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30년 역사상 최초로 형성된 챔피언 결정전에서 더블 석권한 포항
(만화에서나 볼법한 상황이 실제로 일어났다. 95분 추가시간에 포항은 더블 석권을 이뤄냈다. 사진출처 F&)
포항이 기적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불과 한달 여 전에 승부차기 접전 끝에 전북을 누르고 FA컵 우승을 거머쥐었었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라이벌 팀인 울산을 상대로 적진이었던 호랑이굴에서 95분 추가시간에 신영준의 골로 1대0으로 드라마와도 같은 리그 우승을 거머쥐었다.
리그 1위였던 울산과 2위였던 포항의 승점 차이는 불과 2점 차이 밖에 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39라운드에서 울산은 부산 원정에서 2대1 역전패를 당하는 반면, 포항은 서울을 홈으로 불러들여 3대1 승리를 만들어냈었다. 설상가상으로 울산은 부산과의 경기 도중 팀의 핵심선수인 김신욱과 하피냐가 경고를 받으면서 마지막 경기인 포항전에서 경고누적으로 출장정지처분을 받게 된 상황이었다. 울산의 우승향방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사건이자, 포항에게 있어서는 반전의 계기가 되는 요소였다. 가뜩이나 울산은 까이끼와 박용지가 부상으로 전력이탈한 상황인데다가 김신욱과 하피냐까지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사용할 수 있는 카드가 사실상 없어진 셈이었다. 그렇다고 포항도 완벽했던 것은 아니었다. 황진성이 시즌아웃되었고, 왼쪽 사이드백에서 뛰는 선수들이 부상(박희철)과 경고누적(김대호)으로 나오질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포항은 김승대라는 황진성 대체자가 있었고, 상주상무 우승을 이끌고 포항으로 복귀한 김재성-김형일 듀오가 있었다. 여기서부터 출발이 달랐다고 볼 수 있다.
공격옵션이 없었기에 울산은 포항을 상대로 공격전개하는 데에 있어서 상당히 어려움을 나타냈다. 수비력에 있어서 울산이 포항보단 한 수 위였고, 리그 최소실점기록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비기겠다는 작정으로 걸어잠궈버리면 그만이긴 했다. 하지만 "비기려고 하는 자"와 "이기려고 하는 자"와 맞붙는 경기인데 누구의 손을 들어주겠는가? 여기에서 울산은 포항에게 이미 진거나 다름없는 셈이었다. 울산은 포항의 패싱축구를 효과적으로 봉쇄하면서 간간히 역습으로 포항을 위협했다. 하지만 후반전에 황선홍 감독이 해결사 박성호와 신영준 등을 투입하면서 전술변화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효과적으로 먹혔다. 교체자원이 없다보니 김호곤 감독은 아예 잠궈버리는 전술로 들고 나왔고, 마스다, 최성환 등을 투입시켜 수비력을 강화했다. 최소실점 팀답게 90분까지 버텨냈지만, 포항의 의지를 끝까지 막아내지 못하고 95분에 무너져버렸다. 마치 1998년 플레이오프에서 포항이 김병지에게 당했던 것을 복수하는 것 같았다.
결국 "이기려고 하는 자"의 의지가 통했던 셈이며, 황선홍 감독은 K리그 역사상 최초 더블(리그+FA컵 우승)을 달성하면서 포항에게 다섯번째 별을 안겨다 주었다. 빈약한 지원으로 눈물 삼키며 국내 선수들로만 한시즌 운영했던 포항의 해피엔딩이었다. 어느 스포츠만화 주인공처럼 역경을 딛고 마침내 챔피언에 등극했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기엔 너무나도 텁텁한 맛을 남긴 챔피언 결정전
(K리그 역사상 최초로 마지막 라운드에서 챔피언 결정전이 되어버린 2013년 시즌, 하지만 뭔가 텁텁하다. 사진출처 아시아경제)
본의 아니게 상황이 이렇게 형성되다보니, K리그 30년 역사상 마지막 라운드에서 챔피언이 결정되기는 처음이었다. 플레이오프제는 제도 특성상 예외를 둬야 하고, 풀리그제로 돌릴 때에 그동안 K리그 챔피언은 마지막 라운드 이전에 결정났었고, 작년만 하더라도 그러했다. 그렇기에 이번 마지막 경기가 그 어느 때보다도 가치가 높았고, 상대가 동해안 더비인 울산과 포항이었다는 점 때문에 관심도는 더 클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일정을 보고 프로축구연맹이 미리 예견하고 짠 것이 아니냐는 일부 축구팬들의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해피엔딩으로 끝나기엔 다소 텁텁한 맛을 남긴게 이 경기였다. 몇 가지 텁텁한 맛을 내는 요소 때문에 포항의 더블 달성이 빛바래지고 있는 실정이다.
1) 경기 외적인 면에서 비매너를 보여주었던 포항 서포터들의 이물질 투척
("족보없는 축구는 가라." 라는 걸개가 민망할 정도로 포항 서포터즈들의 투척사건은 눈살찌푸렸다. 사진출처 @jk7854)
포항이 95분에 결승골을 넣고 우승을 결정짓는 사이에, 열정적인 포항 서포터들은 흥분한 나머지 물병, 과메기 등 이물질을 피치 위로 투척했다. 울산이 경기를 질질 끌 때도 던졌고, 포항의 천적으로 불리는 김승규가 공을 주우러 포항 서포터들 앞으로 갔을 때에도 던졌으며, 골 넣고 난 뒤에도 던졌다. 문제는 포항서포터들의 이러한 행동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 지적하려고 한다.
작년 K리그 개막전이었던 동해안더비가 열린 스틸야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당시 김신욱의 결승골에 힘입어 울산이 포항을 상대로 1대0 승리로 끝났다. 서로가 으르렁대며 잡아먹지 못해 안달난 사이이기에 그들은 서로를 자극해왔다. 그러다가 경기 끝날 때즈음, 울산 서포터들의 메인 곡인 "잘가세요~"가 스틸야드 N석을 상대로 울려퍼졌고, 경기 끝나고 나서 일부 포항팬 3명이 경기장에 난입하여 울산 서포터들이 있는 S석으로 달려가 언성을 높히며 욕설이 오갔다. 그 때, 울산 서포터들 위인 2층에서 쓰레기통이 울산 서포터들 앞으로 떨어졌다. 자신들의 패배의 분을 삭이지 못하여 화풀이를 울산 서포터들에게 그런 방식으로 한 것이다. 경기는 경기이고, 그것에 대한 분풀이를 폭력으로 행사하는 것은 절대로 정당화할 수 없는 것이고, 혹시나 사람이 맞았다면 큰 인명사고가 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연맹측에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6월 27일 호랑이굴에서 열린 동해안더비 리턴매치에서 또다시 사건이 터졌다. 울산은 포항을 상대로 3대1 완승을 거두며 라이벌을 크게 눌렀다. 이 당시 일어난 사건도 경기가 끝난 직후에 일어났다. 당시 E/S석 경계 부분에서 일부 울산 서포터들과 포항 서포터들의 시비가 오갔었다. 그러다가 경기장 밖에서 남자 고등학생 울산 팬이 여러 명의 포항 팬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경찰까지 출동했다. 경기장 밖에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이걸로 벌써 2번째였다. 포항측에서는 사건 가해자를 찾아서 직접 처벌하겠다는 말은 하였으나, 실제로 어떠한 처벌을 하였는지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경기 후에 이러한 사건이 2번이나 일어났음에도 연맹측은 이번에도 그냥 넘어갔다. 이러한 두 사건 때문에 울산과 포항 팬들의 사이는 극악으로 치닫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두 번의 전례가 있는 상황에서 포항 서포터들은 이물질을 경기장 안으로 던졌다. 분명 포항 서포터들 내부에서 하지 말라고 말렸던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일부 몰지각한 팬들은 그러한 만류를 뿌리치고, 꿋꿋이 던졌다. 그들의 비매너가 스스로 자신들의 잔칫상을 엎어버린 것이다. 안그래도 울산 서포터들은 우승 빼았긴 것도 모자라 이러한 사건을 눈 앞에서 보았으니, 이성을 잃을 뻔 했을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대해서 포항 측에게 강력하게 개막전 무관중 징계를 내려도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이물질 투척이라는 행동 자체가 일종의 폭력이고, 잠재적인 피해자를 낳게 된다. 연맹 측에서는 이번 기회에 이물질 투척에 대한 징계를 확고하게 내려 바로잡아야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선례에도 징계받지 않았으니 던져도 된다는 사람들의 인식이 퍼져나가게 된다. 우승은 우승이고, 폭력은 폭력이다.
2) 후반 막판에 어이없는 판정으로 경기 흐름을 끊어놓았던 류희선 주심
(이러한 사태임에도 류희선 주심은 도리어 울산 선수들이 시간끈다는 것으로 그들에게만 경고를 주었다)
두번째로 지적하고 싶은 건, 다름 아닌 오늘 경기 주심이었던 류희선 주심의 후반 막판에 행한 어이없는 판정이었다. 오늘 경기가 다소 거칠어질 수 밖에 없는 경기였기에 류희선은 몸싸움만 일어나도 선수들에게 거침없이 옐로우카드를 뽑아들었다.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그런 거야 심판 재량이다. 하지만 이물질이 경기장으로 날아오는 데에 그것에 대한 조치는 커녕 도리어 울산 선수들이 질질 시간 끈다는 이유로 옐로카드를 남발했다는 것이다. 고의적인 경기 지연이었기에 경고를 받을 만 한 명분은 충분히 성립된다. 하지만 뒤에서 이물질들이 날아오고 자칫하면 선수들이 맞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인데, 그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지 시간 끈다는 이유만으로 경고를 줬다는 것이다. 이건 분명히 류희선 주심이 제대로 실수한 면이다. 울산 선수들이 뒤에서 이물질이 날아온다는 항의도 했었는데, 그것을 묵살한 것은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선수들의 안전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경기 속행이라니, 대단하다.
그리고 후반 막판에 벌어진 김광석의 강민수 걷어차기에 대해서 류희선은 그저 구두경고로 끝내버린 점도 문제다. 경기가 격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수들이 예민해지고 과격해지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 퇴장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비매너 중에서 비매너다. 세트피스 준비 상황에서 김광석과 강민수는 위치선정으로 인한 몸싸움을 벌이다가 김광석이 강민수를 걷어찼다. 경기 도중에 김광석에게 퇴장명령을 내렸어야 했다. 하지만 류희선 주심은 김광석의 그런 폭력을 눈감아주었다. 구두경고에서 끝내버렸다. 만약 김광석이 퇴장당했더라면, 울산이 3번째 우승을 확정짓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지도 몰랐을 터인데 말이다. 울산 팬들은 류희선의 이러한 판정 때문에 우승을 빼앗겼다고 느끼고 있다. 누구보다도 중심을 잡아줘야할 심판이 이러한 중요경기에서 오심을 저질러버렸으니 두고두고 말이 나옴이 틀림없다.
분명 포항이 축하받아야 할 무대임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오점 때문에 포항은 리그와 FA컵을 우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찝찝한 기분을 안고 올시즌을 마감하게 되었고, 울산은 심판의 판정으로 도둑맞은 기분을 느낌과 동시에 포항 서포터들의 행동을 두고두고 용서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축제 분위기를 미꾸라지 한 마리가 다 망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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