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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선도 종전도 없는 바이러스와의 전쟁, 이길 수 있는 무기는 지혜 그리고 면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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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면 죽는 병 ‘스페인 독감’
전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만들며 인류의 목숨을 앗아간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크고 작은 테러와 유혈사태가 만든 20세기의 참상은 고도의 살상무기에 의한 ‘인류 전멸’의 우려를 낳게 했다. 당시 인류 전멸의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요인으로 전쟁 외에 하나가 더 있었다. 전염병을 창궐시키는 바이러스가 그 주인공으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보다 더 많은 희생자를 낳게 하며 또 다른 위협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사람들이 극한의 불안감을 느껴야 했던 연유는 바이러스의 거듭되는 출현에도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인류 의료 체계가 바이러스의 유행을 종식시킬 만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으며 병원체에 대한 이해조차 못 하는 데 있었다.
인플루엔자 A형 바이러스의 변형인 H1N1 바이러스에 의해 유행한 ‘스페인 독감’은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다. 수백 년간 온 인류를 괴롭힌 천연두의 재앙을 뛰어넘으며 근대 이후 최악의 팬데믹으로 기록되고 있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만 보면 스페인에서 시작돼 창궐한 독감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럼에도 독감 명칭에 스페인이 붙는 이유는 당시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여러 국가가 보도 검열로 독감을 보도하지 않았고, 1차 세계대전 당시 중립국인 스페인은 검열로부터 자유로워 이를 집중 보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으로서는 상당히 억울한 부분이 있는데 바이러스 발원지가 조사 초기엔 미국, 영국, 중국 중 한 곳으로 추정됐다. 이러한 이유로 스페인에서는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 대신 ‘1918년 독감 범유행Pandemia de gripe de 1918’으로 지칭하거나 ‘미국 독감’ ‘시카고 독감’으로 부르기도 한다.
발병 기원에 있어서는 이견이 많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병사들이 귀향하기 위해 모여 있던 캠프에서 발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3일 열병’ 이란 이름처럼 짧은 증상 기간 이후 단순한 ‘감기’ 증상을 지닌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전파하며 유례없는 전 세계적 감염 사태를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미군이 귀환하면서 1918년 9월에는 이 독감이 미국 전역으로 침투한다. 9월 12일 미국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에 2만4,000명의 미군이 독감으로 죽고, 총 50만 명의 미국인이 생명을 잃었으며 1919년 봄에는 영국에서도 15만 명이 사망했다.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고 있을 무렵 미국 캔자스주 캠프 펀스턴에 설치된 구급병원의 광경. ⓒ조선일보
총알을 앞지르는 바이러스의 살상력
1918년 ‘킬 군항의 반란Kieler Matrosenaufstand’으로 독일 제국이 무너질 무렵 황제 빌헬름 2세Wilhelm Ⅱ가 스페인 독감에 걸렸으나 빠르게 완치되었다. 이어 마하트마 간디, 레이먼드 챈들러, 월트 디즈니, 프란츠 카프카, 존 퍼싱, 프랭클린 루스벨트, 우드로 윌슨도 스페인 독감에 걸렸지만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실레, 막스 베버, 기욤 아폴리네르, 프리드릭 트럼프, 베네딕토 15세 등은 스페인 독감의 그물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망했다.
당시 세계 인구가 약 17억 명이었는데 감염자는 약 5억 명에 달했으며, 사망자는 최소 1,700만 명에서 최대 5,000만 명(총 감염자의 3~9%, 전체 인구의 1~3%)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사망자 수가 이처럼 들쭉날쭉한 이유는 전장에서 사망한 군인과 합병증 사망자를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행정력 미비와 정치적 혼란으로 인도, 중국, 러시아 등 여러 나라의 정확한 통계가 빠진 상황이었다.
사망자 수의 오차 범위가 커 정확한 피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당장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망한 900만 명에 비해 적게는 2배, 많게는 5배에 이르는 점에서 스페인 독감의 기세가 어떠했을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일부 역사 연구가는 이와 같은 스페인 독감의 폐해가 제1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앞당기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내리기도 했다.
에드바르 뭉크 1919년 작. 오슬로 노르웨이 국립 미술관 소장
스페인 독감, 식민지 조선을 휩쓸다
지금처럼 항공·해운의 이용도가 활발하지 않았던 100여 년 전에도 바이러스는 감염 범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머나 먼 오세아니아의 사모아와 극동의 조선 또한 스페인 독감의 유행 경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조그만 섬나라 사모아는 인구의 90%가 감염되어 30%가 사망했고, 그린란드와 알래스카의 이누이트 마을 몇 개도 몰살의 운명을 겪었으며, 이탈리아 반도의 내륙 국가 산마리노는 이 감염병에 의해 국가 멸망의 위기까지 갔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는 ‘무오년戊午年 독감’이라고 불렸으며 1918년 가을부터 겨울에 이르기까지 한반도 전역에서 대유행했다. 조선총독부 통계 연보에 의하면 당시 조선인 1,678만3,510명 중 절반에 가까운 742만2,113명(44%)이 감염되어 13만9,128명(전체 감염자의 1.87%, 전체 인구의 0.83%)이 희생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일본의 징집이 있기 전이어서 조선인의 감염은 제1차 세계대전의 격전지인 유럽에서 이뤄졌다기보다는 참전했던 일본군이 조선으로 돌아오면서 유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감염률은 상당했다. 1918년 9월 들어 본격적으로 환자가 나오기 시작했으며, 10월에 유행이 절정에 이르렀다. 각 학교가 휴학했으며 단체와 관청이 업무를 보지 못했다. 11월 개성시에서는 사망률이 평소의 7배에 이르렀고 충청남도에선 유독 기승을 부려 예산군과 홍성군에서는 수천 명이 사망해 시신을 처리할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으며 추수를 못 한 논이 절반 이상이었다고 한다.
같은 달 평양에서도 인구의 절반이 감염됐고, 집배원들이 감염되어 업무가 마비된 우체국이 속출했다. 당시 《신동아》의 표지 헤드라인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스페인 독감, 식민지 조선을 휩쓸다. 다음 해 3·1 운동이 발발한 원인에는 조선총독부의 무능한 방역 대책도 한몫했다. 자신들의 무능으로 수많은 조선인이 사망했지만 조선총독부는 오히려 조선인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행태를 보이며 한창 고조되던 반일 감정을 부채질하기까지 했다.
스페인 독감 이후… 아시아 독감, 홍콩 독감 출현
이렇게 전 세계를 휩쓸며 맹위를 떨쳤던 스페인 독감도 총 3번의 대유행과 몇 차례의 소규모 유행 이후 발병 이듬해인 1919년 4월 즈음해서는 상당 부분 종식되었다. 어떻게 해서 종식된 것인지는 지금까지도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집단 면역 형성, 유전자 변이, 검역 격리와 방역 효과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1920년 3월, 일부 지역에서 4차 웨이브가 있었다. 주로 미국, 유럽, 남미 등지에서 심각했고 일본에서도 1920년 3월까지 유행했다. 디트로이트와 밀워키 등 미국의 주요 도시에선 1918년보다 더 많은 사망자가 나오기도 했다.
스페인 독감 이후에도 세계 각지에선 독감 바이러스 유행으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아시아 독감Asian flu’은 1956년 중국에서 발생했으며, 1958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유행해 약 2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홍콩 독감Hong Kong flu’은 H3N2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아종으로, 1968년 7월 홍콩에서 발병해 해상교역망을 타고 동남아시아와 유럽 일대로 전파됐으며, 이듬해인 1969년까지 약 100만 명의 사망자를 낳았다. 홍콩섬 내부에서만 약 50만 명이 감염되었는데, 이는 당시 홍콩 전체 인구의 15%에 달했다.
인플루엔자A H1N1(신종플루)은 2009년 3월 멕시코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강타한 독감으로, 한국에서도 크게 유행했다. 비누로 충분하게 거품을 내 손을 씻는 것과 여러 가지 소독 방법을 활용하는 안전 수칙이 정착된 것도 이즈음이다. 위험도는 일반적인 인플루엔자 감염증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수준이지만, 전염성이 매우 높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망자를 냈다. 이후 인플루엔자A는 유행성 독감의 하나가 되어 이따금 찾아오곤 하지만 백신과 특효 치료제 타미플루 덕분에 이전처럼 치명적이지는 않게 됐다.
2022년 8월 17일 오전 서울 송파구 보건소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받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조선일보
스페인 독감 재림! 코로나19 유행!
스페인 독감 출현 이후 100년이 흐른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출현으로 스페인 독감의 재림이 이뤄졌다. 팬데믹의 정황과 규모가 유사했으며, 정확히 100년 만에 일어났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19는 2019년 11월 17일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시작해 2020년 1월 이후 세계 전역을 강타하며 대유행을 일으킨 호흡기 증후군이다. 스페인 독감 이후 인류에게 가장 큰 타격을 입힌 바이러스로 사스SARS의 원인인 SARS-CoV와 유사한 SARS-CoV-2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115개 이상의 국가에서 감염자가 11만 명을 넘어선 2020년 3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를 범유행 전염병으로 분류했다. 이후 2023년 5월, 유행 2년 2개월 만에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가 해제됐다.
코로나19는 흑사병, 3차 콜레라 대유행, 스페인 독감에 이어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간 감염병으로, 지금까지 등장했던 전염병과는 비교할 수 없는 폐해와 후유증을 남겼다. 100년 전 20세기와는 달리 지구 전체를 잇는 인터넷 등 다양한 정보망이 연결돼 있고 방역에 대한 개개인의 효율도 높아졌지만 코로나19의 확진 규모와 사망자 수는 엄청났다. 약 7억 명의 확진자에 이어 690만 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며, 주기적 유행(엔데믹)이 된 이후에도 확진자와 사망자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스페인 독감의 위력이 코로나19를 능가한다고 진단한다.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상당해 교통수단이 미비한 그 시기에도 5억 명이나 되는 감염자를 발생시켰으며, 그중 1,700만 명을 사망하게 했다. 이는 공식적인 코로나19 사망자 수인 690만 명의 2.5배나 되는 수치다. 당시 세계 인구가 현재의 4분의 1에 불과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망자 규모가 비율상으로는 10배가 넘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바이러스 감염병 속에서도 인간의 강한 생명력은 늘 그 능력을 발휘하곤 한다. 공습 사이렌이 수시로 울리는 전쟁 도시에 갇혀 스페인 독감에 걸린 한 여인이 용케 살아나 이번엔 100년 후에 찾아온 코로나19에도 감염된 것이다. 100세가 훨씬 넘는 고령이지만 용감하게도 다시 일어나 건강하게 생활해 나간다는 토픽이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2022년 9월 23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사령부에 ‘미 해군의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CVN-76)’이 정박한 가운데 승조원이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조선일보
백신·방역·격리보다 면역 증강
스페인 독감이 유행하던 1918년의 상황을 다룬 책과 다큐멘터리를 보면 당시 사람들이 2020년의 코로나19를 겪은 후세들과 바이러스에 대한 인식과 대응에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다만 당시에는 미국과 유럽이 마스크 착용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는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감염률이 치솟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와중에도 마스크를 외면했던 미국인들도 100년 전에는 마스크를 써야 살아남는다는 인식이 매우 강했다. 당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벌금을 내거나 유치장에 갇혀야 했다. 사회적 측면에서는 닮은 면이 있지만, 병리학적 측면에선 이렇다 할 관련이 없다. 스페인 독감은 독감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이기 때문이다.
이제 인플루엔자는 믿을 만한 백신도 있고, 치료약도 개발된 상태지만 인류는 이 변종 바이러스에 여전히 쩔쩔매곤 한다. 매년 5억~10억 명이 감염되어 수만에서 수백만, 많으면 천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발생시킨다. 일반 감기와는 차원이 다른 치명성을 갖고 있다. 게다가 잊을 만하면 새로운 유형의 인플루엔자가 나타나 팬데믹을 일으키며 인류를 새로운 위기로 몰아넣는다. 천연두가 백신으로 박멸된 지금은 인플루엔자가 인류의 명백한 주적으로 떠올랐는데 박멸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더 무서운 것은 전 세계적인 토양 미네랄 고갈로 사람의 인체 또한 심각한 미네랄 부족증을 앓고 있다는 데 있다. 곡물과 과일, 채소가 자라는 땅이 연작과 증산으로 인해 힘을 잃게 돼 거기서 자라는 열매 또한 영양소가 턱 없이 부족한 함량 미달의 음식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미네랄 고갈 현상은 인류의 면역력 결핍으로 이어져 바이러스의 침공을 막거나 이겨낼 수 있는 정상적인 면역력을 보유한 사람의 숫자를 대폭 감소시킨다. 해결책은 바이러스의 침공을 백신과 방역, 격리 등으로 해결할 게 아니라 이들과의 공존이 두렵지 않을 면역력을 정상화하는 데 있다. 그것만 제대로 갖춘다면 우리는 스페인 독감과 코로나19를 피하고 싶은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해가 거듭할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는 바이러스의 폐해를 다스릴 ‘참의료’ 차원의 지혜를 발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