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놀 저녁 비
내 어릴 적 ‘계묘년 보리 숭년’이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는데 양곡이 부족했던 춘궁기를 대표하는 관용구였다. 당시는 쌀은 고사하고 보리쌀도 감지덕지였다. 그 시절 보리쌀은 삼시 세끼를 해결해준 양곡이었다. 작년이 계묘년이었는데 육십갑자 전 그해 장마가 일찍 와 논밭에서 거두지 못한 보리 이삭은 싹이 나 춘궁기에 이어 여름 흉년이 들어 일 년 내내 양곡이 부족했더랬다.
1994년 여름은 뜨거웠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이 분단 후 최초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었다. 7월 초 갑작스레 김일성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해 회담은 무산되었다. 그해 여름이 불볕더위였고 이후 2018년 여름도 더웠다. 교직 말년을 보낸 거제로 가기 전 교육단지 여학교 근무할 때였다. 교정에 가꾸던 봉숭아가 자꾸 시들어 방학에도 나가 땀 흘려 물을 주어 살려낸 기억이 있다.
앞의 두 단락은 내 기억에 남은 여름 날씨와 관련된 내용이다. 첫째 단락은 어린 시절이라 아슴푸레한데 유년기 어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둘째 단락은 중년 이후 내가 직접 겪은 폭염인데 올해 더위와 견주면 그 더위는 더위도 아닌 듯하다. 올해는 엊그제 구월 중순에 든 추석도 폭염경보가 내려지는 속에 명절이 지났다. 가히 ‘갑진년 최강 폭염’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남겼다.
간밤 열대야 속에 에어컨을 켜고 지낸, 추석을 쇠고 난 구월 셋째 주말을 앞둔 금요일이다. 이른 아침 자연학교 등굣길에 올라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월영동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소답동으로 나갔다. 대산 강가로 가는 마을버스를 타려고 소답동에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니 도계광장 방면으로 붉게 비친 아침놀이 장관이었다. 짧은 순간이라도 폰을 꺼내 아침놀을 앵글에 담아 놓았다.
날씨 관련된 속담으로 ‘아침에 놀이 끼면 날이 저물기 전 비가 온다’가 있다. 맑은 날 오후 저녁놀은 가끔 본다. 저녁놀은 사계절 어느 때고 비친다만 해가 짧아지는 가을이나 겨울 석양이 아름답다. 아침놀은 아무래도 비가 흔한 여름에 나타날 현상인데 봄가을에도 짧게 스쳐 지나는 아침이 있을 수도 있다. 이번에 본 아침놀은 동녘 하늘이 온통 붉게 물들어 시선을 끌 만도 했다.
창원역을 출발해 오는 1번 마을버스를 타고 도계동 만남의 광장을 거쳐 용강고개를 넘으니 붉게 비친 아침놀은 금방 사라지고 옅은 구름만 드러났다.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행정복지센터와 가월을 지난 주남저수지에서 내려 들머리 산책로를 따라 둑길을 걸었다. 폭염 속에도 물억새가 피어 가을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구름이 끼어 한낮에 30도를 웃돌게 오르지 않을 듯한 느낌을 받았다.
탐조 망원경을 세워둔 틈새로 드러난 주남저수지 수면은 수위가 낮아져 연과 수초만 빼곡했다. 벼농사용으로 물을 빼 썼고 강수량이 적어 드넓은 저수지는 바닥을 드러냈다. 앞으로 많은 비가 와 주지 않으면 본포에서 낙동강 강물을 퍼 올려 채워야 할 듯했다. 둑길에서 바라보인 들판 끝은 진영 신도시 아파트가 보였다. 대암산으로 이어지는 정병산에는 낮은 구름이 걸쳐졌다.
주천강이 시작된 배수문을 지난 낙조대 쉼터에서 아침에 남긴 사진을 지기들에게 안부로 전했다. 장정 예닐곱 명이 예초기를 짊어지고 나타나 길섶의 풀을 자르려고 해 자리를 비켜 주천강 둑길을 걸어 주남돌다리를 건넜다. 어느 때부턴가 마을과 민가를 이어주는 기능을 상실하고 전설 서린 역사 조형물로서 가치만 남은 돌다리였다. 주남마을 앞에서 들녘을 걸어 신동으로 갔다.
들녘 마을을 지나 가술에 닿았다. 빗방울이 듣는 속에 무덥지는 않아도 두 시간 남짓 걸었더니 등과 이마는 땀이 났다. 문이 열린 카페에서 냉커피로 땀을 식히고 허난설헌을 만났다. 서가에 꽂힌 작가 최문희가 풀어낸 400여 년 전 굴곡진 시대에 짧은 생을 살다 간 초희 일대기를 독파했다. 점심나절 성글던 빗방울은 오후가 되지 세차게 굵어지면서 갑진년 더위는 꼬리를 내렸다. 24.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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