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는 표면이 곧 심연인 세계다.
2
나는 쓴다. 쓴다는 것은 제가 지핀 불에 스스로 제 몸을 지지는 일이다. 쓴다는 것은 존재함에 내장된 타성(惰性)과 피동성(被動性)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도발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쓰기의 자발적 구속, 혹은 하염없는 투신! 쓴다는 행위는 결국 문체에의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쓴다는 것, 그것은 불가피한 피의 요청이다. 어처구니없는 우연이 필연으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3
시는 욕망이 아니라 욕망에 대한 욕망이며, 꿈이 아니라 꿈에 대한 꿈이다. 시는 겹의 욕망, 겹의 꿈으로 이루어진다. 그것을 결핍에 대한 보상이라고 이해했다. 그래서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현실에 대한 환멸이 징하게 깊어져 마침내는 내부에 궤양이 생기고 천공(穿孔)이 생기는 사태까지 악화된 뒤 그 치유의 방책으로 그 유토피아-한국어로는 이어도다-를 찾아 헤매다녔다. 글쓰기, 그 기약 없는 것에 홀려 그토록 찾아 헤매다녔다니, 살 떨린다!
4
시는 무심히 비친 풍경이며, 그 풍경 밑으로 흘러가 스미며 섞이는 마름 한 자락, 풍경에 묻어 풍경과 함께 오는 그 무엇이다. 시는 현실/세계의 구조화가 아니라 현실/세계를 횡단하는 선험(先驗)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시는 도구적 이성의 전략이 아니라 감각의 깊이를 현현하는 몸-됨이다. 시는 세계가 걸친 낡은 겉옷의 구멍으로 언뜻언뜻 내비치는 존재의 속살 엿보기이다.
5
시에의 숭고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치명적 중독으로 시인들은 반생을 소모한다.
6
과연 결핍을 보상받으려는, 내면에 움푹 팬 욕망 때문일까? 불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의미를 향한 어리석은 투신일까? 나를 시라는 벼랑으로 떠민 것은 우연이다. 우연은 땅에 박힌 사금파리처럼 어디서나 번쩍인다.
7
한번 변심해서 떠난 애인은 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삶, 변심한 애인!
8
시, 변심한 애인을 향한 복수의 일념에서 비롯된 처절한 자해극! 결국 제 몸에 상처를 남긴다.
9
다음 단계는 놀이의 윤리학!
10
그 다음 단계는 쾌락의 향연!
11
공리주의자들은 시를 의미의 집합체로 이해한다. 그들은 문학 언어들이 의미의 전언으로 환원된다고 믿는다. 그들은 언표된 것을 해체하고 의미화하면서 거기서 삶의 부조리라든가, 선악의 분별이라든가 하는 것을 어쨌든 찾아내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의미의 과소비가 일어난다. 의미로 더럽혀진 손으로 시를 만지면 시가 배양해 온 배아세포들, 혹은 시의 DNA는 오염되어 버린다. 시가 진액으로 뿜어내는 의미에는 시가 없다. 시는 의미가 되기 이전의 표면, 심연을 머금은 표면이다.
-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