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해지는 것은 추해>
유명해지는 것은 추해
상승시키는 것은 이것이 아니야
사료집을 만들고
초고를 보고 야단법석하지 말아야 해
창작의 목적은 자신을 바치는 것이지
떠들썩한 명성이나 성공이 아니야
속절없이 격언처럼 모든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건 바로 수치야
스스로를 치켜세우지 말고 살아야 해
결국에 가서 온 공간의 사랑이 자기에게로 쏠려
미래의 부름을 들을 수 있도록
그렇게 살아야 해
생애 속에 빈 구석을 남겨 두어야 하지
작품은 완전해야 해 종이 위엔
삶의 장과 절을 꼼꼼히 적어야 하지
가장자리에 주를 표시해 가며
무명 속으로 잠수해야 해
그 속에 발자취 감추어야지
마을이 안개 속에 자취를 감추듯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이
다른 사람들이 네 삶의 자취를 따라
한 뼘 한 뼘 밟아 가겠지
네 자신이 구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
무엇이 승리이고 패배인가를
너의 개성으로부터 손끝만큼도
물러나서는 안 돼
너는 살아 있어야 해, 살아 있어야 해
끝까지 오직 살아 있어야 해
<햄릿>
웅성거림이 멎었다, 나 이제 무대로 나간다
문설주에 기대어
나 저 멀리 메아리 속에서
내 생애에 일어날 일을 듣는다
밤의 어둠은 그 축 위에
천 개의 쌍안경으로 나를 향하고
오, 주여 하실 수만 있다면
제발 이 죽음의 잔을 피하게 해주시옵소서
나 그대의 단호한 뜻을 사랑하옵고
이 역할을 하는 데 불평은 없사옵니다
하나 지금은 다른 극이 공연 중이오니
이번만은 저를 면하게 해주시옵소서
하나 극의 순서는 이미 다 정해져 있어
종말은 피할 길 없어라
나는 혼자이고, 주위의 모든 것은 바리새주의에 빠져 있네
산다는 것은 펼쳐진 들판을 지나가는 것과는 다르네
<시>
시여, 너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며 목이 메어 마치는 내 말은
네가 달콤하고 낭랑한 포즈가 아니라
삼등 열차석과 함께하는 여름이고
노랫가락이 아니라 어느 한적한 변두리라는 것
너는 무더운 5월의 얌스카야 뒷골목
먹구름이 더위에 신음하며
여기저기 빗방울을 풀어내리는
보로디노 전장 최전선 세바드린 야전 진지
너는 큰소리로 울리는 후렴이 아니라
휘어지는 철길 따라 두 줄로 나뉘는 변두리
결국 역에서 집으로 스며드는
강한 인상에 놀라 입을 열지 못하는
폭우의 싹들이 무성한 포도넝쿨 속에서 흙물이 되더니
동 트기 전 이미 오래도록
각운 속으로 물거품을 튀기며
지붕 아래로 시구(詩句)를 내리니
시여, 물받이 밑에, 빈 양은 양동이처럼
빈 구체적 일상의 진실들이 놓여질 때
그때에 흐름을 보전하고, 시여
종이가 놓여졌으니 - 흘러들어라!
<겨울밤>
온 세상에 눈보라 휘몰아친다
이 땅 끝에서 끝까지
탁자에 촛불이 타오른다
촛불이 타오른다
여름밤 날벌레들 모여들어
날개로 모닥불을 치듯
마당에 눈송이들 몰려들어
유리창을 두드린다
눈보라는 유리창에
동그라미와 화살을 조각한다
탁자에 촛불이 타오른다
촛불이 타오른다
불빛이 비치는 천장에
얽힌 그림자 진다
얽힌 팔과 얽힌 다리들
얽힌 운명이
작은 구두 두 짝
마룻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탁자의 촛불은
드레스에 눈물 같은 촛농을 떨군다
눈보라 어둠 속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
회백색 어둠 속으로
탁자에 촛불이 타오른다
촛불이 타오른다
구석에서 불어온 바람 촛불을 에이고
매혹의 열기는 천사같이
두 날개를 밀어 올린다
십자 모양으로
2월 한 달 내내
눈보라 휘몰아친다
탁자에 촛불이 타오른다
촛불이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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