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우지락(雲雨之樂)
구름과 비의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초혜왕(楚惠王)이 운몽(雲夢)에 있는 고당(高唐)으로 갔을 때 꿈속에서 무산(巫山) 신녀(神女)와 만나 즐겼다는 옛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남녀 간의 육체적인 관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雲 : 구름 운(雨/4)
雨 : 비 우(雨/0)
之 : 갈 지(丿/3)
樂 : 즐길 락(木/11)
(유의어)
무산지몽(巫山之夢)
본 뜻은 본래 운우(雲雨)는 구름과 비를 내리는 하늘의 여신(女神)이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밤에는 비가 된다는 데서 온 말이다. 세상의 사물을 음(陰)과 양(陽)으로 가르는 동양에선 구름은 양(陽)이요, 비는 음(陰)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조화를 이루는 즐거움을 말한다.
바뀐 뜻은 운우(雲雨)는 본래 구름과 비를 관장하는 여신의 이름이었으나, 구름이 비로 변하여 대지를 적시는 것을 음양(陰陽)의 조화에 비유하여 이를 남녀 교합(交合)의 즐거움으로 표현한 것이 운우지락(雲雨之樂)이다.
구름과 비를 가리키는 운우(雲雨)는 비구름이 농사에 도움을 주니 혜택을 입었을 때 비유하는 말도 된다. 여기에서 멀리 나아가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을 더 많이 뜻하게 된 것은 고사를 모르고서는 상상이 되지 않는다.
중국 사천(四川)성의 동부 무산(巫山)에 살았던 신녀(神女)가 먼저 나오고 그와 꿈에 만났던 초(楚)나라 왕이 등장한다. 신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된다는 조운모우(朝雲暮雨)의 변화를 가졌다고 하여 이 말이 나왔다고 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초)나라의 시인 송옥(宋玉)의 '고당부(高唐賦)' 서문이 양(梁)나라 소통(蕭統)이 엮은 시문집 문선(文選)에 실리면서였다.
전설 속 삼황(三皇) 중에 신농(神農)씨의 셋째 딸 요희(瑤姬)가 그 신녀이고, 회왕(懷王)이 그와 사랑을 나눈 초왕이었다. 서문에 실린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보자.
회왕의 아들인 양왕(襄王)이 송옥을 대동하고 오늘의 동정호(洞庭湖)라는 운몽(雲夢)의 누대에서 놀고 있었다. 송옥은 초나라 충신 굴원(屈原)의 제자로 미여송옥(美如宋玉)이란 비유를 남길 정도의 수려한 궁정시인이었다.
일행이 고당관(高唐館)을 바라보았을 때 그 위에만 구름이 몰려 있고 갑자기 하늘로 솟구치다 또 모양이 바뀌는 등 변화가 끝이 없었다. 왕이 이상하게 여겨 송옥에게 물어보니 그것이 바로 조운(朝雲)이라며 그 사연을 설명했다.
옛날 부왕이 고당에서 노닐다가 피곤하여 낮잠을 자게 되었는데 꿈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자기는 무산에 사는 여인이라며 왕께서 노니신다는 말을 듣고 잠자리를 받들고자 왔다고 했다.
꿈속에서 잘 즐긴 왕에게 여인은 떠나면서 말했다. "저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아침저녁으로 양대 아래에 있을 것입니다(旦爲朝雲, 暮爲行雨, 朝朝暮暮, 陽臺之下)."
아침에 깨어난 왕이 무산 쪽으로 보니 아름다운 그름이 걸려 있어 그곳에 사당을 짓고 조운묘(朝雲廟)라 했다는 이야기다. 양대(陽臺)는 해가 잘 드는 누대를 가리키는데 남녀의 은밀한 사랑도 뜻한다.
무산 신녀와의 꿈속의 사랑은 뜻하지 않았는데도 이뤄져 변화하는 비와 구름과 함께 무수한 관련 성어를 남겼다. 무산몽(巫山夢), 무산우(巫山雨), 무산운(巫山雲)에서부터 무산지몽(巫山之夢), 무산지락(巫山之樂), 무산운우(巫山雲雨), 운우지몽(雲雨之夢), 운우지정(雲雨之情), 운정우의(雲情雨意) 등등이다.
우리의 풍자시인 김삿갓(金笠/ 김립)이 이 운우의 묘사에 빠질 수가 없다. 남녀의 정은 싫지 않고 끝이 없다는 것을 야하지 않고도 절묘하게 나타냈다. "해도해도 싫지않아 다시 하고 또 하고(爲爲不厭更爲爲), 안해안해 하면서도 다시 하고 또 하네(不爲不爲更爲爲)."
■ 운우지정(雲雨之情) 이야기
조선시대때 대학자를 말한다면 누구나 퇴계 이황과 율곡 이이를 말한다. 그런데 두 성현의 면면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예를 들면 퇴계 이황은 두향이란 애첩과 깊은 사랑을 나누었으며 율곡 이이는 여자를 멀리하는 듯하면서도 첩실을 많이 두었다고 한다. 퇴계는 30대 중반에 아내와 사별한 뒤 몇 해가 흐른 뒤까지도 혼자 지내고 있었다. 때문에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은 하나같이 퇴계에게 새장가 들기를 권유했다.
퇴계 역시 손님을 접대할 때나 제사를 치를 때나 안주인의 손길이 필요한 것을 절감하고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아내감을 구하기도 민망하여 속으로 걱정만하고 있던터에 어느날 제자가 인사차 찾아 왔다가 불쑥 하는 말이
"사모님이 돌아가신지도 몇해가 지났으니 이제 스승님도 새 마님을 들이셔야 될텐데 걱정입니다."
퇴계는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허허 ~ 글쎄나.. 자네가 참한 규수 하아 구해주면 내 새장가를 들지. ㅎㅎ"
제자는 뜻밖의 대답에 조금 놀라며 되물었다. "정말이십니까? 스승님 진정 제가 중매를 하오리까?"
"허허, 그렇다니까 말로만 그러지 말고 어디 참한 규수가 있으면 중매를 서게나~"
"그렇다면… 아랫 마을에 사는 권진사 어른을 아시는지요?"
"권 진사? 알다마다!!"
"그분에게 나이가 좀 들긴 했어도 시집 안간 딸이 하나 있다고 하던데 .."
퇴계는 선뜻 내키는듯 되물었다. "그래? 올해 몇살이라고 하든가?"
"스물여덟이라고 하옵니다,"
"음.. 나이가 꽤 들었군! 그런데 어째서 아직까지 시집을 못 갔다 하든가?"
"흠이 조금 있다고 하던데요?"
퇴계는 조금 긴장하며 물었다. "흠이 있다고?"
제자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좀 모자라고 주책인 면이 있다고 하더이다."
퇴계는 웃으며 말했다. "허허, 그래? 좀 모자라는것이 잘났다고 건방떠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겠는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제가 당장 중신을 서겠습니다 스승님~"
"허허 이사람 급하긴 ~~ "
퇴계가 별 대답 없이 입가에 미소만 짓고 있자 제자는 그 모습을 승낙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길로 권진사를 찾아가 의중을 물어보았다
권진사는 그렇지 않아도 딸자식이 나이가 차도록 시집을 못간 것이 못내 걱정스럽던 터에 퇴계같은 고명한 학자가 자신의 딸을 거두어 준다고 하자 두말없이 흔쾌히 승낙했다.
그렇게 해서 퇴계는 제자의 중신으로 권진사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서툰 솜씨나마 부지런히 집안을 꾸려 나가던 권씨 부인은 어느날 남편 퇴계의 두루마기를 손수 지어 내놓았다.
"아니 이것을 부인이 직접 만들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서방님!!"
퇴계는 혼례를 올리기 전부터 아내가 좀 모자란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새장가를 들고 나서 처음으로 새옷을 받고 보니 여간 기쁘지 않았다. "수고했소 정말 고맙구려~"
퇴계는 부인이 반푼이긴해도 기특한 마음까지 들었다. 권씨 부인은 부끄러운듯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어서 입어보세요 ~"
퇴계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개켜진 두루마기를 펼쳐 들었는데 그 순간 퇴계는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권씨 부인이 지은 두루마기의 소매가 한쪽은 길고 한쪽은 짧을뿐 아니라 앞깃도 짧고 또 엉뚱한 자리에 붙어 있어 도저히 입을 수가 없었다.
퇴계는 어이가 없어 껄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그리도 좋으십니까? 서방님?" 권씨 부인은 퇴계의 속을 알지도 못하고 그렇게 말하며 따라 웃었다. 퇴계는 아무말 않고 그 두루마기를 입으며 또 한번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헌데 이런 일이 있는지도 모르는 제자들은 "우리 스승님은 정말 뭐가 달라도 다르시구나! 저런 반푼이 사모님을 맞아 애지중지 하시니 말이야!" "그래 맞어~ 저런 반푼이 사모님이 무얼 알겠어? 그런데도 저렇게 열심히 아끼고 계시니..." 퇴계의 제자들은 의아해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퇴계의 제자들과 율곡의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서로 자기의 스승이 당대 최고의 도덕군자(道德 君子)라고 우기고 있었다.
양측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 결론이 나질 않자 한사람이 제안을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두스승님은 당대의 최고의 성현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우리는 이분들의 낮의 생활상만 눈여겨 보았지 밤의 생활상은 본적이 없으니 우리 두분의 밤 생활상을 본 연후에 어느분이 훌륭한 분인가를 가리기로 함이 어떤가?" "그거 아주 좋은 생각이네!"
그렇게 해서 두분 스승님의 방사(房事)현장을 엿보기로 하고, 다음날 밤 퇴계와 율곡의 제자들은 율곡스승님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가 율곡의 부부 관계를 훔쳐 보았다.
근엄한 율곡스승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부인!! 아랫목이 따뜻하니 어서 옷을 벗으시지요~" 곧이어 사모님이 겉옷만 벗고 속옷은 입은채 자리에 누웠다. 이어서 율곡스승이 바지 고이춤만 내리더니 "어험.." 하며 한마디 헛기침을 하시며 점잖게 거시기를 꺼내 조용하게 아주 조용하게 넣다 뺏다를 거듭하며 방사일을 끝내는 것이었다.
이를 숨죽이고 보던 양측 제자들은 "방사행위(房事 行爲)도 역시 도덕군자 처럼 하시는군! 아 정말 대단하신 스승님 이구나" 했다.
그 다음날 제자들은 이번에는 퇴계스승의 환락 현장으로 갔다. 아뿔사, 퇴계스승은 율곡스승과는 달리 완전 나체가 되도록 부인의 옷을 모조리 벗기고 자신도 홀라당 벗더니 두 나체가 이리딩굴 저리딩굴 하면서 전기(前技)를 시작하는데, 유두(乳頭)를 빨고 귓밥을 빨고 혀와 혀끼리 설교(舌交)를 하고 이어 옥문(玉門)과 계관(鷄冠)을 간지럽히자 좀 모자라는 권씨부인은 몸을 요리조리 비틀고 교성(嬌聲)을 지르기 시작하더니 비로소 용두(龍頭)를 옥문(玉門)에 집어 넣었는데 요란 뻑쩍지근 했다.
천둥과 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며 업치락 뒷치락 성난 파도가 따로 없었다. 좀 모자라는 권씨부인은 허리가 활처럼 휘어지고 요분질을 치는데 좌삼삼 우삼삼 숨이 끊어질듯 교성은 난무하고 희열에 넘쳐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였다.
이런 광란(?)의 현장을 훔쳐본 퇴계와 율곡의 제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후 정신을 차리고 나니 한쪽(율곡)은 희희낙낙(喜喜樂樂)이요, 한쪽(퇴계)은 똥바가지를 뒤집어 쓴 몰골이었다.
다음날 낙심한 퇴계 제자들은 퇴계스승님 집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스승님 저희들은 오늘 하직 인사차 왔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저희는 스승님께서 당대 제일의 도덕군자라고 생각하고 스승님을 존경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도무지 얼굴을 들고 다닐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란 퇴계스승이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자세히 얘기해 보거라."
"죄송스럽게도 저희들이 어젯밤 스승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침을 발라 문 창호지를 뚫고 스승님의 방사(房事)장면을 엿보았습니다."
퇴계의 제자들은 그간 율곡의 제자들과 함께 보았던 이야기를 해드리고 스승님의 난잡한 방사 장면에 크게 실망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제자들의 얘기를 다 듣고 난 퇴계선생이 말했다. "어허! 율곡이 그러하든가? 그렇다면 율곡은 후손이 귀하겠구만!"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네들은 구름도 바람도 없는 맑은 하늘에서 비가 오는 것을 본적이 있는가? 먹구름이 몰려오고 천둥과 번개 그리고 바람이 불어와야 비로소 비가 내리거늘... 자네들은 조용한 하늘에서 비가 내릴수 있다고 생각하는 겐가?"
제자들은 퇴계의 말에 한마디 말도 못하고 잠자코 귀를 기울였다. "내가 부부간의 잠자리에 있어 난잡하다고 할지 모르나 음양이 교합하는데 어찌 조용할수 있겠는가? 오히려 율곡이 그리 점잖게 교합을 한다는 것이야말로 음양상생의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모든 만물은 음양이 합하여 생성되거늘 혹여 율곡에게 후사가 없을까 걱정이 되는구나."
그러면서 퇴계는 음양상생의 이치를 들어 남녀의 성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운우지정(雲雨之情)이란, 구름과 비가 나누는 정이라는 뜻으로 남녀의 정교(情交)를 이르는 말인데, 중국 초나라의 회왕(懷王)이 꿈속에서 어떤 부인과 잠자리를 같이 했는데 그 부인이 떠나면서 자기는 아침에는 구름이 되고 저녁에는 비가 되어 양대(陽臺) 아래에 있겠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것이다.
자고로 예나 지금이나 큰비가 내리려면 먹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불고 천둥번개가 요란해야 하는법 그것이 천지간의 자연적인 섭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부부 관계를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했느리라!
이 말을 들은 퇴계의 제자들은 운우지정(雲雨之情)의 새로운 참뜻을 알게 되었다.
또한 "인간은 아무리 도덕군자라 해도 부부관계에 있어서는 낙(樂)이 있어야 하는 법, 자네들도 알다시피 반푼인 우리 마누라가 그런 낙(樂)도 없으면 어찌 살겠는가? 낙(樂)중에서 으뜸 낙(樂)이 운우지락인 것을, 부부관계에서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느끼는 것은 자연이 주는 크나큰 복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천지간에 교합의 선물이니 많이 느낄수록 좋은 것이므로 자네들도 많이 느끼며 살게나."
그러면서 "여자는 자고로 밤이 즐거워야 탈이 없는 법, 인간은 아무리 반푼인 사람이라도 굼뱅이도 딩구는 재주가 있듯 저마다 한가지씩은 장점이 있는 법이거늘, 아마도 우리 마누라는 반푼이지만 색(色)에는 남다르게 뛰어난 재주가 있나 보네! 껄껄껄..."
그래서 퇴계의 제자들은 또한가지 운우지정(雲雨之情)에 이어 운우지락(雲雨之樂)까지 익히게 되었으며 인간은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저마다 재주가 있음을 배웠다고 한다.
하여 옛 시조에, 봉린지란(鳳麟芝蘭) 천생연분(天生緣分) 운우지정(雲雨之情)이라 했다. 즉 봉황과 기린처럼 잘난 남자와 난초처럼 어여뿐 여인이 하늘이 정하여 준 연분으로 만났으니, 먹구름이 세찬 비를 만나듯 진한 정분을 나누라는 뜻이라.
그래서 그런지 퇴계 선생은 부인을 둘이나 두었으며 말년에는 기생 두향(杜香)과 뜨거운 사랑을 나누었으며 율곡 선생은 후손이 귀했다고 한다.
하생기우록(何生奇遇錄)
조선 중기에 신광한(申光漢)이 지은 한문단편소설집 '기재기이(企齋記異)'에 실려 있다. 목판본은 1553년(명종 8)에 간행된 고려대학교 만송문고(晩松文庫) 소장본 '기재기이'에 실린 것으로 총 21면으로 되어 있다. 필사본은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이마니시문고(今西文庫) 소장본 '기재기이'에 실린 것으로 총 19면으로 되어 있다.
하생기우록(何生奇遇錄)의 주인공 하생(何生)은 태학생으로 선발되어 과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는 낙타교(駱駝橋) 아래에 있는 복사(卜師)의 집을 찾아가 점을 쳤다. “장차 부귀를 누리나 금일은 불길하다.”는 점괘를 얻었다. 그 날은 중추절(仲秋節)이었다.
하생(何生)은 시름에 겨워 길을 헤매다가 한 소옥(小屋)을 찾아 노숙을 청하게 되었다. 그 집에는 한 절세가인이 시비(侍婢)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도 자신의 꿈 이야기를 말하며 자신과 하생(何生)이 천생연분임을 말하였다. 그 날 밤에 두 사람은 운우지락(雲雨之樂)을 이루었다.
새벽이 되자 그녀는 자신이 이미 무덤 속에 있고 천상에서 상제(上帝)의 명으로 인연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내려왔으며, 하생과 연분이 있어 가우(佳偶)를 맺었으니 자신을 잊지 말아 달라고 하면서 신표로 금척(金尺) 하나를 주고 이별하였다. 두 사람이 서로 헤어져 돌아서니 무덤 앞이었다.
여인의 친정 노복들이 하생이 금척을 가진 것을 보고 무덤을 도굴한 도둑으로 몰았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여인의 부모를 만나 겪은 일을 말하고 황급히 무덤을 파헤치니 여인이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삼생지연(三生之緣)을 말하고 부부가 되었다. 그 뒤에 하생은 등과하게 되었다. 이들은 40여 년을 해로하고 행복한 삶을 마쳤다.
하생기우록(何生奇遇錄)의 죽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고 환생하는 대목은 한문소설의 전기성을 잘 보여주며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와 유사하다. 무덤 속에서 여인의 영혼을 만나 인연을 맺는다. 여인의 말에 따라 금척을 매개로 현실 속에 다시 복귀한다. 무덤을 파헤쳐 여인을 되살려 내고 살아난 여인과 다시 부부의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결구(結句)로 되어 있다.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는 양생(梁生)이 왜구의 난에 죽은 여인의 영혼을 만나 개령동(開寧洞) 무덤 속에서 가약을 맺는다. 이별의 신표인 은잔(銀盞)이 매개되어 보련사(寶蓮寺)에서 여인의 영혼을 다시 만나 환희를 맛본다. 그러나 그들은 유명이 달라 끝내 이별하게 된다.
반면에 하생기우록(何生奇遇錄)은 현실적 부부의 인연을 맺어 행복을 누리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정혼한 날에 전의 복사집을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는 결말에서 처럼 복자(卜者)의 액자(額字)가 매우 환상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밖에 사랑과 이별의 시도 묘사가 매우 뛰어나다. 훌륭한 염정소설(艶情小說)이다.
절절함을 노래한 시
중국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에는 심원(沈園)이란 명소가 있다. 중국 남송시대 때 부자였던 심씨 소유의 아름답고도 거대한 정원인데, 이 정원 입구에는 계란 모양의 둥근 바위가 둘로 쪼개져 있는 조형물이 서 있다. 가서 살펴보면 ‘단운(斷雲)’이란 행서체 글자가 한자씩 새겨져 있다.
이게 무슨 뜻일까? 바로 부부간의 정을 뜻하는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끊어버린다는 뜻으로, 사랑하는 부부였지만 헤어지지 않을 수 없는 슬픈 사연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곳은 바로 중국 남송시대의 유명한 애국시인 육유(陸游, 1125~1210)의 애절한 사랑의 일화가 서려 있다.
(陸游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같이 성장한 당완(唐婉)이라는 이종사촌 동생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소꿉친구로 지내다가 미모와 재색을 겸비한 규수로 성장하자 둘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육유의 나이 20세 때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시어머니는 육유가 과거시험에 자꾸 낙방하자 며느리 탓이라 여기게 된다.
자식도 못 낳고, , 이런 상황들이 모두 며느리를 잘못 들여 생긴 일이라고 생각한 시어머니는 급기야 둘을 강제로 떼놓는다. 모친의 성화에 시달리다 못한 육유는 이혼을 가장하고 인근에 당완을 숨기고는 몰래 만나는 행각을 이어가지만 곧 들통이 나고, 결국 모친이 정해준 왕씨 성의 여인과 재혼을 한다. 어쩔수 없게 된 당완도 친정어머니의 권유로 조사정이라는 사람에게 개가(改嫁)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렇게 헤어진 두 사람이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데, 육유가 27세 되던 봄이었다. 육유는 심원에 놀러왔다가, 같은 날 봄나들이를 온 당완을 만나게 된다. 당완의 낯빛이 변하는 것을 본 남편 조사정은 사정을 물었고, 당완이 사실대로 말하자 조사정은 대인의 풍모를 보이며 술과 안주를 준비한 뒤 육유를 초대해 두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그러나 서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육유는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되는데, '차두봉(釵頭鳳, 봉황비녀)'이라는 시를 벽에 써두고 떠난다. 이듬해 이 정원에 다시 놀러온 당완은 이 시를 보고 같은 제목의 시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컸는지 시름시름 앓다가 일 년 뒤 세상을 떠나고 만다.
당완의 죽음을 알게 된 육유는 큰 상처를 지닌 채 시간이 날 때마다 이곳 심원을 찾아와 당완을 그리는 시를 지었는데, 그중 유명한 작품이 75세 되던 해 지은 '심원이수(沈園二首)'라는 시다.
沈園 / 陸游
其一
城上斜陽畵角哀(성상사양화각애)
성곽에 노을이 지니 들리는 뿔피리 소리 애절한데,
沈園非復舊池臺(심원비복구지대)
심원은 옛날의 연못과누대로 돌아갈 수 없구나.
傷心橋下春波綠(상심교하춘파록)
서로 마음 아파했던 그 다리 아래 봄의 물결은 푸른데,
曾是驚鴻照影來(증시경홍조영래)
그때 놀란 기러기 같던 그녀의 모습이 그림자처럼 스치네.
其二
夢斷香消四十年(몽단향소사십년)
꿈도 없어지고 향도 사라진 40년…
沈園柳老不吹綿(심원유로불취면)
심원의 버들도 늙어 버들솜도 날리지 않는구나.
比身行作稽山土(차신행작계산토)
이 몸도 곧 죽어 회계산(會稽山) 흙이 되겠지만,
猶弔遺.一泫然(유조유종일현연)
그녀의 남은 옛 자취 찾으면서 한없이 눈물 흘리노라.
▶️ 雲(구름 운)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비 우(雨; 비, 비가 오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云(운)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雨(우)는 천체(天體)에 관계가 있다. 云(운)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수증기가 하늘에 올라 자욱이 퍼지는 모양에서 구름을, 雲(운)이 생긴 후로는 云(운)을 말하다란 뜻으로 썼다. ❷회의문자로 雲자는 '구름'이나 '습기', '덩어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雲자는 雨(비 우)자와 云(이를 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云자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른 모습을 그린 것으로 소전까지만 하더라도 '구름'이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그러나 해서에서는 날씨와 관련된 글자임을 뜻하기 위해 雨자가 더해지게 되었다. 구름은 하늘 높은 곳에 떠 있으므로 雲자는 높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금세 사라지기도 하기에 속되고 덧없는 것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간체자가 보급된 이후 다시 옛 글자인 云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雲(운)은 성(姓)의 하나로 ①구름 ②습기(濕氣) ③높음의 비유 ④많음의 비유 ⑤멂의 비유 ⑥덩이짐의 비유 ⑦성(盛)함의 비유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구름이 오고가는 길이라는 운로(雲路), 구름처럼 많이 모임을 운집(雲集), 사람이 구름처럼 많이 모임을 운둔(雲屯), 구름과 안개를 운무(雲霧), 구름과 진흙이란 뜻으로 차이가 썩 심함을 운니(雲泥), 구름이 덮인 바다를 운해(雲海), 기상이 달라짐에 따라 구름이 움직이는 모양을 운기(雲氣), 구름 낀 먼 산을 운산(雲山), 구림이 걸친 숲을 운림(雲林), 구름 밖이나 구름 위를 운표(雲表), 외로이 홀로 떠 있는 구름을 고운(孤雲), 이상한 모양의 구름을 기운(奇雲), 하늘에 떠 다니는 구름을 부운(浮雲), 저물녘의 구름을 모운(暮雲), 엷은 구름을 경운(輕雲), 머리털이나 새털 모양으로 보이는 구름을 권운(卷雲), 여름철의 구름을 하운(夏雲), 빛이 몹시 검은 구름을 흑운(黑雲), 구름과 진흙 차이란 뜻으로 사정이 크게 다르다는 경우에 쓰는 말을 운니지차(雲泥之差), 구름 같은 마음과 달 같은 성품이라는 뜻으로 맑고 깨끗하여 욕심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운심월성(雲心月性), 남녀가 육체적으로 어울리는 즐거움을 일컫는 말을 운우지락(雲雨之樂), 구름처럼 합하고 안개처럼 모인다는 뜻으로 어느 때든지 많이 모임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운합무집(雲合霧集), 구름이나 안개가 걷힐 때처럼 산산이 흩어져 흔적도 없이 됨을 이르는 말로 의심이나 근심 걱정 등이 깨끗이 사라짐을 비유하는 말을 운소무산(雲消霧散), 구름처럼 어느덧 흩어지고 새처럼 자취 없이 사라짐을 일컫는 말을 운산조몰(雲散鳥沒), 구름이 열려 해를 본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구름처럼 꽉 막혔던 것이 비로소 열림을 이르는 말을 운개견일(雲開見日), 속됨을 벗어난 인간의 고상한 기질과 성품을 일컫는 말을 운상기품(雲上氣稟), 구름이 걷히고, 하늘이 맑게 갠다는 뜻으로 병이나 근심이 씻은 듯이 없어짐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운권천청(雲捲天晴), 구름은 용을 좇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는 뜻으로 의기와 기질이 서로 맞음을 이르는 말을 운룡풍호(雲龍風虎), 탐스러운 귀 밑머리와 꽃 같은 얼굴이라는 뜻으로 미인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운빈화용(雲鬢花容), 구름이나 연기가 순식간에 눈앞을 스쳐가고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뜻으로 한때의 쾌락을 오래 마음에 두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운연과안(雲煙過眼), 구름이 아무 생각 없이 일고 흐르듯이 인생을 유유히 삶을 이르는 말을 운출무심(雲出無心), 큰 가뭄에 구름과 무지개를 바란다는 뜻으로 희망이 간절함을 이르는 말을 운예지망(雲霓之望), 구름 속을 나는 두루미라는 뜻으로 고상한 기품을 가진 사람을 이르는 말을 운중백학(雲中白鶴), 구름이냐 산이냐는 뜻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산인지 구름인지 분별하지 못하여 의심함을 이르는 말을 운야산야(雲耶山耶) 등에 쓰인다.
▶️ 雨(비 우)는 ❶상형문자로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 (우)란 음은 宇(우), 羽(우) 따위와 관계가 있고 위로부터 덮는다는 뜻이 닮았다. 부수(部首)로서는 비 또는 구름, 기타 기상(氣象)에 관한 뜻을 나타낸다. ❷상형문자로 고대 중국은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농업을 매우 중시했었다. 농업의 성공 여부는 날씨와도 직결된다. 그래서인지 한자에는 날씨와 관련된 글자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雨자는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한자가 생성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날씨와 관련된 글자를 만드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갑골문에 나온 雨자를 보면 하늘에 획이 하나 그려져 있고 그 아래로 점이 찍혀있었다. 이것은 구름 아래로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雨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대부분이 날씨나 기상 현상과 관련된 의미를 전달하게 된다. 그래서 雨(우)는 ①비 ②많은 모양의 비유 ③흩어짐의 비유 ④가르침의 비유 ⑤벗의 비유 ⑥비가 오다 ⑦하늘에서 떨어지다 ⑧물을 대다 ⑨윤택하게 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흐릴 담(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빛 광(光), 볕 양(陽), 갤 청(晴)이다. 용례로는 비가 온 분량을 우량(雨量), 비를 몸에 맞지 않도록 손에 들고 머리 위에 받쳐 쓰는 물건을 우산(雨傘), 1년 중에 비가 가장 많이 오는 시기를 우기(雨期), 눈과 비를 우설(雨雪), 비와 이슬을 우로(雨露), 비가 올 듯한 기미를 우기(雨氣), 비가 오는 날을 우천(雨天), 비 맞지 않도록 차림 또는 그 복장을 우장(雨裝), 비가 내림 또는 내린 비를 강우(降雨), 밤에 내리는 비를 야우(夜雨), 줄기차게 많이 오는 비를 호우(豪雨), 오랫동안 계속해 내리는 음산한 비를 음우(陰雨), 오래 오는 궂은 비를 음우(霪雨), 갑자기 많이 쏟아지는 비를 폭우(暴雨), 식물이 자라나기에 알맞도록 내리는 비를 자우(滋雨), 장마 때에 오는 비를 장우(長雨), 몹시 퍼붓는 비를 능우(凌雨), 세차게 내리는 비를 강우(强雨), 알맞은 때에 내리는 비를 감우(甘雨), 보리가 익을 무렵에 오는 비를 맥우(麥雨), 바람과 함께 내리는 비를 풍우(風雨), 천둥소리가 나며 내리는 비를 뇌우(雷雨), 산골짜기에 내리는 비를 계우(溪雨), 비가 온 뒤에 솟는 죽순이라는 뜻으로 어떤 일이 일시에 많이 일어남을 이르는 말을 우후죽순(雨後竹筍), 바람 불고 비오는 것이 때와 분량이 알맞음을 일컫는 말을 우순풍조(雨順風調), 비올 때의 경치도 매우 기이하고 갠 후의 경치도 좋다는 뜻으로 날씨에 따라 풍경이 변하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우기청호(雨奇晴好), 비와 이슬이 만물을 기르는 것처럼 은혜가 골고루 미침을 이르는 말을 우로지은(雨露之恩), 회합 등을 미리 정한 날에 비가 오면 그 다음 날로 순차로 연기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우천순연(雨天順延), 비 온 뒤에 우산을 보낸다는 뜻으로 이미 지나간 일에 쓸데없는 말과 행동을 보태는 경우를 일컫는 말을 우후송산(雨後送傘), 떨어지는 빗방울이 돌을 뚫다라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일지라도 적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하면 해결되지 않는 일은 없다는 뜻을 이르는 말을 우수천석(雨垂穿石)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
▶️ 樂(노래 악, 즐길 락/낙, 좋아할 요)은 ❶상형문자로 楽(락)의 본자(本字), 乐(락)은 간자(簡字)이다. 현악기를 본뜬 글자, 신을 모시는 춤을 출 때 손에 가지는 방울을 본뜬 글자, 북 따위의 타악기를 본뜬 글자 등의 유래가 존재한다.기본 음가는 악이고, 전주된 음가로 락과 요가 있다. 락은 주로 형용사로 사용될 때, 요는 좋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락이 두음법칙이 적용되면 낙으로 표기된다. ❷상형문자로 樂자는 '음악'이나 '즐겁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樂자는 본래 악기의 일종을 뜻했던 글자였다. 갑골문에 처음 등장한 樂자를 보면 木(나무 목)자에 絲(실 사)자가 결합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거문고처럼 실을 튕겨 소리를 내는 악기와 줄을 표현한 것이다. 금문에서는 여기에 白(흰 백)자가 더해지게 되는데, 이것은 줄을 튕길 때 사용하는 피크를 뜻하기 위해서였다. 또 음악을 들으면 즐거우므로 '즐겁다'라는 뜻도 파생되었다. 그래서 樂(악)의 경우는 ①노래, 음악(音樂) ②악기(樂器) ③연주하다 ④아뢰다(말씀드려 알리다) 등의 뜻이 있고, 樂(락/낙)의 경우는 ⓐ즐기다(락) ⓑ즐거워하다(락) ⓒ편안하다(락) ⓓ풍년(豐年)(락) ⓔ즐거움(락) 등의 뜻이 있고, 樂(요)의 경우는 ⓕ좋아하다(요) ⓖ바라다(요)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노래 가(歌),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인생을 즐겁게 여기거나 세상을 밝고 좋게 생각함을 낙관(樂觀), 아무런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살 수 있는 즐거운 곳을 낙원(樂園), 늘 즐겁게 살 수 있는 곳을 낙토(樂土), 재미 붙일 만한 일을 낙사(樂事), 경기 등에서 힘들이지 않고 쉽게 이기는 것을 낙승(樂勝), 세상이나 인생을 즐겁게 생각함을 낙천(樂天), 노래의 곡조를 악곡(樂曲), 음악 기구를 악기(樂器), 작곡에 관한 착상이나 구상을 악상(樂想), 음악에서 연주되는 음의 배열을 악보(樂譜), 노랫소리 또는 가락스런 소리를 악음(樂音), 음악을 연주하는 단체를 악단(樂團), 물을 좋아함을 요수(樂水), 산을 좋아함을 요산(樂山), 즐기기는 하나 음탕하지는 않게 한다는 뜻으로 즐거움의 도를 지나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낙이불음(樂而不淫), 즐거움도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을 낙극애생(樂極哀生), 타향의 생활이 즐거워 고향 생각을 하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낙이사촉(樂而思蜀), 즐거움은 언제나 걱정하는데서 나온다는 말을 낙생어우(樂生於憂), 안락은 고통의 원인이라는 말을 낙시고인(樂是苦因), 천명을 깨달아 즐기면서 이에 순응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낙천지명(樂天知命), 즐겨서 시름을 잊는다는 뜻으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여 가난 따위의 근심을 잊는다는 말을 낙이망우(樂而忘憂), 즐거움에 젖어 촉 땅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쾌락 또는 향락에 빠져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하는 말을 낙불사촉(樂不思蜀), 즐거움 속에 삶이 있다는 뜻을 나타냄을 일컫는 말을 낙중지생(樂中之生), 좋아서 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요차불피(樂此不疲),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산수 경치를 좋아함을 이르는 말을 요산요수(樂山樂水)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