언제나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사람이 늙게 되면 첫째 고집이 세지고, 둘째 잘 삐치며, 셋째 용서를 구하고 잘못을 사죄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이라 말들을 한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면 친구가 없어지고 외톨이가 되면서 금 새 늙어 쭈그렁밤송이가 되고 만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육신은 내 마음대로 안 되지만, 정신은 내가 조종할 수 있으며, 육신이 늙어 갈 때 정신이 따라 고집, 삐침, 복수심 등을 버리면 최소한 천수(天壽)를 누리고 동안(童顔) 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리라 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를 먹으면 늙는다. 다만 조금 더 외모 상으로 일찍 늙느냐. 아니면 늦게 늙느냐 하는 것이 조금 다를 뿐이다. 사람이 늙지 않는 비결은 생각, 즉 자신의 마음가짐이며, 항상 젊게 살고자 하는 마음과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생각하고, 무언가 할 일을 찾아 행동하는 것이 늙지 않도록 하는 비결일 것이라 믿는다.
불로불사가 인간의 소망이라면 생로병사는 인간의 숙명이다. 영원히 늙지 않는 비결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마음이 몸보다 먼저 늙는 것만 경계해도 훨씬 더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비법들이 몇 가지 있는데 이를 소개하고 이 비결을 실천하면 우리는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박이후구(薄耳厚口)라 하여 귀가 얇아져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입은 두터워져 자기 말만 쏟아내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사소한 일에도 고집을 피우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망집을 버리고 마음을 풀어 놓으면 늙지 않는데 이를 망집(妄執)이라 한다.
언제나 말이 많고 한말을 또 하고 하는 중언부언(衆言浮言)을 삼가야 하며, 백우무행(百憂無行)도 피해야 한다. 즉 백 가지 근심만 할 뿐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걱정이 생기면 몸을 움직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으니 몸이 늙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보태자면 고안(故安)이다. 옛 것에 기대어 안주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하며,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해 열린 마음과 낯선 것들에 대해 관대한 태도, 그리고 끝없는 호기심을 자기것으로 삼으려는 의지와 행동이 바로 불로의 비책이 아닐까 싶다.
늙어도 도전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의 공부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정열적으로 뛰며 생활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젊음을 유지하는 아름다운 늙음의 미학(美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불로장생의 철학적 자세
인간최대의 욕망은 뭐니 뭐니 해도 불로장생(不老長生)일 것이다. 역사상 이름날 정도로 장생을 원하고 불로초 찾기에 가장 열을 올린 사람이 바로 진시황제(秦始皇帝)였다.
그런데 이 지구란 땅에 태어난 인간은 언젠가 죽어야 하고, 죽음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경험할 수 없으며, 따라서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의 근원은 죽음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죽지 않고 장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이것은 오래 살려는 인간의 욕망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역사 이래로 인간은 수많은 장수 양생법(養生法)을 만들어냈고 실천해 왔다. 그 예로 고대 인도인은 호랑이의 고환을 먹었고, 히브리인과 시리아인들은 젊은이의 피를 마시거나 그 피로 목욕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중국 등에선 불로초(不老草)를 구해 먹기를 원했다고 전해 온다.
진시황도 오래 살고 싶어 무병장수할 불로초를 구하고자 했다. 이때 서복이란 자가 불로초를 구해 오겠다며 동남동녀(童男童女)들을 떼로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三神山)을 찾아 떠났으니 그 곳이 바로 한반도 우리나라였다.
삼신산(三神山)은 환웅천황(桓雄天皇)께서 배달국(倍達國)을 세운 대삼신산(大三神山)인 백두산(白頭山) 아래 있는 봉래산(蓬萊山; 금강산), 방장산(方丈山; 지리산), 영주산(瀛洲山; 한라산)들이다.
'산해경(山海經)'은 중국 선진(先秦) 시대에 저술되었다고 추정되는 대표적인 신화집(神話集)이다. 그 '산해경'에는 해외동경(한반도)을 '군자불사지국(君子不死國)'이라 쓰고 있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한반도에서 찾으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은을 불로초로 착각하고 마시고 죽은 진시황이나, 불로초를 찾아 나선 서복이나 진짜 불로초의 의미를 몰랐던 것이다.
한국의 군자들이 죽지 않는다는 말은 군자(君子) 즉, 신선(神仙), 도인(道人), 대인(大人)과 현자(賢者)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안 죽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국은 물 맑고 산이 깊어 심신수련하기에 적합한 땅임엔 틀림없다.
그래서 고대부터 백두산을 중심으로 신선, 도인, 대인과 현인들이 많았다. 하늘과 산과 땅과 사람의 기운을 일치시키면 우주일체를 이루는 것이다. 불로(不老)의 길은 마음을 비우고 탐욕을 버리는 것이 그 지름길이다.
몸을 선(善)하게 닦고 마음을 비워 관리한 신선, 도인, 대인과 현인이 되어 병에 잘 걸리지 않고 오래 살았던 실례가 너무도 많다. 바로 무병장수(無病長壽)를 가져 오는 불로초(不老草)는 양심을 회복하고 도심(道心)을 기르는 것이다.
오늘날 자기 양심까지 속이며 탐욕을 쫓는 무리들이 부지기수이다. 순리에 반하는 행위는 탐욕이고 죄이다. 그 탐욕이 죄가 되어 고통에 허덕이다가 결국 병 걸려 생명을 단축시키는 것이 중생이고 일반화되어 있다. 진시황은 오래 살고 싶었지만 결국 50세에 죽었다.
죽는데 부와 권력과 명예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결국 마음을 비우고, 탐욕을 버리고, 소탈하고 검소하게 큰 근심거리 없이 양심적으로 사는 길이 무병장수의 지름길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불로불사(不老不死)가 인간의 소망이라면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간의 숙명이다. 영원히 늙지 않는 비결은 세상 어디에도 없겠지만 마음이 몸보다 먼저 늙는 것만 경계해도 우리는 훨씬 더 오래도록 젊음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늙지 않으려면 적어도 이런 마음과 비결(祕訣)에 다가서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천천히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망집(妄執)을 없애야 한다. 사소한 일에도 자기를 내세우며 고집 피우는 것을 경계해야 하며, 망집을 버리고 마음을 풀어 놓으면 덜 늙는다.
그리고 박이후구(薄耳厚口)라 하지 않는가? 귀가 얕아져서 남의 말을 듣기 싫어하고, 입은 두터워져 자기 말만 쏟아내게 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중언부언(衆言浮言)을 피해야 한다. 내용은 없고 말만 많아져 표현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경계해야하며 욕심이 없으면 언어가 간결해지게 마련이다.
또한 옛 것에 기대어 안주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한다.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과 낯선 것들에 대해 관대한 태도, 그리고 끝없는 호기심이 불로의 비책인 것이다. 이를 고안(故安)이라 하여 피해야 한다.
백 가지 근심만 할 뿐 아무 것도 행하지 않는 것을 경계해야 하고, 걱정이 생기면 몸을 움직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리 하지 않으니 몸이 늙을 밖에 없다. 이 또한 한말로 백우무행(百憂無行)이라 하지 않는가?
이 몇 가지를 경계하고 실천해도 언제나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에 도움을 준다. "청춘은 다시 오지 않고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盛年不重來 歲月不待人)."
불로장생은 진시황제도 이루지 못한 꿈이다. 마음에 욕심을 비우고, 세상을 사랑하며 마음공부에 정성을 기울이면 우리는 늙지 않을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일, 꿈, 꿈 너머 꿈, 마음공부, 누구든 얼마든지 깊이 빠지고 몰입할 수 있는 사랑의 대상들이 많다. 사랑의 핵심은 '이기적 동기'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사랑하면 우리는 늙지 않고 오히려 날로 젊어질 수 있다. 이것이 늙지 않는 최고 비결이 아닐까 싶다.
세상 사람들이 금은보패(金銀寶貝)를 가장 귀중한 보물이라 여긴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다 허상일 뿐이다. 인생의 참다운 보물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영원히 불멸(不滅)하여 세세생생 참 나의 주인공이 되는 우리의 참마음이요, 또 하나는 우리의 그 참 마음을 찾아 참다운 혜(慧)와 복(福)을 얻게 하는 바른 마음법이다. 우리가 늙지 않고 오래도록 살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안으로 참 마음과 밖으로 바른 법을 찾는 것이다.
옥(玉)으로도 못 견줄, 금으로도 못 견줄, 참 보배는 평생 닦은 덕이며 최후일념을 청정히 하는 것이리라. 이것이 우리의 영원한 불로장생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내 평생 지나온 삶의 철학이요 지혜이며 장수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 황혼의 노을이 짙어가는 노년을 아름답게
사람은 항상 심신이 건강해야 한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길은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다. 용불용설(用不用說)이란 인간의 생명을 쓰면 쓸수록 발달하고 안 쓰면 안 쓸수록 퇴화된다.
눈은 봐야 발달하고 귀는 들어야 발달하고, 머리는 써야 발달하고, 손은 움직여야 발달하고, 발은 걸어야 발달하고, 심장은 뛰어야 발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흘러가지 않는 물은 썩기 쉽다. 자연의 섭리다. 우리의 몸은 꾸준히 움직여야 건강해진다. 평생 운동은 무병장수의 근본이다. 건강은 인간의 기초 자본이다. 병으로 밤낮 앓아 눕는다면 억만금이 무슨 소용 있으랴.
적당한 운동은 우리의 심신을 건강하게 하고 생활의 활력소와 생동감을 줄 것이다. 노후의 자기의 건강관리를 소홀히 하고 체력 증진에 태만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에 대해서 불성실하고 무책임함이다.
자기의 심신을 강건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첫째 의무다. 사람은 죽는 날까지 추구하는 생애의 과제가 있어야 한다. 무위도식처럼 세상에 괴롭고 따분한 것은 없을 것이다.
노년은 고독하다. 소외감과 좌절에 빠지기 쉽다. 그럴수록 우리는 서로 위안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평생의 친구가 필요하다.
나이가 고희(古稀)를 넘어 미수(米壽)에 가까워지면 인생은 아름답게 늙는 것처럼 어려운 일은 없을 것이며, 인생을 원숙하게 늙는 것처럼 중요한 일도 없을 것이다. 무병장수 한 것처럼 행복한 노후의 생을 즐기는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생자필멸(生者必滅)이라고 했다. 우리의 인생에서 반드시 노(老)와 사(死)가 찾아온다. 늙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늙으면 기력이 쇠약해지고 기억력이 둔해지고 매사에 관심이 소홀해지고 흥미가 감퇴된다. 반면 의욕도 상실되고 인생이 허무함과 고독에 잠겨 우울증에 걸리기 쉽다.
몸이 부자연스럽고 감수성마저 둔화된다. 말이 많아지고 어린애처럼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다. 시력도 점점 퇴화하고 청각도 둔해지며 거동도 불편하며 환경에 대한 적응력도 약화된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노화 현상에서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다.
그래서 노(老)자에 붙은 단어를 보면 좋은 말이 별로 없다. 노약자(老弱者), 노쇠(老衰), 노추(老醜), 노망(老妄) 모두가 노의 슬픈 얼굴이며 어두운 표정이다. 젊어서 노추는 그래도 이해되지만 늙어서 추한 것은 정말 상상하기도 역겹다.
그러나 그렇게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밝고 아름다운 측면도 있다. 젊어서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백발은 지혜의 면류관이라 했다.
마음에는 주름살이 없지만, 이마의 주름살은 인생의 깊은 체험의 상징이라고 했다. 늙어서 원숙한 것은 노숙이라고 하고 늙어서 솜씨가 완벽한 것은 노련하다고 한다. 자기의 정열을 쏟고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무료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좀처럼 늙지 않을 것이다. 오래 사는 것 보다 적당한 장수가 더 바람직스럽지 않을까!
가능하면 정신상태가 온전할 때 죽는 것이 축복일 것이다. 고희를 넘으면서부터 신체적으로 잃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건강에도 이상이 생기기 시작하고 갱년기 증상도 뚜렷해진다. 기억력의 쇠퇴도 어쩔 수 없는 변화다. 기대도 약화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다.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소유에 대한 욕망이다. 아직은 잃어버린 것보다 찾아 갖는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러다가 미루게 되면 얻어지는 것은 없고 잃어버리는 것이 현저히 많아진다. 그렇게 왕성했던 소유욕까지도 사라진다.
늙어감에 따라 신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을 균형 있게 유지하기가 더욱 힘들 것이다. 지금의 건강과 정신상태가 그대로 더 연장된다면 좋겠다는 마음뿐이다.
"백년을 살다보면" 전 연세대 김형석 교수는 99세에 책을 펴내고 신문 칼럼을 쓰며 명강연을 하고 있다. 인생의 황금기는 60세~75세 사이라고 한다. 인생의 많은 체험과 경험이 풍부한 시기라고 했다.
우리의 현실은 60세에 정년을 하면 할 일을 다 한 것처럼 느끼지만 60세 이후 제2의 인생의 새 출발은 인생을 회복의 길로 이끌어 가는 시기에 대해서 수긍이 간다. 정신적 성장과 인간적 성숙은 한계가 없다고 했다. 노력만 한다면 75세 까지는 성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 일찍 포기하는 젊은 늙은이들이 많다. 아무리 50세이라고 해도 노력하지 않고 일을 포기한다면 녹슬은 기계와 같아서 노쇠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많은 지혜와 경험을 쌓고 원숙한 노인을 젊은이들은 멸시하지 말라, 젊은이에게는 박력과 정열이 있다. 그러나 노인에게는 지혜와 경험이 있다.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경지이다.
노는 야누스의 두 개의 얼굴과 같다. 하나는 어두운 얼굴이라면 또 하나는 밝은 얼굴이다. 노후, 노쇠, 노약, 노망은 어두운 얼굴이다. 노숙, 노련, 노익장은 노의 밝은 얼굴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노년론에서 우리는 노년을 어떻게 보낼 것이냐? 또 어떻게 살아야 인생을 아름답게 보람 있게 늙을 수 있느냐? 이것은 누구나 조만간 부딪치게 되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문제다.
핵가족 제도는 급변하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노후의 문제가 가장 급박한 문제의 하나다. 인생을 아름답게 늙는 비결과 지혜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노년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제일 먼저 건강이 아닐까, 무병장수 할 수 있도록 건강관리와 체력관리를 평소 잘해야 한다. 질병이 계속되면 노년처럼 인생의 큰 비극은 없다. 노년생활에 대한 대책이 중요할 것이며 의식이 해결되어야 행복을 느낄 수 있으며 경제적 문제가 해결됨으로 정신적인 여유가 생길 것이다. 다음은 친구가 아닐까? 인생의 고독감과 소외감을 달랠 수 있는 정다운 친구가 있어야 하며 노후에는 정다운 친구처럼 중요한 것이 없다.
친구의 우정은 인생의 귀한 가치다. 세상에 좋은 친구처럼 고마운 것은 없다. 서로 경애하고 서로 격려하며 허물없는 다정한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친구가 거의 다 가버리고 자기만 혼자 남을 경우가 있다. 그래서 자기만의 취미생활의 계발이 중요할 것이다. 취미생활이 생활화 되면 무료함을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쓰건 그림을 그리건 서예나 책을 읽으며 혼자 인생을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져야 한다. 취미 속에 낙이 있고 기쁨이 생길 것이다. 자기의 정열을 쏟고 심혈을 기울일 수 있는 사람은 무료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며 좀처럼 늙지 않을 것이다. 오래 사는 것 보다 적당한 장수가 더 바람직스럽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늙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가만히 있어도 세월은 흐르게 되어있다. 늙으면 자제해야 할 말이 있다. 늙으면 필요 없는 자랑을 하기 좋아한다. 장년기에는 이성과 감정이 균형을 갖춘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들은 먼저 생각하고 감정을 노출하며 행동을 한다. 그런데 늙으면 이성 기능이 약해지고 감정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까 감정 조절을 잘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내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늙으면 어린애가 된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본인의 잘못이기 보다는 세월의 탓이 아닐까! 강물이 흘러가야 하듯이 세월이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을 어이하겠는가!
늙어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면 대우만 받으려는 늙은이가 되지 말고 베푸는 노후는 젊음을 소유한 늙은이가 아닐까. "가급적 입은 막고 귀를 열어야 하며, 모자는 먼저 벗고 지갑은 천천히 열라"는 늙은 젊은이가 돼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흔히들 오복은 유교에서 이르는 다섯 가지 복 중 마지막의 고종명(考終名)은 인간이 제대로 살다가 편히 죽음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바라는 소망이 아닐까...
■ 백발의 아름다움과 기도의 사명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잠 16:31)
"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잠 20:29)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약하여진다. 그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자연의 순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바울은 겉사람이 낡는다고 하여 낙심하지 말 것을 권면하였다(고후 4:16).
잠언에서 젊은이의 자랑은 육체의 힘에 있지만 늙은이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라고 한 것도 같은 의미다(잠 20:29).
젊은 남녀가 뛰노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노인들이 지팡이를 잡고 앉아 있는 것은, 처량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다(슥 8:4-5).
잠언의 또 다른 말씀은 노인의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하였다. 백발은 그동안 경륜을 쌓으며 일생을 살아 온 결과에 대한 훈장이라는 뜻이다.
노인의 주름살은 결코 무가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겪은 수고의 경험을 상징하면서, 그런 가운데에서 얻은 지혜가 축적된 모습이기도 하다. 노인이 영화로운 면류관을 훈장으로 당당하게 받을 수 있는 자격도 그것 때문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필연이다. 시간의 흐름은 인력으로 막거나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의 순환처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맞이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런 점에서 나이가 든다는 것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삶의 자연스러운 순리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노인이 되었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쇠약해진 기력때문에 젊은이들처럼 힘든 일을 하기란 어렵다. 그렇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할 수 일은 얼마든지 있다.
사무엘도 정년을 맞이하여, 새로 선임된 사울 왕에게 나라의 통치권을 넘겨 주게 되었다. 그는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퇴임식을 거행하면서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그것이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겠다"(삼상 12:23)는 선언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죄 가운데 하나다. 모든 문제는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지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깨어지는 것, 그것이 곧 기도의 통로가 막히는 것이다. 그만큼 기도는 영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 요소이다. 사무엘이 기도 쉬는 것을 가장 큰 죄로 여긴 것은, 그가 얼마나 영적으로 성숙한 인물이었는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그런 고백과 선언이 공직에서 물러나는 정년 퇴임식에서 있었다는 점이다. 비록 공직은 내려놓지만, 기도하는 것만큼은 은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기도하는 일은 계속 자신이 해야 할 책무로 삼겠다는 뜻이다.
사무엘이 강조한 기도는 개인을 위한 기도가 아니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위한 중보기도였다. 그동안 그는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하여 기도했다면, 이제부터는 보다 순수하게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겠다는 것이다. 책임을 맡았을 때나 책임을 내려놓을 때나 변함없이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했던 지도자가 사무엘이었다.
노인은 일반적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은퇴한 연령층에 속한다. 그만큼 노인들은 시간적 여유가 많이 있다. 이 여유의 시간을 무엇으로 보낼 수 있을까? 물론 여가활동이나 운동과 같이 자신을 위한 관리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무엘이 보여 준 것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 비록 젊은이들처럼 일터에 나가서 힘 있게 일을 하거나 총을 들고 국토 방위에 나설 수는 없지만, 뒤에서 기도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도 실제적인 일이다.
이스라엘도 우리나라처럼 젊은이들이 의무적으로 입대하여 복무하여야 한다.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여자들에게도 군복무가 의무화되어 있는 것이다. 그만큼 누구도 군복무에서 제외될 수 없는 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 정통파 유대인 자녀들은 군복무가 면제되어 있다. 그 이유는 정통파 유대인들이 총을 들고 나라를 지키는 대신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기 때문이다. 기도가 국방의 의무를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노인들이 나라를 위한 기도하는 것은, 젊은이들이 일하는 것이나 나라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지금은 그런 믿음과 자부심을 갖고 기도하는 노인들이 많이 나와야 할 때이다.
■ 우아하고 기품 있게 늙어가는 5가지 방법
대문호 괴테는 80살이 넘어서 피를 토하는 큰 병에 걸렸다. 모든 사람이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위독했지만, 당시 대작 '파우스트'를 마무리하고 있던 그는 이렇게 외쳤다. "세상에서 나만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아 물러가라!' 라고."
강력한 의자로 병을 이겨낸 그는 무사히 '파우스트'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의 삶은 평생 활력이 넘쳤다. 수많은 사람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고, 그 자신도 만족한 삶을 살았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당당한 풍체였고, 한 마디로 압도적인 인상이었다. 게다가 무슨 일이든 신속하고 단호하게 처리하는 모습이 마치 청년과도 같았다. 괴테의 풍모가 느껴지는가? 세상에 수많은 위대한 작품과 사랑을 남긴 그의 삶은 누구보다 우아했고 기품이 넘쳤다.
마흔이 넘으면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추하게 늙고 싶진 않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과 다르다. 마흔이 넘고 쉰이 지나 예순이 될수록 외로워지고, 자기 삶에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 많아진다.
이에 괴테는 노인의 삶을 '상실'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며 건강과 돈, 일, 친구 그리고 꿈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우아하고 기품 있게 살 수 있는 5가지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 건강한 육체
어떤 명예와 지위로도 병을 이길 순 없다. 건강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그간 어렵게 관리한 재산과 삶의 행복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건강은 건강할 때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안타깝게도 세월이 지난 후에야 가슴으로 느끼게 된다. 아프면 모든 게 끝이다. 지금부터라도 철저하게 건강을 챙겨야 나중에 원하는 것을 누리며 살 수 있다
2. 돈
건강이 가장 중요하지만, 몸은 건강한데 쓸 돈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 그것만큼 사람을 외롭게 하는 상황도 없다. 죽는 날까지 꾸준하게 돈을 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힘들어도 나중을 위해 모아둬야 한다. 동시에 꾸준하게 수입이 생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게다가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돈을 벌 때가 아니라 돈을 쓸 때라는 신호다. '쓸 돈이 있어야지!'라고 대답하는 돈 없는 노년은,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서러운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 주머니에 돈이 있지만 쓰지 않고 절약하는 것과 돈이 없어서 쓰지 못하는 것은 상황은 같지만 그 사람의 마음은 전혀 다르다. 돈 앞에 당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3. 일
스스로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몇 살부터 노인이 되었는가?" 중요한 건 일이다. 그리고 노년의 기간은 절대 짧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 예상보다 긴 노년의 시간이 다가올때 우리는 당황하게 된다.
지금이라도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찾아내서 시도해 보자. 일은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준다. 할 수 있는 힘과 의지는 뜨거운데,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만큼 괴로운 상황도 없다. 죽을 때까지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사랑'과 '일'뿐이다
4. 친구
버스에서 한 노인이 지인들에게 전화를 거는 모습을 봤다. 다섯 명 이상의 지인에게 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 시간은 30초를 넘지 못했다. 그러다 1분이 넘게 지속되는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노인의 목소리는 소년과도 같았다.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투명했고, 행복함이 느껴졌다.
노년의 가장 큰 적은 외로움과 소외감이다. 노년을 같이 보낼 수 있는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 또한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시간과 정성, 그리고 관심과 때로는 돈도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다가가자
5. 꿈
노인의 꿈은 삶을 향한 소망이다. 꿈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신앙생활과 명상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다시 말해, 나를 만나는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나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길이 없는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방향을 모르고 걷는 사막에서는 아무리 열정적으로 뛰어도 마음만 지칠뿐 남는 게 없다.
그래서 많은 노인이 공부를 시작하는데, 사실 길이 없는 공부는 그냥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공허하다. 중독과 다를 게 없다. 할 게 없어서 공부하는 사람의 뒷모습은 외롭다. 내면을 바라보며 길을 찾고, 꿈을 향해 걷자.
늙어간다는 건 누군가에겐 서러운 일이고,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남이 보기에 아름답게 사는 게 아니라 스스로 느끼기에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괴테는 '경고'라는 시에서, 자신에게 집중하는 지금 이 순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어디까지 방황하며 멀리 가려느냐? 보아라, 좋은 것은 여기 가까이 있다. 행복을 잡는 법을 배워라. 행복은 언제나 네 곁에 있다." 기억하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할 수 없다.
■ 늙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
인간은 거의 매일 꿈을 꾼다. 꿈을 꾸고 나면 자연스럽게 잊는 경우가 많은데, 한 전문가에 따르면 전날 밤 꾼 꿈으로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 하버드대학 꿈 과학자 앨런 홉슨은 '활성화-종합 이론'을 통해 꿈이 건강 상태를 반영한다고 밝혔는데, 전날 밤 꿈으로 건강 상태를 가늠할 수 있다는 말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꿈이란 '잠을 자는 동안에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정신 현상'을 말하는데,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꿈은 소망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잠을 자면서도 우리 뇌의 정신 능력의 활동은 깨어 있어서, 현실의 자아가 관심을 지녓던 미해결의 문제에 대해서, 초능력적인 정신 능력이 발현되어 펼쳐내는 세계가 바로 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몸이 휴식을 취하느라 더 이상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처리할 필요가 없을 때 뇌는 다른 중요한 과제에 마음껏 몰두하게 되는데 꿈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사실 감각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각성 상태에서 경험하는 것과 같은 감각 정보들을 꿈을 통해 살려내는 뇌의 활동은 신비의 극치이다.
성경에도 보면 '꿈꾸는 자'란 병명을 얻었던 요셉은 꿈의 사람이다. 그는 꿈 때문에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 꿈 때문에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되었다. 다니엘도 느브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여 총리가 되었다. 하나님은 꿈으로 요셉에겐 마리아를 의심하지 말고 데리고 오라고 지시하셨다(마 1:20).
동방박사는 꿈에서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고국으로 돌아갔다(마 2:12). 하나님은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히 1:1), 꿈을 통해서도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꿈꾸는 자가 있으면 나 야훼가 이상으로 나를 네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민 12:6)" 성경에서는 꿈을 계시의 방법 중에 하나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꿈이 계시는 아니다. 꿈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와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꿈에 대해 확실한 것은 없다. 하지만 꿈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현실 세계와 동시에 꿈의 세계에 사는 것이다. 꿈에 대한 연구는 계속될 것이고 언젠가는 꿈에 대한 완벽한 해석이 나올지 모르지만 요즘 꿈과 건강에 대한 논문이 나와 관심있게 공부하고 있다.
에를 들어 유독 공격받거나 쫓기는 꿈을 자주 꾼다면 뇌 기능이 저하된 것일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파킨슨병이나 치매 환자는 악몽을 자주 꾸고, 꿈에서 겪은 일이나 자신이 꿈에서 한 행동을 몽유병처럼 실제로 행하기도 한다.
꿈을 꿀 때 뇌간에서는 신체 근육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뇌세포군이 활동한다. 그런데 파킨슨병이나 치매처럼 뇌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이 생기면 해당 뇌세포군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해 꿈 조절이 잘 안 된다. 그래서 악몽을 꾸게 되고, 꿈에서 하는 행동을 현실에서 그대로 행하기도 한다.
실제로 꿈에서 겪은 일을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 중 52.4%가 12년 뒤 치매 및 파킨슨병에 걸렸다는 캐나다 맥길대학 연구 결과도 있는데, 다행히 나는 현역에서 떠난 이후엔 쫓기는 꿈을 꾼적이 별로 없다. 누군가 몸을 압박하는 느낌이나 방 안에 누군가 있는 느낌을 받는다면 뇌에서 행동과 수면의 조화를 이루는 호르몬 분비가 잘 되지 않는 것이 원인일 수 있다.
잠을 잘 때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호르몬이 나와서, 꿈속에서 하는 행동을 실제로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그런데 잠에서 거의 깨어 의식이 대부분 돌아온 상태인데, 근육을 억제하는 호르몬이 계속 나와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면 누군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 경우 기면증, 렘수면행동장애 등 수면장애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또한 반복적으로 기분 나쁜 악몽을 꾼다면 베타차단제 등 혈압약이 원인일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약들은 혈관을 넓혀서 혈액순환이 잘 되도록 돕는데, 혈관을 넓하는 성분이 꿈과 관련된 아세틸콜린, 세로토닌 등 호르몬 분비 균형을 깨뜨리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악몽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잠자리에 드는 게 두려울 정도라면 의사와 상담 후 약의 종류를 바꾸는 것이 좋다는데, 나 역시 혈압약을 오랫동안 복용하고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정맥도 악몽의 원인일 수 있다. 심장이 제대로 뛰지 않으면 뇌로 공급되는 산소가 부족해지고, 이로 인해 뇌가 자는 도중 자꾸 깨면서 악몽에 시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실제로 네덜란드 의학저널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부정맥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악몽을 꿀 확률이 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나도 꿈을 많이 꾸지만 평소보다 더 많은 꿈을 꾼다면 그간 수면이 부족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가능하면 숙면을 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벌써 2주동안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 잠을 잔적이 몇차례 있었다. 낮에 칼로리를 많이 소비하기에 곤한 잠을 잘 것 같은데 정반대의 현상이 자주 일어난다. 저녁에 늦게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니 건강에 문제가있을거라고 믿으면서도 버릇이 잘 고쳐지질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피부가 푸석 푸석하고 까칠해진 느낌이다.
며칠전 동네 할머니 한분이 나이를 물어 별로 많지 않다고 대답했더니 일흔 한 두살 정도되었느냐고 물어 기절할뻔했다. 많지 않다고 했으니 깜량에 낮춰 짐작한 모양인데 도대체 어딜 보아 일흔이 넘은 걸로 여겼을까,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외모는 많이 상한 모양이지만 난 한번도 늙은이란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나는 아직 늙어 보질 않았다. 이렇게 늙어 보기는 처음이지만 번지점프와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든다. 두려워할게 뭔가?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만 더 가보려고 마음먹었다. '늙음'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에 안 되면 되게 하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프랑스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늙기는 쉬워도 아름답게 늙기는 어렵다"라고 하였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노인은 늙을수록 외형은 초라해지고 육신은 나약해진다.
무심한 세월 따라 속절없이 늙는 것은 막을 수 없지만, 주름 잡힌 표정에서 연륜이 쌓인 고령자만의 기품을 뿜어낼 수 있다. 고목에 핀 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미국의 역대 가장 존경받는 퍼스트레이디로 손꼽히는 엘레나 루스벨트는 "아름다운 젊음은 우연한 자연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 작품"이라고 하였다.
가을날의 단풍처럼 곱게 물들어가는 사람을 보면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반면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지는 노인들의 행동을 볼 때마다 나는 절대로 "나는 절대로 저렇게 늙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한다.
나이 50을 넘어서면서부터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관하여 자주 생각했다. 오래 전부터 내 꿈은 사역에서 은퇴하면 공기 좋은 산골 마을을 찾아 텃발을 일구면서 글을 쓰는 것이었다.
아주 소박한 꿈이지만, 직접 부딪혀 보면 생각처럼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래도 가장 큰 문제는 노후자금이리라. 글은 꾸준히 쓰겠지만, 그 글이 돈이 될 가능성은 제로이다.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게 마련이다. 삶은 한 편의 연극이고, 주인공은 나 자신이다. 주인공의 연기력에 따라 연극이 무척 재밌거나 아니면 한없이 시시해진다.
누군가가 말했다. 연극의 1막과 2막 사이에 깜깜한 밤이 있는 이유는 옷을 갈아입으라는 뜻이라고. 옷도 산뜻하게 갈아입고 생각도 새롭게 하면 유의미한 일이 생길 것으로 믿고 있다.
아무튼, 인생 1막은 처자식과 먹고 사느라 얽매였으니, 인생 2막은 자유로운 프리랜서로 살 것이다. 더 이상 방황은 없을 거라고 마음속에 다짐하면서 집시처럼 살지않으려 노력중이다.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잃고 방랑하던 '유대 민족'과 '집시 민족'이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생물학적인 생명은 두 민족 모두 선조들을 계승했지만, 역사의 생명력을 보전했던 유대 민족은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집시 민족은 역사의 생명력을 상실해 여러 나라에 흩어져 그 나라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문화적 이질감을 이유로 천대를 받고 살고 있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니던가?
▶️ 薄(엷을 박, 동자기둥 벽, 풀 이름 보)은 ❶형성문자로 簿(박)의 속자(俗字)이다. 엷을 박, 동자기둥 벽, 풀 이름 보(薄)는 뜻을 나타내는 초두머리(艹=艸; 풀, 풀의 싹)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가까이 다다른다는 뜻을 나타내는 글자 溥(부, 박)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풀이 서로 가까이 모여 무더기로 더부룩하게 나다, 가까이 모인다는 뜻에서 '얇다'는 뜻으로 되었다. ❷회의문자로 薄자는 '엷다'나 '얇다', '야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薄자는 艹(풀 초)자와 溥(넓을 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溥자는 강 옆 넓은 논밭에 모종을 펼쳐 심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넓다'나 '펴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薄자는 이렇게 모종을 심는 모습을 그린 溥자에 艹자를 더한 것으로 '풀이 떼 지어 자라다'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후에 '얇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본래의 의미는 더는 쓰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薄(박)은 ①엷다, 얇다 ②적다 ③야박(野薄)하다 ④싱겁다 ⑤맛없다 ⑥깔보다, 업신여기다 ⑦척박(瘠薄)하다 ⑧가까워지다 ⑨숲 ⑩대그릇(대로 만든 그릇) 그리고 ⓐ동자기둥(들보 위에 세우는 짧은 기둥)(벽) ⓑ두공(枓栱: 기둥 위에 지붕을 받치며 차례로 짜올린 구조)(벽) 그리고 ㉠풀의 이름(보) ㉡박하(薄荷: 꿀풀과의 여러해살이풀)(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얕을 천(淺),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두터울 후(厚)이다. 용례로는 대나 갈대 따위로 만든 그릇을 박기(薄器), 적은 이익을 박리(薄利), 복이 없고 사나운 팔자를 박명(薄命), 많지 않은 봉급을 박봉(薄俸), 메마른 땅을 박토(薄土), 불친절한 대우를 박대(薄待), 얇은 심덕이나 적은 덕행을 박덕(薄德), 상냥하고 아담한 자태를 박미(薄媚), 적디 적음을 박소(薄少), 적은 수확을 박수(薄收), 됨됨이가 변변하지 못하고 아주 나쁨을 박악(薄惡), 굳세지 못하고 여림을 박약(薄弱), 변변하지 못한 재주를 박재(薄才), 인정이 적음을 박정(薄情), 어린 마음과 뜻을 박지(薄志), 아내에게 몹시 인정없이 굶을 박처(薄妻), 보잘 것 없는 학식을 박학(薄學), 볼품없는 예물이란 뜻으로 사례로 주는 약간의 돈이나 물품을 박례(薄禮), 적은 녹봉이라는 뜻으로 불행을 이르는 말을 박록(薄祿), 이익을 적게 보고 많이 팔아 이문을 올림을 이르는 말을 박리다매(薄利多賣), 아주 자질구례하고 변변하지 못한 사물을 이르는 말을 박물세고(薄物細故), 엷은 얼음을 밟듯이 세상의 처세에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박빙여리(薄氷如履), 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위태로움을 이르는 말을 박빙여림(薄氷如臨), 더할 수 없이 박함을 이르는 말을 박지우박(薄之又薄), 메마른 밭과 논을 이르는 말을 박전박답(薄田薄畓), 맛이 변변하지 못한 술과 산나물이란 뜻으로 자기가 내는 술과 안주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을 박주산채(薄酒山菜) 등에 쓰인다.
▶️ 耳(귀 이, 팔대째 손자 잉)는 ❶상형문자로 귀의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한문에서는 귀라는 뜻 이외에도 ~할 뿐이다, 혹은 ~할 따름이다 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耳자는 '귀'나 '듣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耳자는 오른쪽 귀의 귓바퀴와 귓불을 그린 것이다. 耳자는 사람의 귀를 그린 것이기 때문에 귀의 기능인 '듣다'와 관련된 뜻을 전달하게 된다. 그러나 일부 글자에서는 항아리나 솥과 같이 단순히 물체의 '손잡이'를 뜻할 때도 있다. 참고로 중국 고문(古文)에서는 耳자가 종종 '~일 뿐이다'나 '~일 따름'과 같은 어조사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곤 했다. 그래서 耳(이)는 ①귀, 오관(五官)의 하나 ②성(盛)한 모양 ③뿐 ④귀에 익다, 듣다 ⑤곡식이 싹나다 그리고 ⓐ팔대째 손자(孫子)(잉)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귀와 눈 또는 남들의 주의를 이목(耳目), 겉귀의 드러난 가장자리 부분을 이개(耳介), 귀와 코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이비(耳鼻), 귀에 생기는 병을 진찰 치료하는 의술의 한 분과를 이과(耳科), 귓바퀴를 이각(耳殼), 귀동냥으로 얻은 학문을 이표(耳剽), 몹시 떠들어서 귀가 먹먹함을 이괄(耳聒), 귀로 들음을 이령(耳聆), 귀가 먹음을 이색(耳塞), 귓바퀴가 뺨에 붙은 부분을 이근(耳根), 귀로 소리를 듣는 능력을 이력(耳力), 귀에 입을 대고 하는 말을 이어(耳語), 듣기만 하여서 알게된 학문을 이학(耳學), 귓속이 곪아 앓는 병을 이통(耳痛), 귀가 먹어 들리지 않음을 이롱(耳聾), 나이 60세를 이르는 이순(耳順), 참맛을 모른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단지 귀로 듣기만 하고 넘겨짚어 관찰을 할 줄 모름을 이식(耳食), 귀와 눈과 입과 코를 아울러 이르는 말을 이목구비(耳目口鼻), 귀로 듣고 눈으로 봄을 이르는 말을 이문목견(耳聞目見),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다는 뜻으로 눈치가 매우 빠른 사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이시목청(耳視目聽), 담에도 귀가 달렸다는 뜻으로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말을 삼가라는 뜻으로 일컫는 말을 이속우원(耳屬于垣), 귀로 듣고 눈으로 봄으로써 일어나는 욕심 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욕망을 일컫는 말을 이목지욕(耳目之欲), 귀로 듣고 눈으로 봄 즉 틀림이 없음을 일컫는 말을 이이목지(耳而目之), 귀를 잡아당겨 얼굴을 마주하고 가르친다는 뜻으로 친절히 가르침을 이르는 말을 이제면명(耳提面命), 말의 귀에 동풍이라는 뜻으로 남의 비평이나 의견을 조금도 귀담아 듣지 아니하고 흘려 버림을 이르는 말을 마이동풍(馬耳東風), 쇠귀에 경 읽기라는 뜻으로 우둔한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고 일러주어도 알아듣지 못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우이독경(牛耳讀經),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제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는 뜻으로 얕은 꾀로 남을 속이려 하나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엄이도령(掩耳盜鈴),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으로 바르게 타이르는 말일수록 듣기 싫어함을 이르는 말로 충언역이(忠言逆耳), 귀로 들어온 것을 마음속에 붙인다는 뜻으로 들은 것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잊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입이저심(入耳著心), 귀를 귀하게 여기고 눈을 천하게 여긴다는 뜻으로 먼 곳에 있는 것을 괜찮게 여기고, 가까운 것을 나쁘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귀이천목(貴耳賤目), 남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전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일컫는 말을 구이지학(口耳之學), 들은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는 뜻으로 들은 말을 귓속에 담아 두고 잊어버리지 않는다는 말을 언유재이(言猶在耳), 머리를 수그리고 귀를 드리워 엎드린다는 뜻으로 온순하게 맹종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면수첩이(俛首帖耳), 콩알 두 개로 귀를 막으면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소한 것이 큰 지장을 초래함을 이르는 말을 양두색이(兩豆塞耳) 등에 쓰인다.
▶️ 厚(두터울 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민엄호(厂; 굴바위,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후)로 이루어졌다. 산이 두텁게 겹쳐 있는 뜻이다. 또 흙을 쌓아 올리거나 제사 음식을 수북히 담는다는 뜻에서 융숭한 마음이라는 뜻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厚자는 '두텁다'나 '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厚자는 厂(기슭 엄)자와 曰(가로 왈)자, 子(아들 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曰자와 子자는 단순한 모양자이기 때문에 뜻은 전달하진 않는다. 厚자의 갑골문을 보면 기슭 아래로 절구통 하나가 놓여있었다. 이것은 돌을 깎아 만든 절구통이다. 돌을 깎아 만든 절구통이니 두께가 상당했을 것이다. 그래서 厚자는 절구통의 두께가 매우 두껍다는 의미에서 '두텁다'나 '후하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厚(후)는 ①두텁다, 후하다 ②두터이 하다 ③두껍다 ④짙다 ⑤진(津)하다, 맛있다 ⑥지극하다 ⑦정성스레 대하다 ⑧친하다, 친밀하다 ⑨우대하다 ⑩많다, 많아지다 ⑪크다 ⑫무겁다 ⑬늘리다, 증가시키다 ⑭낫다, 훌륭하다 ⑮두께, 두꺼운 정도 ⑯부(富) ⑰두터이, 매우, 많이, 크게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엷을 박(薄)이다. 용례로는 살림을 안정시키거나 넉넉하도록 하는 일을 후생(厚生), 후하게 대접함 또는 그러한 대접을 후대(厚待), 두터운 심덕이나 덕행을 후덕(厚德), 두텁게 생각해 주는 마음을 후의(厚意), 후한 값을 후가(厚價), 두꺼움과 얇음 또는 많고 넉넉함과 적고 모자람을 후박(厚薄), 후한 이익을 후리(厚利), 두터운 배려를 후려(厚慮), 많은 녹봉을 후록(厚祿), 진한 맛이나 훌륭한 음식을 후미(厚味), 두터운 정의를 후의(厚誼), 넉넉한 급료를 후료(厚料), 두터운 정의에 의하여 용서됨을 후면(厚免), 남의 슬픈 일이나 기쁜 일에 인사의 뜻으로 물건을 많이 부조함을 후문(厚問), 태도가 점잖고 마음씨가 너그러움을 중후(重厚), 빛깔이 진하거나 짙음을 농후(濃厚), 양순하고 인정이 두터움을 순후(淳厚), 인정이 두터움 또는 친절하고 정중함을 돈후(敦厚), 충직하고 순후함을 충후(忠厚), 너그럽고 후함을 관후(寬厚), 부지런하고 온후함을 근후(勤厚), 성품이 온화하고 후덕함을 온후(溫厚), 성실하고 인정이 두터움을 독후(篤厚), 참으로 두터움을 단후(單厚), 얼음의 두께를 빙후(氷厚), 어질고 후덕함을 인후(仁厚), 얼굴이 두껍고 부끄러움이 없다라는 뜻으로 뻔뻔스러워 부끄러워할 줄 모름을 후안무치(厚顔無恥), 부드럽고 온화하며 성실한 인품이나 시를 짓는 데 기묘하기 보다 마음에서 우러난 정취가 있음을 두고 이르는 말을 온유돈후(溫柔敦厚), 성격이 온화하고 착실함을 일컫는 말을 온후독실(溫厚篤實), 사랑과 미움과 후함과 박함을 일컫는 말을 애증후박(愛憎厚薄), 덕행이 두텁고 점잖은 사람을 일컫는 말을 후덕군자(厚德君子), 사람과 사귀는 데 선물이나 음식 대접은 다소 박하더라도 정만은 두터워야 함을 이르는 말을 물박정후(物薄情厚) 등에 쓰인다.
▶️ 口(입 구)는 ❶상형문자로 입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그러나 다른 글자의 부분으로 포함되어 있는 口(구)꼴의 자형(字形)은 입의 뜻인 경우 뿐만은 아니다. 品(품)과 같이 물품을 나타내거나 各(각)과 같이 장소를 나타내기도 하고, 石(석)과 같이 돌을 나타내기도 한다. ❷상형문자로 口자는 '입'이나 '입구', '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口자는 사람의 입 모양을 본떠 그린 것이기 때문에 '입'이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口자를 보면 ㅂ자 모양을 하고 있어 위아래의 구분이 있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부터는 네모난 모습으로 바뀌면서 더는 상하를 구분하지 않게 되었다. 口자는 입을 그린 것이니만큼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대부분이 '입'이나 '소리'와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출입구'나 '구멍'과 같이 단순히 모양자로 응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口(구)는 어떤 명사(名詞) 뒤에 붙어 (1)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의 뜻 (2)작은 구멍, 구멍이 나 있는 곳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입 ②어귀, 사람이 드나들게 만든 곳 ③인구(人口) ④주둥이, 부리, 아가리 ⑤입구(入口), 항구(港口), 관문(關門) 따위 ⑥구멍, 구멍이 난 곳 ⑦자루, 칼 등을 세는 단위 ⑧말하다, 입 밖에 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에는 연설이 끝이나 시위 행진 때 외치는 간결한 문구를 구호(口號), 구설을 듣게 되는 운수를 구설수(口舌數), 변명할 재료를 구실(口實), 음식을 대하거나 맛을 보았을 때 느끼게 되는 먹고 싶은 충동을 구미(口味), 말로써 베풀어 아룀을 구술(口述), 마주 대해 입으로 하는 말을 구두(口頭), 흥정을 붙여 주고받는 돈을 구문(口文), 보통 회화로 쓰는 말을 구어(口語), 글을 읽을 때 다른 말을 아니하고 책에 집중하는 일을 구도(口到), 말로 전함을 구전(口傳), 입과 입술을 구순(口脣), 단체 행동의 동작을 일제히 하도록 부르는 호령을 구령(口令), 사람의 수효를 구수(口數), 집안 식구나 집안의 사람 수효를 가구(家口), 한 나라 또는 일정지역에 사는 사람의 총수를 인구(人口), 입을 다물어서 봉함을 함구(緘口), 배가 안전하게 드나들고 하는 항구(港口), 들어가는 어귀를 입구(入口),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아니함을 금구(噤口), 나가는 곳을 출구(出口), 강물이 큰 강이나 호수 또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어귀를 하구(河口), 한 집안에서 같이 살면서 끼니를 함께 먹는 사람을 식구(食口),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을 이르는 말을 구밀복검(口蜜腹劍),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난다는 뜻으로 말과 하는 짓이 아직 유치함을 일컫는 말을 구상유취(口尙乳臭),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 된다는 뜻으로 말조심을 하라고 경계하여 이르는 말을 구화지문(口禍之門), 입이 급히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으로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구약현하(口若懸河), 말과 마음으로 전하여 가르침을 일컫는 말을 구전심수(口傳心授), 입과 귀의 간격이 가깝다는 뜻으로 남에게서 들은 내용을 이해하기도 전에 남에게 옮김 곧 자기의 몸에 붙지 않은 학문을 이르는 말을 구이사촌(口耳四寸), 입이 관문과 같다는 뜻으로 입을 함부로 놀려서는 안 됨을 이르는 말을 구자관야(口者關也), 살아 나갈 걱정 곧 먹고 살 근심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구복지루(口腹之累), 말로는 옳다 하면서 마음으로는 그르게 여김을 일컫는 말을 구시심비(口是心非), 남에게 들은 것을 그대로 남에게 전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천박한 학문을 이르는 말을 구이지학(口耳之學), 그 입에 오르면 온전한 사람이 없음이라는 뜻으로 누구에게나 결점만을 들추어 좋게 말하지 아니한다를 이르는 말을 구무완인(口無完人), 입으로 말하고 손으로 그린다는 뜻으로 열과 정성을 다하여 교육한다를 이르는 말을 구강지화(口講指畫)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