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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다니까!” 길을 가던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래져 나를 쳐다보았다. 드디어 내가 미쳐버리는 것인가? 그러나 이 쿵쿵거리는 음은 진짜였다. 아니, 내 죄책감이 만들어낸 환청일 뿐인가? 난 그녀가 깩깩거리면서 죽어갈 때 일말의 죄책감이나 동정이 없었다. 이건 맹세할 수 있었다.
고급 옷을 입고 걸어가는 여자 한 명이 나를 불쾌하게 쳐다보고 지나갔다. 꽤 비싸보이는 옷이라…? 나는 비로소 내가 쿵쿵거리는 소리에 쫓겨 미친 듯이 걸어온 곳을 보았다. 길 가에는 외제차가 예사로 돌아다니고 있는 데다 우리나라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차들은 그래도 아낀다는 축이었다. 그녀, 장희영이 살고 있는 동네였다. 고개를 들자 내 2년치 월급을 꿀꺽하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문을 잠궈버리는 아파트가 서 있었다. 번화가의 아파트. 전희영이 살고 있었던 아파트. 음모가 서려있는 곳. 하. 하. 하.
입에서 단내가 났다. 턱은 비둘기도 왔다갔다할 수 있을 정도로 벌려져 있었다. 자신은 어느새 그 아파트를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무서워지는 것일까?
무서운게 아니다. 기분이 나쁜 것이다. 저 곳은 사람이 죽은 곳이다. 속에서부터 썩은 내가 나는 걸레이긴 했지만 사람이 죽은 곳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그것뿐이다. 정말 그것뿐일까?
그래, 확인만 하자. 확인만 하는 거다. 지금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초고속 전철이 있는 21세기다. 싸구려 쓰레기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귀신이 있을 턱이 없다. 결심하자마자 그 쿵쿵거리는 소리가 잠잠해졌다. 그래 그래, 이제 좀 조용하군. 확인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무시할 수 없었다. 결국 새벽까지 시간을 죽이기로 했으나 시간이라는 놈이 그렇게 쉽게 가주지 않았다. 최악이었다. 피시방에서 피운 담배는 족히 네 갑이 넘었지만 뻑뻑한 목을 콜록거리면서 밖으로 나왔을 때는 10시가 조금 넘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는 뭐하지? 어쩔 수 있나. 마셔야지. 술집에 들어갈 돈은 충분했지만 남에 눈에 띄기는 싫었다. 깊숙한 편의점에서 술이고 과자고 뭐고 닥치는 대로 사서 아파트 근처의 공원에 쳐박혀서 혼자 마셔대기 시작했다. 시선을 주어봤자 주정뱅이일 뿐이었다.
맛이 형편없었다. 휘발유가 이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어차피 시간 때우기 위한 게 아니었나? 어쨌든 나는 비우고 비우고 또 비웠다.
시간은 나의 예상에 맞게 가주었다. 술만 마시기엔 긴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시간은 갔다. 난 일어났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걸음이 비틀거리는 정도였지만 괜찮을 것이다. 시간은 으슥해서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이 거의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새벽 3시에 취객이 그렇게 시선을 끌 대상은 아니었다. 사실 그렇게 취하지는 않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그렇게 볼 거라는 얘기다. 난 걸음을 옮겼고, 길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녀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밤이라는 시간을 뒤집어 쓴 아파트가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초점이 풀리는 시야에서도 나는 그것이 손짓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리 와. 이리 와.
그래 가주마. 다리에 힘이 풀리긴 했지만 그쪽까지 가는 데는 괜찮을 것이다. 다리가 마치 쌀이 반쯤 쏟아진 포대자루처럼 너덜거렸다.
1층 현관 엘리베이터에서 멈추었다. 타고 가야할까? 귀 속에서 쿵쿵거리는 소리가 다시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치밀어 오르는 반항심에 울컥 버튼을 눌렀다. 11층, 10층, 9층, 8층…층이 내려오고 있었다. 가슴에 돌이 하나하나씩 쌓여가는 것 같았다. 결국 계단을 이용하기로 했다. 싸구려 구두는 소리도 많이 난다. 1층, 3층, 7층, 11층…집은 그 년의 수술한 콧대와 시도 때도 없이 세우는 건방만큼이나 높았다. 13층…다리가 뻣뻣해지면서 숨도 턱까지 찼을 때 15층 입구에서 희영이 나를 보면서 느물거리는 입모양으로 웃고 있을 거란 생각을 떨쳐내었다. 죽고 나서도 정말 개 같은 년이다. 정말 죽은 걸까? 아니, 이제 그만 두자.
15라는 글자가 보였다. 복잡한 숫자다. 그녀가 묻힌 곳. 묻힌 곳이라고 해야 하나? 엘리베이터 승강장의 철문은 대답 없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고, 계기판에는 아까 눌러놨던 승강기가 문제없이 도착하여 1층에 있었다.
(쿵. 쿵. 쿵)
귓속에 소리가 다시 목소리로 바뀌었다. 나를 놀리고 있었다. 운율과 리듬이 생겨서 나를 조롱했다. 뇌가 부풀어 올라 머리가 부술 듯 아팠지만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쿵. 덜컹. 쿵)
‘넌 전희영을 죽인 게 아냐. 죽인 것처럼 보인 것뿐이야. 그 년이 이제 돌아…’
“닥쳐.” 귓속 소리의 패턴이 약간 변화한 것을 어렴풋이 눈치챘지만 신경쓸 틈 없이 난 중얼거렸다. 더 기다릴 수 없었다. 승강장 앞에 문을 잡아뜯을 듯이 좌우로 당겼다. 문은 잠시 비명을 지르더니 좌우로 벌어졌다. 곧 끝도 없을 거 같은 어두운 허공이 내 눈을 가렸다. 아차, 승강기를 위로 올려야지. 1층 밑으로 내려가 버튼을 눌렀고, 나는 고정시켜 놓은 철문 안 어둠 속에서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를(꼭 소화불량에 걸린 배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듣고 서 있었다. 덜컹거리면서 올라오는 엘리베이터가 희끄무레하게 보였다. 그래, 내가 보게 될 것은 썩어 문드러진 20대 후반 여자의 시체뿐이다. 그럼, 물론이지, 그렇고 말고. 나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고개를 다시 좌우로 흔들었다. 난 다시 고개를 끄덕거릴 수가 없었다. 시체가 없었다.
머릿속에서 웃어재끼는 금속성의 소리야 뒤로 하더라도 가슴 속에서 뛰어다니기 시작한 어두컴컴하고 쇳소리로 짖어대는 짐승을 통제하기 힘들었다. 공포라는 이름의 짐승이었다. 심장이 그 짐승에 맞춰 급격하게 뛰었다.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머리카락조차 한 올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난 분명히 그 년을 죽였다. 근데 없었다. 정말 그녀가 살아난 것인가? 극적으로 구조되어서 의사 표현은 못하지만 어느 고급 병원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서 살아 있는 것인가? 자신의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거의 죽은 상태로(아니면 정말 죽었거나) 발견되었는데 범인을 찾지 않을 얼뜨기 부모님은 없다. 분명히 죽였다. 혹시라도 모를까 시체 위에서 뻔히 지켜본 시간만 10분이 넘었다. 발을 뻗어서 엘리베이터 지붕으로 내려왔다. 바닥을 딛자마자 피어오르는 먼지에 목이 막혔다. 오래된 먼지였다. 마치 이 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묵은 먼지에는 아무런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 곳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지붕 위에 감싸고 있는 어둠이 삼켜버린 거 같았다. 진짜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란 말이지?
“사라진 거야.” 도대체 어디로? 무심결에 내뱉은 내 말에 반항심이 뾰족이 솟아올랐다. 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기에 무슨 공간이 있어서? 헛소리일 뿐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나의 머릿속에 난리가 났는데도 이 질문이 내 뇌리에 박혔다. 정말 이 엘리베이터가 오르내리는 공간에는 아무런 것이 없는 것일까? 지붕 위를 올려다보았다. 황량한 건물 골조와 철근이 이어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저 위가 아니라 저기 1층에서부터 시작되는 공간에는 정말 다른 것이 없는 것일까? 저 어둠 속에 정말로 아무 것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나를 포함해서, 엘리베이터가 생긴지 20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그 세월동안 오르내린 엘리베이터의 숨겨진 공간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가능한 얘기일 수도 있었다. 이 아파트와 세월을 같이 한, 아니 더 오랜 세월에 있던 공간이 이 빈 공간을 만나서…
내가 올라탄 승강기가 신경질을 내면서 덜컹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승강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뭐야? 난 스위치를 누른 적이 없어!’그러나 승강기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조금만 있으면 난 저기 보이는 천장에 눌려서 피떡이 되어버릴 판국이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몸을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통증이 팔 쪽으로 밀려들어왔고, 먼지가 코로 들어와 기침을 참느라고 입을 가려야 했다.
땡.
너무나 간단한 경고음이 들렸다. 문이 열려있었는데도 승강기가 움직이나? 엘리베이터가 15층으로 왔다. 누가 올려 보낸 거지? 알 수 없었다. 썩어문드러진 희영의 시체도 없이 그 안에 있는 것은 그 안을 비춰주는 백열등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거울, 거울이 있었다. 기분 나쁜 거울을 까먹고 있었다. 머리가 아파왔다.
‘타’
엘리베이터가 나를 위해 입을 벌리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엘리베이터가. 2분이나 넘었는데 문이 안 닫기는 엘리베이터라? 난 정말 타기 싫었다. 그러나 귓속에 금속 파열음이 나에게 명령을 하고 있었다. ‘타.’
난 몸을 일으켜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로 들어서자 마자 귓속에 울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사라졌다. 갑자기 찾아온 정적이 어색했다.
예상대로 평행으로 서 있는 거울이 겁에 질린 나의 모습을 무한으로 수렴하고 있었다. 거울 안에 있는 거울 속에 겁에 질린 또 다른 내가. 거울 안의 거울 안의 거울 속에 겁에 질린 또 다른 내가. 그 거울 속의 거울에…
‘저건 언제까지 이어지는 거지?’ 그 사건이 있을 때 했던 바보같은 소리였지만 난 지금와서 답을 말할 수가 없었다. 무섭기 때문이었다. 평행한 거울이 서로의 영상을 무한으로 비추고 있는 것이라는 희영의 말을 내가 다시 되뇔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저기 저 끝에는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을까.’ 내가 그 날에 무심코 뱉었던 말이었다. 난 어느 새 손가락으로 ‘저’ 끝을 가르키고 있었다. 내 안에 다른 나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내 안의 다른 나도. 내 안의 다른 나의 나도. 내 안의 다른 나의 나의 ‘나’도… 갑자기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이 기억났고, 난 욕지거리를 뱉었다. 이 기분 나쁜 장소에서 발을 떼야했다. 문은 아직까지 닫히지 않고 있었다. 아직까지. 나는 발을 내디뎠다.
그 때 갑자기 엘리베이터 문이 먹이를 삼킨 상어의 입처럼 빠르게 닫혔다. 난 엘리베이터의 문이 그렇게 빨리 닫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닫혔어.’ 분명했다. 쇠봉으로 고정시켜놓았던 엘리베이터가 아무런 저항 없이 ‘그냥’ 닫혔다. 엘리베이터가 덜커덩거리더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버튼에는 손도 하나 대지 않았다. 계기판에도 15라는 숫자 그대로였다.
주저앉고 싶은 기분을 겨우 참으며 난 비상벨을 힘껏 눌렀다. 아니 두들겨 팼다. 먹통이었다. 비상정지 스위치도 그랬다. 아까 전에 뛰어놀았던 검은 짐승이 심장과 함께 미친 듯이 광분하기 시작했다. 버튼은 먹히지 않았다. 난 누구없냐고 비명을 지르며 엘리베이터 버튼 근처에 있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패기 시작했다. 이성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다.
‘회로를 끊어야 해.’ 싸구려 첩보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이 떠올랐다. 이럴 때 주인공들은 기계 안에 있는 회로의 전선을 멋지게 잘라 기계를 멈추곤 했다. 난 계기판과 버튼 아래쪽에 보이는 금속 합판을 발견했고, 그것을 손으로 잡아뜯기 시작했다. 그러자 금속 합판의 이음매가 끼긱거리면서 저항했고, 손가락에 피가 나면서 통증이 물밀 듯 밀려왔으나 난 무시했다. 때로는 공포가 고통을 이기는 최고의 마약이 되기도 하니까. 계기판을 이은 나사가 처절한 소리를 내면서 튕겨갔고 이음매의 일부분이 구부러지면서 그 반작용으로 내 몸이 뒤로 벌러덩 자빠졌다. 이제 그 망할 전선이나 이름도 모를 회로만 박살내면 지까짓 게 움직일 수 있는 재주가 없다, 난 몸을 일으켜서 그 벌어진 공간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회로판은 없었다.
‘없어.’ 말 그대로 없었다. 버튼 뒤에 있어야할 복잡다단한 전선, 회로버튼들이 없었다. ‘무’였다. 뜯어낸 자국에는 끝고 모를 암흑밖에 없었다. 여자의 비명 소리같은(난 그것이 희영이 년의 목소리라고 확신했다) 바람 소리만 날카롭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불량품 중에서 최고의 불량품에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면 한 재산 뜯어낼 수 있는 엘리베이터지만 이 것은 그런 문제와는 다른 거였다. “이럴 리가 없어.” 내가 되뇌는 것은 차라리 살려달라는 비명보다 더 처량하고 떨리고 있었다. 전선과 회로가 있어야 할 곳에는 괴기스러운 어둠만 있었고, 엘리베이터는 움직인다. 어디로?
그 년이 있는 데로
“안 돼!” 짙어지는 공기에 묻혀가는 소음을 뒤로 하고 난 그 벌어진 합판 뒤의 어둠 쪽으로 손을 뻗었다. 마치 거기 뒤에 선이나 회로가 있어서 내가 그것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그것은 평생 후회할 짓이었다.
집어넣었던 왼쪽 손가락이 맹수의 입에서 씹히고 짓이겨지는 소리와 함께 통증이 느껴지면서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손을 뺐다. 그것을 본 나는 다시 한 번 겁에 질려 울부짖고 말았다. 엄지손가락을 빼고 모든 손가락의 마디가 잘려 나가 있었다. 잘린 부분에는 뼈와 힘줄 덩어리가 피도 안 흘린 채 멀쩡히 있었다. 다시 통증이 밀려왔다. 몸부림을 치면서 손가락에서 시작해 온 몸으로 파고드는 통증에 저항했다. 별 도움이 안 되기는 했지만.
땡.
모든 것을 종결하는 소리. 심판하는 소리. 엘리베이터가 멈추었다. 여기가 어디지? 올라온 것인가? 내려온 것인가? 적막이 흘렀고 난 앞에 놓인 엘리베이터 문을 열어볼까했지만 엉망이 되어 떨리는 내 왼손을 보고 그만 두었다. 혹시나 해서 눌러본 ‘열기’버튼은 무의미했다. 젠장, 난 여기 갇힌 것이다.
‘그 년도 여기 오는 것인가?’ 난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내가 그녀의 시체를 처리하고 누군가가 엘리베이터를 움직였을 거고, 그 와주에 이 빌어먹을 공간에 그녀가 빨려 들어간 거다. 그래서 완전히 이 세상에서 없었던 사람처럼 아무런 자취가 없어진 거다. 이 세상에서 ‘잘려나가’ 버린 것이었다. 그게 가능한 것인가? 그렇게 질문해 보았지만 이 상황까지 와서 못 믿을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확실한 사실은, 그 년이 이 불가사의한 공간에 빨려 들어왔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나. 나에 대한 복수. 자기가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던 뭣도 아닌 놈한테 죽었다는 수치감이 범벅이 되어 이 세계를 떠돌다가 나를 찾아낸 것이었다. 선과 점이 2차원, 우리가 사는 세계는 3차원, 그리고 그 너머에 시간까지 포함한 4차원의 세계. 그 너머에 5차원, 6차원, 7차원…차원의 세계를 넘나들다가 나를 찾아낸 것이다. 난 바지에 오줌을 쌌다.
멀리서 소리가 들린다. 쿵, 쿵, 쿵, 덜컹, 쿵…
아까 전에 귀에서 났던 소리가 이제 이 엘리베이터 너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전처럼 희미하게 들리다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난 이 소리가 뭔가가 무너지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무엇이 무너지는지 몰라도 그것은 금속성의 철판 같은 것이었다.
쿵, 쿵, 덜컹, 쿵… 정확하게 양쪽에서 들린다.
‘거울처럼.’ 그렇다. 거울 저편에서 그 묵직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양쪽 거울에 모두 나의 영상이 없었다.
쿵, 쿵, 쿵, 쿵
소리가 점점 커진다. 나는 나를 제외한 엘리베이터 안의 모든 풍경을 무한으로 반사하는 거울 저 편에서 뭔가를 보았다. 그것은 내가 이성적으로, 적어도 내가 숨쉬고 살았던 차원에서 이성적으로 본 마지막 영상이었다.
쿵, 쿵, 덜컹, 쿵
전희영. 아니, 이제 무엇인지도 모를 것이 저 쪽 끝 편에서 기어오고 있었다. 거울의 영상으로 인해 생긴 벽들을 하나하나씩 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가 나를 찾아낸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의 속도가 빨라졌다.
쿵쿵쿵쿵쿵쿵
난 비명도 지를 수가 없었다. 그녀가 반쪽이었다. 아니, 반쪽보다 더했다. 죽을 때 산발이 되었던 머리가 거무튀튀하게 썩어서 머리에 붙어있었고, 그것 역시 반쪽이었다. 간간히 보이는 화장이 떡칠한 얼굴의 윗부분은 검게 썩어 문드러져있었고, 밑부분에는 무엇이 묻어있는지 울긋불긋한 색들이 근육의 섬유질에 칠해져있었다. 그것도 반쪽이었다. 오른쪽만이 있었다. 팔도 하나, 다리도 하나인 희영이 그 공간의 벽을 헤치면서 열심히 기어오고 있었다. 얼굴의 표정은…‘분노’라는 뜻을 가진 모든 차원의 찌꺼기들이 엉겨붙어있는 것이었다. 난 반대쪽을 돌아보았다. 역시. 그녀의 남은 왼쪽이 오른쪽과 똑같은 표정과 동작으로 나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쿵쿵쿵쿵쿵쿵
나의 양쪽 귀가 그들의 공간을 왜곡하면서 기어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공포, 비명? 모든 것이 비어버렸다. 그녀가 나에게 도착했다. 시체 썩는 냄새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그녀가 격은 모든 차원의 냄새였다. 거울 양쪽에서 시커멓고 비쩍마른 손이 빠져나와 나의 목을 움켜잡았다. 모든 차원을 전전하며 부패해버린 그녀의 손을 느끼면서나는 그제서야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꿈인가? 아닌가? 난 살아있었다. 그것은 확실했다. 눈을 뜬 곳은 엘리베이터 안 이었다. 몸을 일으켜보았다. 살아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씹할 년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은 표정이었다. 보고 있냐? 나 살아있다 이 년아!
그래 모든 것이 꿈일 뿐인 것이다. 난 엘리베이터를 열려고 버튼을 바라보았다. 버튼들이 숫자대로 나열되어있었다. ‘0@#%$%8·223235#!%’ 난 이 숫자가 왜 더할 수 없이 논리적으로 보이는 지 알거 같다. 여기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6차원이건 12차원이건 무한의 차원이건, 난 살았다. 어디에 있든 그년을 찾을 것이고, 이번에는 다시 못 오도록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은 해야 할 일이 있다. 내 몸에 왼쪽을 먼저 찾아야 할 것 같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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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올리는 군요 이번 현재 편은 단편으로 몇 개씩한 번 해보려고 합니다. 중편도 구상중이지만 이건 한참 걸릴 거 같네요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보면서 나가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첫댓글 잘 읽고 갑니다~소름이 쫙 돋네요; 다음편도 기대하겠습니다^^
기다리던 btt네요. 조만간 오피스텔로 옮기려 하는데... 책임져요!!!
숨도 안쉬고 읽어내려왔네요.. 넘 숨막히고 긴장이....-0-;;; 전편과거보다 훨씬 스릴이 있네요~~ 잘 읽고 가요~~~^^
오오.. 놀라운 흡입력.. *_*
흐어..이제 엘레베이터 타는거 무서워질듯.... 담편도 기대~>
거울달린 엘리베이터 안탈래요. 뭐 주인공은 사람죽인 나쁜놈이라서 그랬던거지도
우왕~~~ 이제 엘레베이터 어케 타요 ㅠ.ㅠ
우에;;;+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