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0년대🌺 |
✿1815년 나폴레옹 2세, 프랑스의 황제로 즉위.
나폴레옹 2세(프랑스어: Napoléon II, 1811년 3월 20일 ~ 1832년 7월 22일)
프랑스 제1제정의 마지막 황제(재위 1815년 6월 22일 ~ 1815년 7월 7일)이다. 나폴레옹 1세의 유일한 적자이며, 마리 루이즈의 소생이다. 본명은 나폴레옹 프랑수아 조제프 샤를 보나파르트(Napoléon François Joseph Charles Bonaparte)이다.
불과 15일의 재위기간은 나폴레옹 2세가 제대로 프랑스에서 황위에 앉아보지도 못한 채 허무하게 끝나버리고 말았다. | |
| 🌱1900년대🌱 | |
🌳04년 원산-인천간 전화 개통 🌳31년 대동강 개수공사 기공 | |
🌳41년 독일, 소련에 선전포고
1941년 6월 22일 오전 5시30분 독일 선전장관 괴벨스가 라디오를 통해 히틀러의 대소 선전포고를 발표했다. 이에앞선 오전 3시, 약 300만명의 독일군이 이미 전차 등을 동원, 대진격을 개시했다. 육전사상 최대규모였다. 히틀러는 129년 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그 날을 선택했다. 나폴레옹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해내겠다는 히틀러의 야심찬 도전이었다.
초기에는 히틀러의 뜻대로 되는 듯 했다. 독일군은 곳곳에서 소련의 방어선을 돌파하며 새벽 무렵에 이미 전차부대가 소련 영내 80km 지점에까지 도달해 있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한 이유는 소련을 포함한 동부유럽의 광대한 지역이 전쟁을 위한 자원공급지로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수차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스탈린은 히틀러의 침입을 예측하지 못했다.
역사상 최강전력의 공격에 소련군은 혼란에 빠졌다. 오후 0시15분경 비로소 몰로토프 소련 외무장관이 라디오로 독일군의 침공사실을 소련 국민에게 알렸다. 소련군은 독일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6개월 동안 4백만명 이상이 포로가 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면서 상황은 역전되었다. 독일군은 모스크바를 눈앞에 둔 상태에서 전통적으로 동계를 이용하는 소련군 작전에 말려들었다. 독일군은 소련의 주코프 대장이 이끄는 1백개 사단 병력의 대반격에 개전이래 처음으로 큰 패배를 맛보았고, 이때부터 히틀러는 패망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
🌳41년 중앙선 철도 개통 🌳46년 이범석 등 광복군 환국 🌳46년 학생들 국대안 반대 운동 시작(∼47년. 2월) 🌳46년 처음으로 국사교과서(진단학회 편) 배포 🌳52년 미군기, 수풍 발전소 폭격. 🌳60년 국회의원선거법 국회 통과 🌳60년 곽상훈 의장 사퇴, 허 정이 대통령직 대행 🌳61년 공보부 신설 🌳63년 폭우, 77명 사망 이재민 3만8000명 | |
🌳65년 한ㆍ일협정 조인(동경), 8월14일 국회 비준, 12월18일 비준서 교환(서울), 즉시발효ㆍ국교정상화
1965년 6월 22일 : 한일기본조약 조인(한일국교 정상화)
한국과 일본간의 국교를 정상화하는 ‘한일기본조약’과 4개 부속협정이 이날 일본 수상관저에서 조인됐다.조약은 이동원 외무장관, 김동조 수석대표와 시나 일본 외무장관, 일본 수석대표가 서명-조인했다. 일본자본을 끌어들여 근대화를 추진하고 정권을 강화하려는 박정희 대통령과 한국진출을 희망하는 일본자본, 그리고 극동지역에 반공 보루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입장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1965년 12월 17일 박정희 대통령이 한일조약 비준서에 서명하는 것을 정일권 국무총리, 이동원 외무 장관, 김동조 한일 회담 수석 대표가 지켜보고 있다
1965년 6월 22일 일본 수상관저에서 거행된 한일협정 조인식. 이 조인식에서 양국 외상은 한일기본조약 등 29건의 관계문서에 서명했다.
1965년 6월22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기본조약과 4개 부속협정에 대한 조인식이 있은 뒤 서울효창공원에서 반대집회가 열리고 있다 | |
🌳70년 북한, 남북연방제 주장 🌳73년 최초의 현수교 남해대교 개통 🌳77년 김형욱, 미국 하원 국제관계위에서 박동선 로비 활동과 자금에 대해 증언 🌳78년 한ㆍ일대륙붕협정비준서 교환 🌳82년 IBM산업스파이 사건 발생 🌳84년 서울지방검찰청, 미화 20만 달러를 밀반출 하려던 영락교회 박조준 목사를 구속-구두속에 숨겨 🌳84년 전기통신소, 충남 대덕연구단지에서 첫 장파장 광통신 시스템을 개통 🌳84년 재미교포 전위예술가 백남준 모국 방문 🌳85년 소값폭락-농민비관자살-전국서 소값안정요구 시위 🌳85년 보리 수매가 5.5%인상. 정맥, 가마당 36,360원 🌳85년 구로공단내 대우어패럴 노조위원장 김준용구속 🌳87년 노태우 민정당 대표, 전두환 대통령이 개헌논의 재개.. 김대중 씨연금해제. 구속자석방 등 받아들여 🌳87년 경찰 40여명, 부산 카톨릭센터에서 농성 끝내고 귀가하던 학생· 버스에 최루탄 난사 🌳88년 문화재관리국, 공주시금성동서 백제시대 왕릉급 3기 발견 🌳88년 한국경영자 총협회 노사분규와 관련, 「무노동 무임금」 원칙 결의 🌳90년 정부는 91년부터 산지 소값의 상·하한가격을 설정, 안정기준가격제도」를 시행키로. 🌳91년 시.도의원 선거에서 야당인 신민 민주당이 참패 함에 따라 야당통합과 두 당의 지도부 인책론이 대두 🌳93년 정부 외자도입 심의위원회 열어 옥외광고업 등 132개 업종에 대해 97년까지 투자개방안 확정. 🌳94년 강성산 북한총리, 이영덕 총리의 남북정상 회담을 위한 부총리급 예비접촉제의 동의 🌳96년 97년부터 예.체능계 우수학생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해외유학을 전면 자유화하기로 🌳96년 제주도 한일 정상회담 🌳97년 서방선진7개국(G7)..러시아,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공동성명 발표(미국 덴버) | |
🌳98년 속초앞바다 11마일 해상서 北잠수정 발견 간첩 침투 (9명 전원 자살)- 동해 인근 해군기지로 예인
1998년 6월 22일, 북한 잠수정 동해안에서 어선 그물에 걸려 좌초
1998년 6월 22일 4시 33분, 유자망 그물을 검사하던 동일호가 속초 동쪽 해상에서 서서히 항해 중인 잠수함을 발견, 선장 김인용씨가 휴대 전화로 속초어업무선국에 연락하였고, 또한 이후 부근에서 조업 중이던 용신호가 스크루가 그물에 걸린 잠수함을 발견하여 신고하였다. 속초 동쪽 11.5마일(18Km) 해상에서 북한 유고급 잠수정 1척이 대남공작 임무를 마치고 귀환중 우리 어선의 꽁치잡이 그물에 걸린 것이었다. | |
| 🌺2000년대🌺 | |
✿2000년 6월22일 =동의보감이 대한민국 국보로 승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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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22일 =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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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월드컵 아시아 첫 4강
이제 2002년 6월 22일...더 이상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23명 태극전사의 땀과 투지, 그리고 이들과 함께한 4700만 국민적 열망이 함께 어우러진 ‘아시아의 힘’이었다.
한국이 22일 광주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IFA랭킹 8위인 스페인과의 8강전에서 120분 연장사투 끝에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5―3으로 이겨 아시아 첫 4강에 오르는 쾌거를 이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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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2일, 대(對)잠수함 어뢰 '홍상어' 개발
2009년 6월 22일 하늘로 날아가 30여㎞ 떨어져 있는 적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는 장거리 대잠(對潛)무기 '홍상어'가 국내 기술로 개발됐다.
어뢰(torpedo)란 자체적으로 추진하는 폭발성 발사체 무기로, 수면 위 또는 수면 아래로 발사되어 물 속에서 추진하여 표적을 향하며, 충돌할 때나 표적에 접근할 때 폭파하는 것으로 어형수뢰의 약자이며 현대식 어뢰는 1866년에 오스트라아 해군의 G. 루피스와 영국인 엔지니어R. 화이트헤드(Robert Whitehead, 1823-1906)가 발명했다. | |
✿ 2009년 미국 워싱턴DC 지하철 추돌사고
2009년 6월 22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오후 5시쯤(현지시각) 워싱턴 D.C.와 메릴랜드를 연결하는 레드라인 노선의 타코마 역과 포트 토튼 역 사이 지상 구간에서 지하철 열차가 추돌했다.
워싱턴 지하철 33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이날 사고로 9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다쳤다. 이번 사고는 포트토튼역에 진입하려고 정차해 있던 열차를 후속 열차가 추돌하면서 발생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