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차랑 교통사고 난 독수리인데 사진에는 순해보이지만 차랑 부딪치고선 공격적으로 날뛰었었다나봐.. 몇명이 모여서 사진만 찍고 나중엔 놔주셨대..
리야드 공항에 있는 분수래
이미지 검색해서 하나 캡쳐해옴… 이쁘네 분수…
월급봉투! 주소지를 고향집으로 해두셨기에 여기로 내역이 발송되었나봐 서울 신림쪽 사시다가 물가가 너무 비싸서 인천으로 내려가셨다고 들음
급여일은 매월 20일임돠 해외에서 땀흘려 일하시는 노고를 위로하기 위해 자주 안부 편지 하시기 바랍니다 당사 5층에 설치되어 있는 무료 우편함을 이용하셔도 좋습니다
아부지 이름이 비춰서 스티커 붙여놨어
본봉 257,210 시간외수당 143,017 휴년월공휴수당 50,442
******지급액계 : 450,669
의료보험 4,368 현지자금 90,872 사회보장보험 12,860
******공제액계 : 108,100
******실수령액 : 342,569
우왕 돈이다…!!!!! 당시돈으로 얼만가요?
공장 다니시던 엄마의 한달 월급이 십만원~십오만원 이라고 들었던 듯 잔업유무에 따라? ㅋㅋㅋ 이때는 냉장고도 없었을 시절이야^^ 있긴 있었겠지만 가정마다 보편되지 않을 시절.. 88년 이후에 보편되었다고 함.. 그래도 밥도 잘 해묵고 김치도 다 담궈드셨대…(그냥 냉장고 얘기하면서 tmi임 아빠는 김장 안 한듯)
아빠는 여기 계신 동안 마라톤도 하시고 식사는 호텔 식당 같은 곳에서 뷔페처럼 드셨고
기숙사는 공항내에 근무자용 기숙사 였는데 공항 내에 PF21 구역이었대 편지주소를 리야드공항 PF21이라고 적으면 도착했다네 빨래도 내놓으면 다 해주고.. 왠만한 호텔 5성급 정도였나봐 운전 면허도 없으셨을 때 사막에서 혼자서 회사차 운전하시면서 알아서 운전연수도 하셨다고.. 얼마나 운전 잘하시냐면 미끄러운 도로에서 드리프트를 하실 정도임 기가멕혀…!!! (((((따라하지 마세요)))))
같이 간 아빠 친구는 사우디 면허 없는데 운전하다가 걸려서 추방되셨는데 빵에 1개월 정도 계셨대 다시 가고 싶으셨는데 사우디에서는 전과자가 되셔갖고..(눈물) 사우디는 외국에서 딴 면허증은 인정 안했었대 지금은 모르겠다. +++++ 덧붙이자면 고향 친구긴 한데 이분은 영어도 잘하셨고 고등학교까지 나오셨고 카투샤? 그거까지 하섰는데 그래서 원래 다른 일 하러 왔다가 인원 인솔 및 통역으로 업무가 바꼈다나봐. 사람들 공항으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이런 업무를 하셨대.. 뭔가 가이드 같기도 하고? 아빠가 한국으로 다시 가실 때도 김포공항까지 데려다주셨다고 함. 글고 또 사람들 인솔해서 사우디 가셨다네 회사에서 운전하라고 시킨거지. 근데 신호위반하다가 걸려서 면허증 보여달라는 요구 땜에.. 그렇게 된거라고 하네.
지금은 안되지만 공항에 계시면서 한국인들 두루두루 도와주시고 그랬대 (세관 통과..^^;;;;ㅋㅋ)
수단 사람이랑 싸운적..? 싸움의 케미컬이라고 해야하나 그 사람이 등치 엄청 크고 키도 2메다나 되는 버스 운전사였는데 한국사람들 물로 보고 지나가는 사람 밀치고 그랬는데 몸무게 50kg도 안되는 아빠가 가서 독기어린 표정으로 밀쳤다고 함 아빠 말에 따르면 키만 컸지 운전만 하느라 하체는 부실한 사람이라 넘어지고 씩씩거리면서 돌까지 들었는데 아빠한테 던지진 못 허고 옆에다가 패대기 쳤대 뭔일 나면 자기도 책임 져야 하니까 (싸움은 못 하고 애먼 돌만 던졌단 소리.. ) 주변에 한국분들이 모여서 다들 잘했다고 그러시더래
처음 갔을 때 1년 6개월(건설), 그리고 재계약해서 3년(유지보수) 더 계셨고 나중에 IMF 터지고 나서 그 당시에 사우디에 냈던 국민연금 환급 받아서 어려울 때 잘 썼다고 함
150명 뽑는 자리에서 5명 정도 뽑았고 시험도 다 봤었대
땀 나면 바로 말라서 옷이 빳빳해지고 평균 온도가 40도다보니 주저 앉아 있다가 갑자기 확 일어나면 현기증 땜에 머리가 띠잉해서 천천히 일어나야 했대 얼마나 더운지 여쭤봤더니 더운게 그냥 더운게 아니라면서 울컥 허시더라고.. 회상하기만 해도 그 때가 너무 힘드셨나봐
외롭지 않았냐고 여쭤보니까 그냥 그렇게 살았다고 하신게 넘 맘이 찡함.. 그 시대 일 열심히 하시던 청중장년의 삶~
이때 당시에 향수랑 양탄자 같은거 사오셨어 엄마는 머리 아프고 냄새 진하다고 향수는 싫어하셔서 다 버리셨고 양탄자는 아직 본가에 있다고 함ㅡ 나 어렸을 때 엄마가 방에 걸어주셨어
리야드공항에 주로 계셨고 제다랑 타이프는 파견된 곳인디 타이프는 군사기지랑 별장이랑 유목민 밖에 없대 사우디 땅덩어리 엄청 넓은데 그때 당시 천만명밖에 없었다네
제다는 습도가 많고 타이프는 경치가 좋은데 산소가 모자라대
82년에 가셨고 1년 6개월 계약 끝나고 한국에 들어오셨다가 다시 유지보수 계약하고 나가셔서 87년 8월에 입국하셨다고 함 그 때 당시 출국 전 사상교육도 다 받으셨다고 ㅋㅋㅋ
+++ 먹을거 얘기가 긴가민가해서 다시 여쭤봤는데 조식 중식 석식 다 메뉴 달랐고 고기도 짱 많이 줬대 첨엔 끼니에 닭한마리씩 줬는데 양이 많아서 다 남기니까 그 담엔 반마리, 그것도 많아서 남기니까 1/4마리… 근데 한국인들은 그것도 많아서 남긴 분들도 많았다대.
당시에 먹고 자는 비용이 하루에 12-13만원 정도였고(현 시세xxx 그 당시 시세 ㅇㅇㅇ) 우리나라가 이 정도였다, 대우를 잘해줬다..가 아니고
미국 베텔회사가 최초에 미리 건물 및 시설을 다 지어놨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모두 거기서 먹고 자고 한담에 사용료를 모두 징수하게 하는 계약을 했었대 (사우디랑) 그래서 거기서 일하던 기업들은 완전 횡재한거지.. 아부지 왈.. 그거 숙박비랑 일체 한일개발이 부담했으면 방 한칸에 열명씩 집어넣고 자라고 했을거라고 그러더라고
그냥 우리 아빠는 운이 좋았던 케이스였오 삼성, 동산토건(삼성에서 하도 받음), 현대, 한일개발 등등 파견됐고 한일개발만 해도 인원이 천명이 넘었대
암튼 베텔회사의 식당을 드셨다고 함 그냥 막일 하신거 아니고 전기 기술자셨어~ 첨에 작성했을 때의 제목 중 노동자에서 기술자로 제목 수정함 ㅎㅎㅎ;;; 기숙사는 넓은 방에서 두명이 썼대! 베텔 회사는 먼저 건물 지어두고 일하는 분들 숙박료 및 사용료 청구하고 나중에 어느 정도 수금하면 건물을 사우디에 팔고 갔다네
첫댓글 글의 흐름이 매끄럽지 않은 건 아빠의 말을 듣는 그대로 급하게 써서 그렇슴.. 좀더 내용 붙여서 수정하구 그래서 끌올!
킹할리드 아니고 칼리드인데 잘못 썼슈!!!
사진의 사람들 얼굴표정이나 제스춰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게 느껴진다 요즘 한국남자들 사진과 다르게
헐 너무 재밌어!!!!!!!
헐 흥미롭다 풀스토리 잘 봤어 !!
완전 재밌고 흥미돋 중동에 일하러 많이 갔다던데 진짜네 아버지 너무 멋지시다
우와 진짜 재밌어!! 완전 멋진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