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착륙 랜딩 기어
내 교직은 1983년 밀양에서 시작해 10개 학교를 거쳐 2022년 2월 거제에서 교단생활을 마무리 지었다. 당시 2년제였던 교육대학을 졸업해 초등교사로 재직 중 야간강좌 대학 국문과에 입학 4년 과정을 마쳐 중등으로 옮겨 고성과 김해와 창원을 거쳐 말년 임지가 거제였다. 공립 교사는 지역 연한이 있어 퇴직을 3년 앞둔 근무지가 거제여서 그곳에서 소임을 다하고 정년을 맞았다.
생활권이 창원이라 거제에 원룸을 정해 주중 닷새는 근무지 머물다 금요일 늦은 오후 창원으로 돌아와 일요일 건너갔다. 평생 운전대를 잡지 않는 관계로 대중교통으로 다녔는데 코로나 기간 이동 제약이 많았더랬다. 연고가 없는 고장에서 이른 새벽이나 퇴근 후면 갯가 산책이나 명산을 찾아 지명에 얽힌 유래나 토박이 성씨를 알게 되고 정려비 비문을 살펴 읽고 글로도 남겼다.
거제로 건너가기 전 창원 교육단지 여학교서도 그랬지만 여가를 교정 자투리땅에 꽃을 심어 가꾸기는 그곳에서도 실천했다. 교정 진입로 경계석 주변과 잡초가 우거진 절개지 언덕을 황무지 개간하듯 봉숭아와 맨드라미를 심어 가꿔 여름에서 가으내 꽃을 피웠다. 마침 코로나 펜데믹으로 갑갑하게 지낸 날들인데 화사하게 핀 교정의 꽃으로 학생들과 동료들에 다소 위안을 안겼다.
퇴임 앞둔 이태 동안 누구에게나 경험 못한 코로나가 유행했던 관계로 여러 돌발 변수가 많았다. 항공이나 여행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중교통 통행량 감소로 시외버스도 감차 운행해 집과 근무지로 오가면서 어려움을 겪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생활권과 제법 떨어진 거제로 건너다닌 교직 후반 3년을 유배가 아닌 휴양과 안식을 가져다준 소중한 시간으로 받아들였다.
거제에서 1년을 보낸 이듬해부터 코로나가 덮쳐 종료를 예측 못한 이동 제한과 거리두기로 불편을 감수했다. 코로나 첫해 학교는 신학기 출범을 미루다 뒤늦은 학사 일정을 시작해 학생들과 화상으로 수업을 진행하다가, 등교 수업은 격주로 시도하다 전면 등교를 시행 정상화가 이루어졌다. 때로는 주말에 창원으로 돌아오지 않고 거제에 머물면서 연안 답사를 통한 견문을 넓혔다.
주말이면 교직 말년 근무한 거제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이웃 학교 지인의 승용차 동반석에서 카풀로 다녔다. 아침저녁 식사와 기본 옷가지 세탁은 현지 원룸에서 손수 해결하면서도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시간은 연안을 산책하고 명산을 등정함 3년 내내 계속했다. 근무 중 교정에서 꽃을 가꿨던 소일거리는 퇴직 이후 여가를 대비한 사회에 적응하는 생활 습관으로 다져 나갔다.
교직을 마무리 지으며 보낸 거제 생활은 퇴직을 앞둔 마음의 준비 기간으로 삼았다. 이방인에 낯설었던 두 군데 국내 굴지 조선소 활기 넘친 노동 현장은 경이로웠다. 고립되어 적적하다고만 푸념하지 않고 교정에 꽃을 가꾸거나 교내 도서관에서 교재 연구나 교양에 도움이 되는 서책을 골라 읽었다. 틈이 날 때면 새벽이건 어두컴컴해진 달빛 어스름이든 연안이나 산자락을 누볐다.
한편 고향에는 내보다 13살 연상인 큰형님이 계신다. 7남매 맏이인 형님은 아우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넘겨 소년가장이 되다시피 해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였다. 평생 농사를 지으면서 한학을 궁구해 남긴 한문 문장 36편과 칠언 절구가 170수였다. 아우는 형님에 진 마음의 빚을 문집 출간에 적은 힘이나 보탬이 되고자 틈틈이 형님의 초고를 워드로 입력하고 한자 변환 작업을 했다.
이렇게 3년을 보내고 그해 겨울에 방학을 맞아 교직 생활 39년이 종료되는 연착륙으로 인생 2막 새 출발선에 서게 되었다. 밀양에서 초등교사로 출발해 도중 중등으로 옮겨 국어를 가르치다 거제에서 정년을 맞았다. 그동안 방학이나 주말은 자연에서 한 수 배우는 학생으로 지내고 주중은 아이들 앞에 선 이중 신분이었는데, 이제 가르치는 직은 내려놓고 학생으로 다시 돌아왔다. 24.09.16<끝이 어딘지 모를 여정 따라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