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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호호 딸입니다. 이번 중국 여행때 쓴 기행문을 올립니다.
아빠께서 5000원을 주신다고하시길래 신을 내며 블로그에 쓴 글을 약간 고쳐 가져왔습니다.
배에서의 험난한 일정은 생략합니다. 나폴레옹 원정대가 알프스 산맥을 넘는 여정에 준하는 험난함이었습니다.
배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수속을 위한 터미널에 갔다. 터미널에서 밥먹는 조와 안먹는 조로 나뉘어 관광을 시작했다.
나는 아침도 안하고 토까지 했기 때문에 밥먹는 조의 버스에 올랐다. 점심은 한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고 노룡대를 향했다. 가는 내내 중국의 건물들을 구경하고 중국의 가요를 들었다. 가요는 원래 옛날 것을 틀어준 것인지, 아니면 특색이 그런 것인지 내 어릴적 가요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났다.
중국의 건물들은 대부분 낮았다. 진황도가 지방도시인 이유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방도시라도 큰 건물이 있잖은가?
중국은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굳이 높이 지을 필요가 없어 그런다고 엄마께서 설명해주셨다. 아파트로 보이는 건물이 10층을 넘지 않는다. 커다란 쇼핑몰이나 어느 정도 쓰이고 있는 5층 정도의 건물이 아니면 대게 조그만 구멍가게같았고, 일부는 가게가 나가버려 나의 중국의 후진 이미지와 완전 들어맞아 버렸다.
첫번째 관광지 노룡대. 늙은 용의 머리
하늘에서 바라보면 용이 머리를 바다에 박고 바닷물을 들이마시는 모양이라 한다.
날씨가 추웠지만 용의 머리까지 가보았다.
이 바다 위에 어떻게 이런 성을 지었을까
기술이나 시간, 공사 시간맞추기등이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백성들의 피땀이 배여있을 벽돌 사이사이가 씁쓸했다.
아주 예로부터 성을 지을 때는 항상 백성의 희생을 필요로 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만리장성, 하지만 만리장성 뿐이 아닐 것이다.
생계를 유지해도 막막한 판에 억지로 그곳에 끌려와 혹독한 노동을 당한다.
혹독하기만 할까. 부실한 몸으로 노동을 제대로 하기는 당연히 힘들 것이고, 공사장의 관리자들은 그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소리지르고 재촉한다.
백성을 지키기 위한 성벽 때문에 백성이 죽어나간다.
차라리 지키는 성벽을 짖는 거라면 내 마누라, 내 자식을 위해라며 위로라도 할텐데.
어떨 때는 왕이 술 마실 곳을 위해, 백성들의 피가 왕의 술잔을 채워간다.
이러니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방수군포제라는 부정이 행행하고, 성을 짖는 과정조차 백성을 배려했던 수원화성에게 내가 깊은 감동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다음으로 간 곳은 역시나 씁쓸한 곳이었다.
산하이관, 만리장성의 시작.
그래도 그 규모의 거대함에는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해서 그다지 길어 보이진 않지만, 정말 저 뒤로 만리는 거뜬히 쭉쭉 뻗어있을거 같은 거대함 이었다.
저 위의 천하제일관의 정면에는 옛날 식으로 지어놓은 마을 풍경이 있었다. 그것이 시내 풍경 인 줄 알았더니, 성 안의 마을! 건너편의 성벽이 안보인다. 천하제일관의 저 간판은 명필이 직접 썼다던가, 혹은 건물의 벽돌 하나하나를 구워 냈다던가 하는 설명을 해주셨는데 기억이 안난다.
그 다음 날에 중국이 가이드 아저씨께서, 어눌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집중이 잘 되는 발음으로 만리장성과 관련된 명나라 멸망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원래는 춘추시대에 있던 여러 요새들을 진시왕이 통일하여 잇기 시작하여 특히 명나라때 박차를 가해 완성된 만리장성. 그것이 성 밖 북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용도 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많은 시간과 희생이 무색하게도, 명나라의 멸망의 폭탄은 다름 아닌 안에서 터졌다. 때는 임진왜란으로 조선을 돕기 위한 대규모 파병 시기. 그 때 두 개의 폭탄이 터져버린 것이다.
하나는 이자성의 농민 반란이었고 또 하나는 다른 관리의 반란이었다. (다른 관리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합니다.)
관리의 부모는 명나라에 충성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명은 아주 사소한 실수를 이유로 그들을 죽였고, 그의 아내조차 빼았았다.
속으로 이를 갈고 있던 그는 이 시기에 폭탄을 터트렸다.대규모 파병으로 힘이 약해진 그 틈을 치고 올라온 것이었다.
농민 반란군 이자성으로 말하자면 북경까지 함락시킬 정도였다. 이자성은 산하이관에서 50만 대군을 이끌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오삼계에게 협력을 요청한다. 그가 아끼는 첩을 뺏어놓고 말이다. 화가 난 오삼계는 청나라군에게 철옹성 문을 열어주었고 그렇게 명나라는 멸망했다.
공자 가라사데 나라는 밖이 아닌 안으로부터 망한다. 밖은 그저 무너져가는 모래 성을 한번 툭 쳐줄뿐이다.(이런 내용)
역시 중요한 것은 기둥이다. 우리 나라도 지금의 기둥을 잘 다듬고 보살펴야 한다는걸 다시금 가슴에 새겼다.
2일 저녁에는 중식을 먹었다. 여행사를 운영하고 계시는 정규호 아저씨께서 한 턱 쏘셨다. 진짜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거의 스무 가지는 될 거 같은 종류의 음식들이 줄줄이 나왔다. 쓰인 향신료의 맛이 조금 이상하거나, 굉장히 맵거나(고추 잊지않겠다, 혀를 마비시킨 건 네가 처음이었어...), 마파두부의 끝맛이 왠지 입냄새를 혀로 느끼는 것 같다거나, 개구리라거나. 이런 식으 포용하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새롭고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그리고 기름이 많았다.
식사 후에는 각자 흩어져 근처에서 마사지를 받거나 슈퍼에 가보거나. 우리는 슈퍼에 갔다. 늦은 시간이라 상층의 상가들은 모두 문을 닫았고, 지하의 매장만 남아있었다. 물건 종류가 정말 다양한 것을 빼면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카세트같은 가전제품, 옷, 농구공까지 팔고있는 것이 놀랍다. 올라오다가 1층에서 한국 물건 파는 가게를 발견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관광지!
가는 버스에서 어눌한 가이드 아저씨께서 중국 애기를 이것저것 해주셨다.
지금 중국에는 PC방이 엄청난 속도로 생기고 있다. 그리고 그 급속한 변화탓에 청소년의 중독 문제가 심각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벌어지고있다. 낯선 애기가 아니다. 아저씨의 친구분이 피시방을 운영하고 계시는데, 한 여학생이 마이크폰을 들고 와서 채팅 내내 욕을 푸짐하게 싸지르는데, 3시간 내내 중복되는 욕이 하나도 없었다. 주의를 주자 또 욕을 하며 나가버렸다고 한다. 중독을 해결하기 위한 센터도 있지만 효과가 없는 모양이다.
진황도에서는 석탄 산업이 발달했다고 했었나?그래서 기찻길이 중간중간 있다. 그리고 이 기차가 지나가는 동안에는 꼼짝없이 기다려야 한다. 우리도 기차에 한번 막혔지만 1~2분정도만 기다리고 갔다. 어떨 때는 반시간이나 기다려야 한다던데 운이 좋았다.
진황도는 공상당 때도, 여러 고위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가지던 곳이다. 그 때 정치인들이 쓰는 특별한 담배나 술 등이 비밀리에 유통되지만 구하기 무지 어렵다. 후에는 진황도에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이 비판을 받아 회외는 사라지고 대신 별장으로 쓰이고 있는 모양이다. 옛날처럼 말이다. 겨울에는 모르지만, 여름에는 공기가 다른게 확실히 느껴진다고 한다.
난 여전히 추위로 벌벌거리고 있었기때문에,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하고 사진만 찍고 바로 버스로 들어가야했다.
마지막 관광지를 뒤로 하고, 집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날씨가 심상치않다.
아침에 일어났 을때 슬금슬금 눈이 오더니, 점심시간에는 발목을 거뜬히 넘기며 쌓이기 시작한다. 어떤 곳에는 강한 바람 때문에 쌓이지도 못하는게 무서웠다. 나중에는 이 눈이 40년 만의 폭설로 밝혀졌다. 우리 엄마 아빠랑 가면 맨날 눈와.
모두가 위기의 국면을 맞이 했다. 날씨가 나빠 배가 못 뜰 수도 있다. 키미테까지 붙여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게 왠 날벼락!
결국은 못 뜨는 걸로 결정되었다. 이게 왠 날벼락!
그래서 나온 해결책은, 모두가 베이징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자는 거였다.
배에서 심하게 멀미를 할 때 비행기를 타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그 때는 비자 문제로 포기해야 했다. 말이 씨가 된다고 이게 왠 날벼락 행운^^?
모두가 근처의 국수집이나 국밥집에서 점심을 해결한 뒤 고속버스가 왔다. 기차는 좌석이 없어 안되므로 차밖에 답이 없었다.
눈 때문에 고속도로가 막힌 관계로 국도로 하여 7시간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군데군데 통행가능한 고속도로가 있으니 조금 덜 걸릴수도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눈투성이의 도로를 달리고 달려(결국은 고속도로로만) 약4시간만에 베이징에 도착했다. 가도가도 길 옆에는 눈으로 덮힌 평야와, 길가까이에는 가지런히 심어놓은 곧은 나무 뿐이었다. 시베리아 벌판 같기도 한 풍경이었다. 중국이 넓다는 것을 여기서 실감했다. 우리나라라면 여기저기 민가와 논밭, 멀지 않은 곳에는 높은 산등성이나 아파트 건물이 보일텐데.
베이징에 도착하자 모두가 놀랐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이 날씨속에서 모두를 안전하게, 빠르게 베이징까지 데려다 준것이다. 울산 아주머니께서는 기사 아저씨의 노련한 운전 솜씨를 직접 목격하시고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박수가 어색하지 않다.
중국의 현재를 알려준다는 베이징 시내를 달리는 버스 안에서 중국의 도시라는 것을 구경했다. 도시의 풍경은 어디에나 다를 게 없었다. 일본에서 본 도심의 풍경과 다른점을 못 느꼈다. 하기야, 외국인이 한국의 지방, 농촌에 와보면 후지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나라별 조건에 따른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결국엔 세계화의 이름 아래 모두가 비슷해지고 있었다.
중국에 대해 갖고 있던 후진 이미지를 벗어야겠다.
베이징에서 우리가 묵은 호텔이다. 星明호텔. 건물과 방은 진황도에서보다 작지만, 시설이 더 좋고, 무엇보다 아침부페가 맛있다.
지방과 도시의 호텔은 당연히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으려나. 도착한 날에 호텔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중식 코스요리였다. 냉채 종류의 에피타이저 이후 지지고 볶은 음식이 나왔다. 독특한 향신료가 사용됬거나 기름이 많아 부담되는 음식이 2일의 중식보다 많았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두부튀김이 기억에 남는다. 발마사지를 나중에나마 받아보려 했더니 사람이 꽉차서 못했지만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침대에 누웠다.
베이징에서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빠듯하게 두 곳을 둘러 봤다.
먼저 사진의 2008년 올림픽 경기장+수영장. 버스가 모퉁이를 도는 바람에 이렇게밖에 찍지 못했다. 하지만 옆을 지나갈 때 나마 봤지만, 투명한 비누방울로 과학동아의 기사를 계속 머리속에 떠오르게 하던 인상깊은 구조물 이었다.
중간에 비행기 시간이 꼬여버렸다. 한국에서도 폭설이 내리기때문에 우리가 예약한 5시 비행기는 뜨지 못할 수도 있고, 대신 먼저 중국에 가 있던 비행기의 출발시간을 늦춰 그것을 타기로 했다.
(진짜)마지막 중국 관광은 쇼핑 거리를 구경하고, 버스에서 깜빡 조는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올림픽을 대비해 제3공항을 새로지었다고 한다. 짐을 부치고 우리가 가야할 게이트로 가기위해 모노레일을 탔다,...모노레일을 탔는데...가방이 무겁고 서있어서였을까, 모노레일이 느려서였을까.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우리가족이 지각을 좀 많이 해서, 내가 정규호 아저씨께 신세를 많이져서...☞☜죄송한 마음이 많이 남는 신기한 여행이었다.
그래도 우리와 비슷한 게 많다고 느꼈던 일본과는 달리, 중국은 우리와 이런 다른 점이 있구나, 또한 생각만 하던 중국을 체험하고 온 얻은 게 있는 알찬 3박 4일이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중간에 기억이 안나서 못 써넣은 정보를 덧글로 제보해주시면 감사를 드립니다.
첫댓글 설명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네요. 정말 놀라운 기억력~~ 이런게 진정한 기행기 입니다.
얼굴은 모르지만 잘 봤네요 여행기를 잘 썻네요. 글을보니 다시한번 재미났던() 여정이 생각나고.....
퍼가요~^^
너무나 수고했고요 잘보고 갑니다.............. 그저 부럽습ㄴ다........ 중국을 5번 갔지만 이런 여행을 가보고 싶군요
미안하지만! 농민반란 이자성은 누구고, 오삼계는 누구이며, 왠 청나라군에게 문을 열어주었는지? 궁금해서?
딸래미입니다. 가이드에게 들은 설명은 명나라의 멸망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이고, 그 개개인의 인물에 대한 말은 없었거나 혹은 제가 기억을 못하고있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턴을 돌리겠습니다. 다만 왜 청나라 군에게 문을 열어주었는가...명나라의 멸망이 확정된 당시, 명나라 인과 협력하여 청나라를 무찌르고 우리민족의 새 시대를 열 것인가, 아니면 청나라에게 문을 열어주어 다른 민족이 새 시대를 열게 둘것인가를 마음속으로 저울질하고 있을을 겁니다, 오삼계는. 그런데 위에서 쓴데로 첩을 빼앗아 가버렸으니 화가 나 청나라에게 문을 열어주고 말았다고 합니다.
물론, 꼭 첩을 빼앗긴게 아니라 정세같은 것도 고려했겠죠. 가이드 아저씨께 들은 것은 저정도 뿐이라... 청의 정규군과 농민 반란군들이 상대가 되겠느냐, 이자성같은 무식한 인물이(같은편으로 회유하는데 첩뺐어간거보면;;) 청나라를 어떻게 대처하겠느냐,..같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 후에는 오삼계의 군대도 청나라군에게 전멸당했습니다.
挺好了!!我在桂林以后去北海,,深圳
가보고 싶어요
바닷에 면한 성벽이 인상적이네요.
ㅎㅎ 울산 아주머니 여기있어요 일년...이제 세삼 발자취생각하며 글을 읽다 보니 나의 이름도 나요네요 ...ㅎㅎ 다시 그런 추억이 .. 감사해요 ..늘 나는 혼자라 생각했는데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 이 있었네요 ..^^* 감사해요 ^^* 울산 노랑 네비게이션.....^^*
사진이 좀더 많았음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글은 차 잘썼네요