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습 그대로
퇴직 이 년 차였던 작년 말 공무원연금공단으로부터 스마트폰 기본과정 강좌 프로그램이 개설되어 교육을 나갔다. 같은 연령대 여러 직렬에서 은퇴한 이들 이십여 명과 같이 강사분들의 가르침을 받았는데 나는 부진아 그룹에 속해도 맨 앞자리를 차지해 매주 한 차례 빠짐없이 참여했다. 조금씩 익숙해지려 하는데 도중에 변수가 생겨 그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하지 못하게 되었다.
올해 초가 되자 지난 연말 연금공단으로부터 연락이 와 신청해둔 아동안전지킴이 선정 대상에 포함되어 임무를 수행해야 해서다. 경남 경찰청은 은퇴자 가운데 매년 희망을 받아 소정 체력 검증을 봐 경찰서 일선 파출소 치안 보조로 아동안전지킴이를 뽑아 주중 오후 하굣길 학교 주변 순찰 임무를 맡겼다. 번잡한 도심이 아닌 교외로 나간 의창구 대산면을 지원해 근무하게 되었다.
봄이 오던 길목 들녘을 산책하며 냉이나 쑥을 캐 봄 향기를 맡음은 일상이었다. 주말이면 근교 산자락 임도를 따라 걸으며 제철에 피는 야생화를 완상하고 갖가지 봄나물을 뜯어와 이웃과 지기들에게 보내 자연이 베푸는 은혜에 감사했다. 주중 근무지 대산 들녘 비닐하우스에 키운 오이나 토마토가 포장 선별에서 밀려난 처진 열매를 귀로에 챙겨와 이웃에게 보내니 반응이 좋았다.
주말에 비가 오거나 평일 오전에는 도서관에 머문 시간이 많은 편이다. 교육단지 창원도서관은 열람 여건이나 소장 도서가 많아 훌륭한 시설이었다. 때로는 용지호수 작은 어울림도서관을 이용하기도 하고 북면 최윤덕도서관으로 진출해 독서삼매에 빠졌다. 현직 시절은 수능 지도나 수행평가로 한정된 문학 작품만 접하다가 평소 읽고 싶던 다양한 분야의 책을 펼쳐 읽게 되었다.
특히 주중 근무지인 대산면에도 평생학습센터 부설 도서관은 매일 이용했다. 근무가 오후 시간대라 이른 아침은 들녘이나 강가 산책을 마치고 9시 업무가 개시되길 기다려 오전 내내 열람석을 지켰다. 주 3회 월수금은 문해 강좌에 참여하는 팔순 할머니 세 분과 같은 공간에서 책을 읽으면서 그분들의 학구열에 경의를 표했다. 적은 액수나마 후원금을 보낼 수 있음도 행복했다.
지난해 봄 초등학교 한 동기가 회복 불가 병으로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접해도 문병 갈 처지가 못 되었다. 단체 카톡방에 쾌유를 기원한 문자가 이어졌는데, 나는 들꽃 사진에 시조를 지어 병마를 이겨내길 바랐는데 허무하게 생을 하직하고 말았다. 그 일이 단초가 되어 1일 1수 시조 창작은 지금도 계속해서 매일 아침 초등 친구 단톡을 비롯해 몇몇 지기들에게 사진과 보낸다.
내가 일상생활에서 산행이나 산책하며 떠오른 시상은 글감이 되어 시조 율조나 산문으로 남긴다. 30여 년째 일기로 쓰다시피 남겨가는 글은 가락문학 카페 운영자가 별도로 개설해둔 글방에 매일 올리고 지인들 메일로도 전한다. 지난봄부터 지역 신문 편집자가 연락이 와 내 이름으로 ‘일상 스케치’라는 제목을 단 글이 매주 목요일 지면에 수록되어 독자층을 넓혀가는 중이다.
올여름은 유난히 더워 구월이 와도 폭염이 지속되어 힘든 나날을 보냈다. 그러함에도 이른 아침 근교 숲을 찾아 삼림욕을 누리고 삭은 참나무 등걸에 피는 영지버섯을 찾아내 아파트 베란다에서 말렸다. 이렇게 마련된 건재는 형제와 주변 지기들과 아낌없이 나누었다. 특히 후두암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는 초등 친구에게 넉넉하게 안겼더니 입이 귀에 걸리듯 함박 웃으며 고마워했다.
지난해 봄 즐겨 마신 술을 단번 끊고 말았다. 칠 남매 내외는 지난번 거제에 이어 올봄은 경주 일대로 1박 2일 형제 여행을 다녀왔다. 가족들은 내 단주를 좋아했으나 몇 친구는 아쉬워해도 다른 면에서 채워 줄 참이다. 초등 친구들과는 베트남 기행에 이어 다가올 연말 중국 장가계 여행 일자가 정해졌는데 동행 못해 아쉽다. 고소 공포가 심해 거기는 따라나설 형편이 못 되었다. 24.09.18<끝이 어딘지 모를 여정 따라 3/3>
첫댓글 고소공포를 극복하셔
여행길이 열렸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