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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능득지(吾能得之)
제가 그것을 구해올 수 있습니다
吾 : 나 오(口/4)
能 : 능할 능(月/6)
得 : 얻을 득(彳/8)
之 : 갈 지(丿/3)
昔東海龍女病心, 醫言: 得兎肝合藥則可療也. 然海中無兎, 不奈之何. 有一龜白龍王言: 吾能得之.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병을 앓았다. 의원이 말하기를, "토끼의 간을 얻어 약에 합하면 낫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닷속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한 거북이가 용왕에게, "제가 그것을 구해올 수 있습니다"고 말하였다.
遂登陸見兎, 言海中有一島, 淸泉白石, 茂林佳菓, 寒暑不能到, 鷹隼不能侵. 爾若得至, 可以安居無患.
마침내 뭍에 올라 토끼를 보고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한 섬이 있는데 맑은 샘과 흰 돌 그리고 무성한 숲과 아름다운 과일이 있는 데다 추위와 더위가 이를 수 없고 매와 새매도 침범할 수 없다. 네가 만약 갈 수만 있다면 편안히 살며 근심이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거북이와 토끼 이야기, 귀토지설(龜兎之說) 중 앞부분이다.
토끼를 업고 용궁으로 헤엄쳐 가던 거북이는 "용왕의 딸이 병에 걸렸는데 토끼의 간만이 약이 된다. 그래서 너를 업고 간다"고 하였다.
놀란 토끼가 "간과 심장을 꺼내 씻어 바위 밑에 두고 왔으니 가지러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뭍으로 돌아와 살아났다.
이 이야기는 김춘추가 고구려에 원병을 구하러 갔다가 옥에 갇혔을 때, 선도해(先道解)라는 사람이 그곳에서 벗어날 방법으로 알려준 내용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별주부전(鼈主簿傳)' '토끼전'이라는 이름으로 소설과 판소리 소재가 됐다. 재치를 발휘해 살아난 토끼의 기지가 돋보이는 이야기이다.
■ 구토지설(龜兎之說)
흔히 '별주부전', '토끼타령, 토별가'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소설은 판소리 '수궁가'로도 유명하다.
누구나 한번쯤 읽어보고 들어본 적이 있는 이 소설은 병든 용왕이 토끼의 간이 있으면 고칠 수 있다는 의원의 말을 믿고 별주부를 시켜 토끼를 유혹하여 잡아와 간(肝)을 꺼내려 하는데, 이때 토끼가 꾀를 내어 간을 씻어 육지에 놓고 왔다고 하며 가져와야 한다고 하니, 이 말을 믿고 육지로 토끼를 다시 돌려보내는 어리석은 용왕과 죽음에서 지혜롭고 슬기롭게 탈출하는 토끼를 의인화하여 지은 재미있고 흥미로운 소설이다.
연대와 작자 미상으로 되어있는 이 소설은 '삼국사기'에 나오는 '구토지설'이 바탕이 된 고대소설이다. 이 소설이 단순히 재미있는 소설이전에 고대 삼국시대로 올라가보면 고구려와 신라의 운명을 맞바꾸어 놓는 기막힌 역사의 순간이 있었으니 잠시 살펴보는 것도 재미 있을듯하다.
삼국사기 권 41, 김유신(金庾信) 상(上)과 신라본기 제5 선덕여왕 11년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善德女王十一年任寅, 百濟敗大梁州, 春秋公女子高陀炤娘, 從夫品釋死焉.
선덕여왕 11년 임인(任寅; 서기 642년)에 백제가 대량주(大梁州; 지금의 陜川으로 사기에 대야성(大耶城)으로도 기록)를 함락 하였을 때 춘추공(金春秋)의 딸 고타소랑(高陀炤娘)이 남편 품석(品釋)을 따라 죽었다.
사랑하는 자식과 사위를 잃은 부모 마음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어찌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당시에 춘추가 얼마나 슬퍼했는지 다음과 같은 기록도 있다.
春秋聞之, 倚柱而立, 終日不瞬, 人物過前不而之省, 旣而言曰, 嗟乎大丈夫, 豈不能呑百濟乎, 便詣王曰, 臣願奉使高句麗, 請兵, 以報怨於百濟, 王許之.
춘추가(그의 죽음) 듣고 기둥에 의지하여 하루 종일 눈을 깜박이지 않고, 사람이나 물건이 그의 앞을 지나가도 알지를 못하더니, 얼마 후 말하기를, "슬프다, 대장부가 어찌 백제를 멸하지 못하랴" 하고 왕에게 나아가 말하기를, "신(臣)이 고구려에 가서 군사를 청(請)하여 백제에 대한 원수를 갚고 싶습니다"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춘추는 고구려의 도움을 받아 백제를 치기위해 고구려를 찾았으나, 오히려 첩자로 오해를 받고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고구려왕은 일부러 춘추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한다.
고구려왕은 "마목현(鳥嶺)과 죽령은 본래 우리 땅이니 돌려주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다" 하니, 춘추는 "국가의 토지는 신자(臣子)로서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여 왕은 노하여 옥에 가두게 된다.
죽을 처지가 된 춘추는 고구려왕이 신임하는 선도해(先道解)에게 뇌물로 청포(靑布) 300보(步)를 비밀리에 주었는데 이때 선도해가 우회적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구토지설'이다.
여기서 잠시 이야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昔東海龍女病心, 醫員, 得兎肝合藥則可療也. 然海中無兎, 不奈之何.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心臟)병을 앓았는데, 의원(醫院)이 토끼의 간을 얻어 약을 지으면 치료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해중(海中)에는 토끼가 없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有一龜曰龍王言, 吾能得之, 遂登陸見兎, 言海中有一島, 淸川白石, 茂林佳實, 寒暑不能到, 鷹準不能侵, 爾若得至, 可以安居無患, 因負兎背上, 游行二三里許, 龜顧謂兎曰, 今龍女被病, 須兎肝爲藥, 故不憚勞, 負爾來耳.
이때 한 거북이 용왕에게 아뢰어 자기가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 육지로 나와 토끼에게 하는 말이, "바다 속에 한 섬이 있는데 샘물과 흰 돌에, 무성한 숲, 아름다운 실과가 있으며, 추위와 더위가 없고, 매와 새매가 침입하지 못하니, 네가 가기만 하면 편히 지내고 아무 근심이 없을 것이라" 하고, 이어 토끼를 등에 업고 헤엄쳐 2. 3리 쯤 가다가, 거북이 토끼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지금 용왕의 딸이 병이 들었는데, 토끼의 간(肝)이 있어야 약을 지을 수 있기에, 이렇게 수고로움을 불구하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 하였다.
兎曰, 噫吾神明之後, 能出五臟, 洗而納之, 日者小覺心煩, 遂出肝心洗之, 暫置嚴石之底, 聞爾甘言徑來, 肝尙在彼, 何不廻歸取肝, 吾雖無肝尙活, 豈不兩相宣哉, 龜言之而還, 纔上岸, 兎脫入草中, 謂龜曰, 愚在汝也, 豈有無肝而生者呼. 龜怋黙而退.
토끼가(그 말을 듣고) "아 아, 나는 신명(神明)의 후예(後裔)라, 능히 오장을 꺼내어 씻을 수 있다, (공교로이) 일전(日前)에 속이 좀 불편하여 간(肝)을 꺼내어 씻어서 잠시 바위 밑에 두었는데, 너의 감언(甘言)을 듣고 바로 왔기 때문에 간이 아직도 그곳에 있으니,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져 오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면, 너는 구하는 것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어도 살 수 있으니 어찌 이쪽 저쪽이 다 좋은 일이 아니랴?" 하니, 거북이 그 말을 믿고 도로 나가 언덕에 오르자마자 토끼는(거북의 등에서 내려서) "너는 어리석기도하다. 어찌 간(肝) 없이 사는 자가 있으랴" 하니 거북이 멍청하여 아무 말 없이 물러갔다 한다.
춘추는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고, 고구려왕에게 거짓으로 글을 올린다. "두 령(조령과 죽령)은 본래 大國(고구려)의 땅입니다(二嶺本大國之分). 신이 귀국하면 우리 왕에게 청하여 돌려 드리겠습니다(臣歸國, 請吾王還之). 내 말을 믿지 못하신다면 저 해를 두고 맹세하겠습니다(謂子不信, 有如曒日)"고 하여, 춘추는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죽음 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국경을 넘어 안전지대로 접어든 춘추는 전송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백제에 대한 원한을 풀려고 와서 군사를 청하였던 것인데 大王(고구려왕)은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토지를 구하니, 이것이 신하로써 할 일이 아니다. 전번에 대왕에게 글을 보낸 것은 죽음을 면하기 위한 것이다."
춘추의 탈출은 향후 고구려와 신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고구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신라는 당나라의 도움으로 '나당연합군'을 결성하게 되고, 곧 백제를 멸망시키고 고구려도 망하게 된다. 이로서 삼국이 통일이 되니 그 가운데는 김춘추(후에 무열왕)가 있었다.
당나라의 끈임 없는 침략을 받아왔던 고구려, 당시의 삼국중 제일 강한 국력을 갖고 있었던 고구려가 왜 신라의 도움을 거절 하였을까? 만약 고구려와 신라가 손을 잡았다면 당나라와의 전쟁 승리는 물론이고, 삼국통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이 이야기는 어찌보면 어리석은(?) 용왕(龍王; 보장왕)과 지혜로운 토끼(김춘추)의 또 다른 이야기는 아닐 런지? '구토지설'의 이야기와 비교되어 자꾸만 뇌리를 맴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 속 그 시절 우리 조상들의 세계가 눈에 보이듯 아롱거린다.
(참고)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金庾信)
金庾信 1
金庾信, 王京人也. 十二世祖首露, 不知何許人也. 以後漢建武十八年壬寅, 登龜峯, 望駕洛九村, 遂至其地開國, 號曰加耶, 後改爲金官國.
김유신은 서울(경주)사람이다. 12대조 수로는 어느 곳 사람인지 모른다. 그는 후한 건무 18년 임인에 구봉에 올라가 가락의 아홉 마을을 바라보고 마침내 그 땅에 이르러 나라를 열어, 나라 이름을 가야라 하였다가 뒤에 금관국으로 고쳤다.
其子孫相承, 至九世孫仇亥, 或云仇次休, 於庾信爲曾祖. 羅人自謂少昊金天氏之後, 故姓金.
그 자손이 대대로 이어져 9대 자손인 구해에 이르렀다. 혹은 구차휴라고도 하는데, 유신에게 증조부가 된다. 신라인들은 스스로 소호 금천씨의 후손이라고 생각하여 성을 김이라 했다.
庾信碑亦云: 軒轅之裔, 少昊之胤. 則南加耶始祖首露與新羅, 同姓也.
유신의 비문에도 또한 "헌원의 후예이며, 소호의 종손"이라 하였으니, 남가야 시조 수로는 신라와 동성이다.
祖武力, 爲新州道行軍摠管, 嘗領兵獲百濟王及其將四人, 斬首一萬餘級. 父舒玄, 官至蘇判大梁州都督 安撫大梁州諸軍事.
조부 무력은 신주도 행군총관이 되어 일찌기 군사를 거느리고 백제왕과 그 장수 네 명을 사로잡고 1만여 명을 참수한 일이 있었다. 부친 서현은 벼슬이 소판 대량주도독 안무대량주제군사에 이르렀다.
按庾信碑云: 考蘇判金逍衍. 不知舒玄或更名耶, 或逍衍是字耶, 疑故兩存之.
유신의 비문에 "아버지는 소판 김소연이다"고 하였으니, 서현이 고친 이름인지 혹은 소연이 그의 자인지를 알 수 없다. 의심스럽기 때문에 두 가지를 모두 기록해둔다.
初, 舒玄路見葛文王立宗之子肅訖宗之女萬明, 心悅而目挑之, 不待媒妁而合. 舒玄爲萬弩郡太守, 將與俱行,
처음 서현이 길에서 갈문왕 입종의 아들인 숙흘종의 딸 만명을 보았을 때, 마음속으로 기뻐하여 그녀에게 눈짓을 하여 중매도 없이 야합하였다. 서현이 만노군 태수가 되었을 때, (만명과) 함께 가려 하니
肅訖宗始知女子與玄野合, 疾之囚於別第, 使人守之. 忽雷震屋門, 守者驚亂, 萬明從竇而出, 遂與舒玄赴萬弩郡.
숙흘종이 비로소 딸이 서현과 야합한 사실을 알고, 그녀를 미워하여 별채에 가두고 사람을 두어 지키도록 하였다. 갑자기 대문에 벼락이 쳐서 지키던 사람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만명이 구멍으로 나와 마침내 서현과 함께 만노군으로 갔다.
舒玄庚辰之夜, 夢熒惑鎭二星降於己, 萬明亦以辛丑之夜, 夢見童子衣金甲, 乘雲入堂中, 尋而有娠, 二十月而生庾信, 是眞平王建福十七年, 隋文帝開皇十五年乙卯也.
서현은 경진일 밤에 화성과 토성 두 별이 자기에게 내려오는 꿈을 꾸었고, 만명도 역시 신축일 밤에 동자가 금으로 만든 갑옷을 입고 구름을 타고 집안으로 들어 오는 꿈을 꾸었다. 오래지 않아 임신하여 스무 달 만에 유신을 낳았다. 이때가 진평왕 건복 17년, 수 문제 개황 15년 을묘였다.
及欲定名, 謂夫人曰: 吾以庚辰夜吉夢, 得此兒, 宜以爲名, 然禮不以日月爲名. 今庚與庾字相似, 辰與信聲相近, 况古之賢人有名庾信, 盍以命之.
아이의 이름을 지으려 할 때 부인에게 말하기를, "내가 경진일 밤에 좋은 꿈을 꾸어 이 아이를 얻었오. 마땅히 이 날짜로 이름을 지어야 할 것이오. 그러나 예법에는 날짜로 이름을 짓지 않게 되어 있다하오. 지금 경(庚)은 유(庾)와 글자가 서로 비슷하고, 진(辰)은 신(信)과 발음이 서로 비슷하며, 더구나 옛날의 현인 중에도 유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어찌 이를 이름으로 삼지 않으리오?"라 하고,
遂名庾信焉. 萬弩郡, 今之鎭州, 初以庾信胎, 藏之高山, 至今謂之胎靈山.
마침내 이름을 유신이라 하였다. 만노군은 지금의 진주(진천)인데 애초에 유신의 태를 높은 산에 묻었으므로 지금도 그 산을 태령산이라고 한다.
公年十五歲爲花郞, 時人洽然服從, 號龍華香徒. 眞平王建福三十三年辛未, 公年十七歲, 見高句麗百濟靺鞨侵軼國疆, 慷慨有平寇賊之志, 獨行入中嶽石崛,
공은 15세 때 화랑이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를 기꺼이 따르며 용화향도라고 불렀다. 진평왕 건복 33년 신미, 공의 나이 17세 때 고구려, 백제, 말갈 등이 국경을 침범하는 것을 보고 비분강개하여, 외적을 평정하려는 뜻을 품고 혼자 중악 석굴에 들어갔다.
齋戒告天誓盟曰: 敵國無道, 爲豺虎, 以擾我封埸, 略無寧歲. 僕是一介微臣, 不量材力, 志淸禍亂. 惟天降監, 假手於我.
그는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고하여 맹세하기를, "적국이 무도하여 승냥이와 호랑이같이 우리의 영토를 소란케 하니, 편안한 해가 거의 없습니다. 제가 일개 미약한 신하로서 능력을 생각지 않고 나라의 환란을 없애기로 뜻을 세웠습니다. 하늘은 굽어 살펴 저를 도와주소서!"라 하였다.
居四日, 忽有一老人, 被褐而來曰: 此處, 多毒蟲猛獸, 可畏之地, 貴少年爰來獨處, 何也.
4일이 지나자 갑자기 한 노인이 갈옷을 입고 와서 말했다. "여기는 독충과 맹수가 많아서 무서운 곳인데, 귀한 소년이 여기에서 혼자 거처하니 무슨 일인가?"
答曰: 長者從何許來, 尊名可得聞乎?
공이 대답하였다. "어르신께서는 어디서 오셨는지 존함을 알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老人曰: 吾無所住, 行止隨緣, 名則難勝也.
노인은 "나는 일정한 주거가 없고 인연 닿는 대로 가고 머무나니, 이름은 난승이다"고 말하였다.
公聞之, 知非常人, 再拜進曰: 僕新羅人也, 見國之讐, 痛心疾首, 故來此, 冀有所遇耳. 伏乞長者憫我精誠, 授之方術.
공이 이 말을 듣고 범상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재배하고 말하기를 "저는 신라인으로서 나라의 원수를 보니 가슴과 머리가 아파서 여기에 와서 누군가를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엎드려 비옵건대 어르신께서는 저의 정성을 불쌍히 여기시어 방술을 가르쳐 주소서" 라고 하였다.
老人黙然無言. 公涕淚懇請不倦, 至于六七.
노인은 묵묵히 있었다. 공은 눈물을 흘리면서 예닐곱 번이나 거듭 열심히 간청하였다.
老人乃言曰: 子幼而有幷三國之心, 不亦壯乎.
노인은 그때서야 말했다. "그대가 어린 나이로 삼국을 병합하려는 뜻을 품고 있으니, 이 또한 장하지 않은가!"
乃授以秘法曰: 愼勿妄傳, 若用之不義, 反受其殃.
이에 노인은 비법을 가르쳐 주면서 "부디 함부로 전하지 말라! 만약 이를 의롭게 사용하지 않는다면 도리어 재앙을 받으리라" 라고 말하였다.
言訖而辭. 行二里許, 追而望之, 不見, 唯山上有光, 爛然若五色焉.
말이 끝나자 작별을 했다. 노인이 2리쯤 갔을 때 뒤쫓아 가 그를 찾아보았으나 흔적이 없고 오직 산 위에 오색찬란한 빛이 서려 있었다.
建福三十四年, 隣賊轉迫, 公愈激壯心, 獨携寶劒, 入咽薄山深壑之中, 燒香告天, 祈祝若在中嶽, 誓辭仍禱.
건복 34년에 인접한 적국의 침략이 점점 긴박하여지자, 공은 더욱 더 장한 뜻을 품고 보검을 차고 인박산 깊은 골짜기에 들어가 향을 피워 놓고 하늘에 고하며 중악에서와 같이 축원하고 맹세하면서 기도하였다.
天官垂光, 降靈於寶劒. 三日夜, 虛角二星, 光芒赫然下垂, 劒若動搖然.
그때 천관신이 빛을 비추며 보검에 영기를 쬐어 주었다. 3일째 되는 날 밤에 허수와 각수 두 별자리의 빛이 환하게 내려오자, 칼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建福五十一年, 己丑秋八月, 王遣伊湌任永里, 波珍湌龍春白龍, 蘇判大因舒玄等, 率兵攻高句麗娘臂城.
건복 51년 기축년 가을 8월에 왕이 이찬 임영리와 파진찬 용춘과 백룡, 소판 대인과 서현 등에게 군사를 주어 고구려의 낭비성을 공략하게 했다.
麗人出兵逆擊之, 吾人失利, 死者衆多, 衆心折衄, 無復鬪心.
그때 고구려인들이 군사를 출동시켜 맞서 공격해오자, 우리 측이 불리하여 죽은 자가 많고 여러 사람들의 사기가 꺾여 더 이상 싸울 생각을 못하게 되었다.
庾信時爲中幢幢主, 進於父前, 脫冑而告曰: 我兵敗北, 吾平生以忠孝自期, 臨戰不可不勇. 盖聞: 振領而裘正, 提綱而網張, 吾其爲綱領乎.
유신은 당시 중당 당주였다. 그는 부친 앞으로 나아가 투구를 벗고 말했다. "우리 군사가 패하였습니다. 제가 평생 충효를 다하기로 기약하였으니 전쟁에 임하여 용감히 싸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옷깃을 들면 갖옷이 바르게 되고, 벼리를 당기면 그물이 펴진다.’고 들었으니, 제가 옷깃과 벼리가 되겠습니다."
迺跨馬拔劒跳坑, 出入賊陣, 斬將軍, 提其首而來.
이에 말에 올라 칼을 뽑아 들고 참호를 뛰어넘어 적진을 드나들며 적장의 머리를 베어들고 돌아왔다.
我軍見之, 乘勝奮擊, 斬殺五千餘級, 生擒一千人.
아군이 이를 보고 승세를 타고 분연히 공격하여 5천여 명의 목을 베고 1천 명을 사로잡았다.
城中兇懼無敢抗, 皆出降.
성 안 사람들은 공포에 떨어 감히 대항하는 자가 없이 모두 나와서 항복하였다.
金庾信 2
善德大王十一年 壬寅, 百濟敗大梁州.
선덕대왕 11년 임인에 백제가 대량주를 격파하였다.
春秋公女子古陁炤娘, 從夫品釋死焉.
그때, 춘추공의 딸 고타소 아가씨가 남편 품석을 따라 죽었다.
春秋恨之, 欲請高句麗兵, 以報百濟之怨, 王許之.
춘추는 이를 한탄하며 고구려에 군대를 청하여 백제에 대한 원수를 갚고자 하였다.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將行, 謂庾信曰: 吾與公同體, 爲國股肱. 今我若入彼見害, 則公其無心乎.
장차 길을 떠나려고 할 때 춘추가 유신에게 말했다. "나와 공은 일심동체로서 나라의 기둥이오. 이번에 내가 만약 고구려에 들어가 불행한 일을 당한다면 공이 무심할 수 있겠오?"
庾信曰: 公若往而不還, 則僕之馬跡, 必踐於麗, 濟兩王之庭. 苟不如此, 將何面目以見國人乎.
유신이 대답하였다. "공이 만일 돌아오지 못한다면 저의 말발굽이 반드시 고구려, 백제 두 왕의 궁정을 짓밟을 것이오. 만약 이렇게 하지 못한다면 무슨 면목으로 백성들을 대하겠오."
春秋感悅, 與公互噬手指, 歃血以盟曰: 吾計日六旬乃還, 若過此不來, 則無再見之期矣. 遂相別.
춘추가 감격하고 기뻐하여 공과 함께 서로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바르며 맹세하였다. "내가 60일이면 돌아올 것이오. 만일 이 기한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다면 다시 만날 기약이 없을 것이오." 그들은 드디어 작별하였다.
後庾信爲押梁州軍主.
그 뒤에 유신은 압량주 군주가 되었다.
春秋與訓信沙干, 聘高句麗, 行至代買縣.
춘추가 훈신 사간과 함께 고구려에 사절로 가는 도중 대매현에 도착하였다.
縣人豆斯支沙干, 贈靑布三百步.
그때 고을 사람 두사지 사간이 푸른 베 3백 보를 그에게 주었다.
旣入彼境, 麗王遣太大對盧盖金館之, 燕饗有加.
고구려 경내에 들어가니 고구려왕이 태대대로 개금을 보내 객관을 정해주고 또한 연회를 열어 주었다.
或告麗王曰: 新羅使者, 非庸人也. 今來, 殆欲觀我形勢也, 王其圖之, 俾無後患.
어떤 사람이 고구려왕에게 말했다. "신라 사자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이번에 그가 온 것은 아마도 우리의 형세를 관찰하려는 것 같으니 왕께서는 잘 헤아리시어 후환이 없게 하소서."
王欲橫問, 因其難對而辱之. 謂曰: 麻木峴與竹嶺, 本我國地, 若不我還, 則不得歸.
왕은 춘추에게 어려운 질문으로 대답하기 어렵게 하여 욕보이고자 그에게 물었다. "마목현과 죽령은 본래 우리나라 땅이니 만약 이를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는다면 돌아가지 못하리라."
春秋對曰: 國家土地, 非臣子所專, 臣不敢聞命.
춘추가 대답하였다. "국가의 영토는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신은 감히 명령을 따를 수 없습니다."
王怒囚之, 欲戮未果.
왕이 분노하여 그를 가두고 죽이려 하다가 미처 죽이지 않고 있었다.
春秋以靑布三百步, 密贈王之寵臣先道解.
춘추는 푸른 베 3백 보를 왕의 총신 선도해에게 몰래 주었다.
道解以饌具來, 相飮酒酣, 戱語曰: 子亦嘗聞龜兎之說乎.
도해가 음식을 준비해 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자 농담으로 말했다. "그대도 일찍이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昔, 東海龍女病心, 醫言: 得兎肝合藥, 則可療也. 然海中無兎, 不奈之何.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났는데, 의사가 '토끼의 간을 얻어 약에 섞어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소. 그러나 바다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수 없었소.
有一龜白龍王言: 吾能得之.
(그때) 거북 한 마리가 용왕에게 아뢰었다오. '제가 그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遂登陸見兎言: 海中有一島, 淸泉白石, 茂林佳菓, 寒暑不能到, 鷹隼不能侵. 爾若得至, 可以安居無患.
(거북이는) 마침내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보고 말했소.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맑은 샘과 흰 돌이 있고 무성한 숲과 맛있는 과실이 있다. 추위와 더위도 없고, 사나운 매도 침범할 수 없다. 네가 갈 수만 있다면 걱정 없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因負兎背上, 游行二三里許.
그래서 (거북이는) 토끼를 등에 업고 2~3리쯤 헤엄쳐 갔다오.
龜顧謂兎曰: 今龍女被病, 須兎肝爲藥, 故不憚勞, 負爾來耳.
거북이가 토끼를 돌아보며 '지금 용왕의 딸이 병에 걸렸는데 반드시 토끼 간으로 약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수고를 마다않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고 말했소.
兎曰: 噫, 吾神明之後, 能出五藏, 洗而納之.
(이를 듣고) 토끼가 말했다오. '아! 나는 천지신명의 후예인지라 오장을 꺼내어 씻어서 다시 넣을 수 있다.
日者小覺心煩, 遂出肝心洗之, 暫置巖石之底.
일전에 속이 약간 불편한 듯하여 간과 심장을 꺼내어 씻은 후에 잠깐 바위 밑에 두었다.
聞爾甘言徑來, 肝尙在彼, 何不廻歸取肝.
그런데 너의 달콤한 말을 듣고 곧 바로 오는 바람에 간이 아직도 거기에 있으니,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지 않으리?
則汝得所求, 吾雖無肝尙活, 豈不兩相宜哉.
그렇게 하면 너는 구하려는 약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더라도 살 수 있으니 어찌 둘이 서로 좋은 일이 아니랴?'
龜信之而還, 纔上岸, 兎脫入草中, 謂龜曰: 愚哉, 汝也, 豈有無肝而生者乎.
거북이 그 말을 믿고 돌아갔는데, 언덕에 오르자마자 토끼가 풀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했다오. '어리석기도 하구나. 네놈은! 어찌 간이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
龜憫黙而退.
거북은 이 말을 듣고 멍청하여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는 말이 있다오."
春秋聞其言, 喩其意.
춘추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뜻을 알아 차렸다.
移書於王曰: 二嶺, 本大國地. 令臣歸國, 請吾王還之. 謂予不信, 有如皦日. 王迺悅焉.
그는 왕에게 글을 보내 말했다. "두 영은 본래 대국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게 하시면 우리 왕에게 이를 돌려보내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미덥지 않다면 저 태양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왕은 그때서야 기뻐하였다.
春秋入高句麗, 過六旬未還, 庾信揀得國內勇士三千人, 相語曰: 吾聞見危致命, 臨難忘身者, 烈士之志也.
춘추가 고구려에 간 지 60일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자 유신은 국내의 용사 3천 명을 뽑아놓고 말했다. "위기를 당하면 목숨을 내놓고, 어려움을 당하면 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고 나는 들었다.
夫一人致死當百人, 百人致死當千人, 千人致死當萬人, 則可以橫行天下.
무릇 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백 명을 대적하고, 백 명이 목숨을 바쳐서 천 명을 대적하고, 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만 명을 대적한다면 천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今國之賢相, 被他國之拘執, 其可畏不犯難乎.
지금 이 나라의 어진 재상이 타국에 구금되어 있는데 어찌 두렵다 하여 일을 도모하지 않겠느냐?"
於是衆人曰: 雖出萬死一生之中, 敢不從將軍之令乎.
이에 모든 사람들이, "비록 만 번 죽고 한 번 사는 일에 나아갈지라도, 어찌 감히 장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였다.
遂請王以定行期.
(유신은) 마침내 왕에게 떠날 날짜를 정해주기를 요청하였다.
時, 高句麗諜者浮屠德昌, 使告於王.
이때 고구려의 간첩인 중 덕창이 고구려에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고구려의 왕에게 알렸다.
王前聞春秋盟辭, 又聞諜者之言, 不敢復留, 厚禮而歸之.
고구려왕은 전날 춘추의 맹세를 들었고, 또한 첩자의 말을 들은지라 그 이상 머물러두지 못하고 후한 예로 대우하여 (춘추를) 귀국케 하였다.
及出境, 謂送者曰: 吾欲釋憾於百濟, 故來請師. 大王不許之, 而反求土地, 此非臣所得專. 嚮, 與大王書者, 圖逭死耳.
고구려 국경을 벗어나자 춘추가 전송하러 나온 자에게 말했다. "내가 백제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고구려에 와서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대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전에 대왕에게 보낸 글은 죽음을 모면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金庾信 3
庾信爲押梁州軍主, 十三年爲蘇判.
유신은 압량주 군주로 있다가 13년에 소판이 되었다.
秋九月, 王命爲上將軍, 使領兵伐百濟加兮城, 省熱城, 同火城等七城. 大克之, 因開加兮之津.
가을 9월에 왕은 그를 상장군으로 삼고 군사를 이끌고 백제의 가혜성, 성열성, 동화성 등의 일곱 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유신은 크게 승리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혜에 나루를 개설하였다.
乙巳正月歸, 未見王, 封人急報, 百濟大軍來, 攻我買利浦城. 王又拜庾信爲上州將軍, 令拒之.
유신은 을사 정월에 돌아왔다. 그러나 미처 왕을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 때 백제의 대군이 와서 우리의 매리포 성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봉인이 급히 알려왔다. 왕은 다시 유신에게 상주장군을 제수하고 이를 방어하게 하였다.
庾信聞命卽駕, 不見妻子, 逆擊百濟軍走之, 斬首二千級.
유신은 왕명을 받자 처자도 만나지 않고 즉시 말을 몰아 백제군을 역습하여 패주시키고 2천 명의 머리를 베었다.
三月, 還命王宮, 未歸家, 又急告: 百濟兵出, 屯于其國界, 將大擧兵侵我.
유신이 3월에 돌아와 왕궁에 복명하고 아직 집으로 돌아가기도 전이었다. 백제병이 다시 출동하여 국경에 주둔하며, 장차 군사를 크게 동원하여 신라를 침략하려 한다는 급보가 왔다.
王復告庾信曰: 請公不憚勞遄行, 及其未至備之.
왕은 다시 유신에게 말했다. "공은 수고를 마다하지 말고, 빨리 가서 적들이 도착하기 전에 대비하기 바란다."
庾信又不入家, 練軍繕兵, 向西行.
유신은 또 다시 집에 들르지도 않고 군사를 훈련하고 병기를 수선하여 서쪽으로 떠났다.
于時, 其家人皆出門外待來.
庾信過門, 不顧而行.
그때 유신의 가족들은 모두 문 밖에서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유신은 문을 지나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至五十步許, 駐馬, 令取漿水於宅, 啜之曰: 吾家之水, 尙有舊味.
그리고 집에서 50보 가량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말을 멈추고 자기 집의 물을 떠오게 하였다. 그는 그 물을 마시면서 말했다. "우리 집의 물맛이 아직도 옛 맛 그대로구나."
於是, 軍衆皆云 大將軍猶如此, 我輩豈以離別骨肉爲恨乎.
그 때 군사들이 모두 "대장군도 이러한데 우리가 어찌 가족과 헤어지는 것을 유감스럽게 여길 것인가"라고 하였다.
及至疆埸, 百濟人望我兵衛, 不敢迫, 乃退.
국경에 이르자 백제인들이 우리 군사의 진영을 보고 감히 접근하지 못하고 물러갔다.
大王聞之甚喜, 加爵賞.
왕은 이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그에게 상과 벼슬을 주었다.
十六年丁未, 是善德王末年, 眞德王元年也.
16년 정미는 선덕왕 말년이며, 진덕왕 원년이었다.
大臣毗曇, 廉宗, 謂女主不能善理, 擧兵欲廢之, 王自內禦之.
대신 비담과 염종 등은 여왕이 정치를 잘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군사를 동원하여 폐위시키려 하였다. 왕은 궁 안에서 이들을 방어하였다.
毗曇等屯於明活城, 王師營於月城, 攻守十日不解.
비담 등은 명활성에 주둔하고 왕의 군사는 월성에 진을 친 채 10일 동안 공방전이 계속되었으나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丙夜, 大星落於<月城. 毗曇等謂士卒曰: 吾聞落星之下, 必有流血, 此殆女主敗績之兆也. 士卒呼吼聲振天地.
한밤중에 큰 별이 월성에 떨어졌다. 비담 등은 사졸들에게, "별이 떨어진 자리에는 반드시 피가 흐른다는 말이 있으니, 이는 여왕이 패전할 징조이리라" 라고 말했다. 이를 들은 병졸들의 함성이 천지를 흔들었다.
大王聞之, 恐懼失次.
대왕은 이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庾信見王曰: 吉凶無常, 惟人所召. 故紂以赤雀亡, 魯以獲麟衰, 高宗以雉雊興, 鄭公以龍鬪昌. 故知德勝於妖, 則星辰變異, 不足畏也, 請王勿憂.
유신이 왕을 뵙고 말했다. "길흉에는 일정한 법칙이 없으니 오직 사람이 하기에 달렸습니다. 그러므로 붉은 새가 모여 들어 주가 멸망하였고, 기린을 잡았기 때문에 노나라가 쇠퇴했으며, 꿩의 울음으로 인하여 고종이 흥기했고, 용의 싸움으로 인하여 정공이 창성해졌습니다. 이로써 덕은 요사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별의 변괴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왕께서는 근심하지 마소서."
乃造偶人抱火, 載於風鳶而颺之, 若上天然.
이에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을 붙여서 연에 실어서 띄워 보냈다. 이는 마치 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翌日, 使人傳言於路曰: 昨夜, 落星還上. 使賊軍疑焉.
다음날 그는 "어제 밤에 별이 떨어졌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소문을 내게 하여, 적들로 하여금 의심이 들게 하였다.
又刑白馬, 祭於落星之地, 祝曰: 天道則陽剛, 而陰柔; 人道, 則君尊而臣卑. 苟或易之, 卽爲大亂.
(유신은) 또한 백마를 잡아 별이 떨어진 자리에 제사를 지내면서 다음과 같이 기원하였다. "천도에는 양이 강하고 음이 부드러우며, 인도에는 임금이 높고 신하가 낮습니다. 만일 이 순서를 바꾸면 큰 변란이 일어납니다.
今, 毗曇等以臣而謀君, 自下而犯上. 此所謂亂臣賊子, 人神所同疾, 天地所不容.
지금 비담의 도당이 신하로서 임금을 모해하며, 아랫사람으로서 윗사람을 범하니, 이는 이른바 난신적자로서 사람과 신령이 함께 미워할 일이요,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할 일입니다.
今, 天若無意於此, 而反見星怪於王城, 此臣之所疑惑而不喩者也.
지금 하늘이 이에 무심하여 도리어 별의 변괴를 왕성에 보인 것이라면, 이는 신이 믿을 수 없는 일이니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惟天之威, 從人之欲, 善善惡惡, 無作神羞.
하늘의 위엄으로서 인간이 소망하는 대로, 선을 선으로 여기고 악을 악으로 여기게 하여, 신령을 탓하는 일이 없게 하소서."
於是, 督諸將卒奮擊之, 毗曇等敗走. 追斬之, 夷九族.
그러고 나서 그는 장졸들을 독려하여 분연히 돌격하였다. 비담 등은 패하여 도망하였다. 유신은 그들을 추격하여 목을 베고 구족을 멸하였다.
金庾信 4
冬十月, 百濟兵來, 圍茂山, 甘勿, 桐岑等三城, 王遣庾信, 率步騎一萬拒之.
겨울 10월에 백제 군사가 침입하여 무산, 감물, 동잠 등 세 성을 포위하였다. 왕은 유신에게 보병과 기병 1만을 주어 이를 막게 하였다.
苦戰氣竭, 庾信謂丕寧子曰: 今日之事急矣, 非子, 誰能激衆心乎.
유신은 어렵게 싸웠고 마침내 기력이 떨어졌다. 유신은 비녕자에게 말했다. "오늘의 사태가 위급하다. 그대가 아니면 누가 군사들의 마음을 격려할 수 있으랴!"
丕寧子拜曰: 敢不惟命之從.
비녕자가 절을 하고 말했다. "어찌 감히 명령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遂赴敵. 子擧眞及家奴合節隨之, 突劒戟, 力戰死之.
(비녕자는) 드디어 적진으로 달려갔다. 그의 아들 거진과 종 합절이 그를 따라 적의 칼과 창 속으로 돌진하여 전력을 다해 싸우다가 죽었다.
軍士望之, 感勵爭進, 大敗賊兵, 斬首三千餘級.
군사들이 이를 바라보고 감격하여 서로 앞을 다투어 진격하여 적병을 대파하고 3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다.
眞德王大和元年戊申, 春秋以不得請於高句麗, 遂入唐乞師.
진덕왕 대화 원년 무신에 춘추는 고구려에 원조를 요청하였다가 실패하였다. 그래서 마침내 당에 가서 군사를 요청하였다.
太宗皇帝曰: 聞爾國庾信之名, 其爲人也如何?
태종 황제가 "나는 너희 나라의 유신에 대한 명성을 들었다. 그의 위인이 어떠한가?" 라고 물었다.
對曰: 庾信雖少有才智, 若不籍天威, 豈易除隣患.
춘추가 대답하기를, "유신이 비록 재능과 지혜가 조금 있다고 하나 황제의 위력을 빌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쉽사리 주변국의 우환을 제거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帝曰: 誠君子之國也. 乃詔許, 勑將軍蘇定方, 以師二十萬, 徂征百濟.
황제는 "참으로 군자의 나라로다" 하며 조서를 내려 춘추의 요청을 허락하고, 장군 소정방에게 군사 20만을 주어 백제를 치도록 하였다.
時, 庾信爲押梁州軍主, 若無意於軍事, 飮酒作樂, 屢經旬月.
이때 유신은 압량주 군주로 있었다. (그는) 마치 군무에는 아무런 뜻도 없는 것처럼 술을 마시고 풍악을 울리며 수개월을 지냈다.
州人以庾信爲庸將, 譏謗之曰: 衆人安居日久, 力有餘, 可以一戰, 而將軍慵惰, 如之何?
고을 사람들은 유신을 용렬한 장수라고 여기면서 "백성들이 편하게 생활한 지가 오래 되었으므로 힘의 여유가 있어 한바탕 싸울 만한데 장군이 저렇게 나태하니 이 일을 어찌할까?" 라고 비방하였다.
庾信聞之, 知民可用, 告大王曰: 今觀民心, 可以有事. 請伐百濟, 以報大梁州之役.
유신은 이 말을 듣고 백성들을 쓸 수 있음을 알았다. 그는 대왕에게 보고하여 말했다. "지금 민심을 살펴보니 일을 벌일 만합니다. 청컨대 백제를 쳐서 대량주 싸움의 원수를 갚으십시오."
王曰: 以小觸大, 危將奈何?
왕이 말했다. "작은 힘으로 큰 세력을 건드리면 그 위태로움을 장차 어찌 할 것인가?"
對曰: 兵之勝否, 不在大小, 顧其人心何如耳. 故紂有億兆人, 離心離德, 不如周家十亂同心同德. 今, 吾人一意, 可與同死生, 彼百濟者不足畏也. 王乃許之.
(유신이) 대답하였다. "전쟁의 승부는 (군사의) 대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민심에 좌우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紂)에게는 억조의 백성이 있었으나, 민심이 떠나고 덕이 떠나버려 주(周)의 열 명의 신하가 한 마음 한 뜻을 가진 것만 못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한 뜻이 되어 생사를 같이할 수 있으니 저 백제쯤은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왕이 이에 허락하였다.
遂簡練州兵赴敵.
(유신은) 드디어 각 주의 병사를 선발 훈련하여 적진으로 갔다.
至大梁城外, 百濟逆拒之.
佯北不勝, 至玉門谷.
대량성 밖에 이르니 백제가 역습으로 대항하였다. 그는 일부러 이기지 못하는 척 패주하여 옥문곡에 이르렀다.
百濟輕之, 大率衆來, 伏發擊其前後, 大敗之, 獲百濟將軍八人, 斬獲一千級.
백제는 그를 얕잡아 보고 군사를 크게 동원하여 왔다. 그때 복병이 일어나 백제군의 앞뒤를 공격하여 크게 패배시키고, 백제 장수 8명을 사로잡았으며 1천 명의 목을 베었다.
於是, 使告百濟將軍曰: 我軍主品釋及其妻金氏之骨, 埋於爾國獄中. 今, 爾裨將八人, 見捉於我匍匐, 請命. 我以狐豹首丘山之意, 未忍殺之. 今, 爾送死二人之骨, 易生八人, 可乎.
이에 유신은 사람을 시켜 백제의 장군에게 말했다. "우리 군주 품석과 그 아내 김씨의 뼈가 너희 나라 옥중에 묻혀 있다. 이제 너희들의 비장 8명이 우리에게 잡혀서 꿇어 엎드려 살려주기를 간청하고 있다. 나는 여우와 표범이 (죽을 때) 머리를 제 고향으로 두는 뜻을 생각하여 (그들을) 차마 죽이지 않았다. 지금, 너희는 죽은 두 사람의 유골을 돌려주어 여덟 명의 산 사람과 바꾸는 것이 어떠한가?"
百濟仲常(一作忠常), 佐平言於王曰: 羅人骸骨, 留之無益, 可以送之. 若羅人失信, 不還我八人, 則曲在彼, 直在我, 何患之有? 乃掘品釋夫妻之骨, 櫝而送之.
백제의 중상(충상이라고도 한다) 좌평이 왕에게 말하길, "신라인의 해골을 남겨 두어 유익할 것이 없으니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만일 신라인이 신의를 버리고 우리 여덟 사람을 돌려보내지 않는다면, 저들이 잘못한 것이요, 우리가 옳은 것이니 무엇을 걱정하겠습니까?"라 하고, 곧 품석 부처의 유골을 파서 관에 넣어 보냈다.
庾信曰: 一葉落, 茂林無所損, 一塵集, 大山無所增. 許八人生還.
유신은 "잎사귀 하나가 떨어진다고 하여 무성한 숲에 덜어지는 것이 없으며, 티끌 하나가 더 쌓인다고 하여 큰 산이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하고, 여덟 사람의 귀환을 허락하였다.
遂乘勝入百濟之境, 攻拔嶽城等十二城, 斬首二萬餘級, 生獲九千人.
그리고 마침내 승세를 타고 백제 경내에 들어가, 악성 등 12성을 함락시키고, 2만여 명의 머리를 베었으며 9천 명을 사로잡았다.
論功, 增秩伊湌, 爲上州行軍大摠管.
(왕은) 공을 논하여 (유신에게) 이찬의 작위를 더하여 주고 상주 행군 대총관으로 삼았다.
又入賊境, 屠進禮等九城, 斬首九千餘級, 虜得六百人.
(유신은) 다시 적의 경내에 들어가서 진례 등의 아홉 성을 공격하여 9천여 명의 머리를 베었으며, 6백 명을 사로잡았다.
春秋入唐, 請得兵二十萬來, 見庾信曰: 死生有命, 故得生還, 復與公相見, 何幸如焉.
춘추가 당으로 들어가 병력 20만을 얻기로 하고 돌아와 유신을 만나 말했다. "죽고 사는 것은 천명이 있어서인지 내가 살아서 돌아와 다시 공과 만나게 되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庾信對曰: 下臣仗國威靈, 再與百濟大戰, 拔城二十, 斬獲三萬餘人, 又使品釋公及夫人之骨, 得反鄕里. 此皆天幸所致也, 吾何力焉.
유신이 대답하기를 "제가 나라의 힘에 의지하고 영령의 위세를 빌어, 다시 백제와 크게 싸워서 20개의 성을 빼앗고 3만여 명의 머리를 베었으며 또한 품석공과 부인의 유골을 향리로 돌아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천행으로 이루어진 것이지 내가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金庾信 5
二年秋八月, 百濟將軍殷相, 來攻石吐等七城.
2년 가을 8월에 백제 장군 은상이 쳐들어와서 석토 등의 일곱 성을 공격하였다.
王命庾信及竹旨, 陳春, 天存等將軍, 出禦之.
왕은 유신과 죽지, 진춘, 천존 등의 장군들에게 명령하여 이를 방어하도록 하였다.
分三軍爲五道, 擊之, 互相勝負, 經旬不解, 至於僵屍滿野, 流血浮杵.
(그들은) 삼군을 다섯 길로 나누어 공격하였다. 그러나 서로 이기고 지기를 거듭하여 열흘이 지나도록 (전투가) 끝나지 않았다. 쓰러진 시체는 들에 가득 하고, 흐르는 피는 방아공이가 뜰 정도에 이르렀다.
於是, 屯於道薩城下, 歇馬餉士, 以圖再擧.
이에 (그들은) 도살성 아래에 주둔하면서 말을 쉬게 하고 군사들을 배불리 먹여서 다시 공격하기로 하였다.
時, 有水鳥東飛, 過庾信之幕, 將士見之, 以爲不祥.
이때 물새 한 마리가 동쪽으로 날아가다가 유신의 군막을 지나치자 장병들은 이를 보고 상서롭지 않다고 여겼다.
庾信曰: 此不足怪也. 謂衆曰: 今日, 必有百濟人來諜. 汝等佯不知, 勿敢誰何.
유신이 말하기를, "이것을 괴이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라 하고, 여러 사람들에게 "오늘 반드시 백제 사람이 정탐하러 올 것이다. 너희들은 모르는 체하며 누구냐고 묻지도 말라!"고 일렀다.
又使徇于軍中曰: 堅壁不動, 待明日援軍至, 然後, 決戰.
그리고 그는 군중에 두루 명령을 내렸다. "성벽을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말라. 내일 원군이 도착한 다음 결전을 하겠다."
諜者聞之, 歸報殷相.
첩자는 이 말을 듣고 돌아가 은상에게 보고하였다.
殷相等謂有加兵, 不能不疑懼.
은상 등은 (신라의) 병력이 증가된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於是, 庾信等一時奮擊, 大克之, 生獲將軍達率正仲, 士卒一百人, 斬佐平殷相, 達率自堅等十人及卒八千九百八十人, 獲馬一萬匹, 鎧一千八百領, 其他器械稱是.
이때 유신 등이 일시에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그들은) 장군 달솔 정중과 군사 1백 명을 사로잡았고, 좌평 은상과 달솔 자견 등 10명과 군사 8천9백8십 명의 목을 베었으며, 말 1만 필과 갑옷 1천8백 벌을 노획하였다. 이 이외에 (노획한) 각종 기구도 이와 비슷하였다.
及歸還, 路見百濟佐平正福與卒一千人來降, 皆放之, 任其所往.
그들이 돌아올 때 길에서 백제의 좌평 정복과 군사 1천 명이 항복하여 오는 것을 보았지만, (유신은) 이들을 모두 풀어 주어 마음대로 돌아가게 하였다.
至京城, 大王迎門, 勞慰優厚.
경성(경주)에 이르니 대왕이 문까지 나와서 그들을 맞이하여 위로하고 후하게 대접하였다.
永徽五年, 眞德大王薨, 無嗣.
영휘 5년(654)에 진덕대왕이 사망하였으나 후사가 없었다.
庾信與宰相閼川伊湌謀, 迎春秋伊湌, 卽位, 是爲太宗大王.
유신은 재상인 이찬 알천과 상의하여 이찬 춘추를 맞이하여 즉위하게 하였다. 이가 태종대왕이다.
永徽六年乙卯秋九月, 庾信入百濟, 攻刀比川城克之.
영휘 6년(655) 을묘 가을 9월에 유신은 백제에 쳐들어가 도비천성을 공격하여 이겼다.
是時, 百濟君臣, 奢泰淫逸, 不恤國事. 民怨神怒, 災怪屢見.
이때 백제는 임금과 신하가 사치하고 음란하여 국사를 돌보지 않았다. 백성들은 (이를) 원망하고, 신령이 노하여 재앙과 괴변이 자주 일어났다.
庾信告於王曰: 百濟無道, 其罪過於桀, 紂, 此誠順天弔民伐罪之秋也.
유신이 왕(태종)에게 "백제가 무도하여 죄악이 (하나라) 걸왕, (은나라) 주왕보다 심하니, 이제는 실로 하늘의 뜻에 따라 백성을 불쌍히 여기어 그 죄를 다스릴 때입니다"고 말하였다.
先是, 租未押級湌爲夫山縣令, 被虜於百濟, 爲佐平任子之家奴.
이에 앞서 급찬 조미압이 부산 현령으로 있다가 백제에 포로가 되어 좌평 임자의 종이 되었었다.
從事勤恪, 曾無懈慢, 任子憐之不疑, 縱其出入, 乃逃歸, 以百濟之事, 告庾信.
그는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태만한 적이 없었다. 임자는 그를 불쌍히 여겨 의심하지 않았고, 마음대로 (외부) 출입을 하게 하였다. 그러자 그는 도망하여 돌아와 백제의 사정을 유신에게 보고하였다.
庾信知租未押忠正而可用, 乃語曰: 吾聞任子專百濟之事, 思有以與謀而未由. 子其爲我, 再歸言之.
유신은 조미압이 충직하여 쓸 만한 인물임을 알고 그에게 말했다. "나는 임자가 백제의 국사를 전담한다고 듣고 있다. 내가 그와 의논을 하려 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그대가 나를 위하여 다시 돌아가서 (이것을) 말하라."
答曰: 公不以僕爲不肖, 而指使之, 雖死無悔.
그는 대답하기를, "공이 저를 불초하다고 여기지 않고 일을 지시하시니, 비록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고 하였다.
遂復入於百濟, 告任子曰: 奴自以謂旣爲國民, 宜知國俗, 是以, 出遊累旬不返, 不勝犬馬戀主之誠, 故此來耳. 任子信之不責.
마침내 (그는) 다시 백제로 들어가서 임자에게 말했다. "제가 기왕 (백제의) 백성이 되었으니 이 나라의 풍습을 알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수십 일 동안 다니면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개와 말이 주인을 그리는 정성을 억제할 수 없어서 이렇게 돌아 왔습니다." 임자는 그 말을 믿고 책망하지 않았다.
租未押伺間報曰: 前者, 畏罪不敢直言, 其實, 往新羅還來. 庾信諭我來告於君曰: 邦國興亡, 不可先知, 若君國亡, 則君依於我國, 我國亡, 則吾依於君國. 任子聞之, 嘿然無言.
조미압이 기회를 타서 임자에게 말했다. "전번에는 죄를 받을까 두려워서 감히 바른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신라에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유신이 전하라고 하면서 저에게 '나라의 흥망은 미리 알 수가 없으니, 만일 그대의 나라(백제)가 망하면 그대는 우리나라(신라)에 의탁하고, 우리나라(신라)가 망하면 내가 그대의 나라(백제)에 의탁하기로 하자'고 말하였습니다." 임자는 이 말을 듣고 묵묵히 말이 없었다.
租未押惶懼而退, 待罪數月.
조미압은 황송스러워하며 물러나와 여러 달 동안 처벌을 기다렸다.
任子喚而問之曰: 汝前說庾信之言, 若何? 租未押驚恐而對, 如前所言.
(그러던 중에) 임자가 불러서 물었다. "네가 지난번에 이야기한 유신의 말이 어떤 것인가?" 조미압은 놀라고 두려워하며 지난번에 말한 것과 똑같이 대답하였다.
任子曰: 爾所傳, 我已悉知, 可歸告之.
임자가 말했다. "네가 전한 말을 내가 이미 잘 알았으니 돌아가서 알려라."
遂來說兼及中外之事, 丁寧詳悉. 於是, 愈急幷呑之謀.
(조미압이) 드디어 (신라로) 돌아와 (임자의 말을) 전하고, 또한 (백제의) 내외 사정을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하니, 이에 유신은 서둘러 백제를 병합할 계획을 세웠다.
▶️ 吾(나 오, 친하지 않을 어, 땅 이름 아)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입 구(口; 입, 먹다, 말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五(오)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吾자는 '나'나 '우리'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吾자는 五(다섯 오)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五자는 숫자 '다섯'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吾자는 본래 '글 읽는 소리'나 '나의 말'이라는 뜻으로 쓰였던 글자였다. 그러나 후에 吾자가 자신을 지칭하는 '나'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言자를 더한 語자가 '말씀'이라는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吾(오, 어, 아)는 ①나 ②그대 ③우리 ④글 읽는 소리 ⑤짐승의 이름 ⑥막다, 멈추게 하다 그리고 ⓐ친하지 않다(어) ⓑ친하려고 하지 않다(어) ⓒ소원(疏遠)한 모양(어) ⓓ땅의 이름(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글 읽는 소리 오(唔), 나 아(我)이다. 용례로는 우리들을 오등(吾等), 우리네를 오제(吾儕), 나 또는 우리 인류를 오인(吾人), 우리의 무리를 오배(吾輩), 나의 집을 오가(吾家), 우리 임금을 오군(吾君), 우리 문중을 오문(吾門), 우리 당을 오당(吾黨), 옛날에 동쪽에 있다는 뜻으로 우리나라를 일컫던 말을 오동(吾東), 나의 형이라는 뜻으로 정다운 벗 사이의 편지에서 쓰는 말을 오형(吾兄), 맞서 겨우 버티어 나감을 지오(枝吾), 참된 자기를 진오(眞吾), 나는 그 일에 상관하지 아니함 또는 그런 태도를 이르는 말을 오불관언(吾不關焉), 우리 집의 기린이라는 뜻으로 부모가 자기 자식의 준수함을 칭찬하여 이르는 말을 오가기린(吾家麒麟), 자기가 도와서 출세시켜 준 사람을 일컫는 말을 오가소립(吾家所立), 내 집의 걸출한 자식을 이르는 말을 오문표수(吾門標秀), 나도 또한 모른다를 이르는 말을 오역부지(吾亦不知), 나의 혀는 아직 살아 있오라는 뜻으로 몸이 망가졌어도 혀만 살아 있으면 천하를 움질일 수 있는 힘이 있다를 이르는 말을 오설상재(吾舌尙在), 맞부딪치기를 꺼리어 자기가 스스로 슬그머니 피함을 이르는 말을 오근피지(吾謹避之) 등에 쓰인다.
▶️ 能(능할 능, 견딜 내)은 ❶회의문자로 곰(문자의 왼쪽 부분)과 짐승의 발바닥(문자의 오른쪽 부분)의 모습을 뜻하는 글자로 곰의 재능이 다양하다는 데서 능하다를 뜻한다. 月(월; 肉육)은 살, 마늘모(厶; 나, 사사롭다, 마늘 모양)部는 큰 머리의 모양에서 변한 것으로 머리가 큰 곰 같은 동물의 모습이다. 이 동물은 힘이 세고 고기 맛이 좋기 때문에 이 글자를 빌어 사람의 일이 충분히 된다는 뜻으로도 쓰고, 나중에 곰을 나타내기 위하여는 熊(웅)이란 글자를 따로 만들었다. ❷상형문자로 能자는 '능하다'나 '할 수 있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能자는 곰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能자는 본래 '곰'을 뜻했었다. 하지만 후에 '능력'이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곰을 그린 能자가 왜 '재능'이나 '능력'이라는 뜻으로 바뀐 것일까? 곰은 재주가 뛰어나기에 재능을 뜻하게 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신성함을 상징했던 곰은 여러모로 탁월한 능력을 갖췄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能자가 이렇게 '재능'과 관련된 뜻으로 가차되면서 지금은 여기에 灬(불 화)자가 더해진 熊(곰 웅)자가 뜻을 대신하고 있다. 그래서 能(능, 내)은 (1)재능(才能). 기능(機能) (2)능력(能力) (3)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능하다 ②능히 할 수 있다 ③기량(技倆)을 보이다 ④재능(才能)이 있다 ⑤화목하게 지내다 ⑥~할 수 있다 ⑦응당 ~해야 한다 ⑧능력(能力) ⑨재능(才能) ⑩인재(人才) ⑪에너지(energy) ⑫곰(곰과의 포유류) 그리고 ⓐ견디다(=耐)(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일을 감당하거나 해결해 낼 수 있는 힘을 능력(能力), 일정한 동안에 할 수 있는 일의 비율을 능률(能率), 제 힘으로 움직임을 능동(能動), 능하고 익숙함을 능숙(能熟), 잘 하는 일을 능사(能事), 익숙하고 솜씨 있음을 능란(能爛), 능하게 잘 하는 말을 능변(能辯), 대상을 포착하여 관찰하는 주관을 능관(能觀), 능히 오거나 가거나 함을 능통(能通), 뛰어난 작품을 능품(能品), 능하고 어진 이를 능인(能仁), 잘 쓴 글씨나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을 능필(能筆), 넉넉히 감당함을 능당(能當), 유능하다는 평판을 능성(能聲), 뛰어난 재능을 능재(能才), 할 수 있음이나 될 수 있음을 가능(可能), 어느 기관이 그 기관으로써 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능(機能), 기술적인 능력 또는 재능을 기능(技能), 재능이 없음을 무능(無能), 재주와 능력을 재능(才能), 두뇌의 작용으로 지적 활동의 능력을 지능(知能), 재능이 있음을 유능(有能), 능력이 없음을 불능(不能), 어떤 물건이 지닌 성질과 능력 또는 기능을 성능(性能), 온갖 것에 다 능통함을 만능(萬能), 큰 일이나 작은 일이나 임기응변으로 잘 처리해 냄을 이르는 말을 능소능대(能小能大), 능히 보고도 생각하기 어렵다는 말을 능견난사(能見難思), 능력을 개척하여 발전시킴을 일컫는 말을 능력개발(能力開發), 재능이 있는 자는 계책을 숨기고 남에게 알리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능사익모(能士匿謀), 인간의 능력은 모든 사물에 다 능할 수 없다는 말을 능불양공(能不兩工), 잘 해치우는 재간과 익숙한 솜씨를 이르는 말을 능수능간(能手能幹) 등에 쓰인다.
▶️ 得(얻을 득)은 ❶회의문자로 두인변(彳; 걷다, 자축거리다)部와 貝(패; 화폐)와 寸(촌; 손)의 합자이다. 돈이나 물품을 손에 넣어 갖고 있는 일의 의미로, 옛 모양은 貝(패)와 又(우), 手(수)를 합(合)한 자형(字形)이다. ❷회의문자로 得자는 '얻다'나 '손에 넣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得자는 彳(조금 걸을 척)자와 貝(조개 패)자,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 나온 得자를 보면 마노 조개를 쥐고 있는 모습만이 그려져 있었다. 마노 조개는 동남아 일부 지역에서 만 볼 수 있었기 때문에 한때 중국에서는 화폐로 쓰였었다. 그래서 갑골문에서의 得자는 화폐를 손에 쥐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재물을 획득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금문에서는 여기에 彳자가 더해지면서 지금의 得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得(득)은 (1)소득(所得)이나 이득(利得) (2)정토에 왕생(往生)하여, 열반(涅槃)의 증과(證果)를 얻음 (3)풍수지리의 혈(穴), 또는 내명당(內明堂) 안에서 흐르는 물 등의 뜻으로 ①얻다 ②손에 넣다 ③만족하다 ④고맙게 여기다 ⑤깨닫다 ⑥알다 ⑦분명해지다 ⑧적합하다 ⑨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⑩이루어지다 ⑪만나다 ⑫탐하다, 탐내다 ⑬사로잡다 ⑭덕(德), 덕행(德行) ⑮이득(利得), 이익(利益)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얻을 획(獲),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잃을 상(喪), 잃을 실(失), 덜 손(損), 떨어질 락(落)이 있다. 용례로는 쓸 만한 사람을 얻음을 득인(得人),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꼭 알맞음을 득중(得中),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딸을 낳음을 득녀(得女), 얻음과 잃음을 득실(得失), 뜻을 이루어 자랑함을 득의(得意), 투표에서 표를 얻음을 득표(得票), 이익을 얻음을 득리(得利), 풍악이나 노래 등의 곡조가 썩 아름다운 지경에 이름을 득음(得音), 어떠한 시험이나 경기 등에서 점수를 얻음 또는 그 점수를 득점(得點), 목적을 달성함을 득달(得達), 참여할 수 있게 됨을 득참(得參), 아들을 낳음을 득남(得男), 도를 깨달음을 득도(得道), 바라던 것이 뜻대로 됨 또는 뜻을 이룸을 득지(得志), 수입이 되는 이익을 소득(所得), 남의 말이나 행동을 잘 알아차려 이해함을 납득(納得), 얻어 내거나 얻어 가짐을 획득(獲得), 여러 모로 설명하여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잘 알아듣게 함을 설득(說得), 어떤 자격을 취하여 얻음을 취득(取得), 이익을 얻음을 이득(利得), 깊이 생각하여 이치를 깨달아 알아내는 것을 터득(攄得), 물건을 주워서 얻음을 습득(拾得),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뜻한 것을 이루어 뽐내는 기색이 가득함을 일컫는 말을 득의만만(得意滿滿), 농나라를 얻고 나니 촉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으로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롱망촉(得隴望蜀), 얻은 도끼나 잃은 도끼나 매일반이라는 뜻으로 얻고 잃음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득부실부(得斧失斧), 얻은 것으로는 그 잃은 것을 메워 채우지 못한다는 뜻으로 손해가 됨을 일컫는 말을 득불보실(得不補失), 한 가지 일을 알면 다른 열 가지 일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기억력이 좋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득일망십(得一忘十),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는다는 뜻으로 바라던 바를 이루고 나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썼던 사물을 잊어버림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득어망전(得魚忘筌), 득실이 상반한다는 뜻으로 이로움과 해로움이 서로 마찬가지임을 일컫는 말을 득실상반(得失相半), 바라던 일이 이루어져서 우쭐거리며 뽐냄을 일컫는 말을 득의양양(得意揚揚), 뜻한 바를 이루어서 기쁜 표정이 얼굴에 가득 참을 일컫는 말을 득의만면(得意滿面), 좋은 때를 얻으면 태만함이 없이 근면하여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말을 득시무태(得時無怠), 바라던 일이 뜻대로 이루어질 좋은 기회를 일컫는 말을 득의지추(得意之秋), 부모의 뜻에 들고 부모의 뜻에 순종함을 일컫는 말을 득친순친(得親順親), 그 뜻을 펼 수가 있음 또는 그 뜻을 펴게 됨을 이르는 말을 득신기정(得伸其情), 사람으로써 알아야 할 것을 배운 후에는 잊지 않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이르는 말을 득능막망(得能莫忘)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일컫는 말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는 뜻으로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말을 지남지북(之南之北),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의 말을 낭중지추(囊中之錐),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라는 뜻으로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또는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는 말을 경국지색(傾國之色), 일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을 결자해지(結者解之), 알을 쌓아 놓은 듯한 위태로움이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형세를 이르는 말을 누란지위(累卵之危),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으로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을 어부지리(漁夫之利),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으로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을 형설지공(螢雪之功),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이르는 말을 역지사지(易地思之),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을 한단지몽(邯鄲之夢), 도요새가 조개와 다투다가 다 같이 어부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뜻으로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을 방휼지쟁(蚌鷸之爭),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려고 생각할 때에는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풍수지탄(風樹之歎), 아주 바뀐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은 느낌 또는 딴 세대와 같이 많은 변화가 있었음을 비유하는 말을 격세지감(隔世之感),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때늦은 한탄이라는 뜻으로 시기가 늦어 기회를 놓친 것이 원통해서 탄식함을 이르는 말을 만시지탄(晩時之歎),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검단 노새의 재주라는 뜻으로 겉치례 뿐이고 실속이 보잘것없는 솜씨를 이르는 말을 검려지기(黔驢之技), 푸른 바다가 뽕밭이 되듯이 시절의 변화가 무상함을 이르는 말을 창상지변(滄桑之變),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범을 타고 달리는 사람이 도중에서 내릴 수 없는 것처럼 도중에서 그만두거나 물러설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을 기호지세(騎虎之勢),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으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을 의문지망(倚門之望), 앞의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의 수레는 미리 경계한다는 뜻으로 앞사람의 실패를 본보기로 하여 뒷사람이 똑같은 실패를 하지 않도록 조심함을 이르는 말을 복거지계(覆車之戒)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