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 하린 (시인)
10. 상상 테마9 - 상징적 요소를 바탕으로 상상하며 시 쓰기 @ 소재나 모티브가 갖는 특징과 상상 적용 방법 상징은 추상적인 사실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대표성을 띤 기호로 나타내거나 구체적인 사물을 끌어와 암시하는 일을 말한다. 상징 자체가 ‘구체적인 사물’이나 감각화된 표상을 활용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구체성 획득에 무난하고 암시성도 자연스럽게 담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상징은 그리스어 ‘symbolon’에서 유래되었는데 함께 혼합된 것이나 식별 기호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말에서 알 수 있는 특징이 바로 비유와의 차이점이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과의 관계가 1:1로 맞물리는데 상징은 원관념과 보조관념의 관계가 多:1의 관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당신의 생각은 어둠이다’라는 비유가 있을 때 원관념은 ‘당신의 생각’이고 보조관념은 ‘어둠’이 된다. 거기에 비해 상징은 원관념이 여러 개가 혼합된 형태를 띤다. ‘십자가’라는 상징물의 경우 원관념이 기독교, 예수, 교회, 성경 등의 혼합된 의미를 동반한다. 그리고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 유사성에 근거해서 만들어지지만 상징은 우연성에 의해 만들어진다. ‘당신의 생각’과 ‘어둠’은 모두 밝지 못한 상태라는 유사성을 갖는다. 하지만 ‘십자가’와 기독교, 예수, 교회, 성경은 애초에 유사성이 거의 없다. 예수가 ‘십자가’(그 시대 형벌 제도)에 못 박혀 죽었다는 우연성 때문에 십자가가 상징으로 쓰인 것이다. 그래서 상징은 초논리적인 매개성을 갖는다. 일상 속에서 상징을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수많은 회사의 로고가 바로 상징이다. 로고 하나로 그 회사와 그 회사에서 만든 물건과 그 화사와 관계된 사람과 건물 등을 나타낸다. 신호등도 마찬가지다. 초록불은 ‘지나가도 된다’ ‘통과’ ‘안전’ 등의 의미를 함의하는 상징이다. 그런데 시에서 말하는 상징은 그런 일반적 로고나 기호화는 다른 성질을 갖는다. 시에서 상징은 일반적인 의미(지시적 의미)와 결합되지만 일반적 의미에 한정되지 않고 시인이 새롭게 드러내고자 하는 어떤 행위나 어떤 상태를 포괄하면서 이루어진다. ‘아버지는 밤마다 뱀이 되었다’라는 상징적 표현이 있다고 했을 때 ‘뱀’은 징그러운 피충류라는 일반적인 의미를 포함해서 아버지가 갖는 교묘함, 은밀함 등을 포괄적으로 표상한다.
시에서 상징을 쓸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이미 익숙해진 상징(죽은 상징)이 아니라 시인이 새롭게 창출한 개별적 상징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비둘기는 평화를, 양은 순한 존재를, 눈물은 고통과 고난을 상징하고 있는데, 그것에 기대어 상징을 쓴다면 상징이 절대 될 수 없다. 낯선 사물이나 현상을 끌어와 상징화시키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을 낯설게 상상해 보자. 바다, 강, 화분, 나무, 바위, 태양, 달, 별, 저녁 등은 너무 뻔해서 신선하지가 않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익히 알고 있는 어머니의 포용력 있는 상태나 희생적인 모습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계단이나 얼음, 백지, 서쪽, 목요일 등이 어머니를 상징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것들이 어머니를 상징해야 낯설게 하기로써의 상징이 이루어진다. ‘어머니 속에 목요일이 산다. 목요일은 목요일을 싫어한다. 어머니가 죽자 목요일은 따라 죽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옮겨갔다.’ 간단히 적어본 상징의 예시지만, ‘어머니는 화분이다. 어떤 것을 심어도 품고 키운다’와 같은 상징보다는 훨씬 더 신선한 느낌을 전해준다.
필자의 시를 통해 그 소재가 어떻게 상상과 만나 펼쳐지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점촌빌라 103호 / 하린 키울 게 없어서 복순씨는 청승 한 마리를 애완동물로 키우며 산다. 청승에겐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필요했기에 눅눅한 벽과 퀴퀴한 냄새를 방치했고 손바닥 닮은 창틀만을 허용했다. 청승은 무럭무럭 자랐다 밥상 위에 올라가 입맛을 다시고 장판 밑에 들어가 얇아지는 묘기까지 부렸다. 언젠가 이웃집 여자가 찾아와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청승은 몇 달째 뜯지 않던 달력 안쪽으로 숨어버렸다. 버릇이 있든 없든 청승이 가엾고 사랑스러워 그녀는 동고동락을 멈추지 않았다. 가을겨울 내내 입고 있던 외투 속 찢어진 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거나 봄여름 내내 신고 다니던 낡은 단화 밑창 아래에 깔고 다녔다. 청승은 오늘도 복순씨 주위를 뱅뱅 돈다. 똬리를 틀거나 꼬리를 치며 논다. 찾아오는 피붙이가 하나 없어도, 죽은 영감이 꿈속에 나타나 같이 가자고 해도 복순씨는 청승과 함께 잘도 늙는다.
우리는 가끔 본다 볶은 묵은지를 북북 찢어 물밥 위에 올려놓고 갑자기 천진난만하게 울던 복순씨를, 청승이 부리는 교태 앞에서 최면에 걸린 듯 함박웃음 짓던 이웃집 여자를… ―「1초 동안의 긴 고백」, 문학수첩, 2019.
1단계 - 스스로 점검하기 – 메시지 분명히 하기+내 시만의 장점 찾기 보통 독거노인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경제적인 일이 해결되지 않아서 생기는 비참함, 외로움, 고독, 청승 등이 있는데, 필자는 그 ‘청승’ 이미지를 심각하게 표현하지 않고 솔직 담백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이 시를 창작하게 되었다. 청승은 궁상스럽고 처량하여 보기에 언짢은 태도나 행동을 의미한다. 청승을 일반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연민 의식만 남게 된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연민 의식을 배면에 깐 채 그것을 섬세하게 관찰한 후 경쾌하게 발화한다. 진지한 상황을 진지하게만 언술하면 재미가 없어서 불쌍함이 암시된 상태에서 ‘경쾌함’을 덧붙여 시적 재미를 주려고 했던 것이다.
이 시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상상을 통해 ‘청승’의 이미지를 동물적 이미지로 전환하여 재미있게 형상화시킨 점이다. ‘청승’은 궁상맞고 처량해서 타인의 시선으로 보기에 짠한 느낌을 준다. 그 짠한 느낌을 배면에 깐 채 경쾌하게 그 상황을 언술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잘했네‘라는 인상을 심어 줄 수 있게 되었다.
2단계 - 객관적 상관물(현상)을 찾기+관찰과 조사 정밀하게 하기 「점촌빌라 103호」에서 객관적 상관 현상으로 쓰인 것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행위이다. ‘청승’을 상상적 동물로 만든 후 그 동물과 동고동락하는 반려적 상황으로 만든 것이다. “눅눅한 벽과 퀴퀴한 냄새”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나는 ‘청승’. 가여운데 사랑스럽게 자라나 시적 대상인 노인이 죽을 때까지 함께 살면서 서로 위로가 되기도 하고 노인의 처지를 암시하기도 한다.
이 시는 ‘복순씨’의 ‘청승맞은 생활과 처지를 애완동물의 이미지와 합성해 전개해 나가기에, 실제 ’복순씨‘의 생활과 처지를 나타낸 단어와 이미지가 있고 애완동물을 키우는 행위와 관련된 단어와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점촌 빌라, 103호, 청승, 키운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눅눅한 벽, 퀴퀴한 냄새, 방치, 입맛을 다시다. 장판, 묘기, 달력, 동고동락, 외투, 단화, 밑창, 묵은지, 물밥, 천진난만 등이 메모됐다.
3단계 - 확장하기 – 상상적 체험을 섬세하게 극적으로 하기 이 시에 쓰인 상상적 체험은 ‘청승’을 애완동물로 만든 것이다. 이 상상으로 인해 ‘청승’은 ‘복순씨’의 외부적 환경과 내적 상태를 암시하는 싱징이 되었다. ‘청승’은 가난한 ‘복순씨’의 처지와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 그럼에도 천진난만하게 이겨내려는 덤덤함을 모두 포함한 가상의 상징물이다.
상상을 펼칠 때 주의할 점이 있다. 상상이 자연스럽게 정착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이지 않는 애완동물이기 때문에 시적 표현에 매우 신경을 썼다. “이웃집 여자가 찾아와 삐걱거리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청승은 몇 달째 뜯지 않던 달력 안쪽으로 숨어버렸다”와 같은 표현이 바로 시적 논리를 획득하기 위해 일부러 현실성 있게 진술한 구절이다. 이웃집 사람은 볼 수 없기에 그것을 암시성을 갖는 ‘달력’에 숨긴 것이다. 시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 이 ‘거짓말’의 유무는 독자가 ‘에이,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을 보이는 즉시 판가름 난다. 예를 들어 무턱대고 ‘육교 위를 아파트가 걸어간다’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말도 안 돼’라는 반응을 보인다. 필자는 이런 것을 시에서 해서는 안 될 ‘거짓말’로 규정한다. ‘하루 종일 아파트와 한 몸이 되고 싶어서 이름을 아파트로 지은 사람이 있다. 육교 위를 아파트가 걸어간다’라고 앞부분에서 시적 논리를 위한 언술이 있게 되면 이번엔 ‘거짓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시적 상상을 펼칠 때 주의해야 할 점 중에 하나다.
* 또 다른 예문 찾기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 찾기 / 김임선
그때 오른쪽 주머니에 사탕 있는 남자가 내 앞을 지나간다
혹시, 당신의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아세요? 어머,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마세요 도둑 아니고 강도 아니에요 당신의 왼쪽 바지 주머니라 해도 상관은 없어요 당신의 왼쪽 심장이라 해도 상관없지요
사탕 있으면 한 개 주실래요? 에이, 거짓말! 나는 당신의 주머니를 잘 알아요 한번 만져볼까요? 꽃뱀 아니구요 사기꾼 아니에요 그렇게 부끄러워할 것 없어요 그럼 당신 손으로 당신 주머니에 손 한번 넣어보세요 어머, 그것 보세요 사탕이 남아 있다니 당신에게 애인이 없다는 증거예요
그것이 어떻게 당신의 주머니에 들어갔는지 당신은 모를 수 있어요 누구에게나 주머니에 사탕 한 개씩은 들어 있어요 사랑 말이에요 세균처럼 바이러스처럼 그 사탕 나한테 주시면 안 될까요? 나는 달콤한 것을 좋아해요 유난히,
망설이지 마세요 그 사탕 내게 주면 당신 주머니에는 또 다른 사탕 생길 거예요 사랑처럼 말이에요 경험해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 맞아요
사탕 대신 꽃은 어때요? 어머, 꽃 피우는 당신 마법사였군요
꽃을 나눠 가진 우리 이제 달콤해집니다 - 202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키, 키, 키, / 한병인 계단을 오르다가 놓고 온 키를 생각 한다
키는 어딘가의 구멍에 꽂힌 채로 계단 하나 정도의 높이에 매달려 있을 것이고 키는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고 구멍 하나의 길이로 밖을 가늠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는 오늘이라는 높이에 매달려 있는 작은 새 한 마리를 상상한다 새의 감정은 한사코 키와는 무관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구멍을 물고 있는 저 키의 속성이 새의 부리에서 왔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키와 새의 부리가 키, 키, 키, 웃음을 만들어낸다 서로 너무 꽉 맞아 떨어지는 속내를 키는 키 만큼의 길이로 유희하고 전유하는 까닭이다 쪼는 저들의 관성에서 부리는 점 점 더 높은 구멍으로 향하고, 그러나 언제고 다시 풀리는 키와 구멍들, 키를 닮은 수많은 부리들이 구멍을 통해 일제히 날아오르는 환상에 갇힌다 허공 어디쯤에서 키, 키, 키, 잠시 웃음을 만들어 낼 때에도 웃음이 울음에서 왔다는 소리의 의혹을 키, 키, 키, 웃음으로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키들은 단단한 부리를 부비며 한껏 오므려 보이는 것이다 오늘은 너무 뾰족하게 발음되는 키의 모양새를 제외하면 키, 키, 키, 웃음 몇 개는 여전히 내일에 남겨질 것이고, 키, 키, 키, 더 완벽한 웃음을 위하여 계단을 오를 것이고, 이제는 키, 키, 키, 울음에도 섞이고 키, 키, 키, 조금은 숨죽이다가 키, 키, 키, 낮게 흥얼거리다가 키, 키, 키, 울먹이다가 키, 키, 키, 소리 지르다가... 드디어는 키, 키, 키, 더 깊은 구멍으로, 천천히 내려가는 것이다 - 2020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악어떼 / 원보람
서른이 지나기 전에 두 번째 실업급여를 받았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햇빛 줄기를 나눠먹었고 발끝마다 매달린 검은 노예들도 입을 벌렸다 요즘은 늘 다니던 길을 잃는 사람들이 많아 표지판은 너무 많은 곳을 가리키고 신호등은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만 보내지 도시 곳곳에 설치된 늪지대를 지나다가 영혼을 자주 빠뜨렸다 너무 바쁜 날에는 일부러 나뭇가지에 헌옷처럼 걸어두고 가기도 했다 늪지대에 악어떼가 나온다는 소문이 들렸다 노예들은 밤마다 주인을 뜯어먹었고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거워지는 노예를 질질 끌다가, 끌려다니다가
악어는 심장부터 먹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상자 안에 있는 상자를 열면 나오는 상자 안으로 도시의 아이들이 차례로 들어갔다 사각지대 안에서 조용히 자라는 아이들 뚜껑을 열면 어른이 되어 나왔다 우리는 시급을 받고 늪지대에 숨어 포크를 쥐고 악어떼를 기다렸다 돈을 모으면 함께 열기구를 타자고 했다 뿌리 얽힌 사람들에게 내리는 비를 지나 위로의 말이 들리지 않는 대기를 지나 구름 사이 피는 버섯처럼 둥근 머리로 허공을 밀어 올리며 계속 가자고 했다 추락하는 일에 익숙했으므로 겨울 내내 올라가는 열기구만 상상했다 악어는 울기 위해 먹이를 씹는다고 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 201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출처 :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더푸른, 2021.09)
* 하린 시인 1971년 전남 영광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 학위. 1998년 〈광주매일〉신춘문예 시 당선, 2008년 《시인세계》 등단. 시집 『야구공을 던지는 몇 가지 방식』 『서민생존헌장』 『1초 동안의 긴 고백』. 연구서 『정진규 산문시 연구』 시 창작 안내서 『시클』 시 창작 제안서 『49가지 시 쓰기 상상 테마』, 『이것만 알면 당신도 현대 시조를 쓸 수 있다』 청마문학상(2011), 송수권시문학상(2015), 한국해양문학상(2016), 한국시인협회 젊은시인상(2020) 수상. 현재 중앙대 문화예술대학원 전문가과정 시 창작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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