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긴장이 되었습니다. 서둘러 나갔습니다. 전도지와 전도 선물을 차에 싣고, 오늘 찬양전도에 은혜를 더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성도 네 분과 동승해서 김천역에 도착하니 20분 전 10시입니다. 이쯤이 정상인데 매 번 10시에 간들간들 도착하거나 어떤 때는 조금 지날 때도 있습니다.
보면대(譜面臺)를 설치하고 악보를 제 자리에 놓고 또 전도지와 선물의 자리를 마련하는 등 세팅을 마치니 5분 전 10시입니다. 문혜선 청년이 도착해서 전도 팀이 여섯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시작 기도를 막 마쳤을 때마 오늘의 손님을 이끄시는 하 권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김천 톨게이트 막 왔는데, 근처에 버스 주차할 때는 있는지요?"
김천역에 손님들이 하차한 뒤 강변주차장이나 문화예술회관 주차장으로 가면 될 것 같다고 안내를 했습니다. 통화를 마친 잠시 뒤 대형 버스 한 대가 김천역 앞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수정동성결교회'라는 글자가 박혀 있는 45인승 버스였습니다. 같은 45인승이지만 여느 것보다 훨씬 크게 보이는 이유는 뭐지요?
장년의 여성들이 줄 지어 내렸습니다. '장년의 여성'이라고 했지만, 이분들은 부산 수정동교회(담임 조관호 목사) 제6여전도회 권사님 집사님들입니다. 98년의 전통을 가진 교회의 백전노장 영적 장수들입니다. 제6여전도회 회장이신 하영자 권사님이 최종 방문 숫자를 26명이라고 했는데 두 명이 더 합류해 28명이 오늘 저희 교회를 격려 방문하는 것입니다.
저희들의 기도가 응답받는 순간입니다. 적을 때는 4,5명, 많을 때는 10 여명의 단원으로 찬양전도를 해 오면서 성경에 나오는 고난과 승리의 숫자 '40'을 늘 생각했습니다. 40명이 모여 찬양전도를 할 수 있는 날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했거든요. 좀 일찍 응답 주셨으면 더 좋았을 걸! 이렇게 까탈을 부려보지만, 되돌아보면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을 주신 것이 됩니다. 저희들의 영적 힘이 거의 소진(消盡)되어 있었거든요.
부산 수정동교회는 2년 뒤면 창립 100년이 되는 교회입니다. 성결교회로 영남 지방에서 오랜 전통과 영향력을 가진, 그래서 그 지역 성결교의 모 교회와 같은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이런 교회에서 신앙 훈련을 받은 성도들이어서 매사가 적극적이었습니다. 찬양도 전도도 기도까지 빈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이런 분들과 잠시 주님의 일을 같이 한다는 게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의 합력 일정은 이렇게 잡혀 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30 여 분 동안 모두 함께 찬양을 하고 10시 30분부터 김천역 광장에서 전도지와 선물을 나누며 복음을 전합니다. 전도 선물은 옛날 건빵으로 하영자 권사님 등이 찬조해서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 시간 안에 기차 승객을 기다리며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택시 기사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11시부터 정오까지 김천역을 중심으로 좌우 넉 조(3인 1조)가 상가 전도를 나갑니다. 남아 있는 사람들은 찬양을 계속하구요.
김천역 광장에서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결신 기도까지 한 권사님도 있고, 상가에 복음을 전하면서 차 대접까지 받고 나온 분들도 있습니다. 또 어떤 권사님은 전도 대상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그를 위해 기도하겠다면서요. 상가 전도를 다녀 온 분들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는 말이 김천 사람들은 부산 사람들보다 유(柔)하다고 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복음을 전하는 분들 모두 영적 무장이 잘 된 이유가 더 크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기도로 김천역 전도를 마쳤습니다. 이제 맛있는 점심시간입니다. 6여전도회 회장 하 권사님과 방문 전도 사역을 수시로 상의하면서 예약해 놓은 음식점이 저희 교회 근처에 있는 '옷벗은오리'집입니다. 오리 고기가 코스로 나오고 마지막에 탕과 단호박에 넣은 찰밥이 나옵니다. 수정동교회 제6여전도회 회원들과 덕천교회 식구들 그리고 서반석 권사님이 이끄는 전도 팀 해서 40 명의 대 군사가 즐거운 오찬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수정동교회 6여전도회에서 기쁜 마음으로 공궤하는 것을 저희들은 감사히 먹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을 동경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도회지 사람들은 농촌을, 그리고 농촌 사람들은 도회지 생활을 동경하는 것도 그런 성향의 결과일 것입니다. 정보화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이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작은 농촌 교회를 방문한 도회지 교회 권사님 집사님들이 낯익은 사람들에게는 초라한 모습에 지나지 않는 농촌의 풍광을 호기심이 녹아 있는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보통 이런 행사는 계획표대로 진행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교회의 방문 예배도 20분이나 늦게 시작되었습니다. 오늘의 행사는 순전히 수정동교회 제6여전도회가 주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장 하영자 권사님이 사회를 보고 제2부회장 이정숙 권사님이 우리 덕천교회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이런 기도가 모여 덕천교회가 건강하고 모범적인 농촌교회로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요 2:1-11을 분문으로 "예수님의 첫 번째 이적"이란 제목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물을 포도주로 만드신 이 이적은 순종하는 하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 예수님이 만드신 그 맛있는 포도주를 마시고 대부분 출처를 모른 채 마냥 흥에 겨워했지만, 순종하여 심부름한 하인들은 그것이 예수님께서 만드신 것을 알았다는 것. 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이와 같이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모든 분들은 순종한 하인들과 같은 삶을 권면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는 없는 시간 틈새에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예배당에서 한 컷 그리고 마당에 나와서 또 한 컷. 모두의 얼굴에서 환한 빛이 피어올랐습니다. 성령에 취한 얼굴 같기도 하고 은혜에 감전된 얼굴 같기도 하고…. 하지만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빨리 진행해야만 했습니다. 시간은 순연(順延)되어 예정보다 50 여 분이나 더 지나 있었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예배 후 선택 시간으로 두 가지가 준비되어 있었거든요. 나물 캐기와 직지공원 산보가 그것입니다. 아쉽게도 두 가지 중 하나를 취소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서요. 나물 캐기는 권사님들이 기대를 많이 한 것이었는데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대상지로 윤종팔 집사님 밭 근처를 정해 놓았었지요. 그곳은 야산에 위치해 있어서 차가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500 m의 산길은 가고 오는 데에만 적지 않은 시간을 요구할 것입니다.
관광지가 드문 김천에서 그래도 직지문화공원은 볼거리 장소로 꼽히는 곳입니다. 10 여 년 전 김천시가 많은 재정을 투여해서 만든 공원입니다. 문화라는 이름을 단 공원답게 국내 유명 시인들의 시비가 곳곳에 세워져 있고, 세계 각국 조각가들의 작품도 공원 요소요소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백수문학관과 세계도자기전시관도 문화의 위용(威容)에 이름을 더합니다.
박목월의 나그네 등 시(詩)를 음미하며, 조각 작품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김천의 예향(藝香)에 흠뻑 젖는 듯했습니다. 소풍 나온 학동(學童)들 마냥 창공을 나는 청춘들처럼 마음은 순진무구를 향해 휘달립니다. 거기에 성령님이 동행하시니 그야말로 천로역정(天路歷程)의 시간으로 착각할 정도입니다. 하루의 전도 여행이 강행군의 연속인데도 힘 드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마냥 동심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는 일입니다. 벌써 오후 5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으니까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직지파크호텔 밑 공영주차장 버스 서 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하 권사님이 인원을 점검했습니다. 운전을 하는 집사님까지 총 28명. 떠나기에 앞서 제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은혜의 시간, 안전의 시간 사랑의 시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아울러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돼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이 먼 곳까지 와서 복음의 씨를 뿌리고 가는 부산 수정동교회 제6권사회에 감사하며 축복의 귀한 통로가 되게 해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덥지도 그렇다고 춥지도 않은 날씨, 구름이 얇게 끼어 상춘(賞春)의 햇살을 막아 준 날씨, 하나님은 우리의 합력 전도를 그렇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오랜 기도의 응답, 40 여 명이 함께 한 찬양전도는 김천역 광장의 일대 장관이었습니다. 감사할 일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