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한 남편 표트르 3세를 몰아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예카테리나 2세 18세기 러시아 근대화를 이끈 계몽군주이자 러시아를 유럽, 아시아, 미국 알래스카에 이르는 대국으로 넓힌 장본인 권력을 장악한 그녀는 농지 개혁, 공장 건설, 학교 설립 의무화에 힘씀
러시아 역사상 대제라고 불리는 황제는 단 두명(예카테리나 2세, 표트르 1세)
예카테리나 2세는 많은 남성 애인들이 있기로 유명했는데 4차에 걸친 테스트로 애인을 선발했다.
1차 시험은 종합건강검진. 황실 전속 의사가 꼼꼼하게 건강과 체력 상태를 체크 모든 의사가 O.K 사인을 한 경우에만 통과
2차는 지적 능력 테스트. 머리가 좋은지, 책은 얼마나 읽었고 교양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 현재의 지적 수준보다는 앞으로 똑똑해질 싹이 보이는지를 평가
3차는 실전 침실 테스트. 황제의 신임을 받는 측근들이 직접 후보자들과 합방하여 성적 능력을 시험 가끔 후보자에게 홀딱 반한 시험관이 3차 테스트를 3~4차례 되풀이해 실시했던 경우도 있었다고 함
여기까지 엄격한 심사를 통과하고 나면, 4차로 최종면접 황제와 대면하여 인성과 매력을 평가
황제의 마음에 든 후보자는 합격 축하 상금으로 십만루블(당시 러시아 고급 관리의 1년치 봉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하사받고 바로 그날 밤부터 황제의 침실에 들였다고 함
예카테리나 2세의 대담함과 영리함은 남성편력에서도 빛을 발함.
일단, 4차의 테스트를 걸쳐 애인으로 선발된 남성들을 단순히 성적 파트너로 취급하지 않음. 엄격하게 정치,사회적 교육을 받도록 하고 나랏일에 관심을 갖게 만듦
2~5년 정도가 흘러 이 남성이 어느 정도 자질을 갖추고 똑똑해졌다고 판단되면, 애인 관계를 청산하고 대신 벼슬 자리를 주어 일을 하게 함.
더 오래 함께하면 권력욕이 싹틀 것을 우려한 부분도 있고, 직접 '키워낸' 믿을 수 있는 인재를 사회 고위층에 앉혀 자신을 돕게 하려는 의도도 있었음
헤어지는 애인에게는 돈과 작위, 땅과 농노까지 두둑히 챙겨줌
여제에게 첫 딸을 낳게 한 포니아토프스키(Poniatowski) 백작은 애인 자리에서 물러난 뒤 폴란드의 왕위를 선물로 받았으며, 18개월 정도 여제의 정부였던 표트르 자바도프스키 (Peter Zavadovsky)는 헤어질 때 <현찰 5만루블+노예 4000여명+연금 5000루블>을 패키지로 받았으며 이후 국무장관까지 출세함
이쯤되니 당시 러시아의 젊은 남성이라면 누구나 예카테리나 2세의 정부가 되기를 소망했다는 이야기가 과장은 아닌 듯함
예카테리나는 죽기 전까지 약 20명의 정부를 두었으며, 애인을 갈아치운 뒤에도 옛 정부들의 처우를 소홀히 하는 법이 없었음.
심지어는 애인인 상태에서 정부가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고백하면, 관대하게 재물을 내려 떠나게 함.
헨리 8세나 루이 15세 같은 유럽 왕들이 정부에게 싫증이 나면 터무니없는 누명을 씌워 목을 자르거나 수도원에 보낸 것과는 매우 대조적.
모두 똑같이 신분을 보장해주고 재물을 내린 덕분에 갈등이 없었다고
사후에 예카테리나 2세의 업적은 인정하지 않고, 남성 편력만 부풀려 '색을 밝힌 악녀'라고 악의적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남성 군주들의 행태와 비교하면 여제의 사생활은 몹시 당당하고 떳떳하게 느껴짐
첫댓글 역시 여자는 다르고만
진짜 통치 잘 하네
존멋이다..근데 자지들은 왜저렇게 천박하지...너무 여자랑 비교가 되는데..
역시 여자는다르구만 남자놈들은 걍 트로피취급만하는데
와 차원이 다르다
초상화도 어쩐지 웃음 참고 있는 느낌이다ㅋㅋ 멋져…!!!
와 진짜 자기 사람에 대한 신의가 있네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