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순종; 능동적(적극적), 수동적(소극적) 순종이란?
1. 능동적 순종을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합니다.
특히, 서철원 교수님, 그리고 서철원 교수님을 따르는 정이철 목사님은 능동적 순종이 잘못된 신학의 결과라고 합니다.
서철원 교수님과 정이철 목사님은 ‘능동적 순종’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없다고 하는데, 사실 두 분들도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아담이 영원한 생명을 가진 존재라고 말하는데요.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아담을 죽을 수도 있고, 계속 살 수도 있는 ‘가변적 존재’로 보는 것과 달리, 자신들도 성경에 없는 단어로 말하고 있기에 방법론적으로 같은 우를 범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철원 교수님은 바빙크가 잘못된 신학을 하였고, 이런 신학이 후대 루이스 벌코프에게, 벌코프 신학이 박형룡 박사님에게 전수되어 한국에 들어 오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2. 그렇다면, 여기서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승구 교수님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온전한 순종이 두 개, 즉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으로 설명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완전한 순종이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부터 청교도 개혁신학에 있었는데요.
3. 그럼 다시 종교 개혁때부터 17세기 전수된 능동적 순종은 잘못된 신학일까요?
1)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어휘는 사실, 1646년의 웨스트민스터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에서는 ‘완전한 순종과 죽음’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11장 (칭의) 1항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그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but by imputing the obedience and satisfaction of Christ unto them),
능동적 순종 내용이 나오고요.
11장 3항에는 이렇게 말하는데요.
‘그리스도께서 그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말미암아’(by his obedience and death)
수동적 순종 내용이 나오지요.
물론 정확히 문자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개념, 용어와 일치하는 단어 혹 문자가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지 못할까요?
예를 들면, “삼위일체”라는 용어도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세 위격을 가진 한 분 하나님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일반계시”와 “특별계시”라는 단어도 성경에 없지만, 아주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2)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은 1658년의 사보이 선언 10장 칭의에서 ‘모든 율법에 대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을 전가함으로써’(by imputing Christ’s active obedience to the whole law, and passive obedience)라고 등장하였습니다.
3) 이런 사상은 대표적인 회중파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에게서도 발견했습니다.
4) 특히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의 설립 주역인 그레샴 메이첸 (J. Gresham Machen) 박사님이 능동적 순종에 대해서 강조하였고요.
5) 조직신학자 존 머레이의 저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4. 그럼 왜 능동적 순종이라는 신학은 부정 되어가고 있을까요?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자, 김재성 교수님은
“새관점”을 주장하는 신학자들은 의로움의 전가 교리의 기초가 되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거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핵심 교리인 칭의론과 후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자들이 더욱 더 정교하게 발전시킨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교리를 더 잘 연구하고 활용하는 것이 교회에 유익다고 보았습니다.
서철원 박사님은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어휘’를 스콜라적 어휘라고 제시했습니다. 스콜라적 어휘의 근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윤리학, 형이상학이라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능동 지성과 수동 지성’이라는 어휘가 있는데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이 체계적이지만, 성경 이해를 위한 구조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5. 칭의와 전가 교리에 대해서, 종교개혁 이후로 로마 카톨릭 신학에 대항하여,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통한 구원을 말하는 개혁주의 정통신학이었습니다. 이런 신학은 종교개혁 이후 지금까지 놀라운 신학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즉, 루터와 칼빈을 위시해서, 위의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칭의교리와 의로움의 전가교리를 공통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이런 능동적 순종, 수동적 순종을 거부할 이유가 없습니다. 서철원 교수님은 능동적 순종을 말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이었다가, 신적인 자격을 얻는다는 자유주의적 신학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능동적 순종은 이미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이시고, 구속의 과정 중 율법을 다 이루시고, 구속의 주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을 말하는 것이지요. 인간에서 신으로 승격 된다는 자유주의 신학이 아니지요!
김영한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