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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집에 사는 자들 (시84:1-4)
하나님께서 우리 죄인들에게 주신 가장 큰 축복은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들의 구주로 보내주신 일과 그 다음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주신 일입니다. 교회는 어느 인종이나 어느 문화나 어느 계급에 속한 사람을 막론하고 누구나 들어와서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과 그리고 모든 은혜를 받아 누리는 축복의 장소입니다. 마16:18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 또 눅14:21,23 “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교회는 구원의 방주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만민의 기도하는 집입니다. 교회는 죄와 병을 치료하는 병원입니다. 교회는 은혜와 축복의 창고입니다. 교회는 어머니의 품입니다. 교회는 피로 사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전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교회는 천국의 지점입니다. 교회는 만남의 장소입니다.”구약시대에는 교회를 성막, 성전, 또는 하나님의 집이라고 불렀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교회가 너무너무 중요합니다. 그래서 키프리안이라는 초대교회 교부는 “교회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 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개혁주의 신학자 칼빈도 “교회를 어머니로 가지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실 수 없다”라고 선언을 했습니다.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교회는 은혜의 보고 라고 가르쳤습니다. 교회라는 보배로운 창고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를 무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고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했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9:4).교회가 흠이 없는 완전한 장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교회의 목사와 성도들이 흠이 없는 완전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거스틴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지상에는 완전한 교회가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세상에서 가장 거룩하고 가장 보배로운 곳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피와 성령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고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교회를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함부로 무시하고 함부로 비판하고 쉽게 떠나면 구원도 은혜도 받을 수 없는 불행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첫째,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사모한 복 있는 사람 다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몽땅 받았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바라보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일이 있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13:22).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몽땅 받았던 이유 두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한 평생 눈물과 회개의 제사를 드린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집을 너무너무 사모하고 사랑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집을 간절한 마음으로 앙망하고 사모했습니다.“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27:4).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며 사는 것을 자기의 평생의 소원이고 평생의 기도제목이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위한 열성이 자기를 삼켰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시69:9). 사람들이 다윗보고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고 했을 때 다윗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다윗은 또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시122:1).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시65:4). 이 고백들은 모두 다윗의 간절한 사모의 고백들이었습니다.
시84편을 고라 자손의 시라고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시84편도 다윗의 시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다윗의 시를 고라 저손이 다시 읊은 시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본시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누리는 복에 대하여 노래하는 찬양시입니다. 시84:2절을 보면 시인은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옴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궁정 곧 주의 장막을 사모하면서도 그곳을 향해 나아 갈 수 없는 시인의 애틋한 마음을 나타낸 것 입니다. 여기서 ‘사모하다'라는 말은 ’열망하다' 또는 ‘가망하다'를 뜻하는 말로서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그리워하며 함께 있고 싶어하는 열망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3절을 보면 시인은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참세 나 제비와 같은 머물들이 주의 장막에 집과 보금자러를 얻은 것과 달러 주의 장막에 거하지 못하게 된 시인의 안타까운 처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꺼 둘보금자리를 얻었다 '는 시인의 말에서 그가 주의 장막에 거하는 것을 얼마나 복된 일로 생각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었습니다.
또 10절에 시인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외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 이 좋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주의 궁정'과 ’다른 곳' , ‘한 날 '과 ’천 날' , ‘악인의 장막 '과 ’하나님 문지기' 라는 대조를 통해 어떠한 피해를 감수하고서 라도 하나님의 전에 거하기를 원하는 그의 간절한 소망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은혜의 가치를 아는 자만이 은혜를 사모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집보다도 자기의 궁전보다도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는 몸이 쇠하고 아플 정도로 하나님의 성소를 갈망하고 사모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가치를 잘 알고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안에 머물기 위해서라면 이 세상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장구한 삶, 건강한 삶,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거절하고 고난과 지천한 처지에라도 우리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안에 거하는 축복, 이 세상 어느 것과도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영생의 가치, 그 나라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고 그것을 얻고자 우리의 모든 소유조차 아까워하지 않고 팔아 그 고귀한 가치를 살 수 있는 우리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윗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다윗은 자기 개인의 소유를 모두 바쳐서 성전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대상29:2-4)다윗은 참으로 축복 받은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을 몽땅 받았는데 후에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를 만큼 다윗은 대단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고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복을 받은 사람들이 성경에는 많습니다.
한나는 절기 때마다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제사를 드리며 기도를 하곤했는데 한번은 가정 불화로 인해 속이 너무 상해서 하나님의 집으로 올라가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축복하셔서 기도의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는 너무너무 기뻐서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삼상2:1).
한나는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삼상3:1-4, 10-11에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서 기도하다가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무엘은 기도의 사람이 되었고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눅2장에 보면 안나라는 여 선지자가 있었는데 그가 100세가 넘을 정도로 나이가 너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축복은 구주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일과 그 분을 세상에 증거하는 일인데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다가 아기 예수를 만났고 그리고 그를 세상에 증거하는 복을 받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곳에는 말씀이 충만했고 교제가 충만했고 기도가 충만했고 성령이 충만했고 봉사가 충만했고 사랑이 충만했고 전도가 충만했고 찬양이 충만했습니다. 저들이 마음을 같이 하여 날마다 성전에 모였기 때문이었습니다.(행2:46,47)
셋째,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기를 간절히 소원한다면 평생토록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는 어릴 때부터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교회를 사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배당에 가서 무엇합니까? 예배합니다. 교회중심이 바로 예배 중심의 삶입니다. 예배를 영어로 'worship'이라고 하는데 최고의 가치(worth)라는 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예배가 피조 된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최고의 가치가 됩니다. 사람들은 가장 가치 있는 일은 출세하고 성공하는 일이라고 말하는데 진짜 가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생애에 최고의 절정의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할 때 우리들 하나하나를 가치 있게 여기십니다. 예배하는 자는 예배드릴 때마다 새 힘을 공급받습니다.
1) 시84: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쉬운 성경>, 주께로부터 힘을 얻은 사람은 행복합니다 시온을 향하여 가는 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 마음에'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 자신, 그러고 그와 더불어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추구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자들,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원하지만 시온의 성소에 나아갈 수 없는 형편과 상황에 처한 자들을 염두에 둔 표현어라 할 수 있는데. 그들은 비록 시온을 향해 순례할 수 없지만 순례에 대한 소망이 너무나 간절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러한 자들까지도 복되다고 선언합니다. 이는 그들의 힘이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받습니다.
2) 시 84:7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쉬운성경>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갈수록 점점 더 힘을 얻습니다. 시온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배드릴 때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강력한 새 힘을 부어주십니다.그래서 시인은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자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인 이 예배를 형식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나와 앉았다가 가면 기쁨과 감격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배하는 시간이 나에게 주신 가장 큰 은혜의 시간이요 최고로 가치 있는 시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가장 행복한 시간임을 믿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집보다 교회를 더 귀하게 여기고 교회를 더 사랑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학개 시대의 사람들이 교회보다 자기 집들을 사랑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학개1:9).“ 너희가 많은 것을 바랐으나 도리어 적었고 너희가 그것을 집으로 가져갔으나 내가 불어 버렸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것이 무슨 까닭이냐 내 집은 황폐하였으되 너희는 각각 자기의 집을 짓기 위하여 빨랐음이라.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집보다 교회를 더 귀하게 여기고 교회를 더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왜요?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입니다. 온갖 종류의 죄인들이 들어와서 죄 사함과 구원의 축복을 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만져주시고 여러분들의 병든 몸을 고쳐주시고 여러분들의 죄 지은 영혼을 깨끗하게 씻어주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종류의 은혜와 자비와 사랑과 축복의 이슬을 아침마다 내려주시는 시은소이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이 함께 모여서 위로와 사랑을 주고 받으면서 기쁘게 사는 행복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들이 들어와서 위로와 사랑을 주고 받으며 사는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나폴레옹이 전 세계를 정복해서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그런 그에게도 실패가 있었습니다. 그가 전쟁에서 패배해서 저 대서양 센티에르나 조그마한 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한 기자가 찾아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폐하여, 폐하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말씀해 보십시오." 그때 나폴레옹은 눈을 지그시 감고 옛날을 회상하는 듯 두 눈가에 눈물을 적시면서 입을 열었습니다."내가 지금부터 수 십년 전 알프스 산맥을 넘어 전투가 치열할 때 어느 주일날 아침에 종소리가 들려 나는 그 종소리를 따라 갔노라 갔는데 마침 조그마한 시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에 나도 철모를 벗고 예배를 드렸다. 그때 나는 성가대의 찬양소리를 들으면서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신비한 은혜에 너무 감격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노라 그 순간이 내 평생에 지울 수 없는 감격과 환희와 행복으로 남아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위로와 사랑을 서로 주고 받는 행복한 곳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함께 모여 있다가 아버지 집으로 올라가는 천국 가는 대기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인은 본시에서 복 있는 자가 누구인지 세 번이나 복이 있다' 는 선언을 통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즉 첫째, 주의 집에 거하는 자', 둘째, 그 마음에 시온의 대 로가 있는 자', 셋째 주께 의지 하는 자 '가 복있는 자입니다. 이는 한 마디로 말하면 주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자가 복이 있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 안에 있는 자에게 영원한 생명외 복을 주십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귀한 복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여러분! 단 하루를 살더라도 하나님의 궁정에 거하는 것이 진정한 복인 줄로 알고 그것을 위하여 여러분의 모든 것이라도 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