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용 애인 (외 2편)
서 유 본 적 없는 애인이 나를 애인이라 부르면서 찾아왔다. 오랫동안 잠을 잔 것처럼 나른하게 하품을 하면서 셔터를 누를 수는 없겠다, 우리는 분명 사랑했을 텐데 과거와 현재가 섞이며 애인과 나는 어눌한 발음으로 밥을 먹는다. 묵묵히, 달아오르지도 못하고 우리는 밥알처럼 단순하다. 말라 가는 이마를 허공에 심으며 애인은 더 이상 고양이가 오지 않는다고 투정을 부린다. 키웠던 고양이는 어디로 갔을까 처음부터 울기는 했을까. 웃지도 않고 심각하지도 않고 애인은 햇볕이 필요한 이파리처럼 오물거리기만 한다. 키스할까? 비릿한 애인의 입속에서 나는 잠시 머물 수 있겠다. 우리의 육체는 모서리를 잃어 가는 말만큼 닳았고 헐렁해졌지만 나는, 애인은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 식물학에 앉아 죽은 동물의 사체를 게걸스럽게 넘기면서 나의 질서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은희
배경이 되는 쪽과 배후가 되는 기분에 대하여 어떤 팔을 펼칠까 은희는 생각했다. 은희는 작고 통통하고 그냥 은희였지만 차가운 바람같이 불리는 것을 좋아한다. 하얗다가 회색 심심하지 않게 검을 수 있고 감을 수도 있지. 수시로 팔을 들어 제 눈 속을 헤집고 죽은 새의 무덤을 파헤치고 태연하게 길을 건너는 뱀들을 지켜본다. 이렇게 자그마한 은희가 사탕을 빨고 치마를 걷고 룰루 랄라,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가 되는 쪽과 창녀가 되는 기분에 대하여 너는 다족류의 사생아일지도 몰라 너의 털을 보여줄 수 있겠니 당신이 흘린 은희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닌 쪽으로 간다, 흘러간다. 은희는 아직 매끈하고 모두와 잘 수 있고 단 하나와 축축해질 수 있는 다리를 가지고 있는데 불을 질러 볼까? 감쪽같이 숨을 수 있게. 가랑이를 찢으며 날아가는 비행기. 굴러 버리자. 가만히 서 있자. 그냥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빨강과 주황에게서 태어난 긴 팔로 은희는 이마를 문지르며 룰루, 랄라 생각했을 것이다. 웅크리면 아무것도 아닌 그날의 알갱이와 무늬와 파동에 대하여 Fade Out. 의자와 졸참나무가 있는 풍경 위로 물이 흘렀다. 어제는 비극이었고 더 먼 날은 하품처럼 나른하게. 은희는 동그라미였다가 터널이었다가 텅 빈 사각형이기도 했는데 이 쨍하고 차가운 거인의 눈 속에서 검은 팔을 펼쳐야지. 오늘의 하늘과 어울리는 양이 되기 위해서 털 뭉치들이 빠져나간다. 은희는 그냥 은희였지만 은희가 아닌 은희들은 아무것도 아닌 채로 펼쳐져서 간다, 흘러간다. 창백한 거미들을 이끌고 은희는 룰루, 랄라 생각했을 것이다. 사라지는 쪽과 눈을 감는 기분에 대하여 사람들은 검은 우산을 쓰고 장례식장으로 모여들었다. 폭우가 쏟아져도 은희는 아무 잘못이 없다. 구름의 형상이란 그런 것이다.
부당시
그래서 안녕할까요?
봄이 내렸고 여름은 누웠고 꽃은 사라졌습니다.
계절의 살갗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나는 팽창해 오는 땅의 알갱이에 대해 묻고 싶어집니다.
잘 죽어 가고 있나요?
어제는 당신을 만들어 작은 시집에 넣었습니다. 몇 번을 읽어도 알 수 없는 제목을 붙여 놓고 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유령들을
구겨 버렸습니다.
사람이 되면 긴 숨을 참을 수 있다는 말, 그 진위를 확인할 수 없어 오늘은 그냥 숨만 쉴래요.
같이 외로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는 것들에게 지기 위하여 마음껏 당신이 가벼워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기꺼이 바닥을 빌려 드리겠습니다.
—시집 『부당당 부당시』 2023.11 ------------------------ 서유 / 본명 서명옥. 경남 하동 출생. 동아대학교 독어독문학과 졸업. 2003년 〈경남신문〉신춘문예에 소설, 2017년 《현대시학》에 시로 등단. 첫 시집 『부당당 부당시』는 2023년 부산 문화예술지원사업 선정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