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맨 처음 묻은 건 병아리였다 병아리가 울음을 멈춘 날 아이는 밥을 먹던 숟가락으로 흙을 팠다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랑한다는 뜻이지 아이는 자라서 길 위에 묻을 게 많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다람쥐를 묻고 고라니를 묻고 달리는 것들에 치여서 더는 기어갈 수도 없는 발들과 높은 것들에 밟혀서 더는 엎드릴 수도 없는 몸들을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모종삽으로 천천히 묻어주었다 아이는 밤마다 더 자라서 아주 길거나 큰 것을 묻었다 어쩌면 비단뱀이나 코끼리를 묻을 수 있을지도 몰라 플라스틱 양동이 속에 묻힌 물고기를 몰래 바다에 묻고 돌아와 잠이 들면 불호령이 떨어져 꿈이 까맣게 타버리지만 언젠가 아버지를 묻을 수 있을 때까지 아이는 차분히 기다릴 줄도 압니다 그러다가 아이는 작거나 느리거나 눈에 띄지 않는 것들도 죽는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달팽이를 묻고 거미 개미 풀벌레도 묻고 나비를 묻고 비둘기를 묻고 이미 세상을 떴는데도 더 이상 세상을 뜰 수 없는 날개들도 묻어주었다 간밤엔 옥상에서 떨어진 천사도 묻었을지 몰라 그런 건 혼한 일이어서 후볐던 구멍을 파고 또 파고 그러다가 아이는 죽고 나서도 죽는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숲에는 아주 많은 무덤이 있고 아이는 그 숲의 주인이 되었고 폭우만 지나가면 떠내려오는 돼지들을 해마다 굴착기로 묻어주었다 묻는 솜씨가 일품이어서 아이를 찾는 이들이 늘었다 묻는 시간을 줄이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다 밤의 구덩이를 파고 또 파고 그러나 아이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사랑만 합니다 점점 더 모르는 것들을 사랑하게 되고 숲은 마을까지 내려오고 꿈속까지 들어오고 그러니까 아이는 죽지 않는 것들도 죽는다는 걸 아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들을 묻고 누군가 홀리고 간 머리칼이나 말 속의 뼈 같은 것도 묻고 숲이 끝없이 무한해진다면 어디까지가 숲인가 묻고 또 묻고 어쩌면 마을을 통째로 묻었는지도 몰라 사슬처럼 엮인 이야기들 속에 함께 묻혀서 그러나 아이는 끝은 보지 않습니다 사랑만 합니다 식어가는 손을 혀처럼 빼물고 어느 날 숲을 지나던 한 아이가 우뚝 멈추었다 흙 위로 삐져나온 손 하나가 병아리처럼 웅크려 있었다 아이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계간 《문학과사회》 2023 봄호, 《현대시》 5월호 ------------------- 이민하 / 1967년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 등단. 시집 『환상수족』 『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모조 숲』 『세상의 모든 비밀』 『미기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